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챗봇] AI와 爱ài
[AI 챗봇] AI와 爱ài
  • 배혜은(북경대학교 예술학과 박사 과정생)
  • 승인 2023.04.2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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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게 마음이나 감정을 학습시킬 수 있을까, 사람과 인공지능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이 물음은 수 많은 예술 창작자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공지능을 마주하게 되면서 한 번쯤은 고민해보았을 문제일 것이다.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을 예술 작품으로 볼 수 있는지의 여부부터 이 과정을 ‘창작’으로 볼 수 있는지까지 우리 예술계는 이러한 철학적 문제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갈 인류의 모습은 어떨지에 대해 중국 무용극 <深AI你>는 또 다른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선전시 선전극원유한회사에서 출품한 창작 무용극 <深AI你>은 2022년 제 13회 중국 무용계 최고상인 하화상荷花奖상에 노미네이트되고 2023년 3월부터 선전에서부터 시작해, 난징, 충칭, 상하이 등을 중심으로 전국 순회 공연을 이어나가며 중국 내에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공연 <深AI你>의 제목은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 먼저 ‘深’ 은 해당 무용극이 시작된 도시 선전深圳을 지칭하기도 하고, 깊은 감정의 정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 다음, 영문 AI는 인공지능을 뜻하기도, 또는 사랑할 애爱의 중국어 병음(발음 표기 기호)인 Theme‘ài’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경우 공연명은 “너를 많이 사랑해”로 해석이 된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사랑의 대상으로서, 인간의 눈에 비치는 AI, 혹은 AI의 시선에 담긴 인간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그렇게 사랑한다는 말인가?

중국가극무극원 국가 1선 감독 동예예佟睿睿와 극작가 뤄화이전罗怀臻의 협업으로 탄생한 이 무용곡은 과학기술이 인류에게 미칠 긍정적인 면모에 주목해 AI와 인간이 함께 사는 삶을 그려냈다. 연극이 아니라 무용극으로 장르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동예예 감독은 기계의 부자연스럽고 투박한 움직임은 그들이 사람과 함께 지내며 조금씩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지는 과정을 ‘무용’을 통해 드러내려고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인공인 샤오하이小海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게 되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그의 아버지는 AI이 어머니 역할을 대신하여 아이를 보살피도록 한다. AI의 보살핌으로 성장하는 샤오하이는 점점 인공지능에게 기계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둘이 함께하는 시간이 계속될 수록 AI의 프로그램 설정과 실제 감정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하는데 AI 배역을 맡은 배우의 움직임을 통해 이러한 과정을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역사의 많은 사상가들은 인간을 이성과 감정, 그리고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로 보았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요소는 이성이며, 감정 역시 이성의 통제를 받을 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하지만 방대한 양의 자료를 학습한 인공 지능이 등장하자 우리는 기계와 차별된 인간의 특징을 ‘감정’에서 찾으려고 하고 있다. 심지어 이제는 화두가 ‘인공 지능’에서 ‘인공 공감Artificial Empathy’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다. 1872년 독일 철학자 로베르트 피셔Robert Vischer는 공감의 기원을 ‘감정 이입’을 뜻하는 독일어 ‘Einfühlung’에서 찾았다. 이는 안에ein와 느끼다fühlen가 결합되어 생겨난 말로, 미학에서는 ‘들어가서 느끼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인류와 AI는 감정 이입이라는 의미에서의 ‘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MIT의 셰리 터클Sherry Turkle 교수는 저서 『외로워지는 사람들Alone Together』에서 인간이 기계에게 느끼는 친밀감은 인간 고유의 공감 기능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인공지능과의 교감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과 관련해서 챗봇과 인간이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 〈그녀Her〉(2013)를 떠올려볼 수 있다.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저런 미래가 정말 올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형체가 없는 AI와의 대화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 이 영화는 이제 우리가 멀지 않은 미래에 마주하게 될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당시 AI의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면모에 주안점을 둔 다른 SF영화와는 달리, 주인공 테오도르의 마음을 어루어 만져주는 AI 아만다의 소통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인간 관계에 피로감을 느끼던 이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AI에게 점점 더 빠져들었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 이르러 자신이 그저 기계의 챗봇의 고객 중 한명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테오도르는 조각조각난 환상 속에서 허탈함을 느낀다. 결국 피상적인 반응을 얻기 위해 기계에 더 의존하고, 사람을 회피한다면 결국 다들 외로움의 굴레 속에서 빠져나오기 점점 더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주는 것 같았다. 

이러한 환상의 산산조각은 무용극 <深AI你>에서도 드러난다. 샤오하이는 모성애에 대한 갈망을 AI로 채우려 하고, 결국 AI는 샤오하이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이 공연은 편리함이라는 장점으로 무장한 AI 앞에서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정의하고, 사랑이 무엇으로 대체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우리 스스로가 내려야한다는 사실도 넌지시 일러준다. AI와 사랑할 애, ài의 관계. 우리의 심리적 의존은 어떤 방향을 향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시점이다. 샤오하이와 테오도르처럼 일방적인 감정의 소통에 지나치게 빠지지 않도록 말이다.

 


배혜은 북경대학교 예술학과 문화산업/예술경영 전공 박사 과정생, 『올라 빠드레』 저자

 

 

사진 제공 선전시 선전극원유한회사

 

* 《쿨투라》 2023년 5월호(통권 10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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