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초록별에게 답을 묻는 사랑과 생명의 서사
[북리뷰] 초록별에게 답을 묻는 사랑과 생명의 서사
  • 해나 에디터
  • 승인 2024.04.04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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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원 디카시집 『보아야 봄이다』

서장원 시인의 디카시집 『보아야 봄이다』가 도서출판 작가의 한국 디카시 대표시선 12번으로 출간되었다. 충북 청원에서 태어난 서장원은 서원대학교 국어교육과와 서울교육대학교 교육전문대학원 강사를 역임하였고, 제2회 이형기 디카시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이래 제27회 《시와 경계》 신인 우수작품상(디카시 부문), 제3회 DMZ 문학상(운문 차하 상, 강원일보 주최), 서울시 희망 온돌 체험 수기 대상 등을 받은 디카시 정예 시인이다.

 

사랑과 생명의 디카시

이번에 펴내는 서장원 시인의 디카시집 『보아야 봄이다』는 5부로 구성되어 총 74편의 디카시를 수록했다. 시인은 이번 디카시집을 통해 “이름 없는 풀꽃들이 쓴 아침의 시를 읽”고 “45억 년 준비한 초록별 답안을 만나” “아름다운 울림이 되어 인연으로 남”길 바란다. 삶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끌어들이고 시인의 눈에 포착된 모든 것에 상상력을 더해 가공하는 것이 서장원 디카시의 세계이다.

봄나들이 나왔다
사랑꾼 걸음마
잎새에 앉아 풀 향기에 갸우뚱
하늘 눈치를 본다

- 「봄비」 전문

 

「봄비」에서 시인은 생동하는 사랑과 생명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포착해 낸다. 이번 시집에는 그의 생애 전체와 밀착된 사랑과 생명의 이미지와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초록 이파리들과 그 위의 물방울들은 생명성의 한 절정을 싱그럽게 보여준다. 그런 이미지에 시인은 “봄비”라는 제목을 붙인다. “봄”과 “비”라는 문자 기호가 겹치면서 절정에 이른 생명성은 거의 폭발 직전에 이른다. 여기에 “사랑꾼 걸음마”라는 은유까지 덧붙여질 때, 이 작품은 도화선에 불이 붙은 사랑과 생명의 폭죽으로 변한다.

기도의 문이 열리는
비상벨이다

나의 소원만큼 높이 있다

─ 「비상벨」

 

제2회 이형기 디카시 신인문학상 수상작 「비상벨」에는 시인의 기발한 상상력과 유토피안적 정신의 높이가 동시에 드러난다. 시인은 고요의 풍경 속에서 울려 퍼지는 위급한 사이렌 소리를 듣는다. 공중에 달린 연등을 “비상벨”이라 부르는 것은 은유를 넘어 기상奇想,conceit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연등의 둥근 형태와 비상벨의 둥근 모습은 물론 환유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상” 사태를 선언함으로써 연등에 담긴 기도의 다급함을 순식간에 강화하는 탁월한 기술에 있다. 그 장치에 의하여 연등은 사찰의 한가한 풍경에서 갑자기 생사가 달린 저잣거리의 서사로 전환된다.

마지막 행에서 시인은 소망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소망 혹은 “소원”은 항상 현실보다 훨씬 “높이” 존재한다. 『희망의 원리』라는 저서로 잘 알려진 에른스트 블로흐E. Bloch는 “물질조차도 유토피아를 갖고 있다”고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물질도 더 나은 상태, 더 편한 상태, 더 행복한 상태를 지향하는데, 하물며 인간은 말해 무엇하랴. 문학은 궁핍한 시대와 현실에서 나오지만 궁핍하지 않은 상태를 늘 꿈꾼다.

9억 보의 바람길 걸어 왔을까
찬바람 안고 핀 풀꽃

우주의 별 이야기 데려와
사랑집을 짓는다

─ 「보야야 봄이다」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디카시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 창작 혹은 사유의 기본적인 자세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존 버거J. Burger의 말대로 “우리는 보는 것만을 본다. 본다는 것은 일종의 선택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봄”도 “보아야 봄이다”. 보기 전의 모든 사물은 그 자체 부재이다. 그러므로 보는 행위는 부재absence를 존재presence로 전환하는 행위이다. 이처럼 남들이 보지 않는 것을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든다는 점에서 디카시의 묘미가 잘 드러나 있다. 시인은 들판의 작은 꽃에서 “9억 보의 바람길”을 ‘본다’. 시인은 그것에서 “우주의 별 이야기”와 그것이 데려온 “사랑집”을 ‘본다’. 시인이 봄looking으로서 봄spring은 비로소 봄이 된다.

74편의 빛나는 시편 뒤에는 서장원이 스스로 정리한 디카시론이 이어진다. 서장원은 디카시의 새로운 시대성과 생활 문학으로서 기능을 잘 이해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는 사진시와 구별되는 디카시의 섬세한 장르적 특징을 완벽하게 소화하여 자신만의 디카시 이론을 정립하였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그가 디카시를 자신에게 가장 최적화된 장르로 자신 있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생활은 디카시 때문에 훨씬 더 윤택하고 풍요로워지며, 그런 생활은 거꾸로 그에게 아름답고 완성도 높은 디카시를 가져다준다. 마치 디카시의 사진과 문자 기호가 일으키는 풍성한 케미처럼, 그의 생활과 디카시도 그런 화학반응의 메커니즘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23일에는 시집 출간을 기념하는 출판기념회가 청암예술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이경선 노원문인협회사무국장의 개회사와 김종회 한국디카시인협회 회장의 축사로 시작된 출판기념회에서는,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이상옥 창신대 명예교수와 오민석 교수가 디카시론과 서장원의 디카시 해설을 주제로 특강이 진행되었고, 이어 여순덕 시인, 김율호 배우의 시낭송과 강예진의 축가와 김진선 이화여대 교수의 피아노 연주, 이미화의 오카리나 연주 등의 축하 공연이 펼쳐졌다.

이상옥 창신대 명예교수는 “디카시 정예 시인인 서장원의 『보아야 봄이다』는 디카시 운동 20주년을 맞아 그간 디카시가 구축해온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진경”이라며 “(그의 작품은) 선명한 경계의 시학을 드러내며,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된 나르시스의 비극, 그 원형적 실존의 슬픔을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생생하게 환기한다”고 밝혔다.

사랑과 생명은 서장원 시인의 디카시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한 고원 같은 곳이다. 이곳에 이르기까지 그는 균형 잡힌 세계관, 아픈 몸과의 치열한 싸움, 그리고 타자들의 고통에 대한 깊은 공감의 긴 채널을 지나왔다. 그 성찰의 총계인 이 디카시집을 통하여 그가 더 “외롭고 높고 쓸쓸한” 절정에 오르기를 고대한다.

 

 


 

* 《쿨투라》 2024년 4월호(통권 11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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