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평] 〈소설가 구보의 하루〉가 보여주지 않고, 보여주려는 것
[영화 월평] 〈소설가 구보의 하루〉가 보여주지 않고, 보여주려는 것
  • 송석주(영화평론가)
  • 승인 2022.02.0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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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다빈

브루스 채트윈은 “인간의 진짜 주소는 집이 아니라 길”이라고 했다. 낭만적이면서도 어딘가 좀 처연한 구석이 있는 이 말을 스크린에 펼쳐낸 영화가 바로 로드무비road movie다. 로드무비 속 주인공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자기 발견’이라는 성취를 손에 얻는다. 자기 발견으로 가는 길은 대체로 현실적 기초나 가능성이 없고, 헛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길을 제대로 걸어가면, 절대 행복이 눈 앞에 펼쳐진다. 물론 모든 로드무비 속 주인공이 주어진 길을 완벽하게 걸어가는 것은 아니다.

임현묵의 〈소설가 구보의 하루〉는 박태원의 단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각색한 영화다. 무명無名의 소설가 구보가 하루 동안 길 위에서 무언가를 보고, 듣고, 느끼는 여정을 담은 이 영화는 전형적인 로드무비의 궤적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떠오르는 궁금증 하나. 구보는 자신의 길을 제대로, 완벽하게 걸어가는 인물일까? ‘제대로’와 ‘완벽하게’는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관객이 구보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표면적으로 관객은 영화 내내 길 위에서 서성거리는 구보를 본다. 그런데 ‘보지 못하는 순간’도 있다. 바로 구보가 등을 보이고 있는 순간이다.

ⓒ필름다빈
생각에 잠긴 구보ⓒ필름다빈

앞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카메라는 원고 쓰기를 마친 구보의 뒷모습을 비추면서 꽤 오랫동안 그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에서 구보의 얼굴이 처음 드러나는 순간에 카메라는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카메라는 여전히 구보에게 밀착하지 않고, 방문 건너에서 그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오프닝 시퀀스의 마지막 쇼트에서도 카메라는 거울이라는 이차프레임에 갇힌 구보의 얼굴을 포착한다. 그러니까 카메라는 주인공의 얼굴을 관객에게 명확히 보여주지 않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영화의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엔딩 시퀀스에서 구보는 순수문학을 하겠다는 고집을 버리고, 출판사 지인에게 부탁받은 자서전 업무를 해보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다. 이때 카메라는 뒷모습을 보이며 집으로 돌아가는 구보를 쫓아가지 않고, 고정된 상태에서 바라본다. 요컨대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만으로 정의하자면, 〈소설가 구보의 하루〉는 뒷모습에서 시작해 뒷모습으로 끝나는 영화이다. 기본적으로 뒷모습은 관객에게 인물의 시선과 표정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여러 가지 상상을 유발한다. 즉 뒷모습은 내화면에 ‘존재’하지만 외화면처럼 ‘부재’하는 기이한 이미지인 것이다.

집에 있는 구보ⓒ필름다빈
집에 있는 구보ⓒ필름다빈

뒷모습을 보이며 걷는다는 것

〈소설가 구보의 하루〉처럼 주인공이 뒷모습을 보이며 걷는 행위가 중요한 영화들이 있다. 〈아비정전〉(1990)에서 아비는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친모를 뒤로하고, 적막한 산길을 혼자 걷는다. 이때 카메라는 그의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트래킹 쇼트로 포착한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는 연인과의 관계를 깨끗하게 정리한 아델이 뒷모습을 보이며 걷는 순간을 끝으로 엔딩 크레디트를 올린다. 〈소공녀〉(2018)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자신만의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거리를 배회하는 미소를 카메라가 빠르게 질주하는 지하철 안에서 순간적으로 담아내는 장면에 있다. 그렇게 인물들은 관객(혹은 카메라)의 눈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향한다.

카메라가 인물의 뒷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내화면의 세계를 외화면 ‘화化’한다는 말과 같다. 심은진은 “뒷모습은 의미의 사라짐이나 은폐가 아니라, 정면에서는 알 수 없는 진실을 전달한다”고 했고, 김영진은 “인물의 걷는 뒷모습은 표정에 인물의 감정을 가두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인물의 걷는 뒷모습은 카메라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순간 혹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 인물이 살아갈 삶을 다채롭게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비(非)가시적이면서도 가시적인 운동성을 지닌다. 앞서 언급한 영화 속 주인공들의 뒷모습을 실패나 절망, 좌절로 규정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보 마지막 장면ⓒ필름다빈
구보 마지막 장면ⓒ필름다빈

보여주지 않고 보여주기

로드무비 속 주인공은 주어진 길을 완주하기도 하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대개 전자를 ‘성공’으로, 후자를 ‘실패’로 간주하는데, 과연 그게 온당한 판단일까? 뒷모습을 보인 구보가 어떤 표정으로 걸어갔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나는 관객의 시선을 벗어난 프레임 바깥의 세상에서,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살아갈 구보의 삶을, 그러니까 그의 뒷모습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가 구보의 뒷모습으로 끝을 맺는 이유는 순수문학을 포기한 어느 소설가의 황망함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객이 확인할 수 없는 뒷모습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타진해보기 위함일 수도 있다.

〈소설가 구보의 하루〉는 소설가로 살고 싶은 구보의 의지와 생활인으로 생존하려는 구보의 안간힘이 뒤섞여 흐르는 영화이다. 상이한 두 물줄기로 이루어진 혼류가 스크린을 덮치는 것이다. 서두에서 제기한 질문을 다시 해보자.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가는 구보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미셸 투르니에는 “뒷모습이 진실”이라고 말했는데, 구보의 뒷모습은 어떤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참고문헌
심은진, 「두개의 시선: ‘카메라 정면보기’와 ‘인물의 뒷모습’」(2013)
김영진, 「〈문라이트〉가 잡아낸 분위기, 그 영화적 접근의 힘」(2017)

송석주
대학에서 경영학을,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공부했다. 2021년 제15회 《쿨투라》 신인상 영화평론 부문에 당선됐다. 문화교양지 《독서신문》에서 기자로 일하며 영화와 책에 관한 기사를 쓰고 있다. TBN 한국교통방송의 영화 코너 〈어떤 영화, 진짜 이야기〉에 고정 패널로 출연 중이다.

 

* 《쿨투라》 2022년 2월호(통권 9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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