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평] 〈코다〉가 장애인의 삶을 다루는 방식
[영화 월평] 〈코다〉가 장애인의 삶을 다루는 방식
  • 송석주(영화평론가)
  • 승인 2022.05.05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션 헤이더의 영화 〈코다〉가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코다CODA를 다루고 있다. 코다는 ‘Children Of Deaf Adult’의 약자로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한다. 〈코다〉의 주인공인 루비(에밀리아 존스)는 코다이다. 동시에 더 섀그스The Shaggs의 음악을 좋아하고, 수영과 다이빙을 즐기며, 짝사랑하는 남자친구도 있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코다가 등장하는 영화가 으레 그렇듯이, 루비는 1인분 이상의 삶을 산다. 생선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루비의 가족이 사기당하지 않고 생선을 제값에 팔려면 루비가 필요하다. 아빠의 사타구니에 염증이 생겨도 루비가 소환된다. 의사에게 병증을 소상히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할머니와 통화하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다. 중계인 서비스를 이용하면 되지만 비용이 부담스럽다. 루비는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은 여고생이다.

  그런 루비가 1인분의 삶만 살겠다고 선언하면서 영화는 변곡점을 맞는다. 가족의 생존을 위해서는 루비가 필요하지만, 그녀는 가족의 뒷바라지를 하며 더 이상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루비는 학교 선생님에게 개인 교습을 받을 정도로 음악에 재능이 있다. 실력을 갈고닦아서 대학에 가야 하지만, 루비 앞에 놓인 현실의 벽은 너무 높다. 〈코다〉는 루비가 그러한 현실의 벽을 어떻게 돌파해 가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코다〉 스틸컷ⓒ판씨네마(주)

  청인 자녀를 둔 농인 부모로 산다는 것

  한편으로 〈코다〉는 농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루비의 아빠와 엄마 그리고 오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단순히 코다의 성장영화가 아니라 청인 자녀를 둔 농인 부모의 지난한 삶을 다룬 영화로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영화는 곱씹어볼 지점이 많다. 그런 관점에서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루비와 아빠의 관계다. 우선 교내 합창 대회 때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루비를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에 관해 얘기해보자.

  루비가 노래를 부르는 순간, 영화는 모든 소리를 제거한다. 농인인 아빠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카메라는 딸이 아닌 청중을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을 포착한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아빠는 딸의 노래에 감읍한 청중을 본다. 노래가 끝나고, 청중이 일어나 박수를 치자 아빠도 덩달아 일어나 박수를 친다. 딸의 음색도, 노래의 제목도, 가사의 내용도 모르지만 일어나 박수를 친다. 같은 처지인 엄마와 오빠는 마냥 해맑게 웃는데, 아빠는 웃지 못한다.

  다음 장면에서 루비의 가족과 마주친 선생님이 루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말 전해줘. 따님은 매우 재능 있고, 대학을 안 보내는 건 끔찍한 실수를 하는 거라고.” 내일 음악학교 면접이 있지만 루비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잠시 접은 상태다. 그녀는 아빠가 혹여나 상처 받을까봐 선생님의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다. 그날 밤 아빠가 묻는다. “오늘 네가 불렀던 노래 어떤 얘기였어?” 루비가 답한다.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마음을 말하는 노래야.”

〈코다〉 스틸컷ⓒ판씨네마(주)

  자녀의 꿈을 응원하는 지혜로운 방식

  다음 날, 아빠는 루비가 음악학교 오디션을 볼 수 있도록 차로 바래다준다. “대학을 안 보내는 건 끔찍한 실수”라는 선생님의 말을 아마도 아빠는 입모양으로 대충 알아들었던 모양이다. 〈코다〉는 음악은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는다는 낡고 오래된 교훈을 전하는 음악영화가 아니다. 〈코다〉는 딸의 꿈을 진정으로 듣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간곡하고 처절한 귀 기울임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농인인 아빠가 청인인 딸의 꿈을 비로소 듣는 영화다.

  영화의 마지막, 음악학교에 합격한 루비가 집을 떠난다. 루비는 갑자기 차를 멈춰 세우고, 손을 흔드는 가족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아빠의 품에 안긴다. 근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말을 할 수 없는 아빠가 루비에게 육성肉聲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그 말은 바로 “Go”. 가족이 걱정돼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딸에게 아빠는 너의 꿈을 위해 어서 “가라”는 말을 무척이나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영화는 마법을 부려 아빠의 발화發話를 가능하게 한다.

  〈코다〉는 배 위에서 생선을 잡고 있는 루비에게 카메라가 서서히 다가가면서 시작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음악학교로 떠나는 루비를 카메라가 고정된 상태에서 바라보며 끝난다. 다가서다가 물러나서 바라보기. 이러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모든 부모가 점차 성장하는 자식에게 가져야 할 태도일 것이다. 장애를 가진 부모라고 다를 리 없다. 영화는 그러한 부모의 태도를 오프닝과 엔딩에서의 카메라 움직임으로 지혜롭게 형상화한다.

〈코다〉 스틸컷ⓒ판씨네마(주)

  〈코다〉가 장애인을 재현하는 방식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점은 〈코다〉가 장애인을 재현하는 방식이다. 영화는 장애인을 불쌍한 존재로 대상화하지 않는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평범한 인간으로 그려낸다. 그들은 섹스 욕구를 거침없이 뿜어내며,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에게 통쾌한 주먹을 날린다. 불합리한 대우에 수군대고 마는 비장애인들과 달리 그들은 벌떡 일어나 자신들의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한다. 이러한 재현 방식은 장애로 인해 자꾸만 움츠러드는 스크린 밖 실제 장애인들의 생활 반경을 확장하는 효과를 거둔다. 〈코다〉는 미덕이 참 많은 영화다.

 

 


송석주
대학에서 경영학을,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공부했다. 제15회 《쿨투라》 신인상 영화평론 부문에 당선됐다. 현재 이투데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TBN 한국교통방송의 영화 코너 ‘어떤 영화, 진짜 이야기’에 고정 패널로 출연 중이다.

 

* 《쿨투라》 2022년 5월호(통권 95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