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동·서양 거장들의 ‘영화의 숲’에 빠져들다: 영화평론가 문학산 교수의 『거장의 나무』
[북리뷰] 동·서양 거장들의 ‘영화의 숲’에 빠져들다: 영화평론가 문학산 교수의 『거장의 나무』
  • 양진호(본지 에디터)
  • 승인 2021.10.01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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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대 교수로 재직하며 오랫동안 영화를 연구해온 영화평론가 문학산의 영화연구서 『거장의 나무』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그 이름만으로도 ‘영화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는 동·서양 영화의 거장(임권택, 홍상수, 김기덕, 장률, 지아장커, 오즈 야스지로, 우디 앨런, 히치콕, 고다르, 루이스 부뉴엘, 페드로 알모도바르, 타르코프스키)들을 다룬다.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뿐만 아니라,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각 챕터마다 저자가 에세이 형식으로 짧은 해설을 덧붙여 두어 영화 전문가·일반 독자가 함께 읽을 수 있다.

  한국 독립영화와 동아시아 작가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해온 저자는 현재 부산대 교수 및 영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영화학회 회장, 북경대 방문학자(2015)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한국 단편영화의 이해』『10인의 한국영화 감독』, 『한국독립영화 감독연구』 등이 있다.『거장의 나무』는 감독 연구 3부작 프로젝트의 완결편인 ‘세계영화 감독 연구’를 주제로 해 저술되었다.

  이번에 펴낸 『거장의 나무』는 5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한국영화 챕터에서는 임권택·홍상수·김기덕, 2부 아시아 영화 챕터에서는 장률·지아장커, 3부 미국영화 챕터에서는 우디 앨런·히치콕, 4부 유럽 영화 챕터에서는 장 뤽 고다르·루이스 뷰뉴엘·페드로 알모도바르, 5부 러시아 영화 챕터에서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세계를 다루고 있다. 동·서양의 주목해야 할 감독들을 고르게 다루며 그들의 영화에서 핵심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들을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또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각 영화들의 제작 배경, 영화사적 가치, 사회·역사적 맥락을 다루고 있어 이론서와 대중서의 역할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 

  그동안 임권택 연구는 작가주의 방법론에 입각 한 연구에서 인본주의를 다루는 이데올로기적 연구를 경유하여 개별 텍스트의 분석에 이르는 방 대한 성과를 축적해 왔다. 임권택 연구는 한국 영 화연구의 가늠자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활발하게 진행되어왔으며 이를 통해 임권택은 한 국의 대표적인 감독에서 출발하여 국민감독으로 승격된 다음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 「임권택, 동양화론과 몽타주가 빚어낸 미학적 풍경」 중

  저자는 한국에서 공부한 학자로서 한국의 감독과 동아시아 감독에서 출발하여 미국과 유럽 그리고 소련의 작가로 연구를 확장했다. 텍스트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가능하면 서양의 개념과 이론의 도구를 빌지 않고 한국 영화학자로서 바라보는 관점을 담으려고 했다. 저자는 이 부분이 기존의 세계 영화감독 연구와 거리를 둔 지점이며, 한국인의 눈으로 세계 영화감독을 연구하려는 주체적인 시선과 노력의 흔적임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또한 "영화 작가의 작품은 시대와 작가정신 그리고 고유한 영화적인 것을 자양분으로 성장한 나무"라고 말한다.

  오즈 영화의 편집에서 독창성의 백미는 사물과 인물의 유사성을 통한 어트랙션 몽타주로의 전환이다. 조형적 유사성이 형태와 구도와 같은 형상의 유사성에 의해서 연속성이 유지되었다면 사물과 인물의 유사성은 형상의 유사성과 더불어 사물과 인물의 경계를 지우는 예술적 동시주의와 장자의 만물제동주의에 접맥된다. 〈동경 이야기〉에서 가지런히 놓인 신발이 나란히 누운 노부부의 모습을 표상했다면, 〈만춘〉에서 잠든 부친과 항아리의 동일시는 오즈의 조형적 유사성의 정점으로 귀결된다.
- 「오즈 야스지로 영화의 편집 미학 : 풍경 쇼트의 변주와 조형적 연속성의 확장」 중

  우디 앨런의 영화는 기존의 영화를 인용하는 상호텍스트성 전략에 패러디가 접맥된다. 패러디는 기존 텍스트의 인용과 창조적 재배열로 의미 생성과 웃음을 유발한다. 우디 앨런의 영화적 인용은 상호텍스트성의 영화적 수용이면서 동시에 패러디를 통한 웃음 지향이라는 점에서 다른 작가와 차별화된다. 즉, 우디 앨런의 영화적 인용은 패러디로 전면화되고 텍스트의 수용은 ‘확장된 상호텍스트성’이라는 형식으로 우디 앨런의 작가적 낙인이 완성된다. (중략) 우디 앨런의 코미디 전략과 상호텍스트성은 웃음의 생성과 의미의 창출이라는 하나의 표적지를 겨냥한다.
- 「우디 앨런 영화에 나타난 코미디 전략과 상호텍스트성」 중

  작가는 시대정신과 작가정신 그리고 영화정신의 세 가지를 구비한 거목이며, 이 거목은 시대정신, 동시대의 분위기라는 토양에서 식목되고 작가정신이라는 뿌리를 통해 영화라는 가지와 줄기를 영화정신으로 뻗어가게 한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우리 영화계, 그리고 세계 영화계에 소중하게 남아 있는 이러한 영화 거목들에 대한 연구를 담은 이 책을 통해 영화 애호가 및 연구자와 일반 독자 모두가 영화의 숲속을 거닐며 코로나19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저자는 서문에서 덧붙이고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하는 책, 『거장의 나무』를 통해 독자들은 거장이라는 나무가 만드는 산들바람 속에서 팬데믹을 잠시나마 피해가며 편안한 ‘영화독서’의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쿨투라》 2021년 10월호(통권 8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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