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품은 미국 인디영화계: 션 베이커의 〈아노라〉 최고상 수상
[제77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품은 미국 인디영화계: 션 베이커의 〈아노라〉 최고상 수상
  • 손정순 편집인, 설재원 에디터
  • 승인 2024.06.0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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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만에 황금종려상을 차지한 미국영화
션 베이커의 <아노라>

돌이켜보면 제77회 칸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은 공개 당시부터 근래 라인업 중 가장 약하다는 우려가 컸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자크 오디아르 등 소위 ‘빅네임’이 있었지만, 유독 강력했던 지난해 영화 프로그램을 떠올리면 올해는 전반적으로 힘이 빠지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이러한 예상대로 올해 경쟁부문 프로그램은 작품 간 편차가 컸다. 현장에서 느낀 올해 경쟁작 스물두 편의 레이스는, 개막과 함께 뜨겁게 질주했고, 중반부에 확 식더니, 마지막에 다시금 불타올랐다. 그래서인지 영화제의 초반과 후반을 빛낸 좋은 작품이 더욱 눈에 띈 한 해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영화로서 13년 만에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션 베이커의 〈아노라〉이다. 13년이라는 시간이 보여주듯 한동안 미국영화는 황금종려상 최다수상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020년대의 칸영화제는 2021년 쥘리아 뒤쿠르노의 〈티탄〉(프랑스), 2022년 루벤 외스틀룬드의 〈슬픔의 삼각형〉(스웨덴), 2023년 쥐스틴 트리에의 〈추락의 해부〉(프랑스)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유럽, 특히 프랑스영화의 강세가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경쟁부문 라인업부터 미국을 비롯한 영미권 영화의 약진이 두드러졌고, 본지 또한 지난호 칸영화제 프리뷰를 통해 영미권 작품의 성공을 예측한 바 있다. 그리고 션 베이커는 〈아노라〉를 선보이며 지독하게 고수해온 자신만의 스타일로 테렌스 멜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2011) 이후 오랜만에 황금종려상을 미국영화에 안겼다. (공교롭게도 심사위원장은 미국의 배우 겸 감독 그레타 거윅이다.)

©Joachim Tournebize / FDC

특히 션 베이커가 걸어온 길은 가히 미국 인디영화 감독의 교과서라고 부를 만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스타렛〉(2012)으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션 베이커는 〈탠저린〉(2015)으로 선댄스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으며 체급을 키웠다. 이후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로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은 그는 다음 작품 〈레드 로켓〉(2021)으로 경쟁부문에 입성했고, 마침내 〈아노라〉로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았다. 재미난 점으로 〈아노라〉의 수상으로 올해도 네온의 선택이 황금종려상으로 이어졌다. 네온은 〈기생충〉(2019)부터 〈티탄〉(2021), 〈슬픔의 삼각형〉(2022), 〈추락의 해부〉(2023), 〈아노라〉까지 5년 연속 황금종려상 작품을 전부 배급하는 진기한 기록을 이어갔다.

<아노라>

〈아노라〉의 수상은 작년 주목할만한 시선상을 받은 몰리 매닝 워커의 영국영화 〈섹스하는 법How to Have Sex〉을 떠올리게 한다. 〈섹스하는 법〉은 최근 영미권 작품 스타일을 잘 살려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으며 수상까지 성공하였는데, ‘주목할 만한 시선’답게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터프함으로 밀어붙이는 작품이었다. 이에 반해 션 베이커의 〈아노라〉는 뜨거운 에너지를 발산하면서도 베테랑 감독의 원숙함이 느껴진 ‘깔끔한’ 작품이다.

션 베이커 ©Valery HACHE / AFP

〈아노라〉는 ‘애니Ani’라고 불리는 러시아계 미국인 스트리퍼 아노라와 러시아 올리가르히 청년 이반 사이의 좌충우돌 로맨틱 코미디이다. 션 베이커는 그동안 〈스타렛〉과 〈탠저린〉 및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드 로켓〉 등을 내놓으며, 성노동자들에게 씌워지는 오명을 벗겨내는 데 천착하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탠저린〉이나 〈레드 로켓〉에서 보여준 것처럼 아찔함과 광란의 활력이 작품을 감싸고 있다. 시종일관 시끌벅적했던 션 베이커표 현대판 신데렐라 코미디는 점차 파국으로 치닫고, 말미에 그가 던지는 묵직한 한 방은 그동안 주류 영화계가 담아내지 못한 고통스런 민낯을 포착한다. 션 베이커는 “영화의 미래는 영화가 시작했던 곳인 극장에 있다”는 말을 남기며 ‘스트리밍 혁명’ 시대의 극장 경험을 강조하는 동시에 “황금종려상을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성노동자에게 바친다”는 수상소감을 전했다.

 

‘특별상’으로 보는 칸의 선택
모하마드 라술로프의 〈신성한 나무의 씨앗〉

<신성한 나무의 씨앗>

올해 영화제를 앞두고 프랑스를 강타한 #미투 운동과 중동을 다시 세계 전쟁의 중심으로 몰아넣은 가자 전쟁,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칸영화제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다양한 예상이 오갔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올해도 칸은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의 바람대로 스캔들 없는 영화제 기조를 이어갔다. 다만 칸의 방식대로 정치적 스탠스를 보여주었는데, 바로 모하마드 라술로프의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특별상 수상이다.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사탄은 없다〉(2020)로 황금곰상을 받은 모하마드 라술로프는 2022년 반체제 선동 혐의로 체포된 후 출국 금지 조치를 받았다. 그는 지난해 주목할만한 시선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지만, 출국금지조치 때문에 영화제를 찾지 못했다. 올해도 이란정부는 라술로프에게 칸 출품을 철수할 것을 권고하였으며, 작품 속 여배우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점과 관계 당국의 허락 없이 영화를 제작했다는 이유로 모하마드 라술로프에게 8년 징역형과 태형, 벌금형, 재산몰수형을 함께 선고했다. 그러나 모하마드 라술로프와 배우 및 제작진은 이란을 탈출하여 24일 레드카펫에 참석하였고, 이란을 떠날 수 없었던 배우 소헤일라 고레스타니와 미사그 자레의 사진을 손에 든 채 극장으로 향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억압적인 이란 정권 아래 한 가족의 위기를 다루고 있는 우화이다. 여성 혐오와 편집증에 초점을 맞춘 이 작품에서 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판사 아버지에 맞서 반기를 들고 시위를 벌인다. ‘무화과fig’는 다른 나무에 씨앗을 뿌리고 뿌리를 허공으로 보내 결국 숙주 나무를 감싸고 죽이는 ‘신성한sacred’ 나무이다. 영어 제목 ‘The Seed of Sacred Fig’에서 드러나듯, 이 작품은 젊은 여성들이 투쟁에서 승리하고 결국 이 땅에 뿌리내릴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영화제 후반부 평단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특별상 수상은 조금 아쉬운 결과로도 볼 수 있으나, 그럼에도 칸이 내민 연대의 손길은 예술의 이름 아래 진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올해의 수상작

파얄 카파디아(〈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 © Valery HACHE / AFP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

심사위원대상은 파얄 카파디아의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이 차지했다.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은 현실적인 세 친구의 달콤쌉쌀한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뭄바이에서의 여성의 삶을 명료하고 서정적인 방식으로 담아냈다. 이 작품은 샤지 카룬의 〈스와함〉 이후 30년만에 경쟁부문에 초청된 인도 작품으로,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한 최초의 인도영화이다.

감독인 파얄 카파디아는 2017년 〈애프터눈 클라우드〉로 시네파운데이션(현 라 시네프)에 초청받았고, 2021년 감독주간에 〈무지의 밤〉으로 초청받아 최우수다큐멘터리상인 골든아이를 거머쥔 인도영화계의 신성이며, 인도 여성감독으로는 최초로 칸 경쟁부문에 진출하여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달성했다. 또한 올해 인도영화는 경쟁부문 심사위원대상뿐만 아니라 주목할만한 시선 여우주연상(〈셰임리스〉의 아나수야 센굽타), 라 시네프 1등상(〈해바라기가 제일 먼저 알아차렸어요〉)을 휩쓸며 의미있는 성과를 이뤄냈다.

〈에밀리아 페레스〉 ⓒShanna Besson

심사위원상은 자크 오디아르의 〈에밀리아 페레스〉가 받았다. 멕시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범죄 코미디 뮤지컬 드라마 〈에밀리아 페레스〉는 영화제 초반 최고작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범죄 카르텔의 리더 마니타스 델 몬테는 유능한 변호사 리타의 도움을 받아 ‘몰래’ 성전환을 시도한다. 그가 성전환을 하더라도 무시무시한 카르텔의 두목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동일한 자아에 육체만 달라질 뿐이지만 그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두려움을 느끼며 숨막히는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자크 오디아르의 신작 〈에밀리아 페레스〉는 어쩌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디판〉(2015) 이상의 찬사를 받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여우주연상 또한 〈에밀리아 페레스〉의 앙상블(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셀레나 고메즈, 조 샐다나, 아드리아나 파즈)에게 향했다. 당초 성전환 배우인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의 연기가 호평을 받으며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되었는데, 심사위원장 그레타 거윅은 “배우 네 명은 한 명 한 명 모두 빛났지만, 함께할 때 더욱 훌륭했다”며 공동 수상 경위를 밝혔다. 덕분에 〈에밀리아 페레스〉는 모처럼 칸에서 2관왕을 차지한 작품이 되었다.

이번 수상으로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최초의 트랜스젠더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앙상블 여우주연상 수상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귀향〉(2006) 이후 18년 만이고, 뮤지컬 영화의 배우로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은 라스 폰트리에의 〈어둠 속의 댄서〉(2000) 이후 24년 만의 기록이다.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

남우주연상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초현실주의 블랙코미디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에서 순종적인 사업가, 슬픔에 잠긴 경찰, 양성애자 사이비 교도 등 1인 3역을 맡은 제시 플레먼스가 차지했다. 모처럼 칸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 상영을 한 란티모스는, 할리우드는 모르는 ‘우리가 알던’ 그리스 괴짜 감독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송곳니〉부터 〈킬링디어〉까지 각본작업을 함께한 오래된 파트너 에프티미스 필리포와의 재회 때문인지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는 억압과 통제라는 주제를 훨씬 더 암울하고, 모호하며, 불안하게 다루고 있다.

이번 수상으로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칸이나 베니스에 출품한 그의 모든 작품이 본상을 받는 기록을 이어가게 되었다. 〈송곳니〉(주목할만한 시선상, 2009), 〈알프스〉(베니스 각본상, 2011), 〈더 랍스터〉(칸 심사위원상, 2015), 〈킬링디어〉(칸 각본상, 2017), 〈더 페이버릿〉(베니스 심사위원대상과 여우주연상, 2018), 〈가여운 것들〉(황금사자상, 2023),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칸 남우주연상, 2024)로 대부분의 본상을 이미 거머쥔 그가, 차기작으로 감독상 혹은 황금종려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또한 제시 플레먼스의 수상으로 제시 플레먼스와 커스틴 던스트 부부는 칸에서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아내인 커스틴 던스트는 라스 폰트리에의 〈멜랑콜리아〉(2011)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랜드 투어>
<더 서브스턴스>

감독상과 각본상은 각각 〈그랜드 투어〉의 미겔 고메스와 〈더 서브스턴스〉의 코랄리 파르자가 차지했다. 〈그랜드 투어〉는 로맨스와 약간의 서스펜스가 가미된 코미디 작품으로, 결혼날 동양으로 떠난 약혼남 에드워드를 쫓는 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머셋 몸의 『응접실의 신사Gentleman in the Parlour』가 떠오르는 이 유쾌한 오디세이는 때론 지나치게 세속적지만 한편에 순수함을 안고 식민주의와 젠더 문제를 다룬다. 많은 이들에게 〈티탄〉을 떠올리게 한 〈더 서브스턴스〉는 올해 칸에서 가장 파격적인 실험을 보여준 작품이다. 데미 무어가 열연을 펼친 이 작품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향한 탐닉과 변형된 신체 사이의 기괴한 미스매치를 선보이며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렸고 영화제 내내 뜨거운 논쟁을 주도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 ©Christophe SIMON / AFP

 

한국영화 초청작 세 편

〈베테랑 2〉 ⓒCJ ENM
〈베테랑 2〉 ⓒCJ ENM

 

올해 한국작품으로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 2〉(미드나잇 스크리닝)와 김량 감독의 〈영화 청년, 동호〉(칸 클래식), 임유리 감독의 〈메아리〉(라 시네프) 세 편이 칸을 찾았다.

〈주먹이 운다〉(2005) 이후 19년만에 〈베테랑 2〉로 칸을 찾은 류승완 감독은 20일 프리미어 상영에서 “여기(뤼미에르 대극장)까지 오는 데 50년이 걸렸다”는 말로 2주차 미드나잇을 열었다. 이번 작품은 2024년의 감각으로 사적 복수 문제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상영 전 공개된 정보로 인해 전작보다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되리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역시 이번 작품에서도 류승완 감독 특유의 유머 코드는 진지함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특히 첫 번째 시퀀스는 자정 넘은 시간에 극장을 찾은 미드나잇 관객의 졸음을 저 멀리 쫓아내는 자극적인 감칠맛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또한 군데군데 녹아 있는 1편과의 연결점을 발견하는 것도 천만영화 후속작만이 가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이다.

〈영화 청년, 동호〉 ⓒ국제신문

김량 감독의 〈영화 청년, 동호〉는 명실상부 한국영화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의 발자취를 조명한 다큐멘터리이다. 지난해 2월부터 1여 년간 김동호 전 이사장을 좇은 이 작품은 의미 있는 영화 유산을 기리고자 과거의 명작이나 관련 다큐멘터리 등을 상영하는 칸 클래식에 초청되었다. 영화제 기간 내에 단 한 번밖에 상영되지 않은 터라 뜨거운 예매 전쟁이 벌어졌고, 16일 저녁 진행된 공식 상영에는 한국영화를 세계에 알린 김동호 전 이사장에게 티에리 프레모를 비롯한 전 세계 영화인이 존경과 찬사를 보냈다.

〈영화 청년, 동호〉 ⓒ국제신문
〈영화 청년, 동호〉 ⓒ국제신문

임유리 감독의 〈메아리〉는 ‘라 시네프 프로그램 3’에 포함되어 22일 오후 프리미어 상영을 진행했다. 칸 시장이 주관하는 칸 성에서의 기자 오찬 직후에 시작된 탓에 함께 식사한 기자들을 극장에서도 그대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해 도망친 옥연과 방울의 기묘한 탈출을 긴장감 있게 담아냈다. 〈메아리〉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위치한 금지된 숲에서 술취한 신랑과 청년들을 물리치는 옥연과 방울의 한맺힌 굿판을 장르적으로 잘 그려냈다. 학생과 기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라 시네프관객 특성상 장르성 짙은 임유리 감독의 〈메아리〉는 현장의 높은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인디영화’의 승리

올해 칸영화제는 전체적으로 무난했던 프로그램 사이에서 수상작이 돋보였던 한 해로 기록될 듯하다. 전반적으로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린 작품들이 무난했던 탓인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수상 결과에 대체로 수긍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단의 선택과 비평가의 지지가 일치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필자가 참여한 5대륙 55명의 비평가가 참여한 《인디와이어》 설문 결과에서도 최우수 영화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작품은 〈아노라〉였고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뒤를 이었다.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과 〈에밀리아 페레스〉가 공동 3위 그룹, 〈그랜드 투어〉와 〈더 서브스턴스〉가 공동 5위 그룹을 형성하였는데,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심사위원단과 비평가의 선택이 일치한 한 해였다. 빈 손으로 돌아간 작품 중에는 개인적으로 안드레아 아놀드의 〈버드〉의 무관이 아쉽고, 영화제 기간 동안 평가가 크게 엇갈렸던 〈메갈로폴리스〉는 계속해서 평가와 재평가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한편 미국영화가 오랜만에 ‘인디영화’로 황금종려상을 차지한 덕에, 한동안 미국 인디영화에 뜨거운 관심이 쏟아질 것으로 보이며 아트시네마계의 지형도 또한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지난해 할리우드 파업의 여파로 대형 작품의 제작 및 개봉 일정에 크게 차질이 생겼다는 점 또한 인디영화계에는 좋은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인디영화의 바람이 유행처럼 전 세계로 뻗어나가 우리 영화산업에도 이어지길 조심스레 바라 본다. 우리 독립영화계에도 아직 조명되지 않은 주목할만한 시선이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의 위기’의 시대에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주류 영화계의 눈길이 미처 닿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독립영화인의 참신하고 기발한 실험이다.

칸 성 오찬

 


 Blauvelt, C. (2024). The Best Movies of the 2024 Cannes Film Festival, According to 55 Critics. IndieWire. https://www.indiewire.com/features/best-of/best-movies-cannes-2024-critics-survey-1235009480/

 


 

 

* 《쿨투라》 2024년 6월호(통권 12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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