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믿음, 그 쓸쓸함에 대하여: 〈쌍갑포차〉, 〈구해줘〉
[드라마 월평] 믿음, 그 쓸쓸함에 대하여: 〈쌍갑포차〉, 〈구해줘〉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0.09.2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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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다양한 얼굴, 〈종교인〉
ⓒJTBC

  소문을 듣고 보기 시작한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은 서사예술로서 작품성을 논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지만 “허기보다 마음을 채우는 요리 이야기”라는 호평답게 한 편 보고 나면 마음이 따듯해졌다. 그냥 드라마를 봤을 뿐인데 뭔가 위로를 받은 느낌, 그래서 내일 하루는 다시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괜히 배가 두둑하다랄까. 종교가 뭐 따로 있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인생이 살 만하다고 느끼게 만들면 그게 다 종교지.

 

  무엇이든 부탁하세요

  일본에 <심야식당>이 있다면 한국에는 <쌍갑포차>(2020)가 있다. <심야식당>의 마스터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말없이 요리해줌으로써 잔잔한 위로를 건넨다. 하지만 <쌍갑포차>의 월주는 욕쟁이 할머니와 같은 입담과 거침없는 행동으로 한을 풀어줄 사람을 직접 찾아 나선다. 심야식당이 ‘심야 0시부터 아침 7시까지만 영업하는 식당’으로 신주쿠 뒷골목에 위치해 있다면 쌍갑포차는 사람을 찾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게릴라 식당이다. 찾아가는 서비스. 심야식당계의 로켓배송 버전이 바로 쌍갑포차다. 쌍갑포차의 월주는 한 많은 사람의 꿈에 직접 들어가 문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모종의 행동을 감행한다. 난임부부를 위해 태몽 구슬을 훔치려고 삼신의 집에 잠입하기도 하고, 엄마가 죽고 혼자 남은 딸을 위해 오랜 세월 딸을 잊고 지낸 아버지의 꿈에 들어가 그의 옛 기억을 끌어올려 딸을 만나러 오게 만들기도 한다. 이 얼마나 화끈하고 실천적인가. 글이 안써질 때마다 당장 내 꿈에 들어가 나 대신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밀크티와 같은 심야식당식 위로를 기대했다면 쌍갑포차가 보여주는 톡 쏘는 시원한 사이다의 맛은 조금 거칠고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배달의 민족’답게 주문 즉시 빠르게 한풀이해준다고 생각하면 꽤 매혹적이다.
 

ⓒJTBC

  위로와 깨달음 사이

  그런데 월주는 왜 그렇게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려고한 걸까. <심야식당>의 마스터와 다르게, <쌍갑포차>에서는 월주 스토리가 한 축을 차지한다. 자기 대신 억울하게 죽은 무속인 엄마 때문에 월주는 세상을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신목에 목을 매고 죽는다. 그런데 그 신목이 불에 타버리는 바람에 나라의 기가 약해져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아 십만 명의 무고한 백성들이 죽는다. 그 탓에 월주는 십 만이란 숫자만큼 이승에 내려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한을 풀어주어야 하는 벌을 받는다. 월주의 전사(前史)는 <쌍갑포차>에서 ‘그승’이라는 공간의 토대가 된다. 이승도, 저승도 아닌 꿈속 세계 ‘그승’은 사람들의 한풀이를 해주는 무대로 죽음과 삶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 중재하는 신화적 공간이다. 왠지 모르게 생경해 보이는 이곳은 사실 우리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곳이다. <호텔 델루나>(2019)의 ‘호텔델루나’와 <도깨비>(2016)의 ‘찻집’도 내부 인테리어와 주인장만 다를 뿐 이승과 저승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그승’의 자매품이다.드라마에서 중음계는 이승과 저승의 중간계로서 이승에서의 삶을 잘 마무리하고 평화로운 죽음으로 넘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공간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죽은 사람들을 위한 한풀이 장소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결국엔 산 사람들에게 잘 살아가기 위한 교훈을 주기 위한 곳이 바로 중음계다. 죽었다고 해서 모든 게 다 끝나는 건 아니야! 살아 있을 때 잘 살아야 해! ‘권선징악’이라는 틀 안에서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종교가 죽음을 통해 삶을 묵상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 역시 절대 우연이 아니다 . 곰곰이 생각해보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도 사회변혁을 부르짖는 개혁자였다. 초심을 잃은 성전에 들어가 판을 뒤엎고 사회 비판적인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그는 사랑을 설파한 로맨티스트였지만 그가 꿈꾸는 ‘늑대와 새끼 양이 함께 풀을 뜯는’ 평등한 세상은 사랑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모름지기 종교인이란 따뜻한 위로와 함께 참된 깨달음을 주는 존재다. 욕쟁이 할머니 월주가 괜히 “우리는모두 갑, 그리하여 ‘쌍갑’”이라고 외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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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와 꼰대 사이

  안타깝게도 최근 들어 드라마 속 종교인이 이상한 방식으로 깨달음을 주고 있다. 선한 영향력이 아니라 절대로 닮아서는 안 되는 반면교사로 그로데스크하게 등장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개독교’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린 지도 꽤 오래되었지만, 그래서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끔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이보다 모욕적인 적이 있었던가 싶다. <아무도 모른다>(2020)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삼는다. 그런데, 드라마 초반에 연쇄살인범의 정체가 공개된다. 바로 목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목사라는 호칭을 악용하는 사이비 교주가 아니라 정식 교회와 교단에 소속된 목사. 드라마를 보는 내내 궁금했다. 작가는 왜 연쇄살인범 서성원을 목사로 설정했을까. 왜 그의 범행을 은폐하는 데 동원된 그의 아버지는 평범한 교회의 목사로 등장했을까. 극중 서상원은 자신만의 믿음에 사로잡혀 사람들을 연쇄 살인한다. 여타 연쇄살인범들이 자신의 쾌락과 희열을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과 달리, 그는 세상을 구원한다는 신념으로 자부심 넘치게 그 일을 실행에 옮긴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흉내 내듯 피해자의 손과 발에 못을 박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향해 간절히 기도드린다. 그에게 살인은 성스러운 종교의식이다. 그러므로 그는 늘 당당하며 다른 사람의 말을 절대 듣지 않는다. 설사 듣는다고 해도 아전인수 격으로 곡해해 자기식으로 받아들인다. 전형적인 ‘꼰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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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비 교주와 나쁜 어른 사이

  우리가 미처 몰랐을 뿐이지 드라마에서 종교인이 ‘꼰대’처럼 묘사된 사례는 드물지 않다. 꼰대 중에 최고의 꼰대, 그게 바로 사이비 교주다. 눈과 귀를 모두 닫고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버린 사람. 그래서 다른 사람까지도 그 세계 안에 갇히길 종용하는 사람. 신은 자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들고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살게 했다. 그리고 인간은 나쁜 어른을 닮은 사이비 교주를 창조해 드라마 세계에 내보냈다. 자기 말만 주야장천 하는 사람들. 꼰대를 형상화하는 데 있어 이보다 좋은 캐릭터는 없지 않은가. 어른들의 잔소리는 설교보다 길면 길었지 절대 짧지 않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이비 교주는 대체로 나쁜 부모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강요하는 나쁜 어른들. <인간수업>(2020)에서 규리에게 후계자 수업을 강요하는 강압적인 엘리트 부모의 모습은 <아무도 모른다>에서 구원의 이름으로 양아들 백상호를 학대한 사이비 목사 서상원, <하이에나>(2020)에서 자기 맘에 안 든다고 딸을 협박, 감금, 폭행하는 사이비 교주 엄마, 그리고 <구해줘> 시즌1(2017)에서 상미를 시설에 감금한 채 순종과 믿음을 강요하는 영적인 아버지 ‘영부님’과 놀랍게도 닮았다 . 나쁜 부모, 나쁜 어른, 그리고 나쁜 꼰대의 극단에는 종교인이 있다. 나를 믿으라. 나를 따르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오랜 시간 누적된 결과로서 캐릭터의 전형성이 구축되는데, 왠지 모르게 종교인과 나쁜 꼰대의 공감대가 견고해지는 느낌이라 두렵기만 하다. 언제 이렇게 사랑과 관용의 종교가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교만과 불통의 아이콘이 되었을까. 혹시 오해가 있을까 봐 밝혀두지만, 종교 지도자가 반드시 나쁜 꼰대인 것은 아니다. <열혈사제>(2019)의 ‘김해일 신부님’은 아직도 내 맘속에 ‘최애’ 캐릭터로 남아 있다. <나의 아저씨>(2018) 속 출가 스님 ‘겸덕’도 탄탄대로의 앞날이 보장되어 있지만 속세를 등지고 도를 닦는 모습을 통해 청빈한 종교인의 삶을 보여준다. 음음, 또 누가 있더라. 잘 생각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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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쿨투라》 2020년 9월호(통권 7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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