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오늘 하루도 재미지게 잘 놀아보자고요!: 재즈적으로 산다는 것
[재즈] 오늘 하루도 재미지게 잘 놀아보자고요!: 재즈적으로 산다는 것
  • 최창근(극작가, 연출가)
  • 승인 2024.06.0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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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잘 안 풀려서 마음이 갑갑하거나 기분이 착 가라앉아 지치고 힘들 때면 공원처럼 자주 찾아가는 곳이 고궁이다. 고궁 중에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피천득의 수필 「비원」을 읽고 맘에 둔 탓인지 창경궁의 후원인 비원으로 산책을 나갈 때가 많다. 말이 좋아 산책이지 실은 발길 닿는 대로 거닐면서 해찰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계절마다 다르게 피는 꽃과 나무에 눈길을 주면서 ‘와 이 꽃 봐라, 참 곱네’ 감탄하거나 ‘이런 나무가 다 있었네’ 하면서 나무 이름이 적힌 푯말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노는 것이다. 가끔씩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소리에도 귀를 열어두면서. 그러니까 비원은 내게 휴식을 건네주는 마음의 쉼터이자 놀이터인 셈이다.

고궁은 많은 경우 한적하지만 먼 데서 온 관광객들이 떼로 몰려올 때면 순식간에 시골 장터처럼 소란스러워졌다가, 또 썰물이 빠져나가듯 그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면 언제 그렇게 시끌시끌했냐고 반문하는 것처럼 곧 고즈넉한 정적이 감돈다. 천변만화. 그렇다.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정체불명의 괴물 같은 그 무엇엔 고정된 것도 머무르는 것도 없다.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 한없이 자유롭고 예측 불가능한 변화와 역동성, 그러한 삶과 가장 맞닿아있는 음악 장르가 바로 재즈 아닐까. 어떤 사람이 재즈적으로 산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한마디로 규정지어서 설명하기 힘들다는 뜻과도 상통한다. 시쳇말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는 뜻이겠다. 즉흥의 여지가 다분한 재즈는 여럿이서 재밌게 잘 놀 수 있는 음악이기도 하다.

칠 년 전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가는 이맘때쯤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세계 각국의 문인들이 서울에 모여 ‘새로운 환경 속의 문학과 독자’라는 주제로 한국의 문인들과 함께 큰 규모의 국제문학포럼을 연 적이 있었다. 대산문화재단에서 주최했던 이 포럼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르 클레지오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를 비롯해서 미국의 저명한 계관시인 로버트 하스도 참가했는데 그 명단에는 번역가이자 음악가이고 승려인 쿠바의 시인 오마르 페레즈 로페즈도 끼어 있었다. 그는 놀랍게도 체 게바라의 아들로, 내한 당시에 화제의 중심이 됐던 꽤 유명한 예술가이자 문인이었다.

음악과 춤이 함께 했던 사흘간의 문학축제에서 이틀 동안 열렸던 동아시아문학과 세계문학교류의 밤 행사의 총연출을 맡았던 나는 느끼는 바가 있어서 첫날 맨 끝 순서에 오마르와 전부터 친분이 있던 말로 밴드의 합동공연을 배치했다. 기대했던 대로 타악기 연주자이기도 했던 그는 스캣의 여왕이라 불리는 재즈 보컬 말로와 기가 막힌 조합의 잼 세션(재즈 연주자들이 모여서 악보 없이 하는 즉흥적인 연주)을 선보이며 현장의 무대를 뜨겁게 달구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온 로페즈는 내게 다가와 다정하게 물었다. “아 유 해피?” 너는 행복하냐는 그의 단순한 질문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삶의 철학이 묻어났다. 오마르는 내게 지금 이 순간을 잘 즐겼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불현듯 두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그날의 울컥했던 마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찰나의 축제 같았던 그날의 공연은 포럼에 참가한 작가들 사이에서도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 위화도, 소말리아의 극작가 누르딘 파라도 입가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엄지 척을 세우며 그 순간을 함께 즐겼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기꺼운 마음으로 다 같이 흥겹고 신나는 놀이에 동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뜨거운 피가 끓는 자유로운 영혼과 영혼의 만남이 빚어낸 불꽃 튀는 공연을 어느 작가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화끈하게 판을 벌려 한바탕 놀아보자고 하는데 그걸 싫어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터.

멋진 무대가 되리라 짐작은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큰 환호와 열광적인 반응을 지켜보면서 그때 문득 생전 처음으로 대학 시절부터 즐겨 듣기만 하던 재즈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예측 불허의 삶의 관계를 곰곰 곱씹어 보게 되었다. 대부분의 인간의 삶이 정해진 대로 흘러가지 않듯이,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용의주도하게 실행에 옮겨도 어떤 일이든 마음 먹은 대로 성사되고 뜻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오히려 그 반대로 사람이 하는 일에는 수많은 우연들이 개입하고, 그 우연이 또 다른 우연을 불러들여 인연을 만들고, 그 인연이 종래엔 거대한 운명을 만든다. 그게 사랑이고 인생이다. 그러고 보면 정처 없이 흩어져 뭉게구름처럼 도처에서 피어오르는 인간의 행로와 가장 닮은 음악이 재즈인 것이다.

언제부터 재즈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던가. 아니, 재즈를 좋아했다기보다는 재즈가 품고 있는 어떤 필feel과 리듬을 사랑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작가 드니 디드로는 인간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흐름처럼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의 지속성과 영원함이 퇴적된 폐허를 ‘숭고의 폐허’로 지칭했다. 우리는 다들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정하고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지만 정작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재즈 역시 그렇다. 시작은 있지만 그 끝을 종잡을 수 없다. 아니,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조차 모호하다. 한없이 투명하면서도 불투명한 음악, 그게 재즈다. 과거는 이미 흘러갔고 미래는 짐작할 수 없으니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재밌게 잘 놀아보자는 뜻에서라면 재즈는 더더욱 영원한 현재형의 펄펄 살아 숨 쉬는 음악이기도 하다.

로페즈는 성인이 되고서야 어머니로부터 자신이 체 게바라의 아들임을 들었다고 했다. 아바나 해변 옆에 집을 지어놓고 시간이 나면 훌쩍 여행을 떠나고선 불교에 심취한 채 무소유의 철학을 자신의 작품 활동에 반영하면서 어딘가 매인 데 없이 자유롭게 사는 그는 영락없이 재즈적인 사내였다. 로페즈가 재즈를 많이 알고 재즈를 훌륭하게 연주해서가 아니라, 그의 삶의 형태가 재즈 그 자체인 것이다. 축제가 끝나고 한국을 떠나면서 로페즈는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여러 장의 쿠바 돈 페소와 아버지가 즐겨 피우던 시가를 우정의 선물로 주었다. 그가 내게 건넨 것은 쿠바의 화폐와 담배였지만 정작 내가 그에게서 받은 것은 단 한 번뿐인 이 뜨겁고 찬란한 생을 건너가는 열린 삶의 태도와 자세였다.

많은 한국인처럼 일 중독증에 걸렸던 나 역시 판을 깔아놓아도 잘 놀지 못하는 축에 속했다. 앞에 나서서 노는 게 영 어색하고 서툴렀다. 그런데 어쩌다가 희곡을 쓰고 공연 연출을 하게 되면서 일하듯이 노는 일에 조금은 익숙해졌다. 펼쳐진 대로 살아간다는 말처럼 연극이라는 말 자체가 플레이play, 놀이다 보니 시나브로 삶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요즘도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눈곱만큼만 일하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느라 아주 바쁘다. 가끔씩은 이거 너무 일은 안 하고 놀 궁리만 하나 걱정도 들었지만 그러한 염려도 잠시, 어디 뭐 또 신나는 일이 없나 두리번거리면서 또 다른 놀이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놀이에 재미든 사람은 다 알겠지만 노는 데도 시간이 한참 모자란다. 늙으면 힘이 달려 제대로 못 노니까 힘이 남아도는 젊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놀아야 한다는 옛말이 허튼소리가 아닌 것.

변화 없이 되풀이되는 일에 쉽게 싫증을 느끼고 늘 새로운 일에 목말라하는 나처럼 미욱한 사람은 여행을 갈 때도 머무를 곳을 특별히 예약을 안 하고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행지에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예기치 않은 생의 인연을 놓치기 싫어서이다. 그 귀하고 소중한 인연과 다시 돌아오지 않는 생의 어느 한 순간을 재즈처럼 만끽하고 싶은 거겠지. 틀에 갇혀서 지내는 생활을 지독하게 혐오하고 틈만 나면 나를 구속하고 얽매이게 하는 모든 제약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하는 철없는 어린아이는 지루하고 심심한 일상의 하루를 걷어차고 오늘도 빌 에반스나 쳇 베이커를 들으며 나만의 허무맹랑하고 우스운 삶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최창근 극작가 겸 연출가. 극단 제비꽃 대표. 최근에는 영화감독과 배우로도 활동. 찍고 출연한 영화로 〈단순한 진심〉(조해진 원작)과 〈잃어버린 계절〉(김시종 원작), 〈여름의 맛〉(하성란 원작), 〈시인들의 창〉(김전한 감독), 〈유랑소설〉(이지현 감독) 등.

 

* 《쿨투라》 2024년 6월호(통권 12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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