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따뜻한 슬픔 한 숟갈, 제주도의 풍경들을 담은 산문집
[북리뷰] 따뜻한 슬픔 한 숟갈, 제주도의 풍경들을 담은 산문집
  • 양진호(본지 에디터)
  • 승인 2022.01.0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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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실리아 『섬에서 부르는 노래』

  손세실리아 시인이 두 번째 산문집 『섬에서 부르는 노래』를 펴냈다. 2001년에 데뷔해 20여 년 동안 꾸준히 활동해 온 시인은 “고통에서 구원으로 가는 순례길”(문학평론가 방민호)로서의 시를 독자들에게 전해왔다. 그런 시인은 이번 산문집에 자신의 일상 공간이자 문학적 순례지인 제주도의 풍경을 낭송하는 듯한 문장들로 담아냈다.

  제주 조천에서 책방카페 ‘시인의 집’을 운영하며 쓴 글 안에는 시인이 살아낸 제주의 모습, 문학과 세상에 대한 속 깊은 사유가 진실하게 담겨 있다. 부드러운 곡조 안에 깊고도 맑은 슬픔을 담는 듯한 시인의 문장은 제주도의 곳곳을 다독이고 보듬는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썰물과 밀물의 변화, 숭어의 도약, 까치복과 저어새와 바다직박구리와 가마우지와 갈매기의 군무, 이 땅 어디보다 아름다운 저녁놀과 그 밖의 것들”(19쪽)이 시와 삽화가 되었고, “천육백여 명의 해녀와, 만 팔천여 신(神)과, 소멸 위기에 처한 매혹적인 방언”(「지은이의 말」 중에서)이 시인의 따뜻한 두 손과 같은 문장에 고스란히 담겼다. 

  여차저차 인연으로 맞춤한 집을 만났으나 말이 집이지 실제는 붕괴 직전인 폐가였다. 오랜 세월 인간들로부터 홀대받아 상처투성이인, 그런 집에 한눈에 홀렸으니 숙명일 테다. (중략) 수시로 체온을 나누고 말을 걸고 눈을 맞추길 10여 개월, 집이 비로소 집다워졌다. 잔디는 제법 초록초록하고 다년생 풀꽃인 가자니아는 열 몫을 해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썰물과 밀물의 변화, 숭어의 도약, 까치복과 저어새와 바다직박구리와 가마우지와 갈매기의 군무, 이 땅 어디보다 아름다운 저녁놀과 그 밖의 것들도 덩달아 활기를 찾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집을 내게 보낸 건 누군가의 섭리임을, 내가 이곳을 찾은 게 아니라 집이 나를 불러들였음을.

  산문집에 담긴 문장들에는 그녀의 시적 언어들의 기원이 된 ‘바람’과 ‘돌’들의 존재 방식이 담겨 있다. “잦은 강풍과 검은 돌로 에워싸인 집과 밭과 무덤”은 편안함 속에 슬픔을 머금을 수 있는 풍경들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도시의 삶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관광지일 뿐인 제주도를 그녀는 가까운 이웃이자 가족과 같은 존재로 느낀다. 시인은 제주도의 풍경을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친근하고 애틋한 존재로 그려낸다. 그녀가 “제주 해안가를 걷다가/버려진 집을 발견”한 것은 서정정적인 시인의 눈을 가졌기 때문이겠지만, 그 폐가를 “만조 땐 수상 가옥이 되고 썰물 땐 잠겨 있던 너럭바위가 펄 위로 모습을 드러내 한 점 수묵화”로도 본 것은 넉넉지 않은 삶 속에서도 가득 찬 책들의 더미에 충족감을 느낄 줄 아는 그녀의 ‘자존과 자긍’ 때문일 것이다. 슬픔 속에 기쁨이 있고, 무던함 속에 한 줄기 빛과 같은 희망이 있음을 이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바람과 돌들의 문장을 천천히 쌓아 완성한 문장들은 그녀의 삶과 제주도의 풍경이 따로 떼어내 말할 수 없는, 어떤 ‘근원적인 것과의 연결’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순례길을 걷는 느낌을 받게 된다.

  지난봄, 수개월 가요무대에 출연했었다. 코로나19 이후 눈에 띄는 일상의 변화였으나 가족을 제외하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일이다. 다행인 것은 공중파 방송의 프로그램명을 무단으로 차용했고 흘러간 대중가요를 매회 다른 곡으로 열창했지만, 그 누구도 표절이나 저작권법을 문제 삼지 않았다는 거다. 하긴 핸드폰을 이용한 엄마와 나 둘만의 공연이니 외부로 알려질리 만무하기 때문이기도 할 테다. (중략) 엄마 젊을 적 애창곡을 부르되 재탕, 삼탕은 하지 말자는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출발했다가 레퍼토리가 거덜이 나, 이를 어쩌나 난감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종식될 기미는커녕 백신 개발마저 요원해 조기 하차나 종영을 고려함이 마땅했지만 걷지도 못하고 병상에만 누워 우울하게 지내는 엄마를 잠시나마 웃게 해 드릴 수 있는 시간인지라 쉽게 그만두지 못했다.

  시인에게 아픔이나 고통은 극적인 감정이 아니라 삶 그 자체다. 코로나19로 면회가 금지된 요양병원, 딸 하나 딸린 과부로 온갖 풍상을 겪은 끝에 병원에 누워 있는 91세의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와 딸이 겨우 핸드폰을 이용해 주고받는 옛 유행가 가락의 일상적이면서도 절절한 감정이 그녀의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인은 그간의 시에서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언급해왔었고, 그것이 순탄치 못해 어려움을 겪어왔음을 고백했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시와 글들이 어머니와의 화해에 이르는 도정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산문집에 담긴 글에서도 그런 시인의 따뜻한 의지가 느껴진다. “고해성사이자 고백이고, 넋두리이자 절규”일 그 모녀의 노래 속에는 슬픔의 가없는 기원이 담겨 있지만, 그것은 누이가 들려주는 대중가요 한 소절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 시인은 자신의 슬픔을 다독이듯 어머니의 등을 부드러운 문장들로 쓸어내린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는 딸의 곁에서 시가 되고 산문이 되어 준다. 손세실리아 시인의 책에는 그런 삶의 따뜻한 양식 같은 감정들, 진수성찬이 아니지만 삶의 온기가 담긴 밥 한 공기와 같은 감정들이 놓여 있다. 그 문장을 한술 뜨며 독자들은 슬픔도 든든한 마음의 양식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시인이 정성스럽게 가꾼 문장들이 놓인 이번 산문집은 무엇보다도 독자들을 편안하게 맞이하는 것에 ‘진심’이다. “담담하고 덤덤히 부르는 이 노래를 (중략) 꿈을 꿈꾸는 고단한 이들과, 내 시의 무한 권력인 독자들께 바친다”고 고백하는 시인은 ‘꿈’과 ‘독자’의 사이에 자신의 글이 징검다리처럼 놓이기를 바라고 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은 팬데믹으로 인해 고립되어있다. 그 무엇도 사람과 사람을 잘 연결해주지 못해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손세실리아 시인의 온기 가득한 문장들은 독자들을 한 자리로 불러모은다. 문장 속에 함께 모여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곳에서 전염의 위험 없이 다친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 한 해가 또다시 시작되는 1월, 무엇도 코로나 이전과 같지 않지만, 바닷바람과 돌들의 선연함을 담은 문장들로 채워진 시인의 작은 카페 같은 산문집은 그런 우리가 잠시 머물러 갈 수 있도록 조그마한 문을 열어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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