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오늘의 영화 - 명량] 민족주의라는 궁극의 이념, 내러티브로 형상화하는데 성공
[2015 오늘의 영화 - 명량] 민족주의라는 궁극의 이념, 내러티브로 형상화하는데 성공
  • 김시무
  • 승인 2015.04.0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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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 감독의 대작 사극 〈명량〉의 흥행 열기가 뜨거웠다. 개봉당시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꿈의 숫자인 관객 동원 1천5백만 명을 넘어서 쾌속 항해를 계속했다. 극중 이순신 장군의 대사처럼 역대 흥행기록들을 모조리 충파衝破하면서 최대 1천8백만 명까지 가능하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영진위의 최종 집계에 따르면, 1천7백6십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영화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6년째인 1597년 한 발 물러섰던 일본군이 전열을 가다듬어 재침공을 해오고 이에 맞서 이순신이 거의 해체 직전의 수군을 다시 수습하여 결사항전에 나선다는 얘기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중늙은이가 무지막지한 고문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순신 장군(최민식)이다.

잘 알다시피 이순신은 임란 발발 초기 한산대첩閑山大捷을 비롯하여 수많은 해전을 승리로 이끎으로써 일본의 침략 야욕을 저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반대파들의 모략에 말려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겨우 목숨만을 부지하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그가 부재중인 사이 수군을 지휘했던 원균 장군은 칠천량 해전漆川梁海戰에서 왜군에게 대패하고 말았다.

영화 〈명량〉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이 그에게 남겨진 12척의 판옥선을 재정비하여 명량해협(울돌목)에서 왜선 330척과 맞서 싸워 결국 대승을 거두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사실 이 같은 내용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귀가 닳도록 들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2004년 9월 초부터 2005년 8월 말까지 총 106부작으로 제작된 KBS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이미 상세하게 다루어졌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왜 오늘날 사람들은 사극영화 〈명량〉에 열광하는 것일까? 참으로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부재한 우리나라 정치현실에서 리더십의 한 전범典範을 보여준 이순신의 면모에 매력을 느껴서일까? 〈명량〉에 대해서 나름대로 한두 마디 거드는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들은 하나같이 그 점을 강조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칼럼니스트 황진미는 이렇게 썼다.

“이순신이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즉시생’의 리더십은 병사들뿐만 아니라, 마침내 백성들까지 감화시킨다. 영화는 이순신과 백성과의 교감을 통해, ‘민족의 영웅’으로 박제화되어 있던 이순신을 인류애적 보편성을 지닌 숭고한 개인으로 재조명한다. 즉, 〈명량〉은 이순신이 구하려던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숙고함으로써, 이순신을 민족주의의 아이콘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의 진단이다.

“자신들과 견줄만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하는 이순신의 리더십을 보면서 관객들은 현재는 왜 이런 위인이 없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끼면서 오히려 영화 속 현실에 더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엄청난 국가적 위기 속에서 리더로서의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국란을 극복했던 이순신 장군 같은 진정한 리더가 오늘날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관객들로 하여금 극장으로 향하도록 한다는 것이 요즘 시론의 대세다. 인정할만한 진단이다. 하지만 이것이 흥행 성공의 진짜 원인일까? 나는 우리나라 관객들이 현실 정치에서 리더의 부재를 영화 속 주인공들의 리더십을 통해서 메우려고 한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에 다소 회의적이다. 영화의 흥행을 현실 정치에 대한 기대치와 단순하게 대응시킬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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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9월에 개봉되어 역시 천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추창민 감독의 사극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흥행돌풍을 일으켰을 때도 “진실로 백성을 사랑하는 왕(리더)에 대한 기대감의 표출”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그해 말 치러진 대선에서 우리가 뽑은 리더는 어떤가? 이듬해인 2013년 12월에 개봉된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도 천만 명을 훨씬 넘어서는 흥행대박을 터뜨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년기 변호사 시절을 모델로 했다 하여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키고, 흥행에 성공하면서 역시 진정성 있는 리더십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慘事가 터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렇다 할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고 정치권은 무기력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두 달 남짓 후 치러진 6·4 지방선거에서 민심은 다른 데로 쏠렸음을 입증했다. 리더십보다는 지역이기주의를 선택했던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난 7월 30일 국회의원 재보선 투표가 치러진 바로 그날 개봉된 〈명량〉은 첫날부터 최고의 관객기록을 경신하면서 최단기간에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 이날 야당이 참패하면서 현 정권이 세월호 정국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국민들이 과연 현실 정치에서 진정한 리더십을 원하기는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관객들은 영화 속 리더에 열광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손으로 그러한 리더를 뽑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참으로 개탄스런 일이 아닌가? 내가 〈명량〉의 승승장구의 원인을 ‘리더십이 부재한 사회와 리더를 찾는 사람들’에게서 찾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다.

혹자는 이 영화가 비교적 고증考證에 충실하다는 점도 흥행성공의 한 요인으로 꼽기도 한다. 〈명량〉은 이보다 앞서 개봉된 〈군도: 민란의 시대〉와 이후에 개봉된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 비한다면 정통 사극이라 불릴 만큼 고증에 신경을 쓴 것은 사실이다.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의 적대자antagonist로 등장하는 왜군의 지휘관인 구루지마 미치후사(류승룡)에서부터 조선으로 귀화한 왜인 준사(오타니 료헤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역사적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고증에 충실했느냐는 질문에 부정적인 대답도 많다. 우선 무엇보다도 영화의 라스트 시퀀스에서 관객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던 충파 전술은 역사적 근거가 희박한 영화적 설정이라는 점이다. 이순신이 탄 대장선이 선두에 섰다가 적함에 포위되어 백병전을 치루는 상황도 역시 영화적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서는 김한민 감독도 인터뷰를 통해서 그 같은 설정은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적 장치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그의 연출의 변이다.

“백병전 부분은 주제의식을 표현하는데 꼭 필요했다. 이순신 장군이 처절하게 싸우는 모습, 자기헌신을 하면서 극적으로 위기탈출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 이순신 장군의 그런 모습을 통해서 산 위에 있던 민초들과 장군들이 용기를 받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 개봉 후 고증에 대한 비판도 물론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제 기준점이 명확했다. 이 영화의 테마인 ‘이순신의 정신’을 보여주기 위해선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가는 과정이 필요했고, 그래서 넣은 장면이다.” (《경향신문》, 2014년 8월 19일)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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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명량〉이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었던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싶다. 하나는 영화의 내용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형식적 측면인데, 이 두 가지는 영화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념적 지향점과 장르적 특성으로 이어짐은 물론이다. 즉 이 영화는 민족주의民族主義라는 궁극의 이념을 기승전결이 잘 짜인 시각적 내러티브로 형상화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관객들의 높은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 나의 요점이다.

지금까지 사극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포함해서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 여러 편 제작되었지만, 〈명량〉 만큼 해전海戰장면을 리얼하게 다룬 작품은 없었다. 아니 사극을 통틀어서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만큼 시각적 볼거리(스펙터클)에 공을 들인 영화는 없었다는 것이다. 〈명량〉은 128분의 러닝타임 중 거의 절반에 이르는 시간을 해상 전투장면에 할애하고 있는데, 그 시간이 결코 지루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기존 임진왜란을 다룬 사극에서도 해상 전투신은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한다.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이 빠진다면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불멸의 이순신〉에서의 해전 장면과 〈명량〉의 그것 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좁은 울돌목에 왜선들이 새까맣게 등장하고 이에 맞서 소수의 조선의 판옥선이 출정한다는 설정은 비슷하지만, 이후부터 전개되는 이른바 해전의 작전구사에서 양자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전자에서는 해전을 지휘하는 이순신의 작전이 내레이션이라는 보충을 통해서 설명이 되는 반면, 후자에서는 오로지 스펙터클로만 해전이 치러진다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전자의 경우 양측 수군들의 치열한 교전이 펼쳐지다가 패색이 짙어진 적장의 모습과 승기를 잡은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교차로 보여주는 가운데 내레이션이 깔리면서 상황정리를 해주는데, 이때 시청자들은 조선 수군이 승리했다는 결과에 대한 정보만을 얻을 뿐, 어떻게 해서 전투에 승리했는지에 대한 과정 자체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명량〉의 경우 시각적 디에제시스diegesis 외에 일체의 내레이션이 없이도 전투 과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면서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대승에 이르는 대 역전逆轉드라마를 지켜보는 영화적 재미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영화적 재미가 선행되지 않았다면 〈명량〉은 결코 천만고지를 넘어 설 수 없었을 것이다. 리더십은 그다음 얘기다. 요컨대 이 영화에서는 이순신의 작전 구사를 구체적으로 시각화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극중 전투장면 속으로 동참하도록 유인하는데 성공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순신의 작전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한번 복기할 필요가 있다.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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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정 전날 이순신 장군은 아들 이회와 함께 만찬을 나누면서 아군이 가진 불안(두려움)과 적군이 가진 불안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면, 일말의 승리의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아군들 사이에 퍼진 불안은 물론 전력의 절대적인 열세에서 오는 패배의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최신 병기인 거북선이 빠진 상태에서 고작 12척의 전함으로 수백 척의 왜선을 도대체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승패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한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전력의 압도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적군도 역시 불안감에 빠져 있음을 이순신은 잘 알고 있었다. 이순신이 빠진 상태에서 치러진 칠천량 해전을 제외하고 왜군은 지난 6년간 단 한차례의 승리도 거두지 못했다. 이제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후 처음 치르는 전투에서 과연 그를 물리칠 수 있을까? 왜군들은 어느덧 해신海神으로 각인된 이순신을 먼발치서 지켜보면서 바싹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이순신은 과연 아군의 두려움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마침내 울돌목으로의 출정이다. 회오리가 워낙 심하여 울돌목이라 불리는 그 바다에 왜선으로 도배가 되다시피 하고 조선의 판옥선 12척이 일자진을 형성하며 왜선을 향해 진군한다. 하지만 왜선의 선봉대와 가장 가까이서 마주 한 조선의 전함은 이순신이 탄 대장선 단 한 척 뿐이다. 나머지 열 한 척의 배들은 엄청난 수의 적선과의 대면이 두려워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꽁무니를 뺄 채비를 갖추고 있다. 두려움의 첫 번째 시각적 형상화인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순신의 작전이 펼쳐진다. 적선들 중 가장 앞장서 나오는 배를 집중 포격하여 침몰시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적들의 공포감을 극대화시키는데 일정한 성과를 거둔다.

이 영화에서 압권은 대장선(판옥선)이 왜선들에게 포위되어 사면이 고립된 상태에서 백병전을 펼친다는 설정인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이순신 장군은 대포들을 갑판 아래 노를 젓는 곳(이른바 기관실)으로 전부 옮겨 한 묶음으로 만든 다음 일시에 발포를 하도록 지시함으로써 판옥선에 달라붙은 네 척의 왜선들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장면이다. 양측 전함들이 바싹 맞붙은 상태에서 여러 대의 대포를 한꺼번에 쏜다는 것은 거의 자폭에 가까운 작전이었지만, 이런 모험을 통해서 이순신 장군은 아군을 짓누르고 있는 두려움을 일시에 떨쳐버리고, 그것을 용기로 바꾸는데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고립된 상태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대장선을 외면하던 다른 판옥선의 조선 수군들이 불사조처럼 살아난 대장선을 보고 용기백배하여 반격에 나선다는 이 같은 설정이 그야말로 장관壯觀처럼 펼쳐진다. 이 대목에서 관객들은 감격의 도가니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스펙터클은 또 있었다. 때마침 바다 깊은 곳으로부터 몰려오는 회오리로 인해서 왜선들이 줄줄이 난파하기 시작하는데, 대장선도 마찬가지로 회오리에 말려들어 기울기 시작한다. 이 광경을 안타까이 지켜보고 있던 뭍의 백성들이 하나둘씩 조그만 어선들을 타고 대장선으로 몰려와 밧줄을 걸어 잡아당겨 난파직전에 구출하는 장면도 가슴뭉클한 감동을 준다. 장르적으로 말하면, 최후 순간의 구조last minute rescue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은 조선 수군은 이순신 장군의 일사불란한 지휘 하에 최후의 반격을 시도하는데, 바로 충파衝破작전이었다. 이순신은 비록 수적으로는 열세지만 왜선들보다 튼튼하게 지은 판옥선들을 거세게 밀어붙여 전의戰意를 상실하고 우왕좌왕하는 왜선들에게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린다. 매우 통쾌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김한민 감독은 아주 명민하게도 이와 같은 감동적인 장면들을 한 시간 이상 연이어 스크린에 펼쳐 보임으로써 전설로만 여겨졌던 12척 대 330척이라는 불가능한 전투를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그는 귀로만 들어왔던 설마 했던 역사적 사실을 시각화함으로써 보는 것이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이라는 상식을 새삼 입증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김한민은 〈명량〉이라는 영상 역사를 통해서 명량대첩의 가능성과 구체성, 나아가 현실성을 웅변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우리 관객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스펙터클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리더십은 덤일 뿐이다.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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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담고 있는 민족주의民族主義라는 이념적 지향점도 관객 유인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 알다시피 일본의 아베 정권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검증을 통해 무력화시키고, 나아가 평화헌법마저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침략전쟁을 감행할 수 있는 집단자위권을 명문화했다. 미국 오바마 정권은 이를 적극 지지했고, 우리나라 정부는 찍소리도 못했다. 우파들은 침묵했고, 반일 시위조차 없었다. 일본의 우경화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시점에서 일본의 침략야욕을 물리친 역사적 사건을 다룬 〈명량〉의 개봉은 매우 시의 적절했던 셈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아니 천만이 넘는 관객들은 왜적을 통쾌하게 무찌르는 조선 수군의 활약상을 보면서 현실 속 무력감을 일정부분 달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는 작품 외적인 상황이다.

문제는 작품 속에 구현된 민족주의다. 앞서한 평자는 이 영화의 미덕으로 이순신을 ‘민족주의의 아이콘’에서 해방시킨 것을 꼽고 있지만, 이는 피상적인 견해에 불과하다. 개인의 욕망보다는 애국적 충정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영화 속에 너무나도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극중 탐망꾼인 임준영(진구)과 그의 벙어리 아내(이정현)의 존재가 단적인 예다.

임준영은 적의 동태를 살피던 중 체포되어 왜선의 노잡이로 부역하게 되는데, 그 배가 하필이면 이순신 장군이 탄 대장선을 노린 일종의 가미가제였던 것이다.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듯이, 폭발물을 가득 싣고 대장선으로 향하는 그 배를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임준영의 아내 때문에 가능했는데, 극중 유일한 여성 메인 캐릭터인 그녀는 남편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배를 폭파하도록 혼신을 다해서 아군에게 수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이 장면도 역시 가슴 찡한 감동을 주지만, 그러한 감정이 애국심의 발로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가 민족주의의 아이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순신을 다룬 영화가 모두 국민적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중학생 때 전교생 단체로 관람했던 김진규 주연의 〈성웅 이순신〉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애국적인 내용을 지극히 조야한 형식으로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명량〉은 그 같은 내용을 너무나도 영화적인 시각적 스타일로 다루었고, 관객은 바로 그러한 스펙터클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이다. 〈명량〉은 사극 스펙터클의 정점에 서 있다.

 


김시무 영화평론가. 평론집 『영화예술의 옹호』(2001년). 감독론 『Korean Film Directors: Lee Jang-ho』(Kofic, 2009(영문판)). 부산국제영화제연구소 책임연구원 역임. 현재 (사) 한국영화학회 부회장. semiotician@nate.com

 

* 『2015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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