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
신용목
비. 아무것도 집어들지 않았지만
전부 두드리는
비. 빨래가 젖는 마당. 쓰러지다 멈춘 바지랑대. 집게가 없는 거미줄. 안개의 하얀 마스크. 흘러감과 고임의 공중 호수, 빨래.
비가 지우는 저편에는 있다. 지워지지 않는 것. 물의 활주로가 있다. 물을 날려보내는 것. 세탁기, 건조대, 혹은 눈과 뺨…… 멈춘 듯 창밖을 보는 사람이 있다.
- 시집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 중에서
신용목
2000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 등이 있음. 백석문학상, 노작문학상, 시작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1년 10월호(통권 8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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