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월평] 인간 육체의 연약함을 넘어, 함께 노를 젓는 인간 정신의 여정 속으로: 행로난의 〈오디세이〉
[음악 월평] 인간 육체의 연약함을 넘어, 함께 노를 젓는 인간 정신의 여정 속으로: 행로난의 〈오디세이〉
  • 이준행(음악가)
  • 승인 2022.04.01 10:4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밴드 행로난(HANGRONAN)
ⓒ밴드 행로난(HANGRONAN)

지난 1월, 자신들의 가사가 시적인 것과 맞닿아 있다고 자신 있게 외치는 젊은 밴드를 만났다. 호기로운 선언은 항상 위험 요소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작품이 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외치는 그들의 말에는 더 큰 힘이 있었다. 이 당돌함에 나도 모르게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이 항해의 노잡이가 되기를 자청했다.

함께 모험을 떠날 갤리선단의 선원들을 모집하고 있는 이 밴드의 이름은 “행로난HANGRONAN”이다. 행로난은 보컬과 기타의 구자명, 기타와 프로그래밍을 맡고 있는 차현빈, 드럼과 코러스의 김선우, 베이스와 피아노, 그리고 코러스를 담당하고 있는 강지애로 구성되어 있는 4인조 혼성 락 밴드로 2020년, 밴드씬에 등장했다. 이백의 시 「행로난」을 인용한 밴드명에서 느껴지듯, 이들은 자신들의 여정이 매우 험난할 것임을 우리에게 예고한다. 하지만 인간이란 본래 하지 말라고 하는 것에 더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청개구리적인 속성을 갖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밴드명을 확인하는 순간, 인간 그 자체인 우리는 이 행로난에 기꺼이 동참하게 될 것이다.

인간 여정의 닻을 올리는 첫 시작이 바로 EP 1집 《여명》의 첫 번째 트랙인 〈오디세이〉이다.

  언제부턴가 시작되던 갈증에 / 허공에 손을 휘젓던 나날들
  창문을 열자 / 부서지는 햇살이 / 막연하게 그리워 흐느낀다
  어둠 속 나를 노려보는 눈 / 비록 살갗이 뚫리더라도

1절의 가사에서 우리를 항해하게 만드는 최초의 동력은 바로 갈증이다. 인간 존재는 무언가에 끝없는 갈증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하나를 해결한 것 같으면 또다시 끝없는 갈증이 밀려온다. 그런데 화자는 끝없는 갈증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허공에 손을 휘젓는다. 이것은 무의식 속에서 노를 휘젓는 행위를 연상시킨다. 끝없는 갈증이 이어지겠지만 그럼에도 노를 저어 바다로 항해하고픈 무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창문을 열어도 햇살이 그립다는 것은 그의 창문에 햇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그가 막연하게 갈망하는 것은 햇살이라고 할 수 있다. 햇살 없는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화자를 노려보고 있다. 이 알 수 없는 존재는 인간 존재가 아니다. 곡 제목이 〈오디세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자.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는 신적 존재 아래에서 운명과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인간 존재들이 벌이는 삶을 향한 몸부림을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어둠 속에서 노려보는 누군가는 인간을 넘어선 신적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화자는 살갗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에게 아주 강력한 육체성을 전달하고자 한다. 신적인 존재가 단순히 노려보기만 하더라도 우리의 연약한 육체는 쉽게 뚫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비록 살갗이 뚫리더라도 인간 정신의 위대한 항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떠나야 해 / 장엄한 태양을 향해서 / 빛바랜 기억 속에 묻혀있던 소망
  타오르다 사위어가기 전에 / 사라지기 전에 / 너와 별이 잠을 청하는 곳으로

1절에서 ‘부서지던 햇살’은 후렴에 와서 장엄한 태양이 된다. 부서지던 햇살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기표였다. 그러나 그 기표들이 출발했던 최초의 기원은 장엄한 태양이다. 여정의 출발점에 서 있는 인간의 눈에는 막연하게 그리웠던 햇살 조각 정도로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항해를 시작한 순간, 이것은 더이상 막연한 햇살의 조각이 아니다. ‘장엄하다’라는 확신의 형용사로 변화한다.

ⓒ모리스 샌닥 〈괴물들이 사는 나라(Where The Wild Thing Are)〉
ⓒ모리스 샌닥 〈괴물들이 사는 나라(Where The Wild Thing Are)〉

여기서 ‘사위어가다’라는 표현은 아주 흥미롭다. 이 단어가 주는 어감은 사그라듦과 야위어 감을 포괄한다. 사그라드는 것은 물질성을 보여주고, 야위어가는 것은 인간의 육체성을 보여준다. 대체할 수 있는 많은 단어들이 있음에도 ‘사위어가다’가 선택되었다는 것은 이 곡이 전달하고자 하는 인간 육체성의 연약함을 배가시키기 위한 시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하늘거리는 시야에 담긴 무언가 / 두 손으로 쥐려 해도 잡히질 않아
  휘몰아치는 알 수 없는 열등감 / 눈물을 머금은 채 달려간다
  무심코 나를 가로막는 숲 / 나의 두 발이 묶이더라도 쓰러지지 않아
  달 위를 항해하며 / 가자

2절의 가사에서 우리는 각각의 문장들에 숨겨둔 세 가지의 자연물을 찾아낼 수 있다. 하늘, 숲, 달이 위치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이 자연물들이 태양을 향해 항해하는 우리를 방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자연물들은 신적 존재의 대리자 혹은 기표일 것이다.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하늘’거리는 무언가가 나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숲은 아주 직접적으로 나를 가로막고 있다. 또한 달 ‘위’를 항해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 달을 넘어서서 항해해야 함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자연의 물질성은 이러한 방식으로 신을 대리하며 우리를 지속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무언가를 두 손으로 쥐려 한다. 인간 존재가 무언가를 쥐려 할 때 최대로 동원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두 손이 전부이다. 인간 육체가 할 수 있는 최대, 그러나 가장 미약하고 연약한 동작이다. 화자의 두 발은 숲 속에서 묶이게 될 것이고 육체성은 좌절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여정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발이 묶이더라도 우리 각각의 손에는 노가 들려있기 때문이다.

ⓒ모리스 샌닥 〈괴물들이 사는 나라Where The Wild Thing Are〉
ⓒ모리스 샌닥 〈괴물들이 사는 나라Where The Wild Thing Are〉

  [간주]
  우리는 떠나야 해 마지막 기회를 향해서 / 미련한 날 끝으로 죽고 싶진 않아
  타오르다 사위어가기 전에 / 사라지기 전에 / 너와 별이 잠을 청하는 곳으로

2절 직후에는 후렴이 나오지 않고 기타를 필두로 한 악기들의 간주가 시작된다. 우리는 이 간주에서 보이는 리듬상의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곡은 전체적으로 드럼과 기타리프가 쉼 없이 치고 나가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당히 빠르게 전진한다. 그런데 이 간주 부분에서 곡의 리듬은 4박자에서 3박자 계열로 변화한다. 이전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던 리듬이 3박자 계열로 변주되면서 느려지고 차분함과 질서정연함을 전달한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갤리선에 승선하여 천천히, 그리고 아주 질서정연하게 노를 저으면서 화자의 여정에 동참하기를 권유받는다.

우리의 탑승이 확인된 순간, 곡은 다시 4박자 계열로 전환되며 마지막 기회를 향해 달려간다. 마지막 후렴의 ‘미련한 날 끝으로 죽고 싶진 않아’는 우리를 중의성의 영역으로 인도한다. 미련한 ‘날’은 칼날의 물질성을 말하는 동시에, 미련한 ‘나’라는 인간의 육체성을 포괄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사위어가다’의 물질, 육체성과 곧장 다시 맞닿으면서 상응한다.

운명이 겨누는 칼날, 그리고 우리의 미련한 육체가 나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일지라도 나아가는 것, 이 인간 여정을 담은 오디세이에 동참할 준비가 되었는가. 이 바닷길에는 끝없는 갈증이 따라다닐 것이다. 항해 중에는 신적 존재, 물질성, 육체성이 끊임없이 우리를 막아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엄한 태양을 향할 준비가 되었는가. 홍대 어딘가에 정박되어 있는 행로난의 선박에 함께 승선하길 바란다.

 

 


이준행
음악가. 락 밴드 벤치위레오 보컬, 기타로 활동 중.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박사과정 재학 중. 시와 음악의 연관성, 그리고 시와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 《쿨투라》 2022년 4월호(통권 94호)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나윤 2022-05-10 13:40:22
재밌게 읽었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