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오늘의 영화 - 국제시장] 관객의 키워드를 정확하게 읽다
[2015 오늘의 영화 - 국제시장] 관객의 키워드를 정확하게 읽다
  • 손정순
  • 승인 2015.04.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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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이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되어 마지막 상영관까지 전석이 매진되는 쾌거를 이뤘다. 베를린 시민을 비롯한 해외 대다수 관객이 영화 속 주인공인 덕수(황정민)의 삶에 울고 웃었으며, 특히 파독 광부, 간호사 출신 재독 교포들은 영화를 관람하는 도중 연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파노라마 부문 디렉터 빌란트 슈펙은 “〈국제시장〉을 보고 매우 놀랍고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역사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이런 멋진 영화를 베를린 영화제에 소개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고 밝혔다. 현지 관객도 “독일 이야기가 나와서 낯설지 않았으며, 더군다나 아버지 이야기여서 스크린 속으로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족들을 데리고 영화를 관람한 한 파독 간호사 출신 여성은 “꼭 내 이야기 같았다. 50년 전 그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기억이 또렷해졌다. 정말 자료조사는 물론 영상 편집을 잘한 것 같다.”며 감흥을 감추지 못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체감한 〈국제시장〉의 인기몰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국내 관객 1,400만명을 돌파한 영화 〈국제시장〉은 지난해 북미에서 개봉된 외국어 영화 순위에서도 10위권에 올랐으며, 일본 상영을 계기로 부산관광공사가 일본인 관광객 유치에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런데 이같은 호평과 인기 못지 않게 〈국제시장〉의 역사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과연 무엇 때문일까?

대한민국 현대사와 〈국제시장〉

영화 〈국제시장〉을 향한 논란의 중심에는 늘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등장한다. 〈국제시장〉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흥남 철수 작전, 파독 광부, 베트남 참전, 이산가족 찾기 등 한국 현대사를 수놓은 굵직한 사건을 담았다. 기성세대에게는 삶 자체가 현대사였지만, 대부분 젊은 세대들에게 8·15 해방해방, 6·25 전쟁, 남북 분단 등은 까마득한 옛일처럼 생각된다. 이들에게 우리 현대사는 교과서나 미디어 속에 잠시 등장하는 카메오처럼 체감 정도가 낮을뿐더러 언제나 뭉뚱그려져 요약에 가까울 정도로 가볍게 훑고 지나가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 영화를 볼 경우 장님 코끼리 만지듯, 대한민국 역사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칫 편협한 역사관을 가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장님이 더듬거리며 자신이 만지는 부분이 곧 코끼리라고 믿듯이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 또한 역사의 특정 부분을 마치 전체인 것인 양 인식하게 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6·25 전쟁 이후 격랑의 현대사가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영화 속 스토리를 따라가 보자.

용서받지 못할, 그러나 기억해야 할 한국전쟁

영화가 시작되면, 흥남철수작전으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피란민들의 생존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 펼쳐진다. 어린 덕수는 “막순아, 여 운동장 아이다, 놀러온 게 아이다. 오라바이 손 꽉 잡으라.”고 소리쳤지만, 동생 막순이의 손을 놓치게 되고, 그로 인해 아버지와도 생이별을 하게 된다. 첫 장면부터 영화는 관객들의 마음을 울컥, 뒤흔들어 놓는 데 성공했다.

부산으로 피란 온 덕수는 고모가 운영하는 부산 국제시장의 수입 잡화점 ‘꽃분이네’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간다. 그 잔혹하고 힘들었던 피란살이가 고스란히 노래로 흘러나온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그러나 영화는 그 시절, 힘든 삶을 이어가는 서민들의 아픔과 실향민의 향수를 달래주었던 대중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흥남철수에서 시작해 국제시장 장사치의 생활을 그린 영화의 초반부는 바로 대중가요 〈굳세어라 금순아〉 편이었다.

군사정권과 산업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기록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고 통제하였다. 이 시기에 광부와 간호사 파독, 베트남전 파병이 이루어졌다.

모두가 어려웠던 그 시절, 영화에서도 주인공 덕수는 남동생의 대학교 입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이역만리 독일로 떠난다. 광부가 된 그곳에서 덕수는 첫사랑이자 평생의 동반자 영자(김윤진)를 만난다.

막장이 무너지는 등 죽을 고비를 겪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그는 가족의 터전이 되어버린 ‘꽃분이네’ 가게를 지키기 위해, 여동생 결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전쟁 중인 베트남행을 결심한다. 베트남행을 만류하는 아내와 공원에서 싸우던 중, 국기 하강식을 알리는 음악이 나오자 울면서도 가슴에 손을 얹고 국민의례를 한다. 아무리 영화라고는 하나 이 장면은 억지스럽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국기에 대한 강제적인 애국심 유도가 극에 달했던 그때, 모든 사람이 가던 길을 멈추고 일시정지가 되었던 그 시절이 있었다.

황지우 시인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고 그 시절의 초상화를 그렸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영화관에서는 본 영화를 시작하기 전 애국가와 대한 뉴스를 상영했었다. 철새들이 현란하게 날아오르는 모습은, 자유를 갈망하는 우리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객석에 서서 침묵한 채 그것을 멀뚱히 바라보아야 하는 그 시간만큼 자신이 바보스러웠던 때도 없었다. 이 시는 억압적인 사회 현실 속에서 자유로운 삶을 꿈꿨던 지식인의 비판적 태도와 현실적 절망감을, 영화관 속의 한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암시하고 있다. 아무런 갈등과 고민 없이 시대에 무조건 순응하는 인물들만을 그린 영화 〈국제시장〉 속의 상황과는 분명 다르다.

덕수는 ‘선장’이 되고 싶었던 자신의 오랜 꿈을 접고 베트남 전쟁터에서도 생사를 오가며 열심히 일한다. 당시 베트남전 참전은 한국경제 성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참전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던 당시 사회의 이면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베트남전 참전으로 인해 가난했던 우리 곳간에 쌀은 쌓였겠지만 베트남 민족에게는 씻을 수 없는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다시 영화는 1980년대 이산가족 찾기로 이어진다. 흥남 부두 철수 때 헤어진 아버지와 여동생을 애타게 찾는 덕수의 모습은 한국전쟁 당시 이별의 아픔을 다룬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의 노랫말과 어우러지면서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자아냈다.

가장 극적인 부분은 바로 이산 가족 찾기에서 덕수가 막순(스텔라 킴 초이STELLAR KIM CHOE)을 만나는 장면이다. 난데없이 LA에 살고 있는 여인이 TV 화면에 등장해서는 통역을 사이에 두고 이것저것 사실관계를 맞추어본다. “I remember…I remember… 여긴 운동장이 아니다. 놀러 온게 아니다.” 찢어진 옷자락을 대조하며 친남매임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울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 이산가족 프로그램 녹화분을 편집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스텔라의 연기력과 표현력은 놀라웠다.

대중의 키워드, 관객의 키워드를 정확하게 읽어낸 〈국제시장〉

이처럼 〈국제시장〉은 한국 현대사를 수놓은 굵직한 사건을 담았지만, 좀 더 미시적인 한국 현대사는 다루지 못했다. 대한민국이라는 큰 줄기의 역사가 아니라 대중가사 속 애환처럼 감독의 눈으로 일부분만을 옮겨놓았다. 상업영화의 귀재인 윤제균 감독이 대중의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편집한, 관객의 키워드로 정확하게 읽어낸 한국 현대사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국제시장〉 속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아는(모른다면, 알아야 하는)이승만 대통령 시절의 부정 선거와 4·19혁명으로 인한 하야, 곧이어 일어난 5·16 군사쿠데타와 18년의 군사독재, 산업화를 이루기 위한 경제성장, 전두환 정권과 5·18 광주민중항쟁, 1970년대 반독재투쟁, 1980년대 민주화운동 등 주요 역사적 사실들은 없다. 그러다보니 독자들에게 올바른 역사 읽기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진보적인 역사가나 평자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아버지의 이름으로 역사를 편집했다는 비난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00만이라는 관객을 울고 웃게 만든 〈국제시장〉은 분명 성공을 거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여 대중을 상대로 한다는 점에서 문학 작품 또는 예술품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산업적 논리를 적용하는 상품으로 볼 수 있다. 즉 예술성을 중시하는데 예술과는 달리 영화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표현되는 대중성과 수익성을 추구한다. 영화 산업이 단순한 예술의 한 장르가 아닌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는 오늘날, 독립영화가 아닌 상업영화를 지향한 윤제균 감독으로서는 현재 대중의 심리를 파악하고 정확하게 읽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몇 차례 울컥하며 솟아오르던 그 감동이 대중적인 속성이라고, 천박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남진(정윤호)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생의 일대기를 소화한 덕수(황정민) 등 전 출연진들의 연기는 탁월했다. 완벽한 조합을 이룬 캐스팅은 물론, 촬영, 조명, 미술, CG, 의상, 음악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크고 작은 부분들이 어우러져 〈국제시장〉의 완성도를 한층 더 높였다고 볼 수 있다.

한때 문학사에서도 100만 독자를 울렸던 한국의 베스트셀러 시집들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현대문학사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더 단단해져서 문학사에서도 빛나는 업적을 이룬 사례도 존재한다. 이처럼 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평가는 관객수도 아니요, 지금의 논객도 아니요, 앞으로의 역사가, 영화사가 판단할 몫이다. 또한 영화를 바라보는 각기 다른 관점의 차이도 윤제균 감독이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오롯이 지고가야 할 몫이라고 생각된다.  

 


손정순 고려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 졸업. 2001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동해와 만나는 여섯 번째 길』, 저서로 『흰 그늘의 미학, 김지하 서정시』 『목월 詩의 현대성』등이 있음. 쿨투라 편집인, 숭의여대 겸임교수. more-son@hanmail.net

 

* 『2015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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