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세이] MBTI의 민족
[문화에세이] MBTI의 민족
  • 함은세(작가)
  • 승인 2024.07.02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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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알아? 나한테 MBTI 안 물어본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외국인 친구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푸흡, 웃어버렸다. 한국에 교환학생을 온 지 3주 정도 된 친구의 목소리가 마치 연구대상이라도 언급하는 듯 심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모른다고 했지만, 매번 주변에서 물어보는 일이 반복돼서 끝내 자기 MBTI가 ‘ENTP’라는 걸 ‘find out’ 할 필요가 있었다는 친구가 왠지 안쓰러웠다. 나는 원한다면 앞으로도 안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답했다.

확실히 한국에서 ‘MBTI 토크’는 상대와 친밀도를 쌓는 과정에 절대 빠지지 않는 대화 주제다. 관련 내용을 다룬 콘텐츠들도 인기가 많고, 감정적으로 메마른 사람에게 농담처럼 “너 T야?” 묻는다. 젊은 층에서 내 친구처럼 MBTI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희귀종’이다.

아무리 세계적인 트렌드라고 해도, 한국처럼 MBTI가 ‘필수 토픽’인 경우가 있을까? 일단 내 경험에만 비추어 보면, 한국 외의 국가에서 ’MBTI‘ 질문을 받은 적은 없다.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경험도 따져보면 0에 수렴하는 수준이고. 나는 개인적으로 내 MBTI조차 신경쓰지 않아서 누가 T건 F건 별 신경 안 쓰는데, 가끔 썸남 MBTI가 마음에 걸려서 못 사귀겠다고 하는 친구를 보면 나 말고 많은 이들에게는 중요한 사안이구나 싶어서 신기하다. 물론 채용 시 특정 MBTI의 구성원을 선발하지 않는 회사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개인의 성격을 묘사하는 방법이 단어나 문장이 아닌 16가지의 유형 중 하나로 굳어진 게 단순히 편리함으로 인한 것만은 아니리라. 사실 MBTI 검사야말로 가장 수고스럽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수십 개의 문항을 읽어야 하고, 가끔 환경에 의해 성격이 좀 바뀐 것 같으면 다시 검사해야 하니 말이다. 그냥 ‘밝다’, ‘차분하다’, ‘섬세하다’ 같은 단어로 묘사하는 게 훨씬 쉬움에도 한국에서는 그 모든 과정이 일종의 놀이가 됐다.

한국이 MBTI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일반화일지도 모르지만) 한국인들은 본인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데 익숙지 않은 것 같다.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할 일이 생기면 이름과 나이, 재학 중인 학교나 재직 중인 직장과 같은 ‘정보’를 알릴 뿐 추상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겸손을 중요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의 분위기 탓인지 타인이 자신을 칭찬하는 걸 민망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상용화된 개념을 빌리면 순식간에 정의 완료이니 정체성을 정립하는 게 어려운 이들은 MBTI를 사용하는 걸 훨씬 쉽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건 역설적으로 한국인들이 얼마나 자기 자신을 아는 데 관심이 큰지 보여주는 지점이다. 한국인들은 사회에서 부여하는 페르소나를 자신의 것으로 삼은 채 평생을 살아간다. 세상이 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구성원만이 인정받고, 그 기준은 실제로 공동체의 기본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터득한 자아 대신 암묵적인 규칙에 따라 주입받은 모형을 실제 자기 자신이라고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스스로의 존재 의미와 형태를 고민하는 생명체다. 자아 발현을 억누르는 사회에서 MBTI가 정제된 말로 정리하기 어렵던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가 된 건 아닐까.

무엇보다 MBTI는 당사자 또한 의문을 품던 본인의 면모에 입증 가능한 원인을 보충해줬다. 요즘은 내가 까칠하고 차가운 건 ‘T’라서, 즉흥적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건 ‘P’라서, 등으로 납작하게 퉁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핵개인화로 인한 자기중심적 성향이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에게 당연한 요소로 인식되는 가운데, 지나친 이기심을 합리화할 수단 역시 중요해졌다. MBTI를 ‘갖다 쓰면’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아도 순식간에 모든 행위의 근원적 이유를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는’ 셈이다. 물론 그건 ‘이해를 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어쨌든, MBTI는 한국 사회에 “사람들은 전부 다 다르다”라는 아주 간단하고 복잡한 진실을 일깨웠다. 자신을 너무 모르고, 몰라야 한다고 배워온 사람들이 사실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내면을 알기를 갈망해왔음을 바로 보여주는 예다. 허나 이미 존재하던 기성복보다는 스스로 만들어낸 나만의 옷이 잘 맞는 법이다. 아무리 MBTI 유형이 잘 맞는다고 해도, 개개인이 가진 섬세한 내면까지는 파악하지 못한다. 진정 우리가 입어야 할 우리 자신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16개의 성격 유형으로는 모자란, 거대하고 장엄한 우주. 그 우주를 모험해 나만의 옷으로 엮어낼 수 있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이다.


 


함은세 세상을 기획하고 삶을 기획하는 청년 기획자.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을 꿈꾼다.

 

* 《쿨투라》 2024년 7월호(통권 12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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