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술가의 썰] 청년예술가들에게 듣는 2023 오늘의 청년문화
[청년예술가의 썰] 청년예술가들에게 듣는 2023 오늘의 청년문화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23.10.0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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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23년 9월 23일 오후 5시 30분
장소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 세미나실
참석
설재원 본지 에디터 / 김세연 소설가, 미디어비평가
송석주 영화평론가, 이투데이 기자 / 한유희 문화평론가

설재원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번 호 테마인 ‘청년 예술가의 썰’을 주제로,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세 분과 함께 청년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소설 쓰시고 미디어비평을 하시는 김세연 선생님, 평일엔 기자, 주말엔 영화평론가로 활동하시는 송석주 선생님, 그리고 웹툰과 팬덤 콘텐츠를 다루는 문화평론가 한유희 선생님을 모셨는데요, 오랜만에 이렇게 얼굴 봬니 반갑습니다. 다들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세연 안녕하세요. 저는 소설 쓰고 미디어비평을 하고 있는 김세연입니다. 요즘은 박사논문을 쓰느라 바빠서 다른 활동은 많이 못 하고요. 강의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설재원 김세연 선생님은 얼마 전 만해백일장 끝나고 잠깐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그때 조직위원장을 맡고 계셔서 그런지 너무 바쁘시더라구요. 결국 그날 못 보고 저녁에 석주 선생님이랑 소주 한잔 하고 왔습니다. (웃음)

송석주 저는 직업이 기자이고요. 영화평론가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영화와 관련된 주제로 원고를 쓰거나 방송에 나가고 있어요. 기자와 영화평론가라는 두 가지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죠.

설재원 최근에 「법원으로 출근하는 영화평론가의 이야기」로 ‘2023 기자의 세상보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으셨던데 축하드립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선생님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품인 것 같아요.

한유희 저는 지금 만화영상진흥원 홈페이지에서 만화 규장각이라고 하는 곳에 웹툰 평론을 간간이 연재하고 있고, 《르몽드》에도 고정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의하면서 이제 좀 논문을 써보려고 준비 중입니다.

 

2023 오늘의 청년문화

설재원 잘 아시겠지만 지난 9월호는 7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인 ‘최인호와 청년문화’를 특집으로 진행했습니다. 최인호는 당시 최연소 신문연재 소설가였죠. 작품이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최인호는, 소설가이자 시나리오작가였으며, 작사가로도 활동했습니다. 그가 문학, 영화, 드라마 등 한국문화에 끼친 영향은 너무나 신선하고 거대했죠.

그는 청년 세대의 감수성을 누구보다도 개성적으로 드러낸 작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70년대에 소위 ‘청년문화’로 상징되는 청바지, 통기타 그리고 장발, 이러한 문화적인 현상을 기성세대 일부는 ‘퇴폐문화’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때 최인호는 일간지에 ‘청년문화 선언’이라는 글을 기고함으로써 우리나라에 청년문화라는 화두를 일으켰고, 당대 청년들에게 긍지를 느끼게 했습니다.

하지만 최인호 세대의 청년과 오늘날의 청년이 같을 수는 없지요. 이전 세대의 청년이 낭만과 저항의 상징성을 갖추고 있었다면, 우울과 고민에 빠진 지금의 청년 세대는 그와는 또 다른 문화 체계를 형성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오늘날의 청년문화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떠한지 세 분의 말씀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세연 저희가 조금 전 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최인호 원작영화 상영회’에서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을 다 같이 봤는데요. 개인적으로 웃음 포인트였던 게, 중심인물인 병태와 영철이 철학과 학생들이 예요. 이 학생들이 미팅을 통해서 영자와 영숙이라는 다른 학교 여대생들과 데이트를 하게 되는데, 사이가 깊어지려고 할 때마다 여학생들 쪽에서 “아니, 넌 철학과잖아. 어떻게 돈 벌래? 어떻게 결혼할래?”라는 식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합니다. 저는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는데 학교에서 같은 문과대 소속인 철학과, 사학과 학생들을 자주 만나요. 만나기만 하면 문사철 학생들의 불투명한 미래와 생계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하는데, 70년대도 다르지 않았구나. 아카데미즘에 빠져있는 옛날 대학생들의 모습을 상상했는데 그렇진 않았어요. (웃음)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청년들이 하는 고민이나 감수성 등…. 청년문화가 시대별로 많이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원형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청년문화의 중심에는 ‘사랑’과 ‘놀이’가 있다고 봤어요. 〈바보들의 행진〉은 서사성이 강한 영화는 아닌데, 당시 캠퍼스를 거닐던 청년들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영화에서는 청춘 남녀들이 어울려 놀고 사랑하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져요.

제가 어제 집에서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무심코 쇼츠를 넘기다가 그런 장면을 봤어요. 요즘 젊은이들한테 제일 핫한 장소가 양양이에요. 서퍼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강남보다 놀기 좋은 곳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양양 게스트 하우스에서 젊은 남녀들이 의자 위에 올라가서 술을 마시면서 춤을 추는 장면이었어요. 저는 그냥 즐거워 보인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댓글 반응이 무자비하더라고요. 영상 속 남녀들을 문란한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요즘 MZ세대들의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문화를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어요.

근데 저는 젊은이들의 문화를 너무 비판적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사실 노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청년들의 놀이 문화와 에너지들이 축적되어서 우리의 문화 자본을 형성하고, 그게 지금의 K-콘텐츠를 만들어낸 힘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왜 70년대에도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남녀가 어울려서 생맥주나 마시고 놀러 다니는 젊은이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그런 것들이 한국 청년문화의 저변을 넓혔죠. 그래서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이 청년이다. 그것만이 청년이 할 일은 아니지만, 그것 또한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보들의 행진> 스틸컷

한유희 제가 생각했을 때 청년문화는 결국은 갑자기 내던져진 나와 사회와의 불화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10대까지는 어떤 완충 지대가 있잖아요. 부모님이라든지 뭔가 학교라든지 이런 완충지대가 있는데 20대가 되면 갑자기 나랑 사회가 만나게 되면서 거기서 오는 것들이 너무 갑자기 온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충격이 있다 보니까 조금 더 빠르게 지치고 조금 더 억압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그동안 몰랐는데 이런 것들이 나한테 다 억압들이었구나, 나를 옭아매는 조건들이었구나 하는 것들을 좀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아까 〈바보들의 행진〉에서 영철을 보면서 그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더 빠르게 포기하고 빠르게 단념하는 것들이 70년대보다 지금 더 많아졌다. 왜냐하면 미시적인 조건들이 훨씬 더 복잡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 너무나도 쉬워졌기 때문에 나의 기준을 세우는 것도 어려워지기도 했구요. 그래서 영철이 눈에 더 잘 들어왔던 것 같아요. 억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막막함이 세상과의 불화를 아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거든요.

최근 청년의 모습들을 보고 노력이 부족하다거나, 빨리 포기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런 비판도 결국 세상과의 불화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미 넘을 수 없다는 허들이 너무나도 높으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거든요. 특히 인스타그램에서 언제나 남의 삶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삶에서 자신의 삶에 만족하기가 쉽지도 않았을 것 같구요. 사회에서 나만 낙오되고 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게 지금의 청년문화의 기조이지 않을까 싶어요.

 

송석주 저는 개인적으로 청년문화가 뚜렷하게 상정되어 있지 않은 게 지금의 청년문화라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예술의 공급자가 한정돼 있었잖아요. 특정 예술인들이 만들어내는 것을 수많은 사람이 수동적으로 향유했죠. 하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이 예술과 문화의 공급자인 시대라고 생각해요.

가령 내가 구독하는 특정 유튜버가 나한테는 하나의 문화 아이콘인 거예요. 근데 그 유튜버를 다른 사람은 모를 수 있어요. 나만 아는 거죠. 근데 전혀 문제될 게 없어요. 지금은 모든 게 개인의 취향으로 환원되는 시대이니까 개인의 취향만큼 다양한 청년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것을 특정한 청년문화라고 지칭할 수 없는 게 지금의 현상인 것 같아요. 요즘은 “무슨 소설투영했죠. 그러나 지금 80-90년대 작가들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세례를 받고 자란 세대잖아요. 그들의 관심사는 거대 담론이 아니라 작지만 소중한 나의 일상이에요. 큰 방송국에서 수백 명의 스태프들이 동원된 여행 프로그램보다는 평범한 개인이 혼자 카메라를 들고 찍는 브이로그 형식의 여행 콘텐츠가 더 사랑받는 시대가 됐어요. 유튜브가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린 거죠.

여행유튜브 곽튜브 채널

설재원 세 분 모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송 선생님께서 하나로 특정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청년문화이며, 마지막에 잠깐 BTS, 〈기생충〉을 언급하시면서 거대한 아이콘이라 이야기하셨어요. 앞서 언급한 최인호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70년대 청년문화의 아이콘으로서 한 시대를 담당했다면,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요즘의 청년문화, 그리고 청년예술가의 아이콘으로 꼽을 만한 게 뭐가 있을까요?

 

김세연 아까 송석주 평론가께서 파편화되어 있는 문화 취향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어느 세대의 문화를 이야기할 때 항상 일부가 과다대표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70년대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70년대 청년의 모습은 캠퍼스 잔디밭에서 통기타를 치고 생맥주를 마시는 모습으로 이미지화되죠. 그런데 사실 이런 문화는 일부 대학생들이 향유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70년대 대학 진학률이 20%대에 불과했는데 당시에 다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사랑과 낭만을 탐미한 대학생도 있었지만, 그보다 공장에서 노동한 젊은이들도 많았습니다.

지금 MZ세대의 문화라고 일컬어지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로 일부가 과다대표되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소위말하면 ‘인싸 문화’라고 하죠. 많은 사람들이랑 접촉하면서 화려한 파티와 파인다이닝을 즐기고, 해외여행 다니고, 그걸 또 소셜미디어에 올려서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외에 히키코모리처럼 지내거나, 가난한 삶을 견디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청년들도 많이 있습니다. 청년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서 청년의 모습이 다양하다는 것을 인지해야할 것 같습니다.

 

한유희 저 또한 송석주 선생님과 김세연 선생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특히 세분화라는 부분이 최근의 청년문화, 청년 예술가의 기조가 아닐까 싶어요. 모두가 공유하지 않는 콘텐츠, 누구에게나 인기있는 ‘무엇’이 없는 것이 최근의 청년문화이지 않을까 싶어요. 따라서 아이콘도 명확하게 지정할 수 없는게 사실이구요. 어떻게 보면 문화는 파편화되었지만 취향이 동일한 사람들은 오히려 더 공고해져 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시간을 많이 쏟을수록 아무래도 다른 대상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기에 폭발적인 아이콘이 없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오히려 저는 그래서 팬덤이 청년문화의 아이콘이지 않을까 싶어요. 각자가 좋아하는 대상은 다르지만 오히려 더 열광적으로 덕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요. 대상이 아이돌이든, 웹툰이나 웹소설 작가든, 야구든, 심지어 소비 대상까지 열렬하게 좋아하는 현상이 더욱 명확하게 보인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새로운 물품이나, 문화들을 직접적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늘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좋아서 하고, 좋아서 사고, 좋아서 돕는…. 정말 좋아서 하는 일들이 모여서 더 큰 무리 혹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소공녀> 스틸컷

송석주 70-80년대에는 폭압적인 군사정권 아래 ‘건전문화’가 강요됐어요. 그 외의 모든 것은 허용되지 않은 이른바 검열의 시대였죠.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국가에 충성하기. 이러한 것들은 내 마음이 동해서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이지 전체주의적 교육을 통해 강제하는 게 아니거든요. 아무리 좋은 문화라도 강요하면 반발이 생기니까요.

저는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요. 문화라는 게 꼭 건전해야 할까? 공공질서에 반하는 문화적 행위를 하라는 게 아니에요. 지금은 숭고한 이념보다는 개인의 발칙한 상상력이 중시되는 사회예요. 전고운 감독의 영화 〈소공녀〉에서 미소는 담배와 위스키를 위해 집을 포기하는 청년이에요. 이 같은 설정은 일종의 거대한 은유죠. 생계는 숭고한 것이지만,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영위하는 일련의 프로세스가 청년들에게는 더 중요해요.

중요한 건 ‘나’예요. 거듭 말하지만, 친구나 부모, 이웃이나 국가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그러한 것들은 나를 나로서 온전히 사랑하고 존중한 다음에 선택될 수 있는 사항들이에요. 무모하고 재기발랄한 나를 예술 작품으로 잘 형상화하는 예술인들이 청년들의 선택을 받겠죠. 엄혹한 검열의 시대에 최인호 작가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건전한 청년들이 아닌 바보들의 행진이 박수를 받을 때 청년문화의 예술적 토양이 풍부해진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청년예술가의 고민

설재원 이번호에는 테마인 ‘청년예술가의 썰’에 관련하여 투고글이 굉장히 많이 들어왔습니다. 젊은 패기가 느껴지는 글도 있었고, 재기발랄함이 묻어나는 글도 있었는데, 전체적으로는 역시나 청년예술가로서 활동하며 겪는 한계와 경제적 독립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한 글이 가장 많았습니다. 현장에 계신 분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청년예술가들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 있을까요?

우선 저부터 말씀드리자면, 해외 영화제나 문화예술행사에 참가하면서 느낀 점인데 우리나라는 청년 세대 나이가 너무 올라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기회는 한정되어 있고 경쟁은 심하다 보니 신인들의 데뷔는 점점 늦어지는 거죠. 그래서 이제 청년기는 하나의 준비 기간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요.

국내외 크고 작은 행사에서 문화예술 분야 사람들을 만나 보면, 어딜 가나 “청년들이 너무 없다”, “청년들이 더 늘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해요. 그런데 그래도 해외 쪽은 작은 행사든 큰 행사든 이렇게 청년이 없지는 않아요. 그런데 국내 행사에서 청년 예술가들을 만나면 다 자원봉사자예요.

이건 청년 세대를 육성하는 우리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겠죠. 아무래도 문화예술 분야가 개인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보니 아직까지는 특정한 소수 몇 명만 보고 따라가고 있었다면, 이제는 청년 세대, 또 다음 세대를 키워나가기 위한 시스템을 조금 더 고민할 때인 것 같습니다.

 

송석주 지속가능성의 문제겠죠. 주변을 봐도 그렇고 취재하다보면 나는 계속 소설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중간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이 눈에 많이 보여요. 재능이 없으면 빨리 포기해야겠지만, 우리 사회가 청년예술가들의 두세 번의 실패를 용인할 수 있는 예술적 토양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봐요. 그것은 결국 제도적 문제와 연결되겠죠.

찾아보면 청년 예술 정책들이 많아요. 서울청년문화패스라는 게 있는데, 19-22세 청년들에게 연극, 뮤지컬, 클래식 등 문화예술 공연 관람 기회를 제공하고 관련 분야의 활성화를 위해 문화이용권을 지원하는 사업이에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하지 않는 것보단 나아요. 내가 누릴 수 있는 정책적 혜택이 어떤 게 있는지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도 중요해요.

 

한유희 청년예술가로서의 고민은 아까 아이콘 이야기할 때와 비슷한 결일 것 같은데요. 누구나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콘텐츠가 없다는 것이 고무적이기도 하고, 불안한 요소이기도 한 것 같아요. 특히 대중문화 콘텐츠를 연구하고 비평하는 입장에서는 사회의 어떤 현상을 날카롭게 포착해야 하는 것이 제게 가장 중요한 일인데, 과연 나의 취향이 지금-여기의 사회를 명확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 맞을까 하는 의문을 계속 지니게 하거든요.

특히 제가 만화평론가라는 입장에 놓여있다보니 웹툰과 웹툰의 비평장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리뷰와 비평을 지속적으로 연재하고 있지만, 저의 글이 웹툰의 현장, 그리고 웹툰의 본질과 어떤 식으로 만나야 하는지 늘 고민이 됩니다. 어찌되었든 누군가는 읽고 반응이 있어야만 글의 가치가 생기는 것이니까요. 웹툰과 비평의 멀고 먼 거리를 어떻게 좁힐 수 있을지, 어떻게 풀어나가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생각을 늘 갖고 있습니다.

 

김세연 한유희 선생님께서 누구나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콘텐츠가 없어서 고무적이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고 하셨는데 약간 비슷한 맥락에서 공감되었던 것이, 저는 미디어비평을 하다 보니 유튜브, 예능, 드라마 같은 콘텐츠를 주로 다루거든요. 주변 창작자나 평론가들에게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게 평단에서 주류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순수문학과 순수예술이 중심인 거죠. 그래서 가끔은 저의 작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갈까 궁

금할 때가 있어요.그 외에는 현실적인 고민이에요.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 젊은 예술가들은 작품 활동만으로 먹고 살기가 어려우니까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글을 쓸 시간은 줄어드니까 딜레마죠.

 

설재원 벌써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긴 시간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문화예술 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30대 청년 세 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였습니다. 이런 우리 청년들의 살아있는 현장 토크가 종종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씀 있으시면 자유롭게 해주십시오.

 

한유희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 분 선생님의 각자의 입장을 들어볼 수 있어서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생각하는 청년문화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저의 세계가 넓어진 것 같아요.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날카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다음번에도 꼭 다시 만나뵙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송석주 저는 30대 초반의 5년차 기자인데요.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무언가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내 몸을 통과했구나, 라는 생각을 해요. 한 세대를 거친 거죠. 가끔 고향 친구들끼리 모이면 ‘20대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주고받을 때가 있는데요. 전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 시절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근데 힘든 만큼 눈물 나게 소중하고, 찬란했던 것 같아요. 그 시절 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걸 원하는 방식으로 해보고, 소정의 성과를 달성하는 효능감을 느꼈면 좋겠어요. 물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조금만 더 나이가 들면 하기 싫어도 무조건 할 때가 오거든요. (웃음)

 

김세연 사실 여기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청년문화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막연했는데, 선생님들과 생각을 나누다 보니 저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네요. 다음에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또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쿨투라》 2023년 10월호(통권 11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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