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동서양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 홍콩미술관
[미술관 탐방] 동서양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 홍콩미술관
  • 김명해(화가, 객원기자)
  • 승인 2024.06.0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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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3시간을 날아 도착한 홍콩은 전날 내린 비로 습도가 높았지만 맑고 화창한 날씨 덕분에 여행하기가 수월했다. 빨간 2층 버스를 타고 홍콩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성완Sheung Wan으로 가는 길은 넓은 바다가 양쪽으로 펼쳐져 있고, 저 멀리 구룡반도九龍半島와 홍콩섬에 우뚝 솟은 각양각색의 빌딩들이 눈에 들어왔다.

홍콩은 중국 남부의 관문에 위치하여 중국과 외국 간교통의 요지로, 지난 세기 동안 상업 및 무역도시로 발전한 국제도시다. 홍콩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1842년부터 1997년 이양 직전까지 영국의 통치로 인해 중국과 서양의 혼합된 생활 방식과 문화적 특성을 형성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 예술가들은 중국 문화에 뿌리를 두고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정신을 흡수하여 적극적으로 창작하고 개혁하여 지역적 풍미가 풍부한 독특한 형태로 예술을 발전시켰다.

홍콩 예술의 역사는 1920-30년대에 홍콩과 교류하거나 이주한 중국 본토 예술가들과 유럽 및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예술가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기존 전통 회화양식을 계승하면서 서양 미술을 도입하여 전통 서예와 회화 발전에 영향을 미쳐 홍콩 미술을 차츰 풍요롭게 했다.

1950-60년대 홍콩은 모더니즘 사상이 유입되면서 문화와 예술 분야에는 혁신과 결단력이 넘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신수묵운동은 전통 수묵화에 새로운 사상과 기법을 접목시켜 수묵화의 모습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1970년대 이후 현대정신에 가까운 지역문화를 예술계에 도입하며 크로스미디어 예술 발전을 이루었고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홍콩 예술가들은 변화하는 홍콩의 역사, 문화, 사회, 정치, 민생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폭넓게 탐구하여 긍정적인 인본주의적 관심을 보이면서 창작과 실험을 통해 세계적인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홍콩 100년의 역사와 문화가 반영된 예술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홍콩미술관Hong Kong Museum of Art’이다. 홍콩미술관은 1962년에 설립된 홍콩 최초의 공공미술관으로 19,500점 이상의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은 지하 1층과 지상 5층으로 이루어진 건물로 라운지가 있는 지하 1층을 제외한 모든 층이 전시장이다.

홍콩미술관 전경

특히 주제별 장르별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 내에 있는 ‘우관중아트홀’은 중국 현대미술의 거장인 우관중Wu Guanzhong(1919-2010)의 작품 컬렉션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우관중은 중국과 서양미술을 융합하는 미술을 탐구하여 중국화의 현대화를 이룬 예술가로 우리나라 김환기(1913-1974) 같은 중국 국민 화가이다. 현재 이곳에는 《Wu Guanzhong─Black·White·Grey》전이 전시중이며 그의 수묵화와 유화 작품을 인용문과 함께 전시되어 거장의 독특한 색채 미학을 통해 무한한 세계로 빠져들도록 유도하고 있다.

우관중아트홀 내부 전경

전시 컨셉에 따라 전시장 벽체 또한 검정, 흰색, 회색 톤을 두어 우관중의 작품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정해 놓았다. 색상이론의 영역에서 검정, 흰색, 회색은 채도가 없는 무채색으로 간주되어 겉보기에 차갑고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그의 작품 속 무채색은 따뜻하고 아름답고 평온한 색상으로 표현되어있다.

은회색의 마을 사이로 흰 벽과 검은 타일로 된 집들이 돋보이는 작품 <Waterway>(1997)는 우관중이 이상적인 강남 풍경을 발견하고 그린 그림으로, 흐린 날 멀리서 바라본 반투명한 회색 풍경이 고요하고 조화로운 느낌을 준다. 얼룩진 회색 벽에 구불구불한 선으로 표현된 작품 <만남>(1999)은 봄이 찾아옴에 따라 깨어나는 생기 넘치는 삶에 대한 작가의 그리움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실버그레이 톤은 무한한 생명력을 구현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의 눈에 은회색은 활력을 표현하는 마법의 요소로 작품의 중심을 차지한다.

우관중 작, 눈 덮인 산, 1997

흰색은 우관중의 예술 중 수묵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선지를 능숙하게 활용하여 다양한 잉크 밀도를 배경으로 그린 작품 <눈 덮인 산>(1997)은 우연한 붓놀림만으로 매혹적인 구성효과를 얻은 그림이다. 그는 또한 화선지의 매혹적인 특성을 상기하면서 흰 벽을 선으로 단순화하여 그린 <두 마리의 제비>(1981)에서 흑백 대비에 감탄하며 이를 다양한 회화 매체 중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놀라운 효과 중 하나로 칭송했다. 그런가 하면 주자이거우Jiuzhaigou1의 웅장한 폭포를 그린 <폭포>(1986)는 역동성을 발산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작가의 안목은 그 안의 평온함을 강조하고 있다.

검정은 모든 빛과 다른 색상을 흡수하고, 죽음과 신비로움뿐만 아니라 엄숙함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우관중은 “저는 검정색을 좋아하고 항상 그 잠재력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검정색은 모든 시각적 자극 중에서 가장 강력한 음입니다”2라고 했다. 높은 각도에서 바라본 집의 지붕을 묘사한 작품 <사각형 마당>(2003)은 넓다란 검은색 선을 사용하여 옛 건물의 비좁은 특성을 강조함으로서 그의 가족이 소박한 집에서 살았던 힘든 시절을 회상케 한다. 짙은 녹색 바탕에 검은색 물감을 더해 흰 여주를 강조한 <여주농가>(1998)는 나이프를 사용하여 나뭇가지를 긁어내며 캔버스의 기본 색상을 노출시켜 강렬하고 역동적인 선으로 흑백의 강한 대비를 묘사하고 있다.

우관중 작, Waterway, 1997

“묵은 화선지에 바르면 흑과 백의 강렬한 대비 덕분에 생동감 넘치는 기원을 발산합니다. 백은 중국 전통회화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합니다.”3

 

“황혼이 되면 세상의 모든 유혹과 근심은 사라지고 젊음의 벌거벗음과 오만함이 다시 표면화됩니다. 진실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큰 위안입니다. 부처님의 해방을 느낍니다. 뒤를 돌아보니 회색, 흰색, 검은색의 세 가지 순수한 땅을 횡단한 해안이 멀리 보입니다.”4

 

우관중의 이러한 그림들은 모두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대담하고 혁신적인 색상실험에서 비롯되었으며, 동양의 시적 감성과 정서를 담아내면서 서양의 추상 유화를 닮은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를 풍긴다.
경험에서 우러나는 감성의 화가 우관중은 자신을 ‘코끼리(서양의 영향)를 삼킨 뱀(중국 예술가)’으로 묘사하곤 했다. 수묵화와 유화라는 전혀 다른 매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융합하여 동서양의 융합을 꾀한 아시아 거장의 예술 세계를 고찰해 보았다.

다음 전시는 미술관 3층 수출아트홀에서 진행 중인 《광저우에서 쇼핑하기/광저우 쇼핑 연대기: 18세기와 19세기 미술품 수출》전이다. 이 전시는 다양한 유형의 수출미술 컬렉션을 선보이는 전시로, 당시 광저우의 쇼핑 천국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애니메이션과 인터랙티브를 시작으로 윈도우 쇼핑을 하는 착각이 든다.

18·19세기 광저우는 중국과 서양 무역의 중심지였다. 도시의 남서쪽 주강 유역에 위치하고 있어 외국 상인을 대상으로 수공예품, 그릇, 기념품, 차, 와인, 음식 등 온갖 종류의 물건을 파는 상점이 많아 번화가를 이루었다.

현재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예술품은 미술관이 설립되기 훨씬 전부터 사업가인 채터 경Sir Chater과 호퉁 경Sir Ho Tung으로부터 기증받은 컬렉션들로, 대부분은 중국 해안 무역항의 18·19세기를 묘사한 그림과 사진, 지도, 공예품들이다. 당시 사람들의 생활, 관습 및 지역 특색을 반영한 귀중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이곳을 방문했던 많은 외국상인들이 현지 중국 화가를 고용하여 초상화를 주문하곤 했는데 스포일럼Spoilum(1770-1805)은 서양식 초상화를 그린 최초의 중국 화가이다. 그가 그린 <유럽 상인을 위한 초상화>(18세기 말 - 19세기 초)는 서양의 고전주의나 사실주의 못지않게 뛰어난 기술로 잘 그려졌다. 그의 예술성은 다음 세대의 광저우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리고 도자기나 다과를 파는 상점을 그린 그림, 정원풍경이나 일상모습을 금박으로 그린 접이식 부채, 문장과 문양이 그려진 세라믹 그릇, 무늬로 장식된 은주전자, 구리에 에나멜을 칠한 찻잎 통, 상아에 생활모습이 섬세하게 조각된 카드상자 등 그림과 수공예품들은 그 정교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청나라 화가들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실은 런던 현지신문 기사도 흥미로웠다.

당시 서양 회화기법을 도입한 중국 화가들은 기술을 배운 후 광저우와 홍콩에 스튜디오를 차리고 항구 풍경, 인물, 정원, 꽃, 새 등의 그림과 다양한 기념품을 만들어 서양 상인들에게 판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대했던 회화시장은 19세기 사진의 인기와 함께 사진으로 대체되어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이밖에도 홍콩미술관에는 우관중의 작품과 18·19세기 예술품뿐만 아니라 고대 및 근대회화, 유물, 문화재, 생활용품 등 신석기시대부터 20세기까지의 다양한 예술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미술관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국내외의 다양한 예술세계를 홍콩의 관점에서 전통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경험과 문화적 의미를 열어 예술을 우리의 삶과 연결시키고, 문화계보를 계승하고 홍보하며 보존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홍콩미술관이 위치한 침사추이Tsim Sha Tsui는 홍콩 섬 센트럴과 함께 홍콩 양대 번화가로 꼽힌다. 홍콩 최대 쇼핑센터인 하버시티Harbour City와 고급호텔에는 외국관광객들로 붐비고, 홍콩 우주박물관과 ‘홍콩영화 금상장Hong Kong Film Awards5이 주로 열리는 홍콩문화센터도 있어 문화중심지이기도 하다. 홍콩여행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2층 버스, 트램, 페리, 지하철, 택시 등 다양한 종류의 대중교통을 다 이용해 본 것과 홍콩영화 배경지인 미드레벨Mid-levels에 가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본 것이다. 90년대 홍콩 누아르에 열광하고 홍콩 멜로영화를 좋아했던 팬으로서 영화에 등장했던 홍콩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홍콩은 역시 매력적이고 활기찬, 삶이 느껴지는 도시이다.

 

참고자료 홍콩미술관 https://hk.art.museum

 


1 중국 쓰촨성 아바 티베트족 창족 자치주에 있는 현(縣)으로 9개의 장족마을을 뜻하는 이름.
2 우관중의 『月如鉤』 중에서.
3 우관중의 『楊廷文畵集』 서문 중에서.
4 우관중의 『三方淨土轉輪來 - 灰·白·墨』 중에서.
5 홍콩에서 열리는 연례 영화상 시상식. ‘홍콩의 아카데미상’으로 부르며 1982년 첫 시상식이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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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쿨투라》 2024년 6월호(통권 12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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