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월평] 미국 인디록의 지금: 플릿 폭시즈 《Shore》, 로드 휴론 《Long Lost》
[음악 월평] 미국 인디록의 지금: 플릿 폭시즈 《Shore》, 로드 휴론 《Long Lost》
  • 서영호(음악가)
  • 승인 2022.03.01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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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휴론의 Long Lost
로드 휴론의 Long Lost

플릿 폭시즈의 음악은 크게 인디록 중에서도 포크록의 범주로 분류되어왔으나 이번 《Shore》 앨범은 ‘베스트 얼터너티브 뮤직’ 후보에 지명되었다. 여기서 얼터너티브 뮤직이라면 90년대의 그 얼터너티브 록을 포함한 대안적, 실험적 음악 전체를 포괄하는 부문이다. ‘대안적인 가치를 지향한다’라는 것은 그만큼 기존의 관습에서 자유로운 태도로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렇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두루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미 이 세계에 존재했던 것들을 빠짐없이 섭렵하고 숙지해야 무엇이 대안이 될 수 있고 어떤 것에 ‘새롭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대안적인 음악을 만들려는 이들은 그만큼 창작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깊은 이들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Shore》가 들려주는 트랙의 면면을 보면 그것이 베스트 포크 앨범이 아니라 베스트 얼터너티브 앨범 부문 후보라는 사실도 크게 어색하지 않으며 이는 비록 수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훌륭한 앨범임에 틀림없는 《Long Lost》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로드 휴론의 〈Mine Forever〉 MV

플릿 폭시즈가 그간 평단과 시장으로부터 호감을 끌어내고 자신들의 인장으로 인정받아 온 대표 사운드는 이 앨범에서도 유효하다. 비틀스나 비치보이즈 등을 통해 익숙해진 보컬 하모니가 강조된 이른바 ‘바로크 팝’적인 성향이 그것인데, 저들의 그것에 비해 플릿 폭시즈의 화성과 합창에는 아득한 중세적 성聖이나 애수, 염원 같은 단어에 어울릴 만한 어떤 것들이 묻어난다.(기왕 아직 이들의 음악을 접해보지 못한 독자라면 전작인 〈Tiger Mountain Peasant〉, 〈Someone You’d Admire〉 등의 노래를 통해 플릿 폭시즈 정서의 전형을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Shore》는 여기에 더해 사운드, 작법, 가사 등 다방면에서 보다 다양한 시도가 더해져 포크록이라는 장르적 관습으로부터 더 자유로워진 모습이다. 가장 대표적인 곡 중 하나인 〈Can I Believe You〉는 종래의 아름다운 보컬 하모니와 수려한 멜로디에, 모던록의 단단함과 청명한 직진성을 기반으로 버스verse-후렴의 전형적 전개를 따르지 않고 곧장 메인 파트로 접어드는 작법, 그리고 이러한 조합만으로는 자칫 빠져들기 쉬운 상투적 클리셰에 지속적인 제동을 걸어주는 변칙적 박자 구성과 천둥 번개 같은 각성으로 장면전환을 연출하는 섹션 배치 등의 기술적 노련함이 어우러진 가장 인상적이고 매력적인 곡이다. 한편 이러한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Can I Believe You〉와 더불어 〈Sunblind〉 같은 곡들이 보편적 팝의 감수성을 놓치지 않는 대중성을 겸비한 트랙이라면, 〈Feather Weight〉, 〈Quiet Air/Gioia〉나 〈Going-to-the-Sun Road〉, 〈Cradling Mother, Cradling Woman〉과 같은 곡에서의 피아노와 혼horn 사운드 등의 활용을 포함한 다양해진 악기 운용, 〈Maestranza〉에서 보이는 과감한 화성 전개와 멜로디 구사 등 앨범 곳곳에 드러나는 새로운 시도는 모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다채로운 음악적 실험과 변화를 지향하려는 플릿 폭시즈의 의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몸부림은 ‘응원받을만한 시도’에 그치는 것을 넘어 수긍할만한 미적 완성도의 성취를 이끌어낸다. 결과적으로 《Shore》가 이들의 가장 대중적인 대표 앨범으로 남을 가능성이 많지 않음은 여러모로 직감할 수 있으나, 어떤 음악가나 밴드도 이러한 과도기적 변화의 몸부림 없이는 매너리즘에 빠지고 말 것이며 아무리 좋은 것도 현상 유지는 곧 도태임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미 배웠다.

Fleet Foxes

플릿 폭시즈가 그레고리안 성가대 같은 사뭇 진지하고 투명한 보컬 하모니를 선보인다면 로드 휴론이 종종 대동하는 하모니는 음악 전반의 무드를 관통하는 컨트리&웨스턴 스타일 특유의 유쾌한 비감을 자아내는 데에 일조한다. 생의 애수나 씁쓸함을 능청이나 자조적 능글맞음으로 견뎌내며 이를 로큰롤에 실어 보내는 로커빌리적 정서가 로드 휴론의 음악에 대한 다소 즉각적이고 무성의한 장르 규정으로는 가장 적절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이 단순한 옛 로커빌리 노래로만 들리지 않고 21세기의 일상에서도 심적 저항감 없이 재생될 수 있고 또 들어야 할 명분을 부여받고 있는 것은 역시 현재성과 새로움을 확보하기 위한 음악적 시도들 덕이다. 이 시도는 뮤직비디오 등 음악 외적인 것에서부터, 다양한 음악 스타일의 세련된 융합을 위시한 작법에서 비롯되며, 현대적인 앰비언트 어법을 활용한 인트로/인터루드/아웃트로 트랙들이 앨범을 응집력 있는 하나의 서사로 묶어주고 있는 것에서도 도움을 받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트랙이라 할 수 있는 〈Mine Forever〉나 앨범 제목과 동명의 곡인 〈Long Lost〉 같은 곡들에서, 현악기는 컨트리에서의 피들이나 챔버팝의 그것과는 또 다른 묘한 세계에서 울려 퍼지는 듯하고, 때로는 정겨운 웨스턴 백보컬로 때로는 홀리한 대단위 남성 가스펠 합창단으로 등장하는 코러스단과 원숙한 트웽twang기타 소리의 조합은 꽤나 매력적인 사운드를 창출한다. 탁 트인 초원에서 질주하거나, 작은 시골 마을의 부산한 주말 거리를 배회하고, 올드 바에서 블루스 추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회상에 잠기는 노래속 화자 혹은 우리는 〈Long Lost〉의 목가적 휴식의 풍경 속에 안겨 새로운 치유의 시간을 경험한다.

플릿 폭시즈의 《Shore》 아트
플릿 폭시즈의 《Shore》 아트

많은 음악이 트렌디한 외피를 두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일반적인 대중들의 악의 없는 외면을 받는다. 허스키나 블랙뮤직의 끈적임과 소울이 지배적인 오늘날 음악 씬에, 청량하고 담백하면서도 무르지 않은 보이스 톤을 가진 두 밴드의 보컬은 또 다른 형태의 꿀보이스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들의 음악 역시 너무 이질적이지 않을 만큼 이미 팝의 자장 안에 있다. 익숙하진 않지만 또 다른 그들만의 감각으로 다분히 대중성을 갖춘 이들의 음악은 잠자고 있던 우리의 다른 감각들을 일깨워 줄 것이다.

 

 


서영호
음악가, ‘원펀치’와 ‘오지은서영호’에서 활동. 《쿨투라》 신인상 공모에 ‘영화음악평론’으로 당선. 주요 앨범으로 《Punch Drunk Love》 《작은 마음》 등이 있다.

 

* 《쿨투라》 2022년 3월호(통권 9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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