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남도의 풍취와 흥취에 취(醉)하다: 광주 의재미술관 & 의재 허백련
[미술관 탐방] 남도의 풍취와 흥취에 취(醉)하다: 광주 의재미술관 & 의재 허백련
  • 김명해(화가, 객원기자)
  • 승인 2024.01.3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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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진도 운림산방》편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에는 남종문인화의 맥을 잇고 있는 ‘호남 양대화맥’이 있다. 조선후기 남종화의 대가로 불리는 소치小癡 허련許鍊(1808-1893)의 손자이자 ‘신남화新南畵’라는 새로운 화풍을 일구어낸 남농南農 허건許楗 (1908-1987)과 남종화의 정신과 기법을 충실히 계승하여 자신의 세계로 심화시킨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1891-1977)이다. 두 화가는 호남의 자연 풍광과 한국 자연의 전형성을 수묵으로 화폭에 구현해 온 개척자이시다.

이번 탐방은 의재 허백련의 화업과 정신을 계승하고자 2001년에 건립된 ‘의재미술관’에 다녀왔다. 무등산 자락에 위치하여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의재미술관은 전날 내린 폭설로 무등산 설경 안에 안겨있었다. 미술관까지 연결된 도로는 있지만 길이 미끄러워서 눈 구경하면서 천천히 걸어서 올라갔다.

계곡 사이 눈 덮인 나무와 바위는 한 폭의 설경산수가 연상되고, 하얀 눈 이불 속에 숨어있는 잡초는 신기하게도 선명한 초록을 자랑하며 꿋꿋하게 앉아있다. 이리저리 눈 구경하며 무등산 등산로 옆 경사진 길을 따라 20분 정도 올라가니 허리를 구부린 둥치 큰 나무가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하듯 서 있고 은빛의 미술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미술관외관.

의재미술관은 대지 면적 1,824평, 건축면적 246평에 돌담으로 구성된 긴 기단 위에 세워진 세 개의 건물(전시동, 관리동, 삼애헌)이 직렬로 배치되어 주변의 풍경과 공존하는 크기로 조성되어 있다. 가장 왼편 건물이 지상2층과 지하1층으로 지어진 전시동으로 건축가 조성룡과 김종규가 공동으로 설계하여 노출 콘크리트와 목재, 유리로 마감한 현대식 건축물이다.

전시동은 산비탈에 세워진 건물인 만큼 아래쪽이 넓고 위쪽이 좁은 사다리꼴의 형태로 건축되어있어 각각의 넓이와 모양, 크기가 모두 다르다. ‘풍경 속 미술관’이라는 기본 컨셉과 경사진 지형적 요건을 그대로 살려 친환경화적 공법으로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전시장 내부 공간은 경사진 지면을 살려 바닥을 반 층씩 어긋난 높이로 설계된 ‘스킵 플로어skip floor’ 구조로 되어있고, 기획전시실, 상설전시실, 휴게실에서 다시 로비로 이어지는 관람 동선은 막힘없이 완만하게 연결되어 있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또한 전시관 입구부터 휴식공간까지 이어지는 여러 폭 병풍모양의 통유리를 통해 들어 온 자연광은 실내공간을 환하게 해 주며, 통유리 밖 무등산의 경치를 끌어들여 변화되는 계절을 언제나 감상할 수 있게 해 준다.

미술관로비.

현재 1층과 지하 1층의 기획전시실에는 의재의 제자인 인재 박소영의 《꽃과 새 이야기전》과 한중일 차문화와 디자인 개념을 기반으로 기획된 《물빛 담은 소리전》이 각각 진행중이다. 기획전시실에서 반투명 경사로를 오솔길을 걷듯 통과하면 의재의 대표작을 상시 관람할 수 있는 상설전시실이 있다. 다양한 작품이 번갈아 전시되는 이곳에서는 그의 시기별 화풍의 특징과 함께 담담하면서도 운치 있는 작품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의재는 진도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집안 어른인 소치 허련의 아들 미산 허형(1862-1938)으로부터 묵화의 기초를 배웠다. 또한 그 무렵 진도에 유배와 있던 무정정만조(1858-1936)로 부터 한학과 시문, 글씨를 수련하였는데, ‘의재’라는 호 또한 스승인 정만조가 지어준 것이다. 어려서부터 손에서 놓지 않았던 동양의 경전과 시문들은 평생 그의 삶을 이끌어준 좌표와도 같았다.

191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서 법학을 공부하려다 그림으로 방향을 바꾼 의재는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위해 일본 남화의 거장 고무로 스이운小室翠雲(1874-1945) 문하에서 남종화의 정신과 기법을 수련하고, 귀국 후 같은 세대의 신예들이 모두 서울을 중심으로 근대적 작풍을 추구한 것과는 달리, 그는 오로지 옛법에 충실한 화격畫格을 자신의 세계로 심화시키는 방향을 고수하였다.

의재작 <산수십곡병풍> 종이에 수묵담채, 1958년.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품이다. 본래 화품畫品이란 것은 기교가 있은 뒤에 그 기교를 초탈한 자유의 경지에서 나오는 법이다. 따라서 선인 대가大家들의 전통과 기교를 배우고 난 뒤라야 형상을 벗어난 영원한 생명의 자기예술이 가능한 것이다.”1

남종문인화에 뜻을 두었고 이를 한평생 신념처럼 지켰던 의재는 남종화의 정신과 기법을 충실히 계승하여 자신의 세계로 심화시켰다. 그의 남종화는 단순히 그림의 한 유파를 따른 것이라기보다 한시와 고전, 서법書法을 아우르는 그의 삶이자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산수를 좋아하였고, 다른 어느 화목보다 산수화에서 자기화된 변모를 잘 보여준다. 중국과 우리나라 역대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그들의 장점을 취하려고 하였고, 유난히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를 보고 깨친 바가 있어 시간만 나면 전라도의 산천을 찾아 풍경을 가슴에 담고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하였다. 그러면서 그림의 의미를 풍경의 재현에 두기보다는 이상화된 산수를 화폭에 풀어내는 전통적인 남종문인화를 고수하였다.

“개성은 어디까지나 전통 위에서 꽃피워야 하며, 처음부터 자기 독단의 개성은 생명이 길지 못하다. 전통은 철저하게 갈고 닦으면 자연 자기 것이 생기게 된다.”2

제1전시실.

의재의 작품은 ‘의재毅齋’, ‘의재산인毅齋散人’, ‘의도인毅道人’이라는 세 가지 관지款識에 따라 점차 무르익어갔다. ‘의재’라는 호를 쓰던 시기는 40대 중반까지로 남종화풍을 익히고 사생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남종화의 다양한 화풍을 시도하는 등 자신의 회화세계를 형성해가던 시기이다. 이 시기 작품은 대체로 중국의 대가나 화보를 모방한 형식주의적인 작품경향을 보인다.

‘의재산인’이라는 호를 주로 썼던 40대 중반에서부터 50대 말까지는 이전 시기의 다양한 시도를 종합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확립해 나갔다. 이 시기 작품 중에는 구도가 다양하고 필법의 변화를 살려 사계절의 풍광을 그린 작품이 많다. 역대 명가들의 화법을 두루 응용한 이상화된 산수화임에도 필치는 개성이 있고 경물은 남도지방 산야의 이미지가 결합되어 친근한 느낌을 준다.

1951년 60세 회갑을 맞을 무렵 ‘의도인’이라는 아호를 쓰기 시작하면서 원숙한 화풍의 진면목을 보여 주었다. 초기에 전통을 충분히 익힌 다음 자신의 화풍을 시도하였고, 전통적인 선비화가들이 지녔던 것처럼 그림에 대한 풍부한 안목과 학문적 교양을 바탕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를 이룩하였다. 자연에 은거하여 다향茶香에 심취하고 도인처럼 살았던 그의 삶이 그림에도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시실에 전시된 작품 〈산수십곡병풍山水十曲屛風〉(1958년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안정된 화면과 맑고 옅은 색채가 조화롭고 막힘없는 필치에 묻어나는 시 구절이 작품의 운치를 준다.

雪後寒林梅已花 눈 내린 차가운 숲에 매화 이미 피었는데
西風吹起雁行斜 갈바람 불어오니 기러기 떼 비껴 나네
溪山寂寂無人迹 계산은 쓸쓸하고 사람자취 없는데도
好問林逋處士家 임포 처사 살던 곳 잘도 물어 보는구나3

의재작 <기명추실> 종이에 수묵담채, 연도미상.

65년 전 겨울날, 지금의 미술관이 위치한 무등산 계곡의 분위기를 그대로 그림과 글로 옮겨놓아서인지 현재의 분위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또한 의재는 사군자, 화조화, 영모화에서도 자신만의 격조 있는 세계를 구축하였다. 다양한 화목畵目에서 각 소재가 갖는 상징성을 살리면서도 운치 있고 담담한 품격을 보여준다. 전시되어 있는 수묵정물화 〈기명추실器皿秋實〉(연도미상)은 바구니 가득 담긴 포도를 중심으로 배와 무, 빨갛게 잘 익은 홍시 같은 가을 과일과 국화까지 간결한 필치로 그린 맑고 담백한 작품이다.

고전과 시문도 밝은 그는 자신의 그림에 대부분 화제와 제시를 썼으며 시서화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시와 서예, 회화는 서로 구분이 될 수 없는 하나이고, 그 진정성은 격조 높은 정신과 올바른 삶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문인의 이상이다” 라고 자신의 글에서 밝혔듯이 그의 글씨는 필획筆劃이 졸박拙朴하며, 장법章의 조응이 유려流麗하여 전체와 부분 간의 조화가 뛰어나다고 평하고 있다. 또한 화가 이전에 문인으로서 흉중에 내재된 그의 고매한 인격과 예술혼을 글씨를 통해 느낄 수 있다.

활달하면서도 힘찬 필묵과 깊고도 맑은 동양사상, 부드러운 남도의 풍취와 시적인 흥취를 지닌 의재의 작품들은 문인이 지녀야 할 삶의 태도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으며, 우리민족이 간직해야 할 건강한 정서도 함께 표출하고 있다.

제2전시실.

미술관을 나오면 바로 앞에 위치한 삼애헌과 관리동이 있다. 삼애헌은 산장과 같은 느낌을 주는 통방으로, 이곳은 예전에 있었던 농업학교 건물을 수리하여 만든 ‘차 마시는 공간’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미술관 주변은 의재가 기거하셨던 춘설헌과 관풍대, 농업학교 축사였던 문향정, 의재의 묘소, 차밭과 차공장 등 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쉼터들로 가득하다.

춘설헌 앞 돌다리를 건너 바람이 아닌 풍진을 바라보았던 관풍대에 올라 무등산 설경을 바라보고, 고고하게 줄서 있는 차밭고랑을 보면서 의재의 행적을 따라 걸어본다. 의재는 그림을 그리기 전 춘설차를 뜨겁게 끓여 마심으로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매일 차와 함께 먼지 낀 정신을 씻어 내려 깨끗한 붓끝으로 좋은 그림을 그리고자 노력했다. 또 다도를 선에 비교하면서 “차를 마실 때의 마음은 선을 할 때와 같고 차는 그저 고요하고 엄숙한 마음, 골똘히 수도하는 마음, 선을 하는 자세로 음미해야지 맛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추사 김정희, 소치 허련 등의 옛 문인들을 통해 이어받은 남종화의 전통, 오랜 여행에서 얻은 폭 넒은 견문과 두루 익힌 동양의 고전들을 바탕으로 남종문인화의 마지막 대가로의 삶을 살다간 의재 허백련의 행적을 따라 걸어본 설경 속 무등산 자락은 겨울이지만 포근하고 평온한 기운이 감돌고, 찻잎 향은 깊고 정겨움 가득하다.

 


1 의재 허백련의 『어록語錄』 중에서
2 의재 허백련의 『어록語錄』 중에서
3 의재 허백련 〈산수십곡병풍〉 중에서 제1폭 작품설명


 

참고자료
의재미술관 http://www.uijae.org/
의재미술관 안내 책자

 

 

* 《쿨투라》 2024년 2월호(통권 11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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