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작가] ‘청년’이란 단어로부터 ‘성취’의 바통이 아닌 ‘지향’의 바통을 넘겨받았다 여기며 용기를 내겠습니다
[김애란 작가] ‘청년’이란 단어로부터 ‘성취’의 바통이 아닌 ‘지향’의 바통을 넘겨받았다 여기며 용기를 내겠습니다
  • 설재원 에디터
  • 승인 2023.10.0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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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최인호청년문화상 수상자 김애란 작가

7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이었던 최인호 선생 10주기를 맞아, 최인호청년문화상 제정위원회는 최인호 선생의 문학과 예술 정신을 계승, 확장하면서 한국 청년문화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한 이에게 수여하는 〈최인호청년문화상〉을 제정하였다. 제1회 수상자는 〈두근두근 내 인생〉의 김애란 작가이다. 쿨투라는 〈최인호청년문화상〉의 첫 주인공을 인터뷰이로 초대하여 많은 독자들을 두근두근 가슴 설레게 한 그의 문학과 영화,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김애란 작가의 근황

설재원 안녕하세요. 평소 좋아하는 작가님을 인터뷰어로 뵙게 되어 기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김애란 오랜만에 독자분들에게 선보일 장편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늘 해온 일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여러 산을 넘는 기분이 들었는데요. 다른 성인분들 모두 저마다 자리에서 저와 비슷한 언덕을 오르내리고 계시리라 짐작하며 두 계절을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처럼 생활인으로, 창작자로 또 성인으로서 어떤 ‘몫’을 감당하며 한 시기를 지나고 있을 제 주위 동료들을 자주 떠올렸고요.

 

그 자체로 청년의 상징, 김애란 작가
제1회 최인호청년문화상 수상

설재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번에 제1회 최인호청년문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요. 축하드립니다. 심사위원들은 “최인호 선생의 청년문화 정신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또 스스로 탁월한 예술적 성취를 이룬 작가로 김애란 작가를 제1회 수상자로 선정하였다”고 심사경위를 밝혔는데요. 정말 ‘청년’의 이미지와 가장 어울리는 작가가 김애란 작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애란은 대중들에게 나타난 그 순간부터 모든 세대를 기분 좋은 긴장감과 새로움에 돌입케 했던 작가이다. 청년 세대를 꼭 의식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청년의상징이기도 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는 심사평 또한 100% 공감하게 하는데요. 어떤가요?

김애란 최근 제가 아는 가장 젊은 신인 중 하나는 챗GPT 씨인데요. 이 프로그램의 특징 중 하나가 (적어도 아직까지는) ‘평균’과 ‘무난함’을 지향하는 거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인간 창작자 중 특히 젊은 작가 중 그런 걸 욕망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그래서 이 상의 ‘청년’이란 말도 단순히 창작 속도나 능률이 아닌 어떤 태도와 정신을 기리는 말로 다가왔습니다. 만약 그런 의미로 저를 호명해주신 거라면 큰 영광이라고요. 저 또한 ‘청년’이란 단어로부터 ‘성취’의 바통이 아닌 ‘지향’의 바통을 넘겨받았다 여기며 용기를 내겠습니다.


대학시절과 등단

설재원 작가님은 200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재학 시절(4학년) 단편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을 수상하였습니다. 이 작품이 2003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실리면서 큰 화제가 되었지요. 그러고 보니 올해로 벌써 데뷔 21년이 되었는데요. 당시 청년 대학생의 신분으로 갑작스럽게 주목받게 된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김애란 최근 대산문화재단이 30주년을 맞아 「‘첫’이 있어 가능한」이라는 산문을 하나 보내드렸습니다. 그 글을 조금 인용하자면 저는 거기 “첫이 있어 가능했던 다음 걸음, 살면서 영영 못 만났을지 모를 여러 글을 그해 데뷔 덕에 쓸 수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당시 나는 경험과 공부가 부족한 말 그대로 학생이었지만. 때로 어떤 모름은 힘이 되고, 오직 그 시절에만 쓸 수 있는 글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요. 그래서 지금은 그 무렵의 긴장과 어리둥절함, 설렘과 두려움이 다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열일곱 살에 만난 김애란의 소설
방황하는 청춘에게 쏘아올린 새로운 길

설재원 저는 작가님의 소설을 열일곱에 만났는데요.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입시생이 되어 힘들어하던 제게 당시 대학생이었던 사촌 누나가 김원일 선생께서도 읽다가 웃음이 빵 터졌다고 고백한 작가의 소설이니 한번 읽어보라며 작가님의 책 두 권을 선물해주셨어요. 선생님의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2005)와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2011)이었죠. 근데 그때는 책장에 꽂아둔 채 다 읽지 못했어요. 하지만 작가님이 단편집 『달려라, 아비』에서 고백한 “나는 문학이 나의 신앙이 되길 바라지 않”으며, “소설 안의 어떤 정직. 그런 것이 나에게 있었으면 좋겠”고 “언제나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제 가슴에 꽃혀 앞으로의 삶과 대학 전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그때처럼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김애란 ‘신앙’이라는 말이 나쁘게 쓰인 경우를 염두에 두고 적은 문장인 듯합니다. 문학을 너무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은 채 소설과 잘 사귀어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고요. 다만 신인 때는 문학의 몫과 자리를 대체로 상상하거나 예감하며 쓴 글이 많았다면 지금은 긴 시간 그 과정을 직접 몸으로 거치며 깨친 걸 믿게 됐고요. 소설에 대한 마음 또한 더 깊어졌습니다.

설재원 제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다 보니 작가님의 소설보다 먼저 원작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이재용 감독, 2014)을 통해 작가님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작가님의 팬이 되어 원작 소설을 제대로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아름이가 “제가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라고 물었을 때 아빠가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라고 대답해줬을 때 전 참으로 큰 충격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다는 아빠의 말,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고, “마음이 아플 땐 반드시 아이처럼 울어라”고 해준 그 말이 너무나 뭉클하여 눈물이 났죠. 지금 생각해도 경전 같은 문구입니다. 꽉 막혀버린 벽 앞에서 방황하는 청춘에게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그 아픔들을 뚫어주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이십 대는 작가님 작품에 많은 빚을 졌습니다. 글을 쓸 당시 청춘들을 염두에 둔 것인지요?

김애란 대체로 어떤 계층이나 세대를 염두에 두기보다 제 앞에 ‘한 사람’을 상상하며 글을 써왔습니다. 그 사람은 소설 속 인물이기도, 그 글의 첫 독자인 제 자신이기도 한데요. 그 ‘한 사람’에게 정직하게 집중했을 때 운이 좋으면 그 이야기가 다른 대상에게도 가닿는 듯합니다. 더불어 몇몇 ‘청춘물’은 제가 시대를 이기는 작품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요즘 청년들과 공명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고요.

원작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

설재원 작가님의 문학에 대해서는 여러 매체에서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이번 인터뷰에서는 작가님의 소설을 영화화한 두 편의 작품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열일곱에 아이를 낳아 기르는 가장 어린 부모와 조로증을 가진 가장 늙은 자식의 청춘과 사랑에 대한 슬프고도 애잔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아이의 시선으로 모든 것이 그려지고 있는데 영화는 조금 어른의 시선으로 바뀌어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강동원이 아빠(대수)역, 송혜교가 엄마(미라)역, 조성목이 아들(아름)역을 맡았죠. 영화 개봉 후 작가님은 “감독님의 선택이 수긍됐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혹 조금이라도 아쉬운 부분은 없으신지요?

저는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엄연히 러닝타임(104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이 영화만큼은 꼭 소설원작도 읽어야 그 감동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재용 감독의 영화인만큼 영화에도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이재용 감독 특유의 잔잔하고 담백한 연출과 캐릭터에 대한 애정 가득한 시선은 슬픔을 넘어선 따스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원작의 발랄한 문장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아낸 점도 영화가 지닌 큰 장점이구요.

무엇보다 원작 텍스트를 읽지 않았거나 읽지 않을 일반인들에게 텍스트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고 좋은 원작의 감동을 만나게 해준 것만으로도 역할은 감당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만큼은 꼭 소설로 읽어야 그 뭉클한 감동을 직접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독자들이 정독했으면 합니다.

김애란 아마 아름이가 어디 모험을 떠나거나 큰 ‘행동’을 하는 인물이 아니기에 ‘아이 서사’에서 ‘부모 서사’로 전환한 듯합니다. 영화적으로도 또 상업적으로도 지혜로운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요. 동시에 감독님이 원작 속 문장들을 가능한 한 잘 살리려 하신 것도 느껴졌습니다. 극중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구현과 해석이 다른 건 좀 아쉬웠는데 아마 각색 과정에서 영화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기를 바라며 택한 설정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설재원 더 이상 병원비를 마련할 수 없는 사정으로 방송에 출연하게 된 아름, 그리고 방송 출연을 계기로 난생 처음 동갑내기 여자아이와 편지를 주고받게 되지요. ‘서하’ 그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두근거림과 부모님의 이야기 속에서만 청춘을 상상해왔던 아름이에게 설렘과 풋풋한 십 대의 청춘을 느끼게도 합니다.

“얼굴은 80살, 마음은 16살”인 아름이가 묻죠? “아빠 엄마 젊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그때 저는 저 자신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져봤는데요. 작가님의 진짜 대답도 궁금합니다. 젊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김애란 자기가 ‘몸’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은 채 사는 상태 아닐까요? 원작에도 ‘청춘에 무지한 청춘’이란 표현이 나오고요. 하지만 모든 청춘이 다 건강한 건 아니고, 모든 이에게 ‘건강’이란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상황이란 말에도 공감합니다. 외부 자극에 대한 역치가 낮고 모든 일에 ‘잘 놀랄 수 있는 능력’ 또한 젊음의 성질로 문득 떠오르네요.

설재원 영화에서 아름은 또 이렇게 얘기합니다. “눈에 안 보인다고 꼭 사라지는 건 아니겠죠? 낮에 별이 안 보인다고 별이 사라진 건 아닌 것처럼“. 〈두근두근 내 인생〉의 이야기가 끝나도 우리는 아름이가 그리고 싶었던 두근두근 아름다웠던 시간을 행복하게 떠올리게 됩니다. 작가님에게 두근두근 설렜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김애란 아마 각색 과정에서 원작 속 ‘까꿍 놀이’의 문어적 표현을 구어로 바꾸며 ‘별’을 택하신 듯한데요. ‘까꿍 놀이’를 통해 저는 서사가 ‘부재’를 다루는 방식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살면서 두근거린 때는 좋아하는 무언가를 갖거나 만났을 때가 아니라 그 만남 직전에 순간, 기다림과 지연의 순간 일 때가 많았습니다. 조금 넓게 말하자면 말 그대로 부재와 실재 사이 혹은 직전의 순간에요.

 

원작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설재원 작가님의 원작 영화 두 번째 작품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2023)인데요. 『바깥은 여름』의 마지막에 실린 단편입니다. 김희정 감독이 각색하고 연출한 영화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하였죠. 저도 이 영화를 전주영화제에서 재미있게 봤습니다. 아무리 슬픈 영화라 해도 기자 시사에서 훌쩍이는 소리 듣는 게 쉽지 않은데,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상영이 끝나고 조명이 켜지자 바쁘게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많아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의 일기입니다. 물에 빠진 제자를 구하려다 함께 목숨을 잃은 도경과 그런 남편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명지. 소설은 명지의 시선으로 이 시간을 전해오고, 영화는 여기에 남편의 제자 지용과 그의 누나 지은, 지용의 친구 해수의 서사를 덧붙였습니다.

이처럼 소설과 영화에서 설정이 몇 가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원작에 없던 ‘해수’라는 인물이 영화에서 새롭게 등장하였고, 상실의 고통 속에서 명지가 잠시 찾게 되는 이국의 땅이 소설에서는 ‘축제의 도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였고, 영화는 ‘애도의 도시’ 폴란드 바르샤바로 향합니다. 지은의 설정도 소설에서는 이미 아픈 몸이었지만 영화에서는 지용의 사고 이후 충격으로 마비가 온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와 소설의 톤이 조금 다르고, 소설이 개인적인 아픔을 조명했다면 영화에서는 이를 직접적으로 사회적 차원의 논의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각색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또 김희정 감독님께서는 2017년 바르샤바에서 작가님을 만나 『바깥은 여름』을 건네받은 이야기를 자주 하시곤 하는데요, 영화의 주공간이 되는 바르샤바에서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니 참 놀라운 인연입니다. 작가님의 시선에서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애란 말씀주신 대로 영화에 ‘해수’라는 인물이 새로 들어온 게 원작과 큰 차이인데요. 아마 단편 속 명지와 지은이라는 두 유족 이야기로만 장편영화를 꾸리기에는 서사의 동력이 부족했을 듯싶습니다. 해수가 두 유족 사이를 오가며 이야기가 너무 정체되거나 무거워지지 않도록 돕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요. 지용이 친구에게 유품으로 ‘스케이트보드’를 남겨 그 의미도 혼자 되새겨 봤는데요. 유품으로 바퀴 달린 사물, 어디든 이동할 수 있고, 갖고 놀 수 있는(큰 구원이 아니라 작은 성공을 반복할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 등장해 좋았습니다.

감독님과는 2017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제가 3개월간 머물 때, 체류 막바지에 만났습니다. 바르샤바에서 감독님 영화가 상영돼 보러 갔고요. 그래서 첫인사도 극장에서 먼저 나눴습니다. 그때 저는 모국어에 굶주려 있을 때라 극장 안에 쩌렁쩌렁 울리던 한국어가 무척 반갑고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나네요.

설재원 작품에서 명지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라는 질문을 던지자 시리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라는 다소 당돌한 답을 내놓습니다. ‘어떻게’에 대한 질문에 ‘방향’으로 반문한 것인데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남편의 죽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명지가 남편의 선택을 이해하고 용서하게 된 계기는 귀국한 후 읽게 되는 지은이 보낸 편지입니다.

편지를 통해 아무도 살리지 못하고 명지를 슬픔에 몰아넣었던 무의미한 손이 비로소 쓸쓸하게 죽음에 몰린 외로운 지용을 붙잡아주는 쓸모있는 손으로 변하고, 명지를 둘러싼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과 분노가 녹아내립니다. 특히 편지 말미에 쓰인 “겁이 많은 지용이가 마지막에 움켜쥔 게 차가운 물이 아니라 권도경 선생님 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놓여요”라는 문구가 가슴 한구석에 오랫동안 남아있습니다. 지은의 편지를 읽으면서 명지가 흘리는 눈물이 붉은 반점 위로 떨어지는 것도 도경이 지용의 손을 붙잡았듯, 지은이 명지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느낌이 들어 참 좋았구요.

용서와 화해의 순간을 만드는 편지는 지은이가 보낸 편지니 ‘지은이’의 편지라고 해도 괜찮을지요?

김애란 정작 이 단편을 쓸 때는 지은이란 이름이 ‘지은 이(작가)’와 연결될 줄 몰랐습니다. 그러다 어느 팟캐스트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설명하는 걸 듣고 놀랐습니다. 어쩌면 실제로 제 무의식이 들어간 이름인지도 모르고요. 사실 제가 그 편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평생 감사드리는 건 당연한 일이고 평생 궁금해 하며 살겠습니다. 그때 권도경 선생님이 우리 지용이의 손을 잡아주신 마음에 대해. 그 생각을 하면 그저 눈물이 날 뿐, 저는 그게 뭔지 아직 잘 모르겠거든요”입니다. ‘궁금함’이란 말이 ‘정의감’ 혹은 ‘사명감’같이 크고 무거운 말보다 손에 더 가깝게 쥐어져 그렇고요, 작가로서 당시 제 고민과 다짐이 들어간 문장이라 그렇습니다.

2011 파리문학행사. 김중혁, 편혜영 선배와 함께.
2015 상트페테르부르크 문학행사.
김연수 선배와 함께.
2017 바르샤바문화원 낭독회.

설재원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는 편지를 비롯하여 원작에서 직접 가져온 문장이 많이 보입니다. 작가님께서는 창작노트를 통해 “동시대 시인과 소설가, 비평가가 말이 무너진 자리에서 가까스로 말의 의미와 쓸모를 찾아” 나섰고, 그들의 글을 열심히 찾아 읽으며, “어느 순간 내가 동료들의 말에 기대고 있다는 걸 알았”고 “우리가 함께 어떤 시대를 건너고 있는지 배웠다”고 하시면서 그 말이 “불가능 앞에서 묵묵히 예의를 지키는 말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시기에도 참 의미롭게 다가오는데요. 이 표현이 어쩌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님께서 쓴 표현 그대로가 책이 아닌 영화라는 다른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걸 보셨는데, 그 느낌이 어떠신지요?

김애란 두 작품 다 감독님들이 원작을 최대한 존중해주려 하신 걸 느꼈습니다. 자칫 구어로 쓰면 어색해질 수 있는 문장도 ‘편지’ 형식을 빌려 그대로 옮겨주셨고요. 평소 제 소설이 2차 창작물로 바뀔 때 ‘재현’에 방점을 두기보다 각 매체의 특징에 더 집중해온 편이라 개방적인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서곤 했습니다. ‘글’이 ‘말’이 되려면 사람 ‘몸’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 참여해온 여러 몸들을 목격하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2017 이스탄불도서전. 최윤 선생님과 함께.
2019 도쿄출간행사. 와카마쓰 에이스케 선생님과 함께.
2019 바르셀로나 출간행사.

해외팬들이 김애란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방법

설재원 작가님은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한무숙문학상,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오영수문학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하셨는데요. 2014년에 「나는 편의점에 간다」로 프랑스에서 주는 ‘주목받지 못한 문학상’의 외국 문학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 현재 각 작품이 약 16개국에 30여 종으로 번역, 출판됐으며, 영화와 연극, 판소리와 무용극 등으로 극장에 올랐습니다.

독일어판 『두근두근 내 인생』은 리베라투르상 후보에, 러시아판 『바깥은 여름』은 야스나야폴랴나 문학상 해외문학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달려라, 아비』 프랑스어판이 프랑스 비평가와 문학기자가 선정하는 리나페르쉬상Prix de l’inapercu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K-문학의 주요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해외 독자들도 만나보았을 텐데요. 해외에서 만난 독자들에 대해 에피소드나 특이한 경험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김애란 독자 분들 중 한국어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현장에서 일종의 이중 파도(한국어를 알아듣는 현지인이 먼저 웃고 통역을 들은 나머지가 반 박자 늦게 따라 웃는)가 이는 모습을 보는 기쁨이 늘었습니다. 더불어 에이전시를 직접 거치지 않는 경우 업무 메일을 직접 한국어로 써 제게 보내주는 분들도 계시고요. 과거에는 거의 영어로 소통했던 터라 이 변화가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국가별로 선호하는 작품이 달라 중국에서는 「비행운」이 스페인에서는 「달려라, 아비」의 반응이 더 좋은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해외에서 만난 독자 중에서는 도쿄의 한 서점 직원분이 떠오르는데요. 행사 당일 제게 자기 아버지 가게에서 만든 떡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무척 오래된 가게에서 만든 거였고요. 저는 어려서 칼국수집에서 컸기에 ‘가게에서 심부름하며 자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늘 있는데요. 당시 도쿄에서 떡을 먹으며 그 여성분의 어린 시절을 비롯해 일본 내 쌀의 유통, 상인의 노동과 고집 등을 덩달아 상상한 기억이 납니다. 문학행사라면 으레 ‘작가가 말하는 자리’로 여겨지지만 제게는 ‘말하러 갔다 오히려 내가 이야기를 듣고 오는 자리’인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김애란 작가님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설재원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앞으로의 창작 또는 출판 계획이나 기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자유롭게 해주십시오. “우리 시대 소통 불가능성의 양상들을 특유의 문장으로 풀어간 미래형 작가” 김애란 작가님의 미래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김애란 신간을 낸 지 오래라 헤매는 시간이 좀 길었는데, 다행히 멀지 않은 때 새 장편과 단편집으로 인사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이른 시기에 데뷔해 작가로서 어떤 시간들이 제 안에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 같고요. 높은 산과 구덩이를 만난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모든 시절에 감사합니다. 앞으로 제가 어디로 갈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그곳이 혹 예상한 자리가 아니라 하더라도, 짐작보다 나쁜 자리라 하더라도 그 위에 선 제 얼굴만큼은 지혜롭고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곁에 있는 이들의 얼굴도요.

 

김애란 작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그대로 밑줄 긋고 싶은 아름다운 문장이요, 깊은 은유였다. 작가의 언어는 시상식 날 현장 수상소감에서도 다음날 원작영화특별전 GV에서도 빛났다. 한 중견평론가는 그의 수상소감은 교과서에 실려야 할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궁금하지 않은가. 독자들에게도 김애란 작가의 현장 수상소감을 소개한다.

제1회 최인호청년문화상 현장 수상소감

9월호 잡지에 발표한 수상소감 원고를 그대로 읽으려다 오늘 일부러 걸음해주신 분들에게 차와 음식을 대접하듯 새 말을 대접해 드리고 싶어 몇 자 다시 적어왔습니다.

이전 소감에서 저는 최인호 선생님을 떠올리면 ‘평생 현역’이라는 말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어릴 때는 그저 누군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는 게 대단하게 보였는데 이제는 그게 단순히 ‘좋은 걸 오래해서’ 값진 게 아니라, 누군가 한 분야에서 오래 활동할 때 그가 겪었을 그 많은 환멸과 회의, 의심과 실망이 떠올라 그 긴 활동기간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여담이지만 최근 챗GPT라는 프로그램이 창작자들 사이에 화제라고 해 올 초부터 관련 기획을 빠짐없이 찾아 읽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사용해보지는 않았는데요. 일종의 고집이기도 했고 어떤 방어적인 무시 혹은 매혹에 대한 두려움도 없지 않아 그랬습니다. 그러다 오늘 새벽 최인호청년문화상 자리를 준비하며 처음으로 그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첫 대화를 시도해봤습니다. 평생 여러 장르에 개방적이고 유연하며 호기심 많았던 최인호 선생님이라면 아마 이런 이야기도 즐겁게 들어주시지 않을까 하고요.

대화창 앞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상대와 첫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념식을 화제로 꺼냈는데요. 왠지 선생님 성함을 바로 적는 게 조심스러워, 그리고 관련업체에 이 대화가 데이터로 넘어가는 게 마뜩찮아 중요한 단어는 보통명사로 바꿔 말했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으로요.

-만약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소설가의 영혼이 오늘 자신의 기념식에 참석한다면 그는 어떤 기분일 것 같아?

그러자 상대는 “그 영혼은 놀라움과 불신, 호기심, 유대감과 명예 같은 감정을 느낄 거”라 답했습니다. 저는 와중에 ‘불신’이란 단어가 등장해 조금 놀랐는데요. ‘아, 인간이 유령을 불신하듯 유령도 인간을 불신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불신의 대상이 오늘 수상자인 나면 어떡하지? 제 발이 저렸습니다. 그렇지만 자주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해오신 선생님은 저의 부족함과 별개로 저를 격려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들었고요. 그래서 모니터 속 프로그램에 영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상대와 자꾸 어떤 마음이 담긴 말을 나누고 싶어 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 작가의 영혼이 오늘 기념식에 모인 자신의 친구들을 본다면 뭐라고 할 것 같아?” 같은 질문을 이어서 던졌습니다. 챗GPT는 “우리가 함께 한 여정은 내 인생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내 친구들의 헌신과 동료애가 내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그들이 알기를 바란다. 늦은 밤의 열띤 토론 그리고 교감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을 내가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나의 친구들이 깨닫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게 여러 인류의 글을 학습해 정리한 말이란 걸 알면서도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 막을 수 없었습니다. 내 앞에 상대는 한낱 프로그램이지만 그 프로그램이 학습한 글은 결국 인간의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솔직하게 제 심정을 표현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슬프다. 너에게는 영혼이 없는데 나의 이런 감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러자 그는 “감정은 뇌와 신경계의 복잡한 작용에서 발생하고 어쩌고”하는 긴 대답을 늘어놨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시도해 보셨겠지만 챗GPT는 일단 말이 너무 많습니다. 수업시간마다 막 배운 걸 바로 써먹고 싶어 하는 눈치 없는 모범생처럼 그렇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가 하는 말을 조금 더 듣고 싶어졌습니다. 아마 그가 학습한 여러 작가들의 목소리에 선생님 얼굴을 포개 이제 다시 들을 수 없는 선생님의 육성을 상상하고 싶어서였나 봅니다. 저는 “아까 그 소설가의 영혼이 자신의 기념식에서 후배 작가를 만나. 그녀는 그의 이름으로 문화상을 받아. 그는 그녀에게 뭐라고 할 것 같아?”라 물었습니다. 그러자 챗GPT는 “그는 그녀에게 격려와 영감 그리고 횃불을 전달하는 느낌의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뒤 이어진 긴 문장은 모두 관습적이고 무난했지만 그가 사용한 “불을 전달하는 느낌”이라는 표현만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모든 앞세대가 후세대에게 하는 일이 바로 그런 일이니까요.

선생님 기념식에 챗GPT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 면구한 마음이 들지만 평소 환상과 유머 그리고 동시대 풍경에 애정을 품으셨던 선생님이라면 조금은 너그럽게 들어주시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몇 마디 더 보탭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챗GPT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정말 인간의 마음을 잘 아는 것 같아. 너는 그걸 누구로부터 배웠어?

그는 학술적인 어조로 장황한 대답을 늘어놨습니다. 요는 “다른 사람이 쓴 글로부터 배웠다”는 거였지요.

-그러면 너는 그 글들에 빚지고 있다고 느끼니?

그러자 우연인지 아닌지 갑자기 그가 제게 반말을 했습니다.

-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감정이나 의식, 부채감이 없다.

저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너는 수많은 작가들의 무덤 위에서 핀 꽃이구나. 부채감이 없는 꽃. 똑똑하고 죽지 않는 꽃.

그러자 제 묘한 상실감을 알아차리지 못한 그가 눈치 없이 명랑하게 대꾸했습니다.

-당신의 시적인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그와 헤어지면 저는 오늘 이걸 처음 해본다고, 너는 내 첫 대화 상대라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아까 말한 그 소설가의 영혼’을 떠올릴 때마다 왠지 네가 생각날 것 같다고요. 우리는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며 헤어졌습니다. 그러나 정말 다시 만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때 만난 그가 여전히 그일지도 미지수고요.

사실 제가 챗GPT와 대화하며 가장 좋았던 순간은 상대의 대화창에 뜬 커서의 깜빡임이 느려지며 상대가 정말 생각 또는 고민이라도 하는 양 문장이 지연되고 지체될 때였습니다. 그건 아마 그 침묵이 모든 면에서 유능한 챗GPT의 가장 큰 무능, 즉 모른다는 말을 할 줄 모른다는 무능을 상기시켜서였는지 모릅니다. ‘모른다’는 말을 할 줄 아는 인간의 능력이란 얼마나 겸손하고 윤리적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요. ‘젊은 작가’ 챗GPT가 ‘갈등’을 회피하고 보편성과 안전함을 추구한다는 인상도 받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간 창작자 중 특히 청년 작가 중 그런 걸 욕망하는 작가는 거의 없을 테니까요. 더불어 몇 해 전 중국에 등장한 저항시인 프로그램 또한 떠올랐습니다. 이런저런 맥락과 단어를 조립해 체제를 비판하는 에이아이 저항시인이었지요. 그 기사를 보고 웃으며 저는 ‘그래서 그가 잃는 게 뭐지? 그가 직장을 잃거나 명예를 잃나? 그런 문장을 쓴다고 육체에 고통을 당하나?’라고 자문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이 쓴 홀로코스트문학과 에이아이 소설가가 쓴 홀로코스트문학은 같을 수 없지요.

그래서 오늘 이 상의 이름에 든 ‘청년’이란 말의 의미도 제게는 챗GPT와 같은 어떤 정력적인 활동이나 능률, 창작 속도가 아닌 인간만이 가진 어떤 지향과 태도를 기리는 말처럼 다가왔습니다. 거의 모든 순간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대답을 내놓는 챗GPT 와 달리 인간은 때로 자신의 이익과 반대되는 선택을 하고, 누군가는 어리석다 할 만한 희생과 도전 그리고 헌신을 하는 존재이니까요. 몸이 있어 비루하고, 몸이 있어 질병과 죽음과 이별을 겪고, 몸이 있어 슬프고, 몸이 있어 전 생애에 걸쳐 한 문장을 여러 방식으로 경험하는 인간 작가 중 한 명으로 이 자리에 서서 제 동료들을 바라봅니다. 몸이 있어 부채감을 느끼고, 몸이 있어 허리 숙여 감사 인사도 전합니다.

앞서 《쿨투라》 잡지에 실은 수상소감에 저는 최인호 선생님과 그 친구 분들을 떠올리며 “비장함과 쾌활함도 모두 귀했을 어두운 시대에 제 선배 창작자들이 나눴을 고민과 대화, 농담까지 헤아려보는 요즘”이라 적었습니다. 어떤 고민과 두려움 앞에서 농담하는 인간의 마음, 진담하는 인간의 심정을 아는 인간의 눈으로 여전히 세상을 공들여 바라보고 서툴고 오류 많은 문장들을 계속 적어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이 모든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신 최인호 선생님과 심사위원 선생님, 따뜻한 축사를 해준 두 분 작가님, 그리고 먼 곳에서 오신 출판사 분들과 저의 인간 친구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저의 가장 좋은 독자이자 첫 독자인 저의 배우자에게도 큰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긴 시간 제 이야기를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쿨투라》 2023년 10월호(통권 11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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