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 옹졸한 나의 담대한 고백
[고궁] 옹졸한 나의 담대한 고백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4.04.30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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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좀 읽는 사람들에게 ‘고궁’하면 바로 떠오르는 작품이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이다. 마흔 중반이던 1965년 김수영이 《문학춘추》에 발표한 이래 지금까지 널리 읽힌다. 탈고 날짜가 11월 4일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단풍놀이 겸 고궁에 나들이 갔다가 돌아와서 쓴 시로 짐작된다. 그가 여유만 즐긴 것은 아니었다. 그해 김수영은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6·3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성명서에 서명하였다.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일본의 제대로 된 반성과 보상이 없는 상황에서 국교를 서둘러 정상화하는 움직임에 많은 국민이 불만을 나타냈는데, 그 역시 박두진·조지훈·박경리 등 다른 문인들과 함께 6·3 한일협정 거부 대열에 합류하였다. 격렬한 시위에 참가하지는 않았으나 사회적 현안에 지식인으로서 나름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정세의 격랑 속에 김수영은 마냥 몸을 웅크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용감하게 앞으로 나선 일이 많지 않음을 부끄럽게 여겼다. 이 시도 그렇게 해서 탄생하였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독자가 대략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다. 실제 경험을 제시하고 자기 반성에 이르는 시적 전개 구조가 뚜렷하고, 형식이나 시어도 난해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김수영의 다른 시가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시적 층위를 여러 겹으로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한 겹만 들추는 안이한 독법으로 김수영 시에 접근하면 해석의 미로에서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말하면 그러기에 그의 작품을 읽는 의미와 재미가 동시에 생겨난다. 주제어인 고궁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이 시를 이야기해 보자. 새삼스럽게 들리겠으나 고궁은 곧 옛 궁궐이다. 까마득한 옛날에나 임금의 거처였지, 이제는 고풍스러운 건물을 구경하고 아름다운 조경을 감상하는 현대인의 관광지로 기능한다. 1960년대라고 다를 리 없다. 되풀이하지만 김수영도 단풍놀이 겸 고궁에 나들이했으리라.

고궁은 계절의 정취를 색다르게 느끼기에 제격이다. 당장 눈앞의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까닭이다. 유적과 유물만 남은 고궁에는 복닥복닥한 생활의 흔적이 없다. 그래서 고궁은 도심 한가운데 있음에도 일상과 거리를 두어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오늘날 시민 입장에서는 이벤트 삼아 한복 입고 사진 찍는 유희의 장소이기도 할 것이다. 이곳에서 엄숙한 전통 혹은 역사의 무게 등을 감지하는 이는 흔치 않다. 그러한 드문 사람 가운데 하나가 시인이다. 시민으로서 고궁을 즐긴 바도 없지 않았겠으나, 시인으로서 김수영은 “왕궁의 음탕”을 지각한다. 옛 궁궐을 음란하고 방탕하다고 표상하는 그의 태도가 지나치다고 할지 모르지만, 김수영은 고궁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권력의 부패한 냄새를 맡는다. 어떤가 하면 이것은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한 야유와 맞닿는다. 그가 방문한 옛 궁궐이 어디든지 간에, 북악산에 우뚝 자리한 청와대는 그곳들을 내려다보는 현재의 왕궁이다.

 

본 기사의 전문은 추후 공개됩니다.

 


허 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글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살고 있다. 2019년 비평집 『시차의 영도』를 냈다.

 

 

 

* 《쿨투라》 2024년 5월호(통권 11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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