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문향만리] 제라하게 / 김양희
[대구일보] [문향만리] 제라하게 / 김양희
  • 이정환 시조시인
  • 승인 2024.01.0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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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오늘도 책 하영 읽었수광//오게 우리 딸 시집도 읽고 성경책도 읽었쪄 니네 키우멍 덮어놨던 책 보젠허난 눈도 아프곡 머리도 지끈거리곡 오죽 곱곱헌 말이가 경허여도 읽엄시난 재미정 소리내멍 읽엄쪄 소리내영 읽다보민 나 말고 꼭 누게 이신 거 닮아 당신 목소리에 당신이 기대어 사시는구나 책 읽으멍 하영 배왐쪄게 남헌티 더 잘 허여사켜 엉턱도 부리지 말곡 이 나이에 무신 부릴 엉턱이나 이시냐마는//책 보멍 제라하게 좋은 건 시간이 어떵 감신지 몰람쪄

「제라하게」(2023, 작가)

‘제라하게’는 김양희 시인의 두 번째 시조집이다. 첫 시조집 ‘넌 무작정 온다’가 2020년에 발간되었으니 3년 만이다. ‘제라하게’는 ‘최고로, 제대로’라는 뜻을 지닌 제주 토속어다. 사설시조 형식인 ‘제라하게’는 전체가 대부분 제주어로 구성되어 있어서 일반독자가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천천히 음미하면 맛깔스러움이 묻어난다. 화자인 시인과 어머니 조성옥 여사 사이의 정겨운 대화록이다. 고쳐 읽어 본다.

어머니 오늘도 책 많이 읽으셨어요. 그래 우리 딸 시집도 읽고 성경책도 읽었지. 너희들 키우며 덮어놨던 책 보려고 하니 눈도 아프고 머리도 지끈거리고 얼마나 답답한지. 그래도 읽다 보니 재밌어서 소리 내며 읽는다. 소리 내 읽다 보면 나 말고 꼭 누가 있는 것 같아. 당신 목소리에 당신이 기대어 사시는구나. 책 읽으며 많이 배운다. 남한테 더 잘해야겠어. 욕심도 부리지 말고. 이 나이에 무슨 부릴 욕심이나 있겠냐마는 책 보며 정말로 좋은 건 시간이 어찌 가는지 모르겠다.

표준말로 옮겨 놓고 보니 아무래도 원본이 더욱 시의 맛을 낸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이 기회에 제주어를 공부해서 자주 소리 내어 읽으면서 말의 묘미, 이채로운 지역어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특유의 정서와 분위기를 맛보는 일도 의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것의 심화와 확장의 한 방편으로 토속어 입말의 향기와 운율을 체화해 보는 일이다. 이 작품의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당신 목소리에 당신이 기대어 사시는구나’라는 대목은 큰 울림을 안긴다. 누구나 종국에는 혼자이고 그러자면 자신의 목소리에 자신이 기대어 살면서 삶을 영위하게 될 때가 찾아올 터이니.

시조집 해설 ‘구부러짐의 시학’에서 신상조 문학평론가는 ‘제라하게’를 두고 시에서의 방언은 제주 특유의 삶의 감각을 빚어내는 동시에, 어머니의 일상을 심화된 형태로 빼어나게 형상화하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조집을 두고 ‘장광설 다 생략하고 드는 마음 그대로’ 시조를 써온 우리 시대의 명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귀한 찬사 앞에 안으로 더욱 내공을 다지며, 정진하여 일가를 이루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원본 링크: https://www.idaegu.com/newsView/idg20240102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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