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평] 〈한산: 용의 출현〉의 카타르시스, ‘압도적 승리’ 안겨줄까
[영화 월평] 〈한산: 용의 출현〉의 카타르시스, ‘압도적 승리’ 안겨줄까
  • 이은주(서울신문 기자)
  • 승인 2022.08.0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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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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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겐 더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

전라좌수사 이순신(박해일 분)이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군을 물리친 뒤 부하에게 했던 이 대사는 마치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이 한국 영화계에 던지는 출사표와도 같았다. 한국영화 대작 4편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여름 시장에서 한국형 블록버스터 〈한산〉이 가지는 의미는 그만큼 남다르다. 2014년 7월 개봉했던 영화 〈명량〉은 1,761만명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역대 흥행 순위 1위에 올라섰고, 이 기록은 8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명량〉의 후속작이자 프리퀄이기도 한 〈한산〉은 전편의 흥행을 뒤로 하고 다시 한번 흥행의 역사에 도전한다.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 중 두 번째 작품인 〈한산〉은 전편보다 훨씬 다듬어지고 정교한 양상을 보인다. 〈명량〉의 최대 강점이었던 승리의 역사가 주는 카타르시스를 더욱 부각하고, 컴퓨터 그래픽(CG) 등 제작 과정을 체계적으로 바꿨다. 팀플레이를 강조하면서 이야기 구조가 풍성해졌고, 전편에서 불거진 이른바 ‘국뽕’(지나친 애국주의) 논란을 의식한 듯 감정의 과잉을 덜어내 한층 깔끔하고 세련된 전쟁 액션영화로 진일보했다.

영화는 명량해전 5년 전인 1592년 4월, 임진왜란 발발 보름 만에 왜군에 한양을 함락당해 위기에 빠진 조선을 배경으로 한다. 임금은 의주로 피난을 떠나고 부산포에 진을 친 적은 백성들을 동원해 왜성을 쌓는다. 이순진 장군은 진군 중인 왜군을 상대로 조선 수군과 함께 전세를 뒤바꿀 해전을 도모한다.

56척의 배로 73척의 왜선 중 47척을 격파하고 왜군 1만여 명을 전사시켜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압도적 승리를 거둔 ‘한산대첩’은 세계 해전사에서도 손꼽히는 역사적인 해상 전투다. 우리에게는 이순신 장군의 대표적인 전술인 학익진과 거북선이 활약한 전투로도 잘 알려져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지만 영화는 극 초반 우리에게 익숙할 수도 있는 한산대첩이 결코 쉽게 얻어진 승리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김한민 감독은 “한산대첩은 적당히 대승을 거둔 전투가 아니라 매우 어려운 전쟁의 국면에서 거북선을 새롭게 보완하고 이순신 장군과 주변 장수들이 협력해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승리임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냉혹한 왜군 지략가 와카자키(변요한 분)가 첩자를 파견해 거북선 도면을 훔쳐가는 바람에 거북선을 출정시키기 어려워지고, 경상우수사 원균(손현주 분)이 바다보다 진주성을 지켜야 한다며 내부 반발이 거세지는 등 이순신 장군은 수세에 몰린다. 하지만 그는 위기 속에서 학익진을 떠올리고 물길 전문가인 수 군향도 어영담(안성기 분), 전라우수사 이억기(공명 분), 거북선을 설계한 나대용(박지환 분) 등과의 협업으로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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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이순신은 주도면밀하게 전략을 짜서 승리로 이끄는 지혜로운 장수로 그려진다. 〈명량〉에서 배우 최민식이 카리스마 넘치는 용맹스러운 리더였다면, 〈한산〉의 이순신은 냉정한 시선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차분히 지략을 펼쳐내는 지장智將으로 그려진다. 김한민 감독은 역사 기록에 기초해 초기 이순신을 전략가이자 외유내강형 선비의 느낌을 강조했다. 

40대 후반의 젊은 이순신을 연기한 박해일은 이순신 장군의 고뇌와 기품을 거의 대사 없이 눈빛과 표정으로만 나타낸다. 박해일은 “이번에 호흡과 눈빛, 바닥에 서있는 자세가 대사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면서 “카메라가 안 보이는 곳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그림자와 기운을 구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난중일기』를 비롯해 한산대첩을 다룬 역사책을 탐독하고 촬영 전 통영 한산도 제승당(충무공 이순신 사적지)도 직접 찾으며 이순신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박해일은 “이순신 장군은 알아갈수록 흠결이 없으신 분”이라면서 “7년간 전쟁에 집중하기 위해 가족들과의 왕래도 자제한 것을 보면서 이순신이 확실히 보통 장수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총 30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대작인 만큼 총 51분 분량의 초대형 해상 전투 장면은 시사 전부터 기대를모았던 것이 사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배들이 학이 날개를 편 모양으로 펼쳐진 학익진과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적진의 틈새를 향해 돌진하는 거북선의 위용은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쉽게 흥분하지 않고 ‘정중동’으로 움직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이순신 장군의 ‘발포하라!’는 명령과 함께 적을 타격하는 장면은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김한민 감독도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결정적인 순간에 쾌감을 안기는 우직한 연출력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김 감독은 “이순신 장군의 중요한 덕목인 유비무환 정신으로 성실하고 집중력있게 전쟁을 준비하는 모습과 함께 치열하고 엣지 있는 해전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을 펼쳤을 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근거리 화포술과 백병전을 펼치는 등 체계적인 진법이나 〈명량〉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거북선의 맹활약은 민족적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 특히 실제 거북선의 모습이나 운영 방식 등에 관한 고증은 자료마다 달랐지만, 기본적인 사실에 기반해 전쟁에서 가장 효용성이 높은 거북선의 모습을 추론해 만들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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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의 해상 전투 장면은 배를 물에 띄우지 않고 강릉 스피드스케이트 경기장에 지은 영상특수효과VFX 세트장에서 촬영했지만 사전 시각화 작업이나 물에 대한 검증을 많이 거친 덕분에 특별한 이질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전쟁 장면에서 사운드에 묻혀 대사가 잘들리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낯선 시도지만 화면에 한글 자막도 달았다. 다만 〈명량〉에서 이미 한차례 대규모 해상 전투를 경험했던 관객들의 기시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숙제일 것으로 보인다.

〈한산〉에서는 해상 전투 못지 않게 육지전도 비중있게 다뤄진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순신의 신념을 보고 왜군에서 조선군의 조력자가 된 항왜군사 준사(김성규 분)가 등장한다. 이순신은 전쟁의 의미를 묻는 준사에게 임진왜란을 국가 간 전쟁이 아닌 ‘의義와 불의不義의 싸움’이라고 정의한다. 지나친 애국주의 대신 ‘의義’가치를 부각시키는 방향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감독은 “의는 한국인의 유전자에 각인된 개념이고, 근현대사의 역동성을 불러일으켰다”면서 “이를 실천한 상징적인 인물이자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룬 의의 원조가 이순신”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내년에 〈한산〉의 후속편인 〈노량: 죽음의 바다〉를 개봉하고, 관련 드라마도 제작하는 등 10년 넘게 이순신 프로젝트에 힘을 쏟고 있다. 지치고 힘들때 『난중일기』를 펼치면 위안이 된다는 김 감독에게 이순신 장군은 마치 운명과도 같은 존재일 터. 올곧고 충직한 신하이자 백성과 임금의 중간에서 균형감이 있는 인물로 그려진 이순신 장군의 시대 정신이 2022년 관객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은주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 연세대학교 불문과·동대학원 영상학 석사. 제44회, 제48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유튜브 채널 〈은기자의 왜 떴을까TV〉 진행.

 

 

 

* 《쿨투라》 2022년 8월호(통권 9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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