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 옹졸한 나의 담대한 고백
[고궁] 옹졸한 나의 담대한 고백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4.04.30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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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의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 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뭇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난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전문

 

시 좀 읽는 사람들에게 ‘고궁’하면 바로 떠오르는 작품이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이다. 마흔 중반이던 1965년 김수영이 《문학춘추》에 발표한 이래 지금까지 널리 읽힌다. 탈고 날짜가 11월 4일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단풍놀이 겸 고궁에 나들이 갔다가 돌아와서 쓴 시로 짐작된다. 그가 여유만 즐긴 것은 아니었다. 그해 김수영은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6·3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성명서에 서명하였다.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일본의 제대로 된 반성과 보상이 없는 상황에서 국교를 서둘러 정상화하는 움직임에 많은 국민이 불만을 나타냈는데, 그 역시 박두진·조지훈·박경리 등 다른 문인들과 함께 6·3 한일협정 거부 대열에 합류하였다. 격렬한 시위에 참가하지는 않았으나 사회적 현안에 지식인으로서 나름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정세의 격랑 속에 김수영은 마냥 몸을 웅크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용감하게 앞으로 나선 일이 많지 않음을 부끄럽게 여겼다. 이 시도 그렇게 해서 탄생하였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독자가 대략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다. 실제 경험을 제시하고 자기 반성에 이르는 시적 전개 구조가 뚜렷하고, 형식이나 시어도 난해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김수영의 다른 시가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시적 층위를 여러 겹으로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한 겹만 들추는 안이한 독법으로 김수영 시에 접근하면 해석의 미로에서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말하면 그러기에 그의 작품을 읽는 의미와 재미가 동시에 생겨난다. 주제어인 고궁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이 시를 이야기해 보자. 새삼스럽게 들리겠으나 고궁은 곧 옛 궁궐이다. 까마득한 옛날에나 임금의 거처였지, 이제는 고풍스러운 건물을 구경하고 아름다운 조경을 감상하는 현대인의 관광지로 기능한다. 1960년대라고 다를 리 없다. 되풀이하지만 김수영도 단풍놀이 겸 고궁에 나들이했으리라.

고궁은 계절의 정취를 색다르게 느끼기에 제격이다. 당장 눈앞의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까닭이다. 유적과 유물만 남은 고궁에는 복닥복닥한 생활의 흔적이 없다. 그래서 고궁은 도심 한가운데 있음에도 일상과 거리를 두어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오늘날 시민 입장에서는 이벤트 삼아 한복 입고 사진 찍는 유희의 장소이기도 할 것이다. 이곳에서 엄숙한 전통 혹은 역사의 무게 등을 감지하는 이는 흔치 않다. 그러한 드문 사람 가운데 하나가 시인이다. 시민으로서 고궁을 즐긴 바도 없지 않았겠으나, 시인으로서 김수영은 “왕궁의 음탕”을 지각한다. 옛 궁궐을 음란하고 방탕하다고 표상하는 그의 태도가 지나치다고 할지 모르지만, 김수영은 고궁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권력의 부패한 냄새를 맡는다. 어떤가 하면 이것은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한 야유와 맞닿는다. 그가 방문한 옛 궁궐이 어디든지 간에, 북악산에 우뚝 자리한 청와대는 그곳들을 내려다보는 현재의 왕궁이다.

김수영문학관 제공.

알려진 대로 김수영은 4·19 혁명을 지지한 사람이었다. 그는 4·19 혁명을 계기로 등장할 수 있었던 우리 사회의 정치적 자유를 열렬히 환영한 만큼, 5·16 쿠데타로 그것이 사그라드는 정세를 안타깝게 여겼다. 이때 정치적 자유는 김수영 시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된다. “한번 정정당당하게/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당시 정부 시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공산주의를 이롭게 하는 선동으로 낙인찍혔다. 분위기만이 아니라 법이 그러했다. 1961년 제정된 반공법의 제재 영역은 실로 광범위했는데, 특히 4조가 언론의 자유—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가로막았다.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국외의 공산계열의 활동을 찬양·고무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법조문은 얼마든지 편의적으로 악용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적잖은 언론인과 문인들이 필화를 입었다. 세상의 진실을 글로 담아낸다는 지식인의 사명을 실천하기 힘든 시대였다.

그리하여 김수영이 선택한 방식은 본인의 진실을 폭로하는 글쓰기였다. 세상의 진실은 그럼으로써 간접적으로 드러날 터였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 그의 6·25 전쟁기 체험이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50년 피난을 떠나지 못했던 김수영은 인민군 의용군으로 끌려가 전장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다. 가까스로 인민군 부대를 탈출했지만 이번에는 경찰에게 “빨갱이”로 체포되어 거제 포로수용소를 거쳐 부산 포로수용소에 갇힌다. 관리 부실 속에 친공과 반공 진영이 뒤섞여 생활하던 거제 포로수용소는 살인 같은 강력 범죄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지옥도를 지나는 동안 김수영은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옹졸”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서는 목숨을 지키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러니까 이후 부산 포로수용소 야전병원으로 옮겨온 그에게 있어, 간호사들과 “스펀지 만들기와/거즈 접고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정보원은 비웃었을지언정 결코 사소한 행위가 아니었다. 김수영은 이를 ‘옹졸한 반항’이라고 규정한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는 “조금쯤/비겁한 것”. 그렇지만 그는 거대한 부당함에 어떤 식으로든 대항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변변찮게 대드는 자기를 대단한 척 꾸미지 않음으로써 독자에게 진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거악에 맞서 산산이 부서지기보다는, 이에 대한 분노를 감당 가능한 소악에 쏟아내는 사람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정말 얼마큼 적으냐……” 하는 한탄이 꼭 김수영에게만 해당하지는 않을 테다. 이 같이 고백하면서 그는 옹졸한 상태를 역설적으로 벗어난다. 진짜 옹졸한 자는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면서 자성하지 않는다. 김수영은 자신의 하찮음을 밝혀 하찮지 않은 존재로 거듭난다. 더불어 그는 별 볼 일 없는 본인을 대중에 공개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이 땅에 정치적 자유가 억압되어 있음을 고발한다. 원래 내가 옹졸한 것이 아니다. “옹졸한 나의 전통”은 결국 나를 옹졸하게 만드는 세계의 뿌리 깊은 폭력성에 바탕을 둔다. 단풍놀이 겸 고궁에 나들이했던 김수영은 옛 궁궐을 나오면서 이상의 생각을 정리해 시로 창작하였다. 고궁이 완상의 공간이기만 하지 않고, 보기에 따라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를 통해 다시 배운다.

 


허 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글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살고 있다. 2019년 비평집 『시차의 영도』를 냈다.

 

 

 

* 《쿨투라》 2024년 5월호(통권 11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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