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예술의 혼魂과 hone을 담다 -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 조각가 문신
[미술관 탐방] 예술의 혼魂과 hone을 담다 -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 조각가 문신
  • 김명해(화가, 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3.02.0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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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미술관 전경 ©김명해
문신미술관 전경 ©김명해

경남 마산(현, 창원특례시) 무학산 자락 산복도로를 오르다 보면 마산박물관 뒤쪽 추산동 언덕에 오래전부터 자리한 미술관이 있다. 옛 마산시내와 고요한 남쪽바다 마산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문신미술관으로, 조각가 문신MoonShin(1922-1995)이 유년시절을 보낸 마산으로 돌아와 14년 세월에 걸쳐서 직접 건립하고 1994년 개관한 미술관이다. 미술관 개관 1년 후 타계하면서 ‘사랑하는 고향에 미술관을 바치고 싶다’는 작가의 유언에 따라 문신미술관은 시에 기증되어 2004년부터 시립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는 행정구역의 변경으로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으로 명칭이 바뀌어졌다.

문신은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온 대칭의 조형미를 조각으로 완성한 작가로, 한국적인 감수성과 현대성이 조화를 이룬 독창적인 작품을 기반으로 세계무대로 넓혔던 한국근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조각가이다.

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요약하면, 문신은 도쿄 일본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광복이후부터 한국에서 화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회화는 인상파, 표현주의, 입체주의 등 서구 사조를 흡수하여 다양한 양식과 기법을 실험하며 구상작업을 주로하다 1950년대 후반부터 회화는 점점 추상화 되어가는 경향을 보인다. 60년대 초 도불하여 본격적인 추상회화를 시작하게 되는데, 1967년 프랑스 라브넬 고성古城의 보수작업에 참여하면서 조각에 흥미를 느끼고 문신의 작업은 회화에서 조각으로의 조형적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제1전시관 전경 《MOONSHIN 1922-1995》
제1전시관 전경 《MOONSHIN 1922-1995》

1970년 남프랑스 바르카레스Port Barcares에서 열린 국제조각심포지엄에 13m 높이 나무 조각 〈태양의 인간〉을 출품하여 조각가로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그가 선보인 석고, 나무, 브론즈 조각은 프랑스 미술계로부터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1988년 서울올림픽 공원에 높이 25m의 대형 스테인리스 스틸의 기념비적인 조각 〈올림픽〉(1988)을 세우면서 많은 명성을 얻었다.

문신의 조각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생명체의 구상적 형상을 연상시키고, 다소 복잡해 보일수도 있지만 원과 선의 자연스러운 결합과 변화를 통하여 좌우균제symmetry1의 추상조각이 대표적이다. 중·소형작품은 주로 흑단과 주목 같은 나무와 돌이나 청동bronze 같은 단단한 재료를, 대형작품은 석고와 스테인리스 스틸과 같은 견고한 재료를 사용하여 표면을 끊임없이 갈고 닦는 과정을 반복하여 조각의 표면이 윤기 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인지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아! 여기가 문신미술관이구나!’하고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추상형상의 선재구성으로 디자인 된 대문과 넓은 야외 정원에 배치되어 있는 좌우대칭 조형물들, 야외전시 광장을 중심으로 전시관들을 둥글게 배치하고 마당을 모자이크양식으로 대리석을 배열하는 등 미술관 전체를 기하학적 구도와 곡선의 미로 일체감 있게 조성해 놓아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한다.

1984년 올림픽 ‘평화’ 석고원형 작업

문신의 작품과 예술혼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문신미술관은 제1전시관, 제2전시관, 야외조각전시장, 문신원형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선 제1전시관으로 발길을 옮겨 본다. 현재 제1전시관에서는 문신과 고향(마산 추산동)을 주제로 한 아카이브 《MOONSHIN 1922-1995》전이 진행 중이다. 전시실 1층에 전시되어 있는 중·소형 조각품 15점은 생명체의 좌우대칭을 응용하고 확대해서 청동으로 제작된 작품들로 “모든 생명체는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그의 말처럼 단순하면서 조화미와 균형미를 이루고 있다. 곤충, 물고기, 새 등을 연상시키는 문신의 조각은 자연계의 생명체를 빌려 표현한 것들로 작품들은 언제나 독립된 존재이자 추상적 형태이다.

특히 눈에 띄는 작품 〈개미〉(1989)는 볼륨 있는 두 개의 구와 작은 구 그리고 곡선과 직선을 활용하여 1968년 시메트리 구조의 작품을 처음 시작하게 된 작품으로, 그는 드로잉의 과정에서 우연한 발단으로 인해 형태에 계속 변화를 부여하게 되면서 기하학적인 형태에서 시작되어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유기적인 형태로 변하게 된다2.

문신, 개미, 청동, 1989, 127(h)x25x15cm
문신, 개미, 청동, 1989, 127(h)x25x15cm

전시장 맞은편, 입체조각품 사이에 전시된 드로잉 작품 〈Untitled〉(1978)은 대칭인 듯 비대칭인 평면구성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끌어들이며, 작가의 말은 유년기를 보낸 고향의 추억과 사랑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기반으로 탄생한 예술세계가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는 어릴 때 부모와는 한때 이별이었으나 고향에서 살 수 있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첫째는 그때의 나의 환경이 오늘에 이어주는 나의 예술의 길에 소양의 싹이 되었고, 둘째는 나에게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고향이 있었다는 것이 그간의 작가적 기반도 뒤로하면서 다시금 고향을 찾게 했던 것이다”

전시실 2층은 문신 작가가 고향인 이곳으로 영구 귀국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문신미술관을 직접 설계하고 건축한 과정을 담은 사진, 설계도면, 이미지를 스케치한 드로잉, 엽서와 친필원고 등의 기록물과 시집이 전시되어 있다. 건물의 형태부터 대문, 현판, 보도블럭, 연못의 옹벽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전체가 어우러진 미술관을 짓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 그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문신, 무제, 청동, 1981, 52(h)x36x11cm
문신, 무제, 청동, 1981, 52(h)x36x11cm

그는 스스로 노예처럼 일했다. 나무를 심고, 언덕을 깎아 연못을 만들고 공사 중에 나온 대형 자연석을 이용해 인공폭포를 만들었으며, 큰 돌을 쌓아 옹벽을 만들었다. 미술관 설계도를 직접 그렸으며, 어렵게 건축 허가를 받아 작품 하나가 팔리면 하나만큼, 둘이 팔리면 둘만큼, 공사는 한발 한발 진척되었다. 미술관 야외바닥 또한 작가가 직접 디자인하고 대리석을 일일이 잘라 손수 만들었다. 풀 한 포기, 돌 하나, 그의 손길이 안 거친 곳이 없는 문신미술관은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는 거대한 작품이며, 그가 평생을 바쳐 쓴 이력인 동시에 사랑하는 고향에 바친 선물이자 문신 예술의 결정체이다.
- 「미술관 소개」 중에서

제1전시관을 나와 다시 야외 조각 정원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겹겹이 쌓아 올린 옹벽과 작은 연못, 대리석 바닥, 벽화와 부조장식, 정원수들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이 공간과 어울리게 스테인리스 스틸과 청동재질로 이루어진 큰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특히 스테인리스는 그 특성 상 주변에 있는 사람, 건물, 하늘, 나무, 돌까지 거울처럼 흡수하여 비추고 반사시켜 주변 풍경에 따라 전혀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야외전시장을 뒤로하고 문신원형전시관으로 향했다. 원형전시관은 창원시에서 작가 문신의 또 다른 작품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2010년에 건립하고 개관한 전시관이다. 경사지에 지은 건물이라 3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구조로 되어있으며, 1층은 교육실, 2층은 전시실, 3층은 카페테리아를 겸한 아트샵이 있다.

문신원형미술관 2전시실. ©김명해
문신원형미술관 2전시실. ©김명해

2층 전시실은 현재 문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조각가의 혼》전이 열리고 있다. 미술관측은 문신 작품의 탄생 과정을 살펴보고 그 예술적 가치를 소개하고자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시는 문신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동음이의어인 ‘혼’과 ‘hone’3이라는 두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섹션인 ‘혼’이 원형전시실2에서 펼쳐지며, 문신의 작품구상에 있어서 드러나는 드로잉과 석고원형을 소개하고 있다. 드로잉은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고 있는 생물 형태의 이미지가 보이고 작가의 원초적이고 즉흥적인 자아의 세계가 엿보인다. 이러한 이미지 드로잉은 석고원형으로 다시 입체화하여 한 공간에서 나란히 마주하고 있어 필자는 드로잉 형태와 석고원형 형상의 비슷한 것을 찾아 연결고리 잇기를 해 보았다. 작가 문신의 석고원형은 작품의 원초이자 백white의 예술이자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예술의 한 분야이다.

두 번째 섹션인 ‘hone’은 원형전시실1에서 펼쳐진다.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작가가 실제 사용한 화구와 공구들을 소개하며 나무, 청동, 스테인리스, 석고 등 다양한 재료와 방식을 거침없이 활용해 완성하는 작품과정을 볼 수 있게 아틀리에를 재현해 놓았다. 열심히 톱질하고 용접하고 갈고 다듬는 문신작가의 사진과 다양한 종류의 도구들을 보고 있노라니, 창작을 위해 고군분투한 흔적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문신 자각상. ©김명해
문신원형미술관. ©김명해

이 예술가의 작품에서 나를 가장 감동시키는 것은 그의 위대한 독창성이다. 이 독창성은 기술적 세련, 영감의 자유, 전통의 존중 이 세 가지의 근본적인 질이 놀라울 만큼 잘 융합되어 이루어졌다.
- 자크 도파뉴4

문신은 우연함과 자유로움을 모방하지만 빈틈없이 계산된 형태를 표현한 충실하고도 독창적인 예술가다. “예술의 세계에는 제자도 스승도 없으며, 독창적인 작품만이 전부다”라는 그의 말처럼, 주제, 재료, 기법 등에 있어 어떠한 편견 없이 도전했던 문신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5 또한 그의 조각은 다루기 힘든 경질의 재료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기술의 정교함, 좌우균제의 절묘한 조화에서 오는 안정감, 간결하고 추상적이지만 작품 속에 느껴지는 생명성, 주변 자연을 작품화한 시적인 감성도 볼 수 있다.

1943년 일본 예술인촌인 유명정楰名町의 아틀리에에서 그린 〈자화상〉(복제유화)이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일본 유학 당시 서구 사조의 양식과 기법의 영향을 받아 실험적으로 그린 초기대표작으로, 왼손에 붓을 쥐고 꼿꼿한 자세로 화면 밖을 응시하는 눈빛에서 예술을 향한 강인하고 확고한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문신 자각상. ©김명해
문신 자각상. ©김명해

원형전시관 옆 문신작가의 생전 자택과 작업실이 유리문 너머로 보인다. 벽돌로 된 단층양옥이 소박해 보이고, 주변 야자나무와 동백나무가 따뜻한 남쪽동네를 대변하듯 이국적이다. “노예처럼 작업하고, 서민과 같이 생활하고, 신처럼 창조 한다”는 그의 말처럼 소박한 추산 동네에서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작업하고 고귀한 예술작품과 함께 멋진 미술관까지 남겨주신 문신작가님이 너무 감사하고 미술관을 둘러보는 내내 감동이다.

고요한 남쪽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참 따뜻하다. 마치 누군가의 마음처럼.

 


1 조각가 문신의 예술을 대표하는 미학개념이자 단순한 좌우 대칭의 형태를 넘어 균형, 조화, 관계, 단일성 등의 의미로 쓰이는 확대된 개념.
2 박효진, 「1965-1972년까지 문신추상조각의 전개와 구조분석」,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37집 2019 상반기』, 241면.
3 魂: 넋, 마음, 생각, 사물의 모양 / hone: 연마하다, 갈고닦음
4 자크 도파뉴, 「문신론」, 『MOONSHIN』, 현대화랑, 1979.
5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조각가의 혼 : Soul of Sculpture》 전시서문

참고자료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https://www.changwon.go.kr/depart/contents

이미지 제공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 《쿨투라》 2023년 2월호(통권 10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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