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오늘의 영화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노년을 아름답게 사는 법
[2015 오늘의 영화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노년을 아름답게 사는 법
  • 김기봉
  • 승인 2015.04.01 0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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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객 478만 명을 돌파해서 역대 다양성 영화 흥행 1위에 등극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후 〈님아…〉)는 76년간 연인으로 살았던 노부부 이야기다. 89세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조병만 할아버지. 이 둘은 어딜 가든 고운 빛깔의 커플 한복을 입고 두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봄에는 꽃을 꺾어 서로의 머리에 꽂아 주고, 여름엔 개울가에서 물장구치고, 가을엔 낙엽을 던지는 장난을 하며, 겨울엔 눈싸움을 했다. 이들의 일상은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 연인끼리 하는 매일 매일의 데이트다. 행동은 세상에서 가장 친한 사이로 허물없이 하지만, 말은 깍듯하게 존댓말을 한다.

세상에 과연 이런 부부가 실제로 있을까? 허구 같은 현실을 찾아내 신선한 감동을 선사하고 삶의 기적을 보여주는 것이 KBS 〈인간 극장〉과 같은 다큐멘터리다. 이 시리즈의 ‘백발의 연인’편을 봤던 진영모 감독은 그 노부부의 그 이후의 삶과 사랑이 궁금해서 영화 〈님아…〉를 만들었다. 김 감독은“노부부의 일상을 통해 위대한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과연 그렇게 사랑했던 부부가 어떻게 이승에서 저승으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이별을 했을까?

ⓒCGV 아트하우스, 대명문화공장
ⓒCGV 아트하우스, 대명문화공장

인간에게 가장 일상적인 것이면서 비일상적인 것이 사랑과 죽음이다.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사랑은 삶의 전부다. 하지만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말해야 했던 것처럼, 사랑조차도 시간의 변화를 이기지 못한다. 인간은 그렇게 철들면서 살다가 한순간에 가는 존재다. 하지만 애들처럼 소꿉장난하면서 일상을 살았던 〈님아…〉의 부부는 평생 철들지 않고 살다가 죽음의 이별을 했다. 인간에게 가장 확실한 것이 죽음이지만, 가장 불확실한 것이 언제 죽느냐다.

〈님아…〉가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필자가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랑과 죽음이라는 인간에게 가장 비일상적인 이벤트를 아름다운 일상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있을 수 있는가?

한국 사회는 전체 인구 중 노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7%인 고령화 사회를 지나 14%에 이르는 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목전에 있다. 이는 세계에게 가장 빠른 속도다. 노년이란 인생의 겨울이다. 이제 대다수 한국인들은 긴 인생의 겨울을 살아야 한다. 긴 겨울을 춥게 지내다가 한 해가 마무리되는 것처럼 죽음이 찾아온다. 우리는 이런 삭막하고 비참한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결국 답은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라는 해법으로 긴 노년의 삶을 즐기며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님아…〉는 변하는 사랑의 현실에서 변하지 않는 사랑의 유토피아를 보여주었기에 2014년 연말을 장식하는 영화가 됐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한다. 흔히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여자는 마지막 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남자는 여자 앞에서 한없이 강해지지만 여자는 남자 앞에서 한없이 작아 진다.” 하지만 〈님아…〉에는 이 같은 비대칭과 불평등이 없다.

ⓒCGV 아트하우스
ⓒCGV 아트하우스, 대명문화공장

첫사랑이 과거라면, 끝 사랑은 미래다. 첫사랑이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을 처음으로 만났던 때라면, ‘끝 사랑’은 같이 죽어 갈 사람을 찾는 일이다. 첫사랑은 사랑의 시작이고 이뤄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쉬움의 여운 때 문에 영원히 아름다운 것으로 기억된다. 마지막 사랑을 하는 ‘끝 사랑’은 사랑의 완성을 추구하지만, 결국은 죽음의 이별을 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추억하며 다시 만나는 것을 꿈꾸지만,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해로하기를 원하는 ‘끝 사랑’은 어떻게 이별할 것인 가를 고뇌해야 한다. 미련을 남기는 사랑이 청춘의 첫사랑이라면, 미련 없이 잘 떠나보내는 것이 노년의 끝 사랑이다. 〈님아…〉가 신드롬을 일으킨 이유는 첫사랑이 평생의 연인으로 지속되어 끝 사랑까지 이어졌다는 기적이다.

노년이 일상이 된 시대에서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이상적인 삶의 동반자는 부부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오랫동안 시간의 시금석을 통과한 관계가 부부다. 이전에는 가족을 위해 부부가 존재했다면, 오늘날에는 부부 관계를 중심으로 가족이 존재한다. 사회의 고령화가 진척될수록 점점 가족에 대한 부부의 우위는 커진다. 〈님아…〉에서처럼, 끝까지 남아 있는 가족은 부부밖에 없고, 자식이란 품 안에 있을 때만 가족일 뿐이다.

노부부의 일상을 찍은 다큐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할아버지의 죽음이다. 76년을 해로한 부부가 어떻게 이별할 것인가? 이별 의식은 남아 있는 사람의 몫이다. 영화에서는 인상적인 이별 의식이 행해진다. 죽은 자의 옷을 태운다. 죽음은 산 자와 이별이지만, 죽은 자와 재회다. 할아버지가 강을 건너야 할 시간이 가까워질 때,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시장으로가 죽은 아이들의 내복을 샀다. 3세짜리 3벌, 6세짜리 3벌, 남자애와 여자애 옷 각각 3벌씩이다. 가난 때문에 살아 있을 때는 입히지 못했던 예쁜 내복을 할아버지가 죽어서 애들을 만나면 주라며 새 옷을 불에 태운다. 이승에서 저승의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물질이 비물질로 전화돼야 한다. 죽음이란 물질인 내 몸이 없어지는 것, 곧 갖고는 강을 건널 수 없는 육체의 옷을 벗는 일이다. 결국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인생이다.

죽음이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강을 건너는 일이다. 강을 건너기까지 이승의 시간을 흘러 보내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는 같은 강물을 두 번 건널 수 없다. 오직 현재만이 있다. 그 현재를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젊은 시절이라면, 노년이란 그런 젊었을 때의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죽음의 종말 앞에서 현재를 사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 때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하는 삶에서 벗어나 오직 현재만을 충실히 사는 시간이 노년이라면, 그렇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는 명언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다. 카르페 디엠의 잘 알려진 의미는 “현재를 잡아라.”다.

2014년에 화제를 일으킨 또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가 〈보이후드Boyhood〉(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다. 이 영화는 12년 동안 같은 배우들을 촬영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메이슨은 6세 아이로 시작해서 대학생으로 성장한다. 그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다. 흔히 생의 모든 순간은 사라지고 결국 사진만이 남는다고 말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순간을 포착하는 카르페 디엠의 예술이다.

그런데 〈보이후드〉의 마지막 장면에서 대학생이 된 메이슨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가는 대신 새로 만난 룸메이트와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그녀의 친구와 함께 산에 오른다. 산 정상에서 펼쳐지는 숨 막힐 듯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룸메이트 여자친구의 친구는 말한다. “흔히들 순간을 붙잡으라고 말하지만, 난 이 말을 거꾸로 해야만 할 것 같아. 순간이 우리를 붙잡는 거야.” 그녀는 카르페 디엠의 의미를 뒤집었다. 이 전도의 의미는 무엇인가?

ⓒCGV 아트하우스, 대명문화공장
ⓒCGV 아트하우스, 대명문화공장

영화에서 메이슨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매우 대조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 아버지는 평생 떠돌이 생활을 하는 백수건달이지만, 어머니는 자식 딸린 이혼녀로 공부를 시작해서 심리학 교수까지 된 입지전적인 여인이다. 세 명의 남자와 이혼하고도 두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 낸 어머니가 내일이면 대학 기숙사로 들어가기 위해 이삿짐을 챙기는 아들에게 “네가 처음 찍은 사진을 기념으로 가져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들은 그 사진을 내팽개친다. 그러자 어머니 감정이 마침내 폭발한다. 그녀는 울부짖는다. 그토록 열심히 살았는데 인생에서 남은 건 하나도 없다고. 과연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산 정상에서 했던 “순간이 우리를 붙잡는 거야.”라는 말이 이 물음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강물을 두 번 건널 수 없듯이, 인간은 시간을 잡을 수 없다. 강물에 나를 맡겨야 수영을 할 수 있듯이, 순간이 나를 잡는 삶을 살 때 인간은 현재를 향유할 수 있다.

젊었을 때는 시간을 잡고자 하지만, 늙으면 시간이 나를 잡는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다. 이 말을 셰익스피어는 〈리처드 2세〉에서 멋지게 표현했다. “지금까진 내가 시간을 함부로 썼는데 이제 시간이 나를 함부로 대하네.” 결국 노년의 사라짐을 보여준 〈님아…〉와 소년의 성장을 보여준 〈보이후드〉는 시간에 관한 동일한 메시지를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으로 이야기했다.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웜 홀worm hole’의 삶을 살게 하는 명언이 ‘카르페 디엠’이다. 원래 이 말은 호라티우스의 “현재를 즐겨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에서 유래했다.

어떻게 〈님아…〉의 부부는 첫사랑과 끝 사랑이라는 과거와 미래의 사랑을 관통하는 ‘웜 홀’의 기적을 만들었을까? 노년의 영화 〈님아…〉와 청춘의 영화 〈보이후드〉에 그 답이 있다. 둘 다 일상을 다큐로 찍은 시간에 관한 영화다. 내가 순간을 잡는 것이 아니라 순간이 나를 잡게 하는 것, 다시 말해 내가 사랑을 잡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나를 잡는 일상을 사는 것, 이것이 노년이라는 긴 겨울을 나고 죽음의 강을 아름답게 건너는 법이다.

 


김기봉 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독일 빌레펠트Bielefeld 대학 박사 학위 취득. 문화사학회 회장,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장 역임. 역사학회 부회장. 저서로는 『역사들이 속삭인다: 팩션 열 풍과 스토리텔링의 역사』 『팩션 시대: 영화와 역사를 중매하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가족의 빅뱅』 등이 있음. nowtime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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