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월 5,900원의 드라마틱한 행복: 〈술꾼도시여자들〉
[드라마 월평] 월 5,900원의 드라마틱한 행복: 〈술꾼도시여자들〉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2.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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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초반 〈행복주식회사〉이란 타이틀의 TV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스타 연예인이 출연하여 ‘만원’으로 일주일 동안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관찰 예능인데, 정해진 예산 안에서 식비는 물론이고 차비까지 지출하는 고난도 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도전 마지막 날 평소 고맙게 생각한 지인에게 천원으로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는 것이었다. 당시 신라면 한 봉지 가격이 550원. 고마움을 표하기에 천 원은 참으로 적은 금액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받는 사람에게 더욱 뜻깊은 이벤트로 기억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한땀 한땀 연필로 눌러쓴 손편지의 느낌이랄까. 

  만약 내가 〈행복주식회사〉 2022년 버전의 주인공이 된다면 나만의 독창적 레시피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요리똥손인 나의 특수성과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시대의 보편성을 고려한 나만의 ‘집밥’, 바로 티빙 계정 공유다. 한 달 구독료 5,900원 중 천 원어치면 어림잡아 5일쯤 되지 않을까. 그 기간에 12부작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술꾼도시여자들〉을 정성껏 ‘대접’할 생각이다.

  랜선으로 정성껏 준비한 나만의 12첩 반상이랄까. 약간 술상 느낌이 나긴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반주로 ‘미지근한 소주’ 한 잔 콜? 기묘한 맛의 안주로는 또 다른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마녀식당으로 오세요〉도 준비되어 있다. 

ⓒ티빙 페이스북
ⓒ티빙 페이스북

  님아, 티빙을 구독하오

  2021년은 〈오징어 게임〉을 필두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많은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그 가운데 소소하게 입소문을 타며 한국 토종 OTT의 존재감을 널리 알린 드라마들이 있다.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이왕 이렇게 된 거 청와대로 간다〉와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술꾼도시여자들〉. 그중 2021년 한국문화 콘텐츠의 성과를 기념하는 〈쿨투라 어워즈〉에 발맞춰 내가 고이 모셔온 작품은 제목부터 축하 샴페인처럼 찬란한 〈술꾼도시여자들〉이다. 

  지난겨울 티빙은 2021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을 장르별로 발표했다. 2020년 12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인데, 드라마 부문 선정작이 〈술꾼도시여자들〉이다. 역대 티빙 유료가입 기여 최고 수치를 기록하였다고 하니, 사실상 티빙 론칭 이후 최고의 인기작이자 대표작이다. 와우. 콩그레추레이션!

  〈술꾼도시여자들〉은 지난 10월 22일 첫 공개된 이후 매회 업로드될 때마다 관심을 끌다가 중반부를 넘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이슈몰이를 했다. OTT 오리지널 시리즈답게 각종 SNS를 통해 입소문이 팍팍 나면서 재미있는 클립 영상이 온라인에서 공유되었다. 수천수만 개의 공감 댓글들은 당연지사. 드라마가 종영된 지금까지 여전히 식지 않은 인기를 구사하는 중인데, 현재 시즌 2 제작을 공식화했다. 2022년 티빙 최고의 기대작이랄까. 

ⓒ티빙 페이스북
ⓒ티빙 페이스북

  술꾼도시여자들의 ‘미소’

  극 중 여자 주인공 셋은 연신 ‘미소’를 외쳐댄다. 미소,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바로 미지근한 소주의 줄임말이다. 여름날 목젖을 적시는 차가운 맥주와 겨울날 온몸을 따듯하게 데우는 뜨거운 사케는 들어봤지만 미지근한 소주는 참으로 낯선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모호한 미지근함 덕분인지 ‘미소’는 특정 계절에 상관없이 365일 주인공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매일 미소 한가득. 

  진정 이렇게 술 냄새 폴폴 풍기는 드라마가 있었던가. 수십 년 드라마 애호가 인생을 되짚어 봤을 때 술이 소재인 드라마는 딱 한 편 있었다. 노량진 강사들과 공시생들의 혼술 라이프를 다룬 tvN 〈혼술남녀〉(2016). 당시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혼밥과 함께 혼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1인 가구가 많은 지역이라면 단연 노량진.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공시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면서 공시학원이 많은 노량진이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혼술을 소재로 한 〈혼술남녀〉는 그렇게 홀로 ‘술방’ 드라마의 자리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공중파, 케이블, OTT,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일 년에 드라마 500편이 방영된다는 드라마 왕국 ‘한국’에서 가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드라마에 강도나 살인과 같은 폭력적인 장면이 자주 나와 제작 면에서 상당히 자유로울 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의외로 제약이 많다. 한국 드라마에서 흡연은 금기사항이다. 드라마를 자세히 보면 담배를 입에 무는 장면은 있는데 담배를 물고 연기를 뿜어내는 장면은 없다. 담배와 비교해 술은 표현하는 데 있어 조금 너그러운 편에 속하지만, 드라마에서 술 마시는 장면은 술이 아니라 그 분위기를 활용하기 위함이다. 술이 목적이 아닌 수단인 것이다.

  그 탓에 〈술꾼도시여자들〉도 4년 동안 편성을 받지 못하고 표류하다가 겨우 티빙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공중파에선 술을 이렇게 못 마시지. 암요. 티빙이여, 원샷!

ⓒ티빙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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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방과 욕방의 환상의 콜라보

  〈술꾼도시여자들〉은 술 좀 마실 줄 아는 서른 살 여자들, 놀 줄 아는 언니들의 이야기인데 그들이 술 마시는 스피드만큼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지금 내가 1.25배속으로 보고 있는 건가. 드라마 1회를 보다가 재생속도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배우들이 진짜 술을 마시며 찍은 장면도 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정말 연기가 실감 나고 몰입감이 최고다. 특히 배우 한선화의 연기가 압권이다. 이 구역의 미친X는 진정 그녀다. 엄지척. 

  〈술꾼도시여자들〉에 시원시원한 술방만 있는 건 아니다. 시원시원한 욕방도 있다. 여자 주인공들이 욕을 찰지게 내뱉는데, 그냥 보고만 있어도 속이 다 시원할 정도로 거침이 없다.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에서 나온 욕설이라고 해봐야 그냥 우리가 다 아는 정도에 머물기 마련이다. 강아지 계열이나 숫자 계열 뭐 이런 거. 그런데 〈술꾼도시여자들〉의 욕에는 창의성과 진정성이 묻어난다. 한두 단어가 아니라 긴 문장, 그러니까 욕으로만 주고받는 대화가 등장할 정도로 욕설에 관해 남다른 전문성을 보여준다. ‘드라마에 나타난 욕설 서사 전략 연구’를 해보고 싶다 하면 과도한 팬심일까. 

ⓒ티빙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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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 중 여자 주인공 두 사람이 서로 욕을 주고받는 장면이 있다. 이 에피소드는 배우 정은지와 한선화의 신들린 연기에 힘입어 ‘욕배틀’이라 불리며 단숨에 300만뷰를 기록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아, 우리처럼 이렇게 욕에 진심인 민족이 있을까. 

  미깡 작가의 다음 웹툰 〈술꾼도시처녀들〉이 원작이지만 주당인 동갑내기 세 친구의 우정을 그린다는 큰 설정만 가져오고 세부 에피소드는 주 시청대상인 MZ세대를 겨냥하여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될 수 있는 것들 중심으로 재구성되었다. 실제로 ‘욕배틀’ 클립 영상 때문에 〈술꾼도시여자들〉을 정주행하게 되었다는 간증들이 꽤 많다. 제작진의 전략이 통한 셈이다. 오, OTT! 

ⓒ티빙 페이스북
ⓒ티빙 페이스북

   술에는 스토리가 있다

  〈술꾼도시여자들〉은 OTT 드라마가 아니라면 시도할 수 없는 소재와 내용, 그리고 표현 수위를 가진 드라마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한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까지도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하는 명대사가 있다. ‘술을 마시면 별 거 아닌 것도 별 게 되고, 별 거였던 일도 별 게 아닌 게 된다.’ 여기서 방점은 별 거였던 일, 그러니까 화나고 힘든 일,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도 술을 마시면 아무 일도 아닌 게 된다는 것이다. 음음. 

  랜선으로 준비한 나만의 ‘천원 술상’ 〈술꾼도시여자들〉. 드라마 후반부에 그들이 왜 ‘미소’를 사랑하는 술꾼이 되었는지 나온다. 그런데 그 가슴 아픈 사연이 술 마신 다음 날의 숙취처럼 묵직하다. 하지만 술 한 잔에 슬픔과 술 한 잔에 절망과 술 한 잔에 아픔과… 이렇게 술 한 잔에 자기만의 사연과 고민을 담아 그들은 훌훌 털어버린다. 그렇게 소주 한 잔만큼 아니, 소주 한 짝만큼 큰 위로와 희망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변화시킨다. 

  〈술꾼도시여자들〉의 진정한 인기 동력은 지금 여기의 술방과 욕방이 아니다. 그 둘 사이에 슬며시 똬리를 틀고 있는 미래지향적인 장르 관습 파괴다. 〈술꾼도시여자들〉은 그냥 가볍게 재밌기만 하지 않다. 단언컨대 2021년 이보다 드라마의 상투적인 클리쉐를 산산이 깨부수는 웰메이드 드라마가 있었나 싶다. 술안주를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 기존의 드라마 속 로맨스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새로운지 비교하면서 보면 아주 맛깔나게 드라마를 감상할 수 있다. 참고로 배우 한선화와 최시원이 최고의 안주 맛집이다. 역시 술에는 스토리가 있다. 캬아. 

 

 


김민정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는 생각으로 문학과 문화를 분주히 오가며 나만의 장르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드라마 인문교양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 에세이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 소설집 『홍보용 소설』 이 사람 시리즈 『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등이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 《쿨투라》 2022년 2월호(통권 9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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