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시나리오 작법에 대한 가장 명쾌한 해답: 이무영 『시나리오, 세상에서 가장 쉽게 쓰기』
[북리뷰] 시나리오 작법에 대한 가장 명쾌한 해답: 이무영 『시나리오, 세상에서 가장 쉽게 쓰기』
  • 박영민(본지 기자)
  • 승인 2022.04.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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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이무영이 영화 시나리오 창작 안내서 『시나리오, 세상에서 가장 쉽게 쓰기』를 펴냈다. 〈접속 무비월드〉(SBS), 〈이무영의 팝스월드〉(KBS-2FM) 등 방송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저자 이무영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소년, 천국에 가다〉 등의 시나리오를 쓰고 〈휴머니스트〉,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등의 영화를 연출한 전방위 영화예술인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 출간한 『시나리오, 세상에서 가장 쉽게 쓰기』는 영화 시나리오 쓰기에 관해 누구보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그리고 오랜 방송 경험을 통해 단련된 대중적 화술도 갖춘 저자만의 장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창작 안내서이다.

시나리오 작법에 관한 책은 많지 않다. 그리고 대부분 전문적인 용어나 방법론 등이 동원되어 그마저 장황하기까지 하다. 오직 시나리오 작법에 정통한, 그리고 그것을 창작자의 입장에서 이해한 작가만이 그 법칙을 단순화하여 핵심을 전달할 수 있다. 저자는 현학적인 수사나 이론으로 에둘러 가지 않는다. 좋은 시나리오는 무엇이며 그것을 가장 빠르게 완성하는 방법이란 무엇인가를 쉽게 알리는 일에 모든 것을 집중한다.

세상 그 어떤 예술형식보다 오래 존재한 것이 스토리텔링이다. 아마 언어가 없었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손짓발짓으로 얘기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흥미로운 얘깃거리에 매료된다. 친구나 가족 간에 매우 슬프거나, 유쾌하거나, 무서운 얘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둘이 모여 그곳에 없는 제3자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을 때도 스토리텔링의 형식을 취한다.
  - 본문 46쪽

그는 독자가 수십, 수백 편의 영화를 보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주로 세 편의 영화 〈밀양〉, 〈마더〉, 〈복수는 나의 것〉을 통해 좋은 시나리오 작법의 예시를 든다. 독자들에게 불필요한 ‘영화 지식 테스트’ 과정을 거치지않고, 오직 시나리오 쓰기라는 핵심 포인트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이 영화들을 통해 그는 성공하는 장편영화가 갖춰야 할 필수적인 요소들을 다양한 현장 경험과 정연한 이론을 바탕으로 예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챕터마다 또한 핵심 요약문이 실려 있어서 시나리오 쓰기를 이제 막 시작한 독자들이 놓치지 않아야 할 것들을 언제든 되새길 수 있다.

〈밀양〉에서 신애가 아들 준의 시신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가슴이 무너진다. 영화는 준의 시신을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대신 그의 시신으로 다가가는 신애의 모습을 롱쇼트로 길게 보여준다. 그녀의 상실감을 관객이 공유하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잘 표현된 멋진 장면이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류는 누나에 이어 자신이 유괴한 유선마저 잃는다. 이 과정에서 그의 상실감과 죄책감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절절히 잘 드러난다. 그저 누나를 살리기 위해 신장이식 수술을 해주려 했던 그의 착한 마음은 참혹한 운명의 아이러니로 인해 산산 조각나고 만다. <마더>에서 엄마는 아들이 살인범으로 몰리자 그의 결백을 밝히려 애쓴다. 관객은 그녀가 1퍼센트도 아들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런데 클라이맥스에서 그녀는 아들이 범인임이 밝혀지자 이를 감추려고 애꿎은 고물상 사내를 살해한다. 결국 엄마에게 애초 아들의 결백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게 아니었단 사실이 드러난다.
  - 본문 105쪽

〈복수는 나의 것〉에서 유선의 시신을 부검하는 장면은 작가가 시각적으로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다. 유선의 복부를 수술용 칼로 베는 쇼트 하나를 보여 준 후 영화는 부검장면을 생생한 효과음으로만 처리한다. 뼈를 잘라내고 분리하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동안 카메라는 슬픔에 빠진 아버지 동진의 얼굴만 비춘다. 당연히 관객은 그의 아픔에 공감한다.
  - 본문 121쪽

시나리오의 영감을 찾는 방법, 스토리텔링의 비법, 영화 속 인물에 대한 고민, 시나리오의 구성, 클라이맥스, 결말 등 영화 시나리오 창작에 있어서 반드시 고민해야 할 부분을 저자는 가장 쉽고 친절한 방법으로 독자들에게 전한다. 그리고 모든 챕터에는 이 책이 시나리오를 쓰려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시나리오, 세상에서 가장 쉽게 쓰기』는 시나리오를 쓰고자 하는 입문자와, 지금 쓰고 있지만 길을 잃은 이들과, 다 썼지만 영화화의 길이 멀게만 느껴지는 이들이 항상 곁에 두고 틈틈이 참고하기에 최적의 작법서라 할 만하다. 창작자들을 영화 바깥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키보드 앞에 앉혀놓는 이 책은 좋은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를 열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꾸준히 읽힐 것이다.

 

 


 

* 《쿨투라》 2022년 4월호(통권 9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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