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조각조각 모아 맞춘 우리들의 꿈
[꿈] 조각조각 모아 맞춘 우리들의 꿈
  • 배혜은(북경대학교 예술학과 문화산업/예술경영 전공 박사 과정생)
  • 승인 2022.12.30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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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마당에 설치된 6m 높이의 아이웨이웨이 설치작품 〈나무〉.
중국 남부 산악지대에서 수집한 죽은 나무 가지와 뿌리, 그루터기 등을 조합한 작품이다.

2014년,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묵직한 나무들은 중국 현대미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 Ai Weiwei(1957- )가 삼성미술관 리움에 전시했던 설치미술이다. 거대한 〈나무〉(2009-2010)는 중국 남부 산악지대에서 수집한 은행나무·녹나무·삼나무 등 큰 고목들을 톱으로 자르거나, 죽은 가지를 짜맞추어 새로운 형태로 탄생되었고, 그 작품의 뿌리는 흙이 아닌 미술관 바닥에 뿌리를 맞대고 있었다. 하늘로 뻗어나가는 나뭇가지는 작품의 웅장함을 더했지만, 나무의 뿌리는 차가운 미술관의 타일과 친근하게 어우러지는 것 같진 않았다. 마치 아이스링크의 빙판과 스케이트가 날 때문에 서로 닿지 못하는 모습이 연상되었는데, 그래도 〈나무〉가 주는 웅장함이 관람객의 마음에 뿌리를 내린 것은 틀림없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웨이웨이의 〈나무〉 시리즈 중 2015년도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아이웨이웨이: 인간미래》(2021.12. - 2022. 4.) 전시회의 일환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6여 년 전, 웅장함으로 다가왔던 거대한 나무의 기억이 다시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미술관 앞마당에서 마주한 6m 높이의 〈나무〉(2015)는 리움미술관에서보다 안온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것 같았다. 몇몇 관람객은 “저기에 원래 나무가 있었나?”라며 미술관 내부로 곧장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작품 설명서가 너무 작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환경적인 맥락에 〈나무〉가 자연스레 녹아들었기 때문일까? 〈나무〉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거슬러 해당 작품 앞에 도착했다.

멀리서보면 하나의 통으로 된 거대한 나무 같지만, 가까이서 들여다 보니 조각조각 깨진 가지와 줄기, 그루터기가 못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무는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비유하며, 한편으로는 유일성과 단합을 요구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기능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아이웨이웨이는 각기 다른 부분을 퍼즐처럼 조합해 새로운 생명을 지니게 하는 ‘예술의 힘’을 이야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시리즈 작품이 담긴 다른 공간. 색색의 천을 이어붙여 조각보를 만들듯이 아이웨이웨이는 원래 하나였다가 분절된 나무 조각들을 다시 모아 자신의 ‘꿈’을 담은 나무를 세웠고,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도 연결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렇게 함께 미래로 나아가자고 말이다.

‘예술의 힘’은 격리 일상을 보내는 동안 든든한 지지가 되어주었다. 10월 말에 중국 땅을 밟은 후, 이리저리 장소를 옮겨다니며 ‘격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50일 중에 40일이라는 시간을 방 안에서만 보낸 신세가 되었다. 전 세계가 잠시 멈추었던 문화예술 축제를 온라인으로 전환하거나 다시 현장으로 돌려놓았고, 그 자리는 사람들의 웃음으로 가득 찼다. 이러한 추세와 사뭇 반대되는 중국의 강력한 코로나 정책은 격리인人들을 위축되게 만들었지만, 캐리어에 넣어온 《쿨투라》 몇 권, 그리고 미술관 큐레이팅 도서를 펼쳐놓고 그냥 이 공간을 나의 미술관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미술작품을 현장에서 두 눈으로 즐길 수는 없어도, 구글의 아트앤컬처Google Arts & Culture를 통해 세계 각지의 미술관과 작품들을 둘러보고, 책을 펼쳐 활자화된 큐레이터의 설명과 그림에 빠져드는 것으로 문화생활에 대한 갈증을 달랬다. 한국에서 미처 다 방문하지 못하고 떠나온 전시회나 공연에 대한 소식은 《쿨투라》 잡지를 통해 그 누군가의 시선으로 새로이 받아들였다. 비록 간접체험이라고 해도 다양한 사람의 관점과 글을 통해 예술가가 작품에 불어넣었을 메시지와 영혼이 나에게 전달되길 바라면서.

아이웨이웨이가 중국의 이곳저곳에서 베어내고 수집한 나무의 부분들은 원래 나무에서는 분리되어 나왔지만 예술가의 손과 의해 새로운 퍼즐처럼 완성되었다. 나무의 각 부분처럼 개인의 작은 꿈이 모여 예술에 반영된다면 우리는 혼자 떨어져 있어도 예술이라는 끈으로 느슨하지만 단단히 묶일 수 있을 것이다. 생활이 무미건조하다고 느껴질 때는 다른 이가 표현해낸 작품을 보고 그 사람의 시선에 기대어 살아보아도 좋다. 그것이 예술의 힘일 테니까.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무엇이 예술인가』에서 예술을 ‘깨어있는 꿈’이라고 정의했다. 꿈은 모든 사람이 모든 곳에서 경험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예술의 보편성을 설명하고 싶어한다고 말이다. ‘깨어있는 꿈’은 잠이 들었을 때 꾸는 꿈과는 달리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 즉, 혼자만을 위한 일회적인 꿈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꾸는 ‘우리의 꿈’이 되는 것이다. 비록 생활 반경은 제한되어 있어도 상상력을 가득 담아 펜을 들어 글을 적어내려 간다면, 나 역시도 ‘깨어있는 꿈’에 동참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쿨투라Cultura는 그렇게 같은 꿈을 꾸는 공동체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배혜은 북경대학교 예술학과 문화산업/예술경영 전공 박사 과정생,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중국 코디네이터, 『올라 빠드레』 저자

 


* 《쿨투라》 2023년 1월호(통권 10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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