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우리시대의 지성, 한국 문학의 품격: 염무웅 산문집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
[북리뷰] 우리시대의 지성, 한국 문학의 품격: 염무웅 산문집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
  • 손세실리아(시인)
  • 승인 2021.10.01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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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 마지막 날이다.

  매번 쏜살같기만 하던 육지에서의 일주일이 여느 때와는 달리 꼭 일주일만큼의 속도로 지났다. 후배 김이듬 시인이 기획한 책방이듬에서의 낭독회 말고는 약속을 잡지 않은 까닭이다. 산책과 집밥과 휴식에 충실하며 고갈 직전의 체력을 충전시키려 노력한 결과, 만성 피로로 인해 자꾸만 바닥으로 가라앉던 무기력한 몸에 생기가 돌고 가뿐해졌다. 이것만으로도 나름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 틈틈, 제법 묵직한 책까지 완독했으니 더할 나위 없는 휴가를 보낸 게다. 

  대부분의 독서가 그렇지만, 특히 오늘 소개하는 염무웅 산문집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창비)는 차분하게 읽고 싶고, 또 그래야겠기에 미리 구입해뒀다가 휴가 시작과 동시에 펼쳤다. 어렵고 복잡하고 과하게 전문적이어서 속도가 더디거나 중도에 덮고 싶을만큼 지루하면 어쩌나 살짝 불안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기우다. 오히려 단숨에 읽혀서 한편으론 놀랐을 정도다. 더군다나 제1부의 첫 산문 「그립구나, 조태일!」은 나의 스승과의 추억담인지라 그 각별함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조태일(1941~1999) 시인을 불러내 앞세워놓곤 문학평론가 천이두(1930~2017), 소설가 이호철(1932~2016), 시인 김규동(1925~2011), 화가 김용태(1948~2014), 미술평론가 김윤수(1936~2018), 자유인 채현국(1935~2021) 등을 차례로 호명한다. 그 다감이 어찌나 깊고 따뜻한지 생의 저쪽과 이쪽의 경계가 문득문득 모호해지면서 활자 속 인물들이 종이 밖으로 걸어 나와 안부 나누느라 왁자하고 분주하기까지 하다. 마치 생시처럼.

  한국현대사에 또렷한 족적을 남긴 각계 인물들과의 추억을 통해 선생 자신의 지난 시절과도 만나게 되는데 무심결에 밑줄을 긋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책에 관한 한 결벽하리만치 훼손을 극도로 꺼려하는 평소 성격과는 판이한 행동인지라 흠칫 놀라 잠시 펜을 놓았다가, 이왕지사 벌어진 일이어서 다음부턴 아예 호기롭게 밑줄 쫙!

  가족사로 풀이해낸 정치적 이념에 대한 회고가 그것의 발단인데, 몇 문장으론 요약하기 어려운 한국 정치의 고질적 분열에 대해 이렇듯 쉽고 자연스럽고 생생한 정리를 해냈으니 어쩌면 마땅한 일일지도.

  할아버지가 외출하고 나면 아버지는 벽에 걸린 이승만 사진을 떼어내고 대신 김구 사진을 걸었다. 그러나 저녁에 돌아온 할아버지는 화를 내며 도로 이승만 사진으로 바꾸어 걸었다. 다음 날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고, 그러다보면 그것이 부자간의 격한 시국 토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나에게는 최초의 살아 있는 정치교육이었던 것 같다 .
  -본문 87쪽

  생각지도 못한 보약을 복용한 기분이다. 화로 속 불씨 뒤적여가며 창호지 덮은 옹기약탕기에 공들여 은근히 달인 보약 말이다. 그것도 한두 첩이 아닌 한 재, 심지어 어지간히 큰맘을 먹지 않고선 엄두도 못 낼 녹용까지 들어간. (설마 이 비유에 ‘내 체질은 녹용이 받지않아’라며 정색하는 분은 없을 테지. 후훗)

  선생의 팔순을 기념해 창비 출판사에서 기획, 출간한 이번 산문집을 두고 문단 선후배들과 오랜 날 동지의 길을 걸어온 벗들과 제자들의 축하가 이어지는데, 정작 선생 자신은 문학평론으로 등단했으면서 문학평론집이 아닌 산문집을 묶어낸 일에 대해 면구스럽다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정반대다. 문학과 문학인으로서의 자세, 한반도 분단,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건설과 정착에 있어 한국의 역할, 지구가 처한 전면적 위기 등에 관한 도저한 견해를 평소 어투처럼 나직나직 다감하게 풀어내고있어 마치 모 방송사의 인기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를 활자로 만나는 기분이니 대환영일 수밖에. 이쯤에서 다시 밑줄.

  지난 반세기 동안의 엄청난 외형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감정과 정신이 날로 저열하고 황폐해진다고 느껴지는 것은 다들 ‘마음의 정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예로부터 항심(恒心)의 근거가 항산(恒産)이라 했는데, 이때 ‘항산’은 단지 일정한 재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인간에게 ‘한결같은 마음’의 가능성과 기반을 보장해주는 조건들, 가령 실직을 하거나 중 병이 들어도 생계가 통째로 무너지지는 않으리라는 보장, 동료와 이웃이 느닷없이 칼을 들고 달려들지는 않으리라는 믿음, 힘들거나 지쳤을 때 가족과 친구의 위로가 있으리라는 기대, 6·25전쟁 같은 사태가 돌연히 일어날 리 없다는 확신,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에게 삶의 지속을 담보하는 사회적·심리적 ‘항산’일 것이다. 실존주의자들이 말했던 이 우연히 ‘던져진 땅’에서 그래도 미치거나 자살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내자면 그런 ‘항산’의 지속적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 가능성을 일상생활 속에서, 즉 현존하는 주변의 생활공동체 안에서 구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구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본문 143쪽

  생각지도 못한 서명본이 도착했다. 같은 책을 두 권이나 갖게 된 게다. ‘챙길 인연이 넘칠 텐데 나까지?’ 하면서도, 아니 그래서 더욱 감동해 그동안의 무심을 자책하며 전화를 드렸다. 말이 무심이지 실은 어렵다는 이유로 시도 자체를 안 했다는 게 옳다. 여하튼 이번 통화가 나로선 어마어마한 용기였던 셈. 근황이야 페이스북을 통해 자주 접하고 있으니 생략하고 팔순 축하 인사를 드렸더니 “아이쿠!” 하신다. 문단 데뷔 초기엔 간혹 행사장에서 뵙기도 하고, 수도권 문인 몇으로 구성된 목요산행팀과 영남대학에 재직 중인 문인(우리끼린 영남학파라 명명) 몇이서 함께한 소백 산행 기억도 소환하다보니 성큼 뵙고 싶어져 적당한 때 뵙기로 하고 통화를 마쳤다.

  예리하지만 다감하고
  엄격한 반면 유연한
  우리 시대의 스승, 아니 우리 시대의 동무

  삼백오십 년 만에 속 후련하게 밑줄 그으며 읽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그런 다음 혼자 읽고 말기엔 너무 귀하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루 추천하려고 출판사에 주문을 넣은 후 선생님께 서명을 부탁드렸다. 보통은 저자의 이름이 들어간 서명본을 진행하는데, 이번엔 오지랖이 심하게 발동해 독자들의 이름까지 욕심을 부렸다. 특별한 소장 기회를 선물처럼 나누고 싶은 까닭에서이다. 물론 SNS를 통해 사전 예약 공지를 띄운 다음 명단을 취합해둔 터라 가능했던.

  놀랍게도 칠십여 명이 구매 의사를 밝혔다. 대형서점도 아닌, 그것도 우편료마저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조건인데 개의치 않고서 말이다. 혹자는 진심과 전심을 담아 이 책의 가치에 대해 포스팅한 결과라고들 하지만 나는 안다. 옮겨놓은 밑줄 부분을 통해 책의 일부나마 일별한 독자들의 혜안임을.

  발송하고 열흘쯤 지났을까? 창원 마산에 살고 있는 S선생으로부터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염무웅 산문집 두 번째 읽는 중입니다. 시인님 덕분에 한곳에 편중됐던 독서의 폭이 확장되고 있어 고맙게 생각해요. 진정한 아름다움을 위해 꾸준히 공부할 테니 계속 수고해주세요.”라는. 난 다만 귀한 책을 소개했을 뿐인데, 저자가 받아야 할 인사를 대신 받은 게다. 이 문자를 어떻게든 전해드려야지.

  제2부~제4부는 시대적 고통, 갈등, 비극, 비전 등을 담은 지식인으로서의 문제의식이다. 그것은 ‘용산참사’에 대한 참담한 심경과 진실 규명 촉구, 남과 북 예술가의 판이한 사회적 존재방식, ‘마음의 정처’를 상실함으로써 날로 저열하고 황폐해가는 우리들의 감정과 정신, 자유로운 삶과 일상의 안식을 담보하기 위한 가치로서의 평화, 남북 관계뿐만 아니라 문학인들을 향해 “우리의 순수했던 영혼이 떨며 시작했던 그 가난한 자리로 복귀해”야 한다고 설파함과 동시에 비정규직노동자, 청년실업자, 노인과 장애인, 이주노동자들, 무주택자들의 절망을 대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임을 강조하기도.

  특히 유익하고 또한 배움이 컸던 부분은 「독일 통일의 경험이 가르쳐주는 것」이다. 독일과 베트남이 통일을 이루고 난 다음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한반도의 통일 문제가 두 국가보다도 더 복잡하다는 점과 통일로 가기 위해선 “각자 자기가 사는 사회의 역사적·문화적 성숙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쉬운 일이 아”님을 강조한다. 특히 독일의 음유시인이며 구동독의 반체제 저항시인인 비어만이 중앙대 김누리 교수 등이 묶은 인터뷰집 『변화를 통한 접근』에서 밝힌 경고성 발언 중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를 책의 표제로 삼기도 하고, 성찰을 요하는 부분을 인용하기도 한다. 물론 그 일부도 밑줄.

  남북한의 통일이 낙원을 가져오리라는 믿음이 아니라, 지옥에 이르지 않게 하리라는 희망은 천상적이고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지상적이고 현실적인 것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지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 이르지 않게 하는 것이 이제 나의 희망이라는 말입니다.
  - 본문 239쪽

  양서는 양서를 부른다.

  거창한 말 같지만 남의 말을 빌려온 게 아니라 평소 나의 독서 지론이다. 배움이 많고 어떤 식으로든 유익한 책은 거기 자주 언급되는 저자나 인용된 저서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그리하여 책이 다른 책을 초대한다는 것. 내 경우엔 두 권의 책을 구매했다. 위에서 언급한 『변화를 통한 접근』과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회고록 『우리는 이렇게 통일했다』, S선생이 말한 사고의 확장이 내게도 해당되는 순간이니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는 양서임에 틀림없다.

  바야흐로 110세 인생이다.

  선생의 나이 80이니 세상에 내놓을 저서가 아직 몇 권은 남아있으리라 믿는다. 다음엔 어떤 생각을 담아낼지 벌써부터 두근두근 고대하며 그은 마지막 밑줄.

  평화와 민주주의, 민족적 자주와 사회적 평등이 한반도 전역에 걸쳐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진정으로 바람직한 상황을 통일이라 할 때, 그것은 어떤 극적인 한순간의 감격이라기보다 일상적 실천과 자기희생을 동반한 점진적 성숙의 현실적 축적일 것이다.”
-본문 394쪽.

 

 


손세실리아
시인. 전북 정읍 출생. 시집 『기차를 놓치다』와 『꿈결에 시를 베다』가 있으며, 산문집 『그대라는 문장』이 있다. 현재 제주 책방카페 〈시인의 집〉 대표.

 

* 《쿨투라》 2021년 10월호(통권 8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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