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서울국제도서전] 우리가 바라는 '후이늠'의 세상으로: 2024 서울국제도서전
[2024 서울국제도서전] 우리가 바라는 '후이늠'의 세상으로: 2024 서울국제도서전
  • 이수민 리포터
  • 승인 2024.07.0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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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규모의 책 축제 ‘2024 서울국제도서전’이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도서전에는 19개국 452개 출판사(국내 330개사, 해외 122개사)가 참가하여 전시와 북토크, 부스별 프로그램 등 450여 개의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었다. 첫날부터 행사장 내에 가득한 인파가 서울국제도서전의 뜨거운 인기를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는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후이늠Houyhnhnm’이었다. ‘후이늠’은 걸리버 여행기 4부에 등장하는 ‘말 종족’을 가리키는 말로, 이들의 세계에는 거짓말과 불신, 전쟁 등 인간이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성적이고 완벽한 ‘유토피아’인 것이다. 이번 도서전은 책을 매개로 인간이 만들어 낸 ‘세계의 비참’을 줄이고 ‘미래의 행복’을 찾아 떠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는 “전쟁을 비롯하여 이 사회에 존재하는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는 의미에서 ‘후이늠’을 끌고 왔다”고 전했다.

개막식 축하 세레모니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탐구하고 통찰해 볼 수 있는 주제 강연도 도서전 기간 내내 진행되었다. 도서전 첫날인 26일에는 김연수 작가가 새로 쓰고 강혜숙 작가가 그린 주제도서 『걸리버 유람기』를 최초로 선보였다. 1909년 최남선이 번역한 『ᄭᅥᆯ늬버 유람긔』를 미처 출간되지 못한 3, 4부의 이야기까지 포함하여 삽화와 함께 21세기 한국인의 시각으로 재탄생시켰다. 김연수 작가는 세미나에서 “『걸리버 유람기』는 원작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2024년 한국 시점으로 다시 쓴 여행기”라 밝히며 “걸리버와 홍길동의 만남을 상상했다. 홍길동이 염원하던 사회가 『걸리버 여행기』의 마지막 부분을 변화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후의 도서전 기간에도 『H마트에서 울다』의 저자 미셸 자우너(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리드보컬)의 ‘기억으로 이어지는 레시피’,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의 ‘사라져가는 아름다움, 생태적 감수성’ 등의 강연이 이어졌다.

이번 도서전에서는 ‘도서전의 오리지널 콘텐츠’ 두 권을 선보인다. 주제도서 『걸리버 유람기』와 앤솔로지 도서 리미티드 에디션 『후이늠 Houyhnhnm – 검은 인화지에 남긴 흰 그림자』가 그것이다. 그동안 비매품으로만 증정했던 한정판 기획도서 〈리미티드 에디션〉이 올해부터 일반 도서로 출간된다는 소식에 많은 독자들이 고양감을 감추지 못했다. 『후이늠 Houyhnhnm – 검은 인화지에 남긴 흰 그림자』에 수록된 글은 시인 김혜순·박형준·안희연·정호승·진은영의 시 15편과 소설가 강화길·구병모·이승우·임솔아·장강명·천운영·편혜영의 단편소설 7편이다. 2023 서울국제도서전 ‘여름의 드로잉’ 선정자 남서연·조윤서·하선우 작가의 일러스트 9점도 삽입되어 앤솔로지에 힘을 보탰다.

기자간담회. 김연수 작가

주제 세미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석하여 심도 있는 이야기 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미디어 아티스트 권병준과 사회학자 겸 시인 심보선의 ‘인문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AI시대의 예술’ 강연은 예술에 가치에 대해 사유하는 자리였다. 물리학자 김상욱과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가 참여하는 ‘세상을 뒤흔든 물리학의 세계: 『삼체』에 관하여’ 세미나에서는 SF 소설 속의 물리학과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짜 노동』의 공저자 데니스 뇌르마르크도 도서전을 찾아 테크놀로지의 출현과 ‘노동’에 대한 고찰을 나눴다.

주제전시 《후이늠 Houyhnhnm》은 세 가지 카테고리로 구성된 400권의 도서 큐레이션을 통해 각자의 ‘후이늠’을 사유할 수 있도록 기획된 전시였다. 관람객이 자신의 ‘후이늠’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후이늠’은 무엇일지 글과 그림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체험존도 전시장 한 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엠마』 『신부 이야기』 등의 순정 만화로 잘 알려진 인기 작가 모리 카오루의 첫 내한과 더불어 《신부 이야기 전시》도 5일간 상시 운영되었다. 도서전 셋째 날인 28일에는 도서전 현장에서 모리 카오루 작가의 라이브 드로잉쇼와 팬 사인회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다양한 가치를 겸비하고 있는 한국 도서를 발굴하고 국내외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BBK, Best Book of Korea’ 공모도 주관하고 있다. 올해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BBDK, Best Book Design in Korea’에 더해 ‘한국에서 가장 즐거운 책BBCK, Best Book for Children in Korea’,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BBPK, Best Book of Pleasure in Korea’, ‘한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책BBWK, Best Book of Wisdom in Korea’까지 4개 분야에 걸쳐 공모가 진행되었다. 선정된 도서 40권은 현장에서 특별 전시를 통해 독자들에게 소개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BBK) 전시

또한, 신간 도서를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여름, 첫 책’과 새로 태어난 리커버 도서를 만나볼 수 있는 ‘다시, 이 책’이 올해도 진행되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도서 20종은 도서전 현장에서만 구매할 수 있어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독자들의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몇몇 저자들은 북토크와 사인회 등의 이벤트를 통하여 독자들과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시장 한 편에 자리한 ‘책마을’ 전시 공간은 독립출판·아트북 출판사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금융 앱 ‘토스’, 국내 최대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 서재’ 등도 처음으로 도서전에 부스를 개최하여 기존의 플랫폼을 넘어서는 시도를 보였다.

토스 머니북스토어
밀리의 서재 밀리 독서 연구소

책과 저자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까지 경험할 수 있는 국제관도 관람객의 시선을 끌었다. 올해 도서전의 주빈국은 지난 2012년에도 주빈국으로 참여했던 사우디아라비아였다. 문화교류를 목적으로 개최된 사우디아라비아 도서 전시, 전통문화 체험 등의 부스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의 문화와 예술에 대해 깊이 사유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각각 한국 수교 50주년, 65주년을 맞이한 오만과 노르웨이는 도서전의 스포트라이트 컨트리로 참가했다. 오만관에서는 아랍 작가 최초로 2019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조카 알하르티와 대표 오만 작가들을 마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조카 알하르티는 주제 강연에서 은희경 소설가와 인간의 존엄과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노르웨이관에서는 한국어로 번역된 노르웨이 문학을 원서와 함께 살펴볼 수 있는 특별 전시를 운영하였다. 『이토록 멋진 곤충』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 등으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노르웨이의 생물학자 안네 스베르드루프-튀게손 작가도 도서전 현장을 찾아 곤충을 주제로 한 강연을 진행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외에 2025 서울국제도서전의 주빈국인 대만이 국제관 참가사로 도서전에 참여하여 눈길을 끌었다. 대만 출판사의 신간·수상 도서 300여 권 전시, 최신 대만 출판 시장 동향 설명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양국 출판인 교류의 장이 되었다.

다양한 구성의 프로그램을 통해 ‘후이늠’을 향한 여정을 떠났던 2024 서울국제도서전은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열렬한 지원 속에 막을 내렸다. 정부의 출판·독서 관련 예산 지원 축소라는 문제 상황에서도 성황리에 마무리된 것이다. 독립·소형 출판사들의 대형 출판사 못지않은 역량이 돋보이는 행사였다. 독자들은 책 속을 유영하며 자신만의 ‘후이늠’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2024 서울국제도서전은 ‘세상의 비참’을 줄이고 ‘미래의 행복’을 사유하자는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며,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문화의 이상향 ‘후이늠’ 자체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 《쿨투라》 2024년 7월호(통권 12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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