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Theme] K-컬처를 은은하게 감싸안고 있는 문학
[10월 Theme] K-컬처를 은은하게 감싸안고 있는 문학
  • 유성호(본지 주간, 문학평론가, 한양대 인문대학장)
  • 승인 2022.10.05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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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예술의 최전선

《쿨투라》 100호 출간은 그 자체로 기적이자 은총이다. 그 과정을 처음부터 함께해온 이로서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계간에서 시작하여 월간으로 바꾸어 100호까지 16년 반이 걸린 이 문화예술 저널은, 지금처럼 K-컬처니 K-콘텐츠니 하는 흐름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을 때 태동한 ‘씨앗 뿌리기’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영화를 비롯한 수많은 장르들이 세계적 평가를 크고 다양하고 빈번하게 받고 있으니 《쿨투라》가 자연스러운 활황을 누리는 것 같지만, 저 16년 전을 되돌아보면 척박하기만 했던 토양에 발행인 손정순 대표가 뿌린 씨앗의 소중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쿨투라》는 한국 문화예술계의 현황을 소개하고 진단하고 해석하는 기능을 넘어, 세계 문화예술의 움직임까지 번역하여 소개하는 최전선에 다다랐다. 규모가 크지 않은 출판사에서 많은 사진이나 화보 등을 감당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도 손 대표는 그 어려운 일을 단 한번의 결호 없이 수행해왔다. 그리고 천천히 한국 문화예술의 선두주자로 그 위상을 키워갔고, 이제는 누구나 인정하는 고高퀄리티의 월간지를 세상에 내놓고 있다. 마음 깊이 축하하고 그 결실을 함께 지켜 가리라 다짐해본다.

《쿨투라》와 문학

《쿨투라》의 인적 구성은 초기부터 문학, 영화, 가요, 연극, 미술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다양하게 참여했지만, 그래도 문학이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베이스가 되어주었다. 여기에는 손 대표가 문학을 전공한 시인이었던 까닭도 한 몫 했을 것이고, 다양한 문화 장르에 그때까지는 문학이 중요한 원천이 되어주던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도서출판 작가’가 2002년부터 정성 들여 간행해온 『오늘의 시』, 『오늘의 소설』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몇 해 지난 후 2006년부터 『오늘의 영화』까지 갖추면서 이 시리즈는 마치 지금의 《쿨투라》를 예고하기라도 하듯 우리 문화예술계의 현황과 성취를 축도縮圖처럼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오늘의 시』와 『오늘의 소설』은 동료들의 추천을 통해 그해의 우수작을 게재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은 한 작품을 뽑아 시상하는 제도적 장치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오늘의 시』에서는 김민정, 김신용, 나희덕, 문태준, 박형준, 송재학, 송찬호, 신경림, 신철규, 심보선, 안도현, 안희연, 유계영, 유홍준, 이원, 진은영, 허연 시인 등이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그야말로 한국 시의 어떤 성좌가 그대로 옮겨진 형국이었다. 세대로 보나 경향으로 보나 다양하게 포진된 통합의 결실이었다. 여기서 뽑힌 작품이 그대로 시집 제목이 된 경우가 많았고, 몇몇 시인의 경우는 『오늘의 시』 선정이 자신들의 정점으로 향하는 디딤돌이 되기도 했다. 『오늘의 소설』에서는 공선옥, 김애란, 김연수, 박완서, 박형서, 윤이형, 은희경, 이장욱, 정지아, 조해진, 김초엽 등이 한국 소설문학의 현재적 징후와 성과를 높은 수준에서 보여주었다. 이곳을 통과하여 한국소설의 맹장들이 더욱 큰 활약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시인 김지하, 나태주, 도종환, 소설가 김훈, 김영하, 한강, 정유정, 박상영, 이민진 등을 《쿨투라》는 크게 주목하고 조명한 바 있다. 그럼으로써 한국문학의 극점과 심층을 분석하고 제시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박완서, 김지하 선생이 돌아가셔서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해주기도 하였다. 지나가는 말이지만, 필자는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연재를 통해 조용필의 노래를 문학의 관점에서 읽어보기도 했다. 그의 삶과 노래를 통시적으로 엮어가는 평전 흐름보다는 그때그때의 키워드나 테마를 충족하는 노래들을 묶어 조용필의 주류 미학을 탐색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많은 작품을 인용하여 그 노랫말이 주는 의미를 조용필 개인사 문맥은 물론 시대적 맥락에 비추어 분석해보았는데, 그 결과 조용필이 대중예술이 기울어가기 쉬운 통속성이나 하향평준화의 가능성을 자신과 철저하게 분리하면서 노래가 가닿을 수 있는 존재론적, 의미론적 권역을 정점에서 이룩해낸 ‘가왕’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맙고 보람 있는 일이었다.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과 《쿨투라》

이제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의 일원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한국문학은 세계 도서시장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우리가 공들여 번역하고, 우리가 그쪽 출판사와 접촉하여 겨우 몇 권 시범적으로 출간하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나 지금은 해외 에이전시들이 앞다투어 한국문학을 자기 쪽 출판사에서 내려고 적극적이다. 너무나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와 문학 교류에 정부와 민간 모두가 전력을 기울여온 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현재 한국문학은 번역과 해외 출판, 세계문학과의 교류, 차세대 번역가 양성 활동을 통해 세계문학의 일원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고, 세계인으로부터 ‘K-문학’ 혹은 ‘문학 한류’로 주목받으면서 인류의 문화자산을 풍요롭게 할 것으로 큰 기대를 받고 있다. 그 결과 한국문학은 어느 때보다 확장 가능성으로 충일하고 세계문학으로서의 기초를 확실히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그동안 자주 쓰던 ‘세계화’라는 말은 한국문학을 바깥에서 알아달라고 호소하던 시대의 수동적 술어이다. 이제는 ‘세계화’보다는 세계문학, 출판시장의 당당한 일원으로 그 위상과 가능성을 ‘세계문학으로서 한국문학’이라는 개념으로 귀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걸음은 세계인이 함께 읽는 한국문학으로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이 과연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역량 있는 한국문학 생산을 강화하는 한편, 양질의 번역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지원도 절실하게 요청된다. 이제 《쿨투라》는 이러한 세계적 흐름과 함께하면서 새로운 문화예술 환경을 반영해가야 한다. 가령 ‘남과 북의 문학’, ‘한국 디아스포라 문학’, ‘다문화 환경의 문학’ 등을 메타적, 실물적으로 담아내면서 『오늘의 시』, 『오늘의 소설』을 더욱 광정해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한류문화 차원에서 한국어 콘텐츠를 개발하고 신장시키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첩경이 되어줄 것이다.

다시 《쿨투라》와 문학을 위하여

문학은 한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궁극적인 대상으로 다룸으로써 이를 접하고 누리는 이들로 하여금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게끔 하는 문화예술의 한 영역이다. 그 점에서 아무리 영상 매체가 주도적인 예술로 자리 잡아간다고 해도 문학을 통해 경험과 생각을 계발해가는 과정은 전혀 손상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문학은 인간이 깊이 생각하고 사물을 인식하는 데 더없이 필요하며, 언어를 통해 감동과 사상을 키우는 데 변함없는 중심 역할을 할 것이다. 특별히 국가가 문학 창작과 번역과 연구와 향유의 저변 확대와 내실화를 위해 나서준다면 개인 차원의 일로만 여겨졌던 문학의 순환 회로는 더욱 탄탄하고 견고한 공공적 구조를 가질 것이다.

2010년대 들어 한강, 김영하, 편혜영, 김혜순, 김이듬, 윤고은 등이 해외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한 후 한류의 원천 콘텐츠이자 핵심으로서 가지는 문학의 역할은 더욱 새로운 주목과 기대를 받고 있다. 국가가 설계하고 집행하는 K-문학의 보급 확산 과정이나, 민간이 주도해가는 한국 문화예술의 가치 확산 과정이 잘 결합하여 더 넓은 지평으로 나아가기를 소마해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학은 K-컬처를 은은하게 감싸안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고, 바로 그곳에 《쿨투라》의 100호 이후 여정이 환하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유성호 1964년 경기 여주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으로 등단하여 한국 문단의 주요한 비평가로 활동해왔다. 저서로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침묵의 파문』 『정격과 역진의 정형 미학』 등이 있다. 대중서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 본지 주간으로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다.

 

* 《쿨투라》 2022년 10월호(통권 10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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