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오늘의 영화 - 끝까지 간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2015 오늘의 영화 - 끝까지 간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 달시 파켓
  • 승인 2015.04.01 0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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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영화들을 전혀 닮지 않은 엄청난 오리지널 필름을 만들어 내는 것 과 잘 정립된, 친숙한 장르 영화를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가게 하는 것 중 과연 어떤 것이 더 많은 창의력을 요구하는 걸까? 외견상 김성훈 감독 은 그의 데뷔작 〈애정 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2006)에서 첫 번째 방식을 취했던 것 같다.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이 이전 한국 영화에 등장했던 캐릭터 유형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주인공들의 행동은 상당히 뜬금없이 이루어져 이것을 이해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백윤식이 연기하는 인물 동철동은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 길이를 재어 보기도 하고 만약 휴지 길이가 광고에 나온 것보다 짧다면 제조사를 고소해 버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이런 지점은 분명 창의적으로 만들어 진 부분이라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영화에 수차례 등장하는 불꽃 튀는 창의력은 참담할 정도의 작품 리뷰와 미진한 박스오피스 성적에서 작품을 구해 내지 못했다.

그 다음으로 발표한 영화 〈끝까지 간다〉에서 김성훈 감독은 두 번째 방식을 택했는데, 김 감독의 경우, 그 방식이야말로 이전 방식에 비해 훨씬 더 성공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한국 영화 산업은 매년 스릴러나 경찰 드라마 장르의 영화들을 다수 만들어 오고 있다. 엄청난 편수의 한국 영화 를 보는 비평가들에게 그 모든 하드보일드 형사들이나 무자비한 살인마들 을 머릿속에서 지워 내지 않으면서, 무지막지하게 복잡해 하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영화를 그 기억 속에서 만들어 낸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끝까지 간다〉는 다르다. 이선균이 연기하는 건수와 조진웅이 맡은 창민은 기억될 만한 인물들이고, 그들의 대립 관계는 조마조마한 긴장감으로 넘친다.

형사로 재직 중인 건수는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히 훌륭할 게 없는 사람이다. 감찰반이 내사에 착수한 일에 깊이 관여된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감추기 위해 서둘러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자리를 뜬다. 어둠이 내린 조용한 도로 위에서 서행 운전을 하던 그는 개를 피하기 위해 방향을 틀게 되고 결국 개 대신 사람을 치게 된다. 피해자는 죽었고 개를 제외하고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목격자는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시신을 트렁크에 넣고 계속해서 차를 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넘어야 할 장애물은 도로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부터 시신을 처치해야 한다는 긴급한 필요성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앞에 놓여 있었고, 건수가 시신을 처치하던 장면은 가히 올해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가장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허나 그가 재앙을 성공적으로 피하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무자비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자 건수의 어두운 비밀에 대해 모두 알고 있는 듯한 인물인 창민은 그에게 연락을 취한다.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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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장르라는 한계 속에서 창의력 넘치면서도 기억될 만한 영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친숙함과 낯섦을 효과적으로 섞어 내는 것을 포함하기도 한다. 만약 장르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그저 관객에게 친숙하게 다가오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지루할 것이다. 다른 한 편, 만약 너무 많은 새로운 요소들이 이야기 속에 투입된다면 보는 이들은 심지어 이 영화가 대체 무슨 장르의 영화인지조차 감지하지 못할 것이다. 장르 영화를 접할 때 느끼게 되는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그 장르의 뻔한 특징들을 감지 하는 것이자 동시에 감독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요소에 대해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장르 영화 예술은 친숙한 것과 낯선 것을 효과적으로 접합시켜 기억에 남을 만한 결합으로 만들어 낸다.

어떤 점에서 〈끝까지 간다〉는 완전히 친숙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심지어 자신이 저지른 실수가 너무나 명백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영웅을 등장시키는 이 영화에 대해 찬사를 보낼 수도 있다. 언제나 옳은 판단만 내리는 청렴하기 이를 데 없는 영웅을 등장시키는 것에 비해 훨씬 더 재미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특징은 사실상 한국의 스릴러 장르에서는 그리 새로운 게 아니다. 건수는 그 성격화의 디테일들 때문에, 그리고 감독이 건수의 필사적임과 내적 투 쟁을 관객들에게 시각적으로 잘 전달하기 때문에 기억에 남을 만하다. 그 는 버려진 길 위에 세워 둔 자신의 차 트렁크 속에 시신을 숨길 때,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개와 눈이 마주친다. 웃기면서도 조금 터무니없는 순간이 지만, 한편으로는 꽤나 비극적인 순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상반되는 감정 이 섞이는 까닭에, 지금껏 익숙하고 지루하다 여겨져 왔던 장면은 뇌리에 남을 만한 것이 된다.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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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서 이 영화의 성공은 지극히 단순한 역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토리는 특별하리만치 잘 짜여 있어, 매 장면마다 등장하는 건수의 딜레마와 도전은 관객들을 적절하게 다음 장면으로 이끈다. 매 장면마다 다음에 무슨 내용이 펼쳐질지 암시해 주기 때문에 구구절절 설명하느라 쓸 데 없이 낭비되는 시간도 없다. 그리고 매 장면마다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우리를 놀라게 하는 순간들이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드물게 찾아볼 수 있 는 이런 장면 중 하나가 바로 플롯의 진행이 안도감 넘치게 흘러가던 극 중 분위기를 놀라울 정도로 재빠르게 공포스러운 상황으로 몰아가던 순간 에울려 퍼지던 예기치 못한 핸드폰 소리인데, 이 영화를 본 독자들이라면 내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지 알 것이다.

또한 좋은 스릴러물은 그에 적합한 상대역을 필요로 하는데, 이 영화에 서 상대역을 맡은 조진웅이야말로 때론 부드럽고 때론 잔혹하지만 언제나 카리스마 넘치는 특유의 연기로 영화에 많은 부분 기여한다. 스릴러 장르에 친숙한 우리 관객들은 가차없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가학적이기도 한 창민을 기대한다. 하지만 그가 발산해내는 분위기에는 위협과 매력이 교묘하게 섞여있다. 심지어 아무리 스릴러물에 등장하는 상대역의 전형을 띨지라도 그의 행동은 쉽게 예측하기 힘들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가 성취한 모든 면들을 놓고 봤을 때, 올해 만들어진 최고의 영화들 중 하나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다고 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그야말로 기분 전환용 오락거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 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이 영화는 경찰 조직 또는 그 어디서나 횡행하는 공직 부패에 관한 풍자로서 의미가 있다. 영화는 그들의 법이 어떻든지 간에 강자가 약자를 착취해 내는, 뿌리까지 썩어 버린 체제를 그려낸다. 비록 이 영화가 그런 개혁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식의 엄청나게 긍정적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개혁의 필요성은 명백하게 나타내 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주제는 좀 더 넓은 사회적인 차원으로까지 확대된다.

내 생각에 이 영화가 영화를 그토록 효과적으로 만들어 주었던 팽팽한 집중력을 잃어버리는 것은 건수와 창민의 마지막 대결에서인데, 다름 아닌 영화의 결말부에 이르러서다. 한국 상업 영화 산업에서 간결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듯한데, 관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한 번 더 이야기를 꼬아 버리거나 한 번 더 쓰디 쓴 대립 관계를 만들어 내려는 욕망(또는 압박?)이 늘 있으니 하는 말이다. 오늘날의 영화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뭔가를 더 원하게 하는 대신, 관객들의 배를 가득 채워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에서 볼 수 있듯, 영화 최후에 가장 야심적인 폭력적 스펙터클을 연출하는 것은 가장 지겨운 동시에 불필요한 것이다. 만약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끝까지 간다〉는 그만큼 더 볼만하지 않았을까? (번역 손옥주, 감수 전찬일)

 


Darcy Paquet 1972년 메사추세츠 출생. 〈원 나잇 스탠드〉 〈돈의 맛〉 〈산타 바바라〉 〈루이스 자네티의 영 화의 이해〉 등 출연. 〈코리아 필름〉운영자, 〈씨네21〉 영화칼럼니스트, 영화자문위원회 영어 자문, 경희대 연극영화과 겸임교수 역임. darcypaq@gmail.com

 

* 『2015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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