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한류] 글로벌 한류, K-댄스
[글로벌 한류] 글로벌 한류, K-댄스
  • 김긍수(중앙대 공연영상창작학부 교수,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회장)
  • 승인 2023.11.0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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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일이다. 영국 런던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의 작품들을 관람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 한식당을 찾았다. 손님이 많진 않았지만 식당 내부에 들어가니 한식당임에도 불구하고 영국 현지인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영국인들은 된장찌개와 소주를 곁들인 삼겹살 상추쌈을 즐기고 있었다. 지금은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지금 같은 K-컬쳐 열풍이 없었던 10여 년 전만해도 런던 한복판에서의 이런 풍경은 신선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서울 중심가 식당에서 한식을 먹는 외국인을 만나도 신기했던 내가 한식이 정말 글로벌 음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절감했던 기억이다.

K-푸드에 관한 기억을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내가 국립발레단 단장이던 시절의 일을 꼽을 수 있다. 모나코몬테카를로 발레단 미스트레스(발레 지도위원)였던 죠반나 로렌조니가 국립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안무를 맡아 리허설을 진행 했을 때 일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그녀는 연습 중간 티타임을 제외하곤 휴식 없이 종일 강행군을 했었다. 고생하는 그녀에게 내가 식사 대접을 하기로 식당에서 만났는데 그녀가 자연스럽게 돌솥비빔밥을 주문하는게 아닌가. 놀라워하는 나에게 그녀는 매일 아침 돌솥비빔밥을 먹고 리허설에 임한다며 건강해지고 하루가 행복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더 소개하자면 한국국립발레단이 몽골 울란바토르 공연의 스폰서였던 몽골 최대규모의 캐시미어회사 회장님과 미팅을 했던 일이다. 국립발레단의 위상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며 그는 가수 보아와 국립발레단의 합동공연을 제안 했다. 그 당시 아시아의 BTS와 같은 존재였던 보아와 클래식 발레의 협업을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나는 불가능한 일이라 여기며 끝내 즉답을 하지 못했지만 기업인의 안목으로 그 제안은 대단한 기획이었다.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br>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금의 K-컬쳐 열풍은 어쩌다 우연히 일어난 열풍이 아니다. 근면하고 총명한 한국인의 특성이 문화예술에도 예외없이 발휘되면서 그런 한국인을 세계가 주목하게 됐고, 때문에 한류의 글로벌은 가능했다.

이제 한국은 세계경쟁력은 G20을 이미 넘었고 선진 7개국인 G7에서 한국을 포함한 G8이 됐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외교, 경제를 넘어 글로벌 예술에서의 한국의 입지 역시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K-댄스 시대가 왔다.

본래 흥이 있고 가무를 즐기는 한국인은 열심히 일하면서도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부르는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민족이다. 근면 성실함에 긍정적 방향성, 거기에 명석함까지 더해진 한국인은 글로벌 한류 그 자체다.

그런 면모는 무용 분야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발레는 원래 이탈리아에서 탄생하여 프랑스와 영국을 거친 뒤 러시아에서 꽃을 핀 예술이다. 한국의 발레의 역사는 조선 고종 때 러시아 발레단이 경성에서 첫 공연을 하며 시작됐는데 1980년 초 러시아의 개혁, 개방으로 인해 러시아 교사들이 많이 유입되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서울예고 한국무용<br>
서울예고 한국무용

그렇게 뒤늦게 시작한 한국 발레 예술이 불과 50년여만에 세계 정상의 실력에 올라섰다. 몇백 년을 걸쳐 발전한 유럽 발레사와 비견해봤을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 발레인들이 한국의 비법을 문의할 정도다. 한국 무용수들은 세계적인 발레 콩쿨에 참가하는 족족 상을 휩쓸며 기라성 같은 세계 발레단의 주역들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매년 2월에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되는 〈탄츠올림프 베를린 국제 무용 콩쿨〉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는데, 각국의 심사위원들이 하나같이 한국 참가자들의 기량과 예술성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니 뿌듯한 마음으로 우리 무용의 발전을 실감하는 중이다. 심지어 러시아 심사위원은 한국 참가자의 경연을 보고나서 100점을 줬다며 심사지를 나에게 직접 보여줄 정도였다.

한국의 무용은 이제 글로벌 K-댄스가 됐다. 외국 학생들이 역으로 한국에 무용 유학을 오는 시대가 된 것이다. 마치 K-Pop 열풍 속에서 세계 곳곳에 K-Pop 동호회나 학과가 생겨나듯 한국무용도 마찬가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고양영스타즈발레단<br>
고양영스타즈발레단

국내 무용관계자들 역시 이런 흐름을 읽고 발 빠르게 각종 프로그램을 만들어 무용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로 그 예가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에서 주최하는 〈영댄스 페스티발〉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 온라인으로만 소통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이들의 댄스 열정을 발산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로 출발한 〈영댄스 페스티발〉에선 국내 예술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기량이 마음껏 펼쳐진다. 미래 무용 꿈나무들에게 제공된 무대는 각 학교마다 참가한 참가자들의 보이지않는 경쟁을 유도하면서 더 좋은 공연을 만들어가는 좋은 선례들을 남기고 있다. 〈영댄스 페스티발〉이 끝나고 남겨진 수많은 사진과 리뷰들은 세계무용연맹 아시아태평양WDA-AP 연맹 전문지인 《Chanels》에 실리며 22개국 아시아회원국과 공유가 된다. 이들이 바로 미래의 한류 외교관이 되어 한국 무용계를 이끌어갈 재원들 인 것이다.

이렇게 한류 문화가 돋보이는 기회의 시대가 언제 다시 올지 우리는 장담하기 힘들다. 때문에 이렇게 글로벌 한류가 세계 중심부에 선 시점에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기업들은 앞다퉈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체제가 되어야 한다. 문화예술인 개개인이 아무리 노력한다해도 불합리한 제도적 장치 아래에선 한계가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때는 자주 오지 않는 법이다. 이때를 놓치지 말아야 진정한 문화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2021 영댄스(D-1) by @yoon6photo461<br>
2021 영댄스(D-1) by @yoon6photo461

 


김긍수 전 국립발레단 단장겸 예술감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공연영상창작학부 무용전공 교수.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회장. 사) 백림아트 이사장.

 

 

* 《쿨투라》 2023년 11월호(통권 11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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