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미술가들] 수평의 법칙, 수직의 개념 X 서재-예언자=책이라는 공통분모로 이어지는 두 그림에 대하여
[미친 미술가들] 수평의 법칙, 수직의 개념 X 서재-예언자=책이라는 공통분모로 이어지는 두 그림에 대하여
  • 홍경택(미술작가)
  • 승인 2022.11.01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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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택 수평의 법칙, 수직의 개념 27.3x45.5cm acryic on linen 2022
홍경택 수평의 법칙, 수직의 개념 27.3x45.5cm acryic on linen 2022
수평의 법칙,수직의 개념 33.3x53cm acrylic&oil on linen 2022
수평의 법칙,수직의 개념 33.3x53cm acrylic&oil on linen 2022

수평의 법칙, 수직의 개념

근대 회화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폴 세잔은 사물의 본질을 원기둥, 원뿔, 구로 파악하며 추상미술의 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인상파 작가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물에 주목하였다면 그는 변치 않는 불변의 어떤 것을 추구하였다. 그는 사물의 기본구조를 꿰뚫어 보았으며 우리의 인식체계 자체에 크나큰 변혁을 가져왔다.

세잔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인간 중심으로 재편된 세상을 새로이 규정한다면 수평과 수직으로 직조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인위적인 사물은 수평과 수직의 총합으로 이루어져있다. 대부분의 건축물이 그렇고 건축물 내부의 구조 또한 마찬가지이다. 문과 창도 그렇고 그 안에 놓이는 의자, 책상, 옷장 등의 가구, 매일 쓰는 컴퓨터, 핸드폰, A4용지, 가방, 쇼핑백, TV, 오디오기기, 의복의 기본이 되는 천의 씨줄과 날줄, 화가와 뗄 수 없는 캔버스 틀, 그리스도교의 상징인 십자가 등 수없이 많은 것들의 기본 구조가 그렇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단순한 사물을 넘어선 책 또한 수평과 수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수평과 수직이 만들어낸 세계에서 살고 있다. 수평과 수직의 총합이 만들어내는 세상이라니! 참 흥미롭지 않은가? 수직과 수평이 만나서 이루어내는 이차원적 사각의 형태, 혹은 정육면체는 효율성을 가장 중요시하는 인간 문명의 총아이다.

‘수평’은 일종의 자연과 종교에 대한 메타포이며 법칙이다. 자연과 종교 앞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하다. 자연과 종교는 자상한 어머니인 동시에 난폭한 아버지다. 모든 것을 수평으로 되돌리며 만물에 작용하는 중력 같은 것이다. 신 앞에선 누구나 평등하듯 중력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작용하며 벗어날 수 없다. 직립해서 존재하는 것은 언젠가는 눕게 돼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눅 21:5-19)

이에 반해 ‘수직’은 문명이나 과학의 개념에 가깝다. 수평의 세계보다는 오히려 인간에 가깝다. 끊임없이 전진하며 세우는 역동적인 힘, 결코 자를 수 없는 욕망의 원초성과도 닮아있다. “개념을 세우다.” “문명을 일으키다.”라고 표현하듯. 중력을 거스르는 힘이기도 하며 생명력을 상징한다.

전자와 후자는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면서 세상을 구성한다.

서재-예언자(Library-a prophet) 259x194cm acrylic and oil on linen 2017-2022
서재-예언자(Library-a prophet) 259x194cm acrylic and oil on linen 2017-2022

서재-예언자

서재는 앞서 말한 것처럼 문명과 이성을 상징하는 지성소이다. 책 한 권이 한 개인의 역사라면 책을 모아놓은 도서관은 인류의 역사이며 그곳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성스러움과 경외감마저 느낀다. 그러나 〈서재-예언자〉는 수평과 수직의 엄격한 세계를 벗어난 또 다른 어떤 세계에 관한 것이다. 한 평면 또는 직선에 수직이 아닌 선을 ‘사선’이라 하는데 이 그림은 수평과 수직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차원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하고 있다.

〈서재-예언자〉는 장서가 즐비하게 꽂혀있는 서고에 가면 혹시 이게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 까하는 의심과 불안에서 시작되었다. 이 그림은 가장 이성적인 공간인 서재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 행위를 보여준다. 무너져 내리는 서재 내부의 모습이 펼쳐지고 눈을 가린 소녀는 절대적이고 기본적인 감각인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육감을 통하여 위험을 알아차린다. 선잠을 자며 백일몽을 꾸는 소년에게 즉시 새(영매)를 보내어 잠을 깨운다. 우리가 절대시하는 이성이 무너져 내리는 사이 주술적이고 원초적인 영역이 꿈틀대며 깨어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서재-예언자2 (Library-aprophet 2) 130.3x162.2cm acrylic and oil on linen.2cm 2017-2022
서재-예언자2 (Library-aprophet 2) 130.3x162.2cm acrylic and oil on linen.2cm 2017-2022

〈서재-예언자2〉는 사물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인 ‘틈’을 보고 있자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심연이 펼쳐질 것 같은 상상에서 출발하였다. 책장과 책장 사이, 침대 밑과 같은 어두운 ‘틈’은 빈 공간을 참지 못하는 강박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는 공간 공포중 하나이다. ‘틈’사이의 어둠은 우리의 시야나 감각이 다다르지 못하는 세계이며 외부의 밝음과 대조되어 무언가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세계는 단순히 밝음과 어두움이라는 이분법적인 대립이 아니다. 다른 세상, 다른 차원, 다른 시간 등 알려지지 않은 어떤 것이 우리의 시야를 벗어나 존재할 것만 같다. 오감으로 느낄 수 없는 불가해한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은 식물이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속도로 영혼을 잠식해온다.

그 밖에 〈서재-백일몽〉, 〈서재-대화〉는 위 두 그림의 단초가 된 그림으로 일종의 안식처이자 영적인 공간으로서의 서재에서 펼쳐지는 작은 에피소드를 그린 것이다.

서재 - 백일몽 (Library-Daydream) 182x227cm acrylic & oil on linen 2013터
서재 - 백일몽 (Library-Daydream) 182x227cm acrylic & oil on linen 2013
서재 - 대화 (Library-Conversation) 72.5 x 91cm Acrylic and oil on linen 2012-2017
서재 - 대화 (Library-Conversation) 72.5 x 91cm Acrylic and oil on linen 2012-2017

 


홍경택 언더와 오버를 넘나드는 회화의 전령. 지금까지 국내외를 합해 16회의 개인전을 갖었으며 Pens, Library, Funckchestra, Speakerboxxx, Monologue 시리즈등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있다.

 

 

* 《쿨투라》 2022년 11월호(통권 10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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