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월평] 날것 그대로의 익살, 그리고… 쌉싸래한 그리움: 극동아시아타이거즈(Far East Asian Tigers)와 〈면목중학교〉
[음악 월평] 날것 그대로의 익살, 그리고… 쌉싸래한 그리움: 극동아시아타이거즈(Far East Asian Tigers)와 〈면목중학교〉
  • 이준행(음악가)
  • 승인 2021.05.27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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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대 밴드 씬은 밴드들이 음악으로 자신의 실존을 포효하는 생존 투쟁의 장이다. 멤버 한 사람당 주어지는 공연비는 그 흔한 국밥 한 그릇 값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들이 이 공간에서 배고프게 음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음악을 통해 자기 존재의 살아있음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익살스러운 포효로 실존을 표출하는 네 마리의 호랑이들이 있다 .

  극동아시아타이거즈(이하 극동타)는 명지수(보컬), 공격(베이스), 장지훈(기타), 이태경(드럼), 강성민(영상&고객민원)으로 구성된 4+1인조 펑크 록 밴드이다. 몇 번의 멤버 조정을 거쳐 현재의 고정된 형태가 되었다. 멤버들 각각은 상당한 음악 경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극동아시아타이거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이 그들 모두에게 ‘딱 맞는 옷’과 같은 순간인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이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아주 좋은 합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호랑이를 마스코트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용맹한’ 이미지를 가져다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극동타의 밴드 마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맹수의 모습이 아니다. 가장 단순화된 형태, 거칠게 말해서, 정말 대충 그려진 호랑이가 “어흥!”이라고 외치고 있는 익살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이 호랑이를 보면 한국 민화 속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의 호랑이들이 절로 떠오른다. 실제로 첫 번째 싱글과 두 번째 싱글에서는 한국 민화의 호랑이를 샘플링한 이미지가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극동타의 지향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공포스러운 산속 호랑이가 아니라, 옆집에 사는 ‘동네 형 호랑이’ 같은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것이다.

  극동타의 음악은 정제되지 않았다. 그들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정확한 박자로 치고 들어가지 않는 멜로디와 악기의 사운드에 당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이 바로 극동타 음악의 묘미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엇박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것을 나중에 다듬어 가며 마치 정박이었던 것처럼 인식할 뿐이다. 이 날것의 느낌은 절대 부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삶은 원래 엇박이야”라는 메시지를 담은 진실한 포효로 다가온다.

  극동타의 진정한 매력은 라이브에 있다. 공연을 직접 관람하면 흥겨움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다. 특히 공연을 리드하는 보컬 명지수의 구수한 입담과 시원한 가창이 더해지면서 라이브의 맛이 배가된다. 시원하게 뻗어가는 보컬 사운드 사이사이에는 허스키함이 잔뜩 스며들어 있는데, ‘태어나서 처음 마셔본 콜라의 맛이 이랬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청량감은 대단하다. 부글부글 가득 찬 탄산이 입천장을 거쳐 두뇌 한복판을 때리는 그 쾌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곡 중간중간에 외치는 “에이!”라는 보컬 특유의 포효하는 애드리브를 듣는 순간 여러분은 이미 극동타의 팬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익살의 끝에는 항상 근원적인 슬픔이 자리한다. 극동타의 곡에서 슬픔은 그리움으로 치환된다. 이들의 음악은 한편으로는 가장 익살스러운 광대의 모습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쌉싸래한 향수를 품고 있다.

  〈면목중학교〉는 쉴 새 없이 달려가는 드럼과 베이스 사운드가 특징이다. 특히, 매우 빠른 곡의 템포 속에서 쉼표 없이 거의 모든 노트를 누르는 베이스 사운드는 삶의 어떤 그리움의 기점으로 표상되는 ‘면목중학교’ 이후, 쉬지 않고 달려가는 숨 가쁜 우리네 삶과 닮아 있다. 상대적으로 퍼스트 기타의 리프는 여유가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을 거는 것처럼 한 음 한 음 간지럽게 꽂히는 기타 리프는 달음박질치는 베이스 사이에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다.

  각각 이름은 다르겠지만 우리 모두의 삶에도 ‘면목중학교’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기타의 리프는 우리 각자의 ‘면목중학교’를 추억할 수 있도록 그 형식적 단서를 제공한다. 그러나 초반부를 장식하던 기타의 리프 역시 압도적인 달음박질의 템포 속으로 결국에는 빨려 들어간다. 여기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이길 수 없다는 기표가 표출된다.

  후렴의 가사는 그리움의 연원을 추적한다. 후렴이 이루는 각운인 “흐려져 가버려 버린/흘러져 가버려 버린/흘러가 버린”은 그리움의 이중적인 원인을 절묘하게 관통한다. 이 그리움은 시간 속에서 흐려지고, 또 흘러가 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버린’ 것이다. 여기서의 ‘버린’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리움은 현대의 삶에서 끊임없이 강요되는 효율의 압박에 갇혀 우리가 선택적으로 ‘버린’ 무엇이다. 반면 “흘러가 버린”의 ‘버린’은 우리가 버린 것이 아니다. “흘러가 버린”이라는 표현이 통째로 하나의 수동적인 의미 역을 가진다.

  곡의 화자는 처음에는 이 그리움의 시간이 흐려져 가버렸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버린’ 것이라고 호기롭게 선언한다. 그리고 흘러져 가버렸기 때문에 또 ‘버린’ 것이라고 추가적으로 덧붙인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시간을 제어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지나고 난 후에, 마치 내가 그것을 제어했었다고 혹은 제어할 수 있었다고 이후에 선언할 뿐이다. 후렴의 마지막 구절에서 화자는 그리움이 “흘러가 버린” 것, 즉 우리가 버린 것이 아니라, 시간의 거대한 흐름에 의해서 그렇게 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임을 고백한다. 그리움이라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아프면서도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매우 솔직한 고백이며, 가장 날것에 가까운 고백이다.

  〈면목중학교〉 뿐만 아니라 〈오늘은 비가 와도 좋을 것 같아〉, 〈비 냄새〉, 〈이미 늦어버린 것 같지만〉, 그리고 최근에 발매된 싱글 〈고양이, 선인장 그리고…〉와 같은 곡들 모두 익살 속에 감춰온 그들의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그리움과 절묘하게 아이러니를 이루는 경쾌한 사운드를 동반하고 있기도 하다. 익살스러운 날것 속의 그 쌉쌀한 그리움을 그리는 포효 속으로 모두 함께 들어가 보자.

 

 


이준행
음악가. 록 밴드 벤치위레오 보컬. 기타로 활동 중.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박사과정 재학 중. 시와 음악의 연관성. 그리고 시와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 《쿨투라》 2021년 6월호(통권 8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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