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월평] 드라마 시청 전과 후, 당신은 달라질 것인가: 〈더 에이트 쇼〉
[드라마월평] 드라마 시청 전과 후, 당신은 달라질 것인가: 〈더 에이트 쇼〉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4.07.02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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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상반기 최고의 문제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에이트 쇼〉는 공개 즉시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가볍게 보면 진짜 가볍고, 진지하게 보면 진짜 진지한 작품. 좋게 보면 진짜 좋고, 안 좋게 보면 진짜 안 좋은 작품. 둘 사이의 팽팽한 신경전이 드라마가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더 에이트 쇼〉는 충분히 ‘문제적’이다.

드라마의 일부 내용이 잔혹한 모방 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거나 특정 직업군 혹은 특정 계급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는 잠시 미루어두겠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입소문으로 건너 건너 전해 들었을 테니까. 그 모든 ‘문제’를 차치하고, 〈더 에이트 쇼〉는 명실공히 2024년 상반기 최고의 ‘문제작’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모르고 싶은 ‘불편한 진실’

8명의 인물이 8층으로 나뉜 비밀스러운 공간에 갇혀 위험한 쇼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8명의 인물과 8개의 층, 그리고 8개의 계급. 배우 천우희를 비롯해 류준열, 박정민, 박해준, 문정희, 배성우 등등 한 명 한 명 모두 드라마 주인공을 맡을 수 있는 배우들을 포진시켜 〈더 에이트 쇼〉는 K-드라마의 근간이 되는 K-세계관 구축에 많은 정성을 들인다. 하나의 층이 하나의 계급이 되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계급 사회. 단순하게 도식화된 갑을 세계관은 대중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극 중 ‘더 에이트 쇼’의 룰은 간단하다. 시간이 쌓이면 그 시간만큼 돈을 벌 수 있다. 쇼 참가자들은 각기 다른 층에 머물고 층마다 시간당 오르는 액수가 다르다. 1층은 1분에 만 원, 2층은 1분에 2만 원…. 얼핏 보면 층마다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지만, 그걸 한 시간 단위로 계산해보면 경악할 만한 누적액이 산출된다. 한 시간에 1층은 60만 원, 8층은 2,040만 원. 한 시간이 아니라 하루나 한 달이면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드라마니까 이렇지, 하고 치부해버리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벌금 대신 교도소 노역을 선택한 재벌 총수의 하루 일당이 5억 원이란 신문 기사가 새록새록 떠오르며 우리의 평정심을 갉아먹는다. 그렇다. 우리는 이미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사회가 부여하는 사람의 가치는 다르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 사람 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모르고 싶은, 불편한 진실.

극 중 8명의 참가자는 본인의 ‘뽑기’로 층수를 배정받는다. 한순간의 선택이 자신의 계급과 연봉을 결정하는 것.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선택인지도 모르고 한 선택이었지만 그 결과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태어나보니 금수저, 태어나보니 흙수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다 그렇다. ‘더 에이트 쇼’는 ‘헬조선’이라 불리는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고, 그래서 시청자로 하여금 불편함을 넘어 불쾌감을 자아내는 ‘문제적’ 쇼다.

 

계급에 따라 사람은 달라지는가

〈더 에이트 쇼〉는 공개 전 거액의 상금을 노려 목숨을 건 게임을 소재로 〈오징어 게임〉과 비교되며 많은 주목을 받았으나 공개 이후에는 도식적인 캐릭터와 지나치게 자극적인 설정으로 비판을 받았다. 글로벌 평점 플랫폼 로튼 토마토에서도 신선도 지수(평론가 평점)와 팝콘 지수(관객 평점)가 각각 67%와 50%를 기록, 다소 실망스러운 평점을 받았다. K-갑을 세계관에 대한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연출이 단순히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따가운 질타의 시선이 쏟아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 생각은 좀, 다르다. K-세계관을 토대로 하는 다른 드라마들과 달리, 〈더 에이트 쇼〉는 등장인물이 속한 현실의 계급과 쇼의 계급이 일치하지 않는다. 액자식 구성으로 드라마에는 두 개의 현실이 있다. 진짜 현실과 가상 현실. ‘더 에이트 쇼’라는 이름의 가상현실이 하나 더 있다. 한 명의 사람, 두 개의 계급. 가상현실에서 쇼 참가자들은 새로운 계급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 계급은 쇼 안에서 고정불변이다. 이렇게 드라마 안에서 또 하나의 ‘다르지만 같은, 같지만 다른’ K-갑을 세계관이 새로이 구축된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쇼타임’이다. 사람은 동일하다. 하지만 그 사람의 계급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그는 동일한 사람인가 아닌가. 계급에 따라 사람은 달라지는가 달라지지 않는가.

〈더 에이트 쇼〉에서 참가자들은 (나레이션을 맡은 ‘3층’을 제외하고) 이름이 없다. 층수가 바로 그들의 이름이다. 오직 계급으로서만 존재한다. 인물에 대한 선과 악, 옳고 그름은 없다. 오직 갑과 을, 계급만 있을 뿐이다. 만약 당신이 갑이 된다면 당신은 어떤 갑이 될 것인가. 만약 당신이 을이 된다면 당신은 어떤 을이 될 것인가. 〈더 에이트 쇼〉는 갑을 세계관의 시스템이 아니라 그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질문을 던진다. 계급에 따라 사람은 달라지는가.

도발적인 이 질문은 결국 마주하기 두려운 불편한 진실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이상적인 갑’은 존재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상적인 갑’이 될 수 있는가. 여기서 ‘갑’은 제일 높은 층인 8층만 의미하는 건 아니다. 2층도 1층에겐 상대적 갑이고 3층도 2층에겐 상대적 갑이다. 드라마에서 보면 ‘똥 처리’가 굉장히 큰 문제로 부각이 되는데, 이때 사람들의 행동이 ‘상대적 갑질’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때 시청자들은 깨닫게 된다. ‘갑’이란 상위 계급이 가지는 무게감에 대해. 이 무게를 권위로 인식하느냐 의무로 인식하느냐는 개인의 ‘선택’, 즉 ‘사람’의 선택이다.

2019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오징어 게임〉은 이미 지나갔다. 갑을 세계관에서 을의 사적 복수란 이름의 혁명이 성공하고 나서 체제가 전복되었다면 그다음 우리는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그 이후의 삶에 대한 건설적인 이야기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첫걸음은, 새로운 변화의 시작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어야 할 것이라고 〈더 에이트 쇼〉는 말한다. 사람, 바로 나, 바로 당신이 그 시작이라고 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계속 다크 히어로의 사적 복수, 그 사이다 맛에만 열광하고 ‘전복’ 그 자체에만 집착한다. 그렇게 우리는 여전히 ‘을’의 정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체제 전복에 성공했지만, 시스템은 그대로다. 갑은 갑이고 을은 여전히 을이다. 사이다 없는 고구마. 꽉 막힌 새드엔딩. 〈더 에이트 쇼〉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폭력적인 답답함’은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드라마를 연출한 한재림 감독의 노림수다. 의도된 불편함, 계획된 불쾌감.

당신은 몇 층인가요

〈더 에이트 쇼〉에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나온다. 영원불변의 견고한 갑을 세계관 앞에서 누군가는 순응하고, 누군가는 저항하고 누군가는 타협하고 누군가는 배신한다. ‘더 에이트 쇼’에서 나는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인가. 우리는 누가 될 것인가. 갑이든 을이든 갑을 세계관에 속한 구성원으로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쓴 반성문이 바로 드라마 〈더 에이트 쇼〉다. 참가자 중 한 사람이 드라마 후반 한재림 감독의 페르소나임이 밝혀지는데, 그 인물의 입장에서 드라마를 다시 보면 드라마의 주제 의식이 더욱 도드라진다. 드라마를 ‘다시보기’할 강인한 심장이 있다면 말이다.

한재림 감독의 야심찬 서사 전략. 의도된 불편함과 계획된 불쾌함. 문제는 그 전략이 너무나 성공적인 바람에 드라마를 끝까지 정주행하기 버겁다. 공개 즉시 넷플릭스 1위에 올라섰지만 누적 시청수와 누적 시청 시간은 역대 1위 드라마들과 비교해 한참 미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다가 중도 포기하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입소문이 났지만 오히려 그 입소문이 진입장벽을 높여 감히 시청하길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평범한 대중의 마음을 대변하는 사람이 ‘5층’이다. 8층 중 중간 층수, 중간 계급에 해당하는 ‘5층’은 점차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자 심적으로 감당하지 못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기도 하고, 그 유약함 때문에 결국에는 쇼 참가자들을 최악으로 이끄는 계기를 자기도 모르게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만약 〈더 에이트 쇼〉를 보기로 결심했다면, 그래서 시청하기 시작했다면 8화 끝까지 다 보길 바란다. 당신의 그 ‘선택’에 따라 드라마의 메시지가 달라질 수 있다. 드라마 시청 전과 후, 당신은 달라질 것인가.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현재 《쿨투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크리티크 M》 편집위원과 KBS World Radio 〈김형중의 음악세상〉 고정 게스트로 활동하며 자발적 드라마 홍보대사로 열일중. 저서로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문화평론집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외 다수가 있음. 2022년 중앙대학교 교육상, 제4회 르몽드 문화평론가상 수상.

 

* 《쿨투라》 2024년 7월호(통권 12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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