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언니: 김민정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걸』
[북리뷰]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언니: 김민정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걸』
  • 조진주(본지 인턴)
  • 승인 2021.09.04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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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누구보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말랑말랑한 여름 낮잠과 고요한 저녁 산책, 달콤 고소한 밀크티와 폭신한 베개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보다 드라마를 조금 더 좋아한다. 그 누구보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평론가 김민정이, 인생의 반면교사가 되어준 드라마 속 언니들에 대해 들려주는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드라마 평론가 김민정은 문화전문지 《쿨투라》를 통해 드라마평론가로 등단한, 공인된 드라마 전문가이다. 드라마가 너무 좋아서 드라마를 보고 비평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그것을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며 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 스스로 '슬기로운 언니의 드라마 사전’이라는 부제를 붙여두고 썼다. 스무 살부터 마흔 살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인생에 고민이 생기거나 슬럼프가 찾아올 때마다 조언을 아낌없이 퍼준 드라마 캐릭터들을 만난다. 사적인 고민을 털어놓고 괜한 후회로 밤새 속앓이를 할 필요도 없고, 자신에게 해준 조언이 무슨 이해관계에 얽힌 건 아닌지 의심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가장 현실적인 조언들을 던져주니, 이런 언니를 두었다는 건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걸』은 누군가 내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그런 마음이 담겨져 있는, 인생의 소중한 조언들을 추려낸 일종의 힐링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스무 살 강미래의 이야기인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부터 〈청춘시대〉, 〈눈이 부시게〉, 〈부부의 세계〉, 〈미생〉, 〈이태원 클라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등을 거쳐 마흔의 오혜원이 등장하는 〈밀회〉까지, 41편의 드라마와 그 드라마 속 현실을 종횡무진한 40여 명의 여성 등장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다양한 언니들과 함께 연애와 직장문제, 인간관계와 꿈, 삶의 비전과 온갖 종류의 갈등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면서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남자 선배의 불쾌한 신체 접촉, 여자 학우를 성적 대상으로 한 남학생 단톡방, 상대방의 동의 없는 성관계 동영상 촬영 등등 극 중 스무 살 여자주인공 ‘신혜’는 젠더 사건을 겪으면서 삶의 진정한 주체로 성장하는데,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신혜와 더불어 나 스스로도 한뼘쯤 성장한 것 같아 괜히 뿌듯해진다. 왠지 모를 성취감이 느껴진달까. 드라마를 보고 이렇게 스스로 칭찬해주기는 거의 처음이지 않나 싶다.
  - 본문 26쪽

  〈역도요정 김복주〉는 그냥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저절로 풋풋해지는 캠퍼스 드라마다. 배우 이성경과 남주혁의 연기가 밝고 맑고 명랑하다. 연기가 아니라 실제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 드라마를 보면 스물한 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 청춘이 그리울 때마다 몰래 꺼내 보고 싶은 드라마랄까.
  -본문 28쪽

  〈나의 아저씨〉를 보며 평행 세계에 살고 있을 또 하나의 나를 상상해본 적이 있다. 나의 청춘을 보호해줄 든든한 울타리가 없었다면, 내가 대학에 들어가지 않거나 그러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 상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나 자신이 스스로 이루어낸 것으로 생각했던 모든 것이 누군가의 도움과 누군가의 배려, 그리고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 운이 내게 왔다는 안도감보다 그동안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생의 어두운 이면에 숙연해졌다. 명랑한 김복주, 소신 있는 성보라, 영악한 차세리, 그리고 끝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지켜낸 단단한 이지안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스물한 살 청춘의 얼굴이라고 꼭 이 책에 기록하고 싶다.
  - 본문 38쪽

  스무 살부터 마흔 살까지의 다양한 현실 속 고민을 가진 드라마 캐릭터들과 함께 있다 보면, 우리의 성장 과정과 삶에서 겪었던 문제들과 고민, 갈등들이 전부 담겨져 있는 느낌이 들 것이다. 이 책은 그녀들의 성공과 실패의 여정에서 삶에 적용할 알차고 현실적인 조언들을 찾아내, 가슴에 스며드는 문장들로 풀어낸다. 드라마 캐릭터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피다 보면, 완전 빠져들어서 보았던 드라마에 대한 감상을 자연히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드라마 다시 보기’이자, ‘다시 보기를 권유’하는 책이다.

  항상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힘들고 지칠 때, 삶의 방향이 헷갈릴 때, 지금 잘 가고 있는 것인지 의심될 때, 순간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누군가 내 옆에 있어주길 바란다. 누군가는 이 책을 통해 바로 지금 힘이 되어줄 알찬 조언과 격려의 말을 들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분명 언젠가 가슴을 설레게 했던 드라마를 떠올리며 감상에 젖게 될 것이다.

  각자 다양한 매력을 가진 여성 캐릭터들과 함께 성장해온 저자의 가슴 따뜻한 애정 고백과 함께, 그 속에서 인생의 소중한 조언들을 들으며 동시에 우리를 사로잡았던 명품 드라마들을 여성 캐릭터 중심으로 새롭게 읽어나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 《쿨투라》 2021년 9월호(통권 8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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