[청년예술가의 썰] 청춘이 청춘으로 남기 위해서 보내야 하는 시간들: 팝 락밴드 벤치위레오 리더 이준행으로부터
[청년예술가의 썰] 청춘이 청춘으로 남기 위해서 보내야 하는 시간들: 팝 락밴드 벤치위레오 리더 이준행으로부터
  • 이준행(음악가)
  • 승인 2023.10.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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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과거의 유물로 선언된 한국 나이로 33세. 생각보다 적지 않은 나이에 홍대 밴드 씬에서 음악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청춘’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양심의 욱신거림이 느껴진다. 마냥 푸르른 청춘이라는 것은 없다. 그것을 지나왔을 때, 그것이 아름다웠던 청춘이었다는 것을 느낄 뿐이다. 나는 통상적으로 낭만이라고 칭하는 그 청춘의 막바지에 있고, 아주 노련한 밴드의 리더가 되었다.

그러나 나 자신의 청춘이 지났다고 해서 팀의 청춘이 지난 것은 아니다. 내가 속한 밴드 벤치위레오BenchWeLeo는 현재 홍대 밴드씬에서 가장 활력적인 밴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정규 2집을 발매하고, 비록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단독 공연도 매진이 되었다. 점차 방송 영역에서도 불러주는 곳이 있고 이 팀을 성장시켜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팀 벤치위레오는 청춘의 시간을 맞이한 듯하다.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성장하고 있는 첫 단계에 발을 들였을 뿐이다. 밴드 씬에서 5년을 보낸 후, 처음으로 체감하는 첫 성과에 불과한 것이다.

이 밴드가 맞이한 첫 청춘의 시간을 싹틔우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고난과 죽음들이 필요했다. 나의 자랑스런 어머니는 내가 밴드씬에서 보낸 시간들을 모두 알고 계신다. 그냥 지켜보신 것이 아니라, 100회가 넘는 거의 모든 공연들을 관객으로 관람하셨다. 나는 그녀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남겼던 아래의 문장을 공연에서, 혹은 팬들과의 인사에서 자주 인용하곤 한다. 그녀의 통찰은 놀랍게도 이 밴드씬을 완벽하게 관통한다.

“밴드로 성공하기가 제일 힘들어요. 어휴…. 얼굴도 너무 못 생기면 안 돼, 음악이 너무 구려도 또 안 들어, 공연 횟수 너무 줄이면 잊혀지지, 뮤직비디오도 찍어야 되지, 굿즈도 만들어야 되지, 야 진짜 뜨기가 왜 이렇게 힘드냐?”

2020년대의 홍대 문화는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인디’하면 생각나는 집에서 방금 입고 나온 후줄근한 복장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진솔한 가사를 아무렇게나 노래하는 밴드는 이제 절대 통하지 않는다. 팬들을 모으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조건들이 필요하다. 일종의 ‘아이돌 문화’가 홍대로 스며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나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어느 분야든 성공을 위해서는 모든 것들을 갖출 노력들이 필요하다. 노력이 필요 없고 체계가 없던 이 필드에, 드디어 여러 전략 컨설팅의 필요와 노력의 중요성이 흘러 들어온 어떤 ‘문화 현상’인 것이다. 언제나 밴드는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니까 그 젊은이들에게 익숙한 문화 현상이 2020년의 밴드씬에 흘러들어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2022년 우리 밴드 역시 많은 고민들을 안고 있었다. 4년 차를 맞이함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팬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첫 번째였다. 많은 밴드들 혹은 싱어송라이터들이 이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은 완벽하게 준비된 것 같은데 왜 나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을까.’하는 고민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직면하고 타파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이 완벽하게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내가 완벽하다.’라는 착각은 너무도 위험하다. 일련의 경험을 통해 성공을 위한 시작은 자신의 결핍을 인지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우리 팀이 가지고 있던 최고의 약점은 팀 전원이 정멤버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일반적으로 밴드의 팬들은 그 밴드가 오래 가기를 원한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가 오래오래 활동하면서, 좋은 음악을 지속적으로 내기를 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것보다도 팬들이 원하는 것은 ‘팀의 안정성’이다. 그 안정성이 비로소 확보되어야, 그 팀 중에서도 어느 한 개인의 팬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사실 이러한 과정 중에도 사람의 마음이 얼마든지 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적절한 타이밍에 소중한 객원 멤버들이 정멤버가 될 친구들을 추천해주면서 2022년 7월, 5년 만에 처음으로 정멤버로만 구성된 팀이 완성되었다. 안정성이 확보되는 순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팀은 빠른 속도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많은 기회들을 얻게되었다.

다음으로는 팬을 대하는 자세였다. 나는 우리가 그날의 공연만 완벽하게 준비하면 우리의 진심이 전달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 4년을 보냈었다. 그러나 그것은 팀에 대한 애정으로 절대 이어질 수 없었다. 여기서는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 그들에게 우리의 음악과 이름을 알릴 수 있다면 어떠한 부끄러움도 무릅써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스티커를 만들어 건네며 먼저 다가가기 시작했고, 어떤 곡들이 좋으셨는지 쑥스러운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현재 밴드씬의 가장 좋지 않은 관행은 앨범을 내지 않는 것이다. 많은 대회들과 공모전의 기준들이 이러한 분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데뷔한 지 몇 년 안의 신인팀 / 정규 앨범 혹은 EP를 발매하지 않은 팀 / 첫 앨범을 낸 지 몇 년 안의 팀’ 같은 조건들. 밴드들은 혹여나 자신이 받지 않을까 하는 입상 기대로 인해 앨범들을 내지 않는다. 정규 2집을 발매하면서 우리는 이 대회 출전 조건에 스스로 못을 박고 관짝 안으로 들어갔다.

2020년대 씬의 창작 풍토는 결여되었다. ‘미발매곡’이라고 이름 붙인 노래들을 1, 2년 동안 공연에서 매번 부른다. 아무리 그 팀의 팬이라고 할지라도, 정작 그 미발매곡이 음원으로 나왔을 때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한다. 이미 수년간 들어왔던 무늬만의 미발매곡이기 때문이다. 혹여나 팀의 소식이 끊기면 팬들은 불안감을 느낀다. 창작의 활력을 이어가지 못하는 팀들은 금방 괴사한다는 사실을 씬의 팬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결국 자본이 투입되더라도, 활력적인 팀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작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올해 50회차가 넘는 공연을 끌어가는 한편, 평일 시간들을 창작의 시간으로 전부 돌리면서 정규 2집을 완성시켰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밴드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었다. 최근에 발매된 이 2집 앨범이 우리의 공연 셋리스트에 엄청난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곡이 없는 팀들의 셋리스트는 금방 말라간다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떤 대상이 아무리 좋더라도, 매번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에 언젠가는 지루함을 느낄 것이다.

여기에서 성공하려면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다.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문화에 대한 낭만적 관념들이 이것들을 방해하고있다. 운이 좋아서 성공하는 시대는 예술 분야에서도 완전히 종료되었다. 투자를 꺼려하는 자에게 어떠한 수익이 올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이곳에서 보냈던 시간을 ‘청춘’이라고 칭할 수 있으려면, 그에 합당한 투자와 분석, 예술에 대한 이해와 독자에 대한 이해, 양 방면이 모두 필요하다. 달라진 문화에 대해 근거없는 저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체득하고 받아들여야 할 시간이 왔다. 그러므로 홍대 밴드 씬에서의 ‘청춘’이란 무엇인가. 당신의 성공적인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이다.

 

 

사진출처 밴드 벤치위레오 @benchweleo

 

 


이준행 음악가. 락밴드 벤치위레오 보컬, 기타로 활동 중.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박사과정 수료. 시와 음악의 연관성, 그리고 시와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 《쿨투라》 2023년 10월호(통권 11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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