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욕망의 연대기 괴물의 진화
[드라마 월평] 욕망의 연대기 괴물의 진화
  • 김민정 (드라마평론가, 중앙대학교 교수)
  • 승인 2021.05.0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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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소문〉 드라마 공식홈페이지

  욕망의 이름으로

  2019년 〈킹덤〉이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며 한국모자 ‘갓’을 핫아이템으로 등극시켰을 때만 해도 놀라지 않았다. 믿고 보는 작가 김은희니까. 그런데 넷플릭스 최고 경영자 레드 헤이스팅스가 가장 재밌게 본 드라마로 〈킹덤〉을 언급했을 때는 조금 놀랐다. 세계의 모든 드라마가 모여 있는, 드라마계의 화개장터, 그게 바로 넷플릭스 아닌가. 헤이스팅스의 총애를 한몸에 받은 〈킹덤〉에 다시 한번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킹덤〉이란 무엇인가.

  외국 좀비들은 대체로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갑자기 집단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킹덤〉 속 좀비의 시작은 다르다. 배가 너무 고파 죽은 사람을 삶아서 나눠 먹다가 좀비가 된다. 즉, 그들은 배고픔, 그러니까 먹고 싶다는 욕망이 만들어낸 좀비다. 외국 좀비가 흐느적거리며 죽은 몸을 질질 끌고 다니는 것과 달리, 한국 좀비가 산 사람들에 버금가는 속도로 빠르게 뛰고 맹렬하게 달려드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에게는 욕망이 있다.

  죽은 몸으로 욕망하는 좀비라니! 사후에도 우리는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인가. 욕망은 꿈과 희망, 실패와 절망의 이름으로 우리 안의 결핍을 드러낸다. 〈킹덤〉은 신분제 사회인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세계 공통 이슈인 사회 불평등과 계급론을 내세워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헬조선’이란 말이 괜히 유행했겠는가. 우리는 아주 오래된 미래에 살고 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을 세계의 축소판, 아니 욕망의 슬픈 파라다이스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 대한민국.

  〈경이로운 소문〉과 욕망의 도시

  과거의 영국이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였다면 오늘날의 한국은 욕망이 잠들지 않는 나라다. 최근 ‘욕망’에 잠식된 기이한 생명체를 다룬 드라마들이 연이어 방영되고 있다. 2020년 〈경이로운 소문〉은 OCN 역대 최고 시청률 경신과 함께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에서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며 욕망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포한다. 〈경이로운 소문〉은 산 사람의 욕망을 먹고 사는 악귀를 악의 축으로 내세운다. 극 중 악귀는 사람 몸에 기생하면서 인간 세상에서 사는데, 숙주인 인간이 주는 먹이, 즉 인간의 욕망으로 살아간다. 악귀는 자기와 똑닮은 사람을 포착해 살기 가득한 몸으로 들어가 살인을 부추기다가 나중에는 자기 의지대로 살인을 해버린다. 그렇게 인간의 욕망을 먹으며 점점 강해진다. 평범한 인간의 얼굴을 하고 돌아다니는 악귀를 보고 있노라면 검은 욕망으로 얼룩진 고담 시티를 떠올리게 된다. 아, 배트맨.

  그렇다. 악이 있는 곳에는 늘 선도 함께 존재한다. 〈경이로운 소문〉은 악귀를 퇴치하는 ‘악귀 사냥꾼’ 카운터즈의 통쾌한 액션씬에 힘입어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하늘 높이 점프하고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는 카운터 4인방의 모습은 답답한 현실에 지친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의 기쁨을 준다. 특히 단체로 맞춰 입은 빨간색 츄리닝이 최첨단 기술로 만든 할리우드식 히어로 슈트가 아닌 시장에서 파는 폴리에스테르 츄리닝이라는 점에서 감정이입의 효과는 배가 된다. 아, 무릎나온 츄리닝은 우리 집에도 있는데. 나도 한번 입어봐?

  〈스위트홈〉과 내 안의 괴물

  지나고 나면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욕망도 그러하다. 〈경이로운 소문〉에서 악귀들이 카운터즈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걸 멀리서 지켜보았을 때만 해도 남의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2020년 추운 겨울, 욕망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협하는 최고의 공격무기로 거듭난다.

  〈스위트홈〉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 때문에 괴물로 변한다. ‘배고픔’에 시달린 사람은 ‘식탐 괴물’이 되고, 근육에 집착해 단백질을 갈구하던 사람은 ‘근육 괴물’이 되고, 상황이 이러다 보니까 누가 당장 괴물로 변할지 알 수가 없어서 등장인물 사이에 항상 긴장이 흐른다. “우리는 인간이니까 누가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네.”

  기이한 생명체가 등장하는 기존의 장르물이 괴물과 인간의 액션씬에 집중했다면 〈스위트홈〉은 사람 안에 있는 욕망이 괴물화의 원인이기에 인간 안에서 괴물이 나오는 순간, 인간이 괴물이 되는 순간을 주목한다. 괴물과 싸우고 괴물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없다. 오직 내 안의 나와 싸우는 처절한 내면 갈등만 있을 뿐. 아, 나는 무슨 괴물이 될까 .

  곰곰이 생각해보면 〈경이로운 소문〉의 주인공 소문도 분노와 복수심에 휩싸여 감정 통제에 실패한 탓에 “넌 악귀나 다름없어”라는 경고와 함께 카운터 자격을 박탈당한다. 악귀 사냥꾼도 욕망의 굴레에 발목 잡힌 마당에 백팔번뇌에 시달리는 유약한 중생인 우리가 뭘 어찌하겠는가. 욕망에 사로잡혀 괴물이 되는 수밖에. 나는 늘 마감에 시달리며 좋은 글에 집착하니까 ‘키보드 괴물’이 되겠지. 아.

ⓒ〈루카: 더 비기닝〉 드라마 공식홈페이지

  〈루카: 더 비기닝〉과 신인류의 탄생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 것일까. 〈스위트홈〉의 주인공 현수가 스스로 내면의 욕망을 통제하며 괴물화 진행을 버텨내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2021년 봄, 우리 앞에 나타난 〈루카: 더 비기닝〉은 인간과 괴물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과연 이것이 인간인가’란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이제 더 이상 드라마는 수고롭게 인간의 욕망을 수집해 높은 레벨의 악귀가 되거나 인간의 욕망이 폭발해 기이한 크리어쳐가 될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리지 않는다. 드디어 인간의 자발적 의지에 힘입어 직접 괴물을 창조하기에 이른다. 인간 욕망의 끝판왕, 그게 바로 휴먼데크 연구소에서 비밀리에 진행하는 루카 프로젝트의 유일한 성공작 ‘지오’다. 홍 해파리, 전기뱀장어, 파리 등등 6종의 우수한 유전자 편집을 통해 완성된 지오는 파란 눈을 반짝이며 전기를 발생시키고 인간을 압도하는 괴력을 발휘한다. 아, 그는 인간인가 .

  극 중 지오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능력치의 진화가 시작되어 점점 강해진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감당 가능한 만큼의 힘만 사용하지만 지오는 자신의 몸을 파괴하면서까지 힘을 사용한다. 그런 과정에서 자기 힘을 통제할 수가 없어 뇌세포까지 다 타버리고 자기가 누군지 기억조차 못 하게 된다. 연구소에서 탈출한 지오를 집요하게 쫓는 사람들. 그들은 지오로부터 복제인간 유전자를 얻기 위해 피부, 근육, 신경 다발, 혈액, 뼈를 포함한 그의 온몸을 해체할 계획을 세운다. 그들에게 지오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 아니다. 무서운 괴물도 아니다.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를 얻는 수단일 뿐이다. 아, 그들은 인간인가 .

  루카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국정원과 사이비 종교, 그리고 과학자의 서로 다른 욕망이 복잡하게 얽히고 그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지오는 ‘인간은 옳은 존재가 아니다’라는 답을 내린다. 그리고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인간이 아닌 괴물이 되는 길을 선택한다. “이미 망가졌어, 세상은. 내가 바로잡을 순 없지만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어.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그래서 나같은 사람이 필요한 거고.” 결국, 지오는 타인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 의지로 자신의 루카 세포로 복제 인간을 대량 생산하고 창조주 신의 자리에 오른다 .

  인간의 욕망으로 탄생한 괴물 지오, 그리고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인간들. 괴물이 되지 않고서는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 〈루카: 더 비기닝〉은 홀로세(현생인류)가 끝나고 신인류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하며 파격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수많은 ‘지오’들이 강남역 한복판에 서서 정답게 담소를 나누고, 여의도 윤중로를 걸으며 벚꽃을 감상하고, 한강 변을 따라땀을 흘리며 조깅을 하고… 아, 여기는 어디고 우리는 누구인가. 인간인가 괴물인가.

 

 


김민정
이화여자대학교 연론홍보영상학부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창작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대에서 스토리텔링콘텐츠 강의를 하고 있으며 저서로 드라마 인문교양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 소설집『홍보용 소설』 이 사람 시리즈 『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등이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 《쿨투라》 2021년 5월호(통권 8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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