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오늘의 영화 - 보이후드] 우리와 영화의 성장담: 〈보이후드boyhood〉를 중심으로
[2015 오늘의 영화 - 보이후드] 우리와 영화의 성장담: 〈보이후드boyhood〉를 중심으로
  • 엄준석
  • 승인 2015.04.01 0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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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삶을 지긋하게 바라보고 고민하는 일은 바람직하다. 그 지긋함이 이전에는 없던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더 잘 볼 수 있게 하고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우리 안엔 너무도 많은 다름이 있어 짧은 생각으론 그를 다 보고 또 안을 수 없다. 지긋함이 결여된 탓에 안아 품어 내기는커녕 매몰차게 우리를 우리의 바깥으로 내몬 우리의 경험이 있다.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런 지긋함-미련함이 중요한 건 더한 미련함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 그리고 영화와 함께 세상과 삶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 결과 누구보다 세상과 삶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 됐다. 여기 우리의 마음 한편에 흔들리는풀꽃이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시인 나태주와 함께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부지런히 보고 생각했기에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언어를 일구어 낼 수 있었다. 세상이 밝아지거나 어두워지기 전[Before](〈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1995), 〈비포 선셋Before Sunset(2004),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2013)), 즉 존재가 떨리는 그때를 18년 동안이나 포착했던 지긋함. 여섯 살이었던 메이슨 주니어(엘라 콜트레인)와 그의 누나 사만다(로렐라이 링클레이터), 그리고 엄마 올리비아(패트리샤 아퀘트)와 아빠 메이슨 시니어(에단 호크)와 함께 그들의 주변 사람들을 12년 동안, 동일한 스태프와 함께 포착했던 미련함(〈보이후드〉). 이 지긋함과 미련함 덕에 우리는 더 나은 존재가 되었다.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

ⓒIFC 필름스
ⓒIFC 필름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로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포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만이었다. 〈보이후드〉는 12년 동안, 매년 약 15분씩 영화 속 인물들을 포착, 재현했다. 헌데 비포 시리즈처럼 18년간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를 포착, 재현했지만숱하게 대화하고 싸우고 화해하는 두 사람이지만 여전히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이며, 관객 또한 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그들이 어떤 관계를 맺어 나갈지 쉬이 정의할 수 없게 했다. 영화 내 인물들의 삶을 쉬이 규정할 수 없게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어떤 정의와 규정을 내리게 하기보다 그저 영화 속 인물들의 12년 동안의 삶에 흥미를 가지게 했고 또 별 탈 없이 잘 살아온 것 자체에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했다. 건강한 몸으로, 크게 변하지 않은 얼굴로, 여전히 영화에서 모습을 드러내 준다는 것 자체에 고마웠었다. 영화의 마지막 올리비아가 메이슨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자신의 모성적 욕망과 의지를 벗겨 낸 것처럼, 우리로 하여금 그들 인생의 시작과 끝을 모조리 목격하려는 판옵틱panotic한 욕망을 벗겨 내고 그들을 개별적 주체로 인식하게 한 것이다. 12년 동안의 세월이 압축된 165분의 짧지 않은 세월을, 짧지 않은 러닝 타임 즉 영화적 세월로 봤지만,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대상을 만났고 또 그들을 떠나보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IFC 필름스

반대로 우리는 이 영화이전에 영화 속 두 의붓아버지 빌 웰브록(마르코 페렐라)과 짐(브래드 호킨스)처럼 어떤 강박과 기만 속에 살았다. 그들은 술에 취한 채집안일은 다 했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몇 시까지 집에 오기로 했지?’ ‘알아듣게 말해라는 말명령을 일삼는다. 눈앞에 있는 대상의 모든 것을 다 포착, 재현하고 다 알아야 한다는 욕망 속에 갇혀 있다. 상대에 대한 기다림과 지긋함이 없는, 상대에의 윤리가 결여된 태도다. 이 태도는 우리에게서, 우리의 사회와 역사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려 보자. 빌 웰브록은 자신의 강의를 듣던 올리비아와 재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녀의 아들 주니어 메이슨이 왠지 못 미덥다. 아니, 그가 자신의 시선과 인식에 온전히 포착, 재현되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주니어 메이슨의 개성 있는 긴 머리카락을 몽땅 잘라 버린다. 흥미로운 건 주니어 메이슨이 다른 남자아이들과 함께 몰래 야한 사진을 보던 직후 그 거세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 이는 그와 진솔하게 대화하며 내면을 엮고 섞으려 했던 아버지 시니어 메이슨의 태도와 너무나 대조되는 태도다. 그는 아들의 이성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진심 어린 충고를 한다. 이 지점에서 주요하게 환기해야 할 건 이 거세의 퍼포먼스가 이 땅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며, 동시에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시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떤 지긋함과 미련함으로 다가가고 있는가.

ⓒIFC 필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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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라이즈〉에서 제시와 셀린느는 기차에서 만나 짧지만 꿈과 같은 시간을 보낸 바 있다. 말과 살이 적절하게 엮이고 섞인, 완벽한 데이트를 가졌다. 하지만 헤어지기 직전 두 사람은 자신들의 꿈데이트가 지닌 한계와 가능성을 묘사한 시를 읊기도 했다. “, 시간이 그대를 기만하지 못하게 하시오. 그대는 시간을 정복할 수 없소.” 더없이 완벽한 관계의 시간도 홀연히 놓아줬을 때 숙성이 되고 자양분이 된다. 그 시간이 영속하리라 믿었을 때, 응당 찾아온 판타지의 끝, 판타지의 배신을 견딜 수 없다. 두 사람은 힘들게 달콤한 꿈 뒤에 자리한 씁쓸한 현실을 받아들였고, 대략 9년여의 세월 동안지긋하게꿈과 현실, 그리고 관계를 바라보고 또 생각했다. 앞으로 어떤 행복과 불행을 맞이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비포 선셋〉에서, 〈비포 미드나잇〉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날 수 있었다. 이 놓아줌과 기다림의 미학은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너를 예뻐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한다. 영화에서 올리비아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여러 번 짓는다. 그녀의 표정을 담을 때 카메라는 언제나 묘한 움직임과 시간 속에 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움직임과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에. 그때는 머리카락이 잘려 불평하는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줄 때, 새로운 아내와 함께한 시니어 메이슨이 아들과 딸을 벤에 태워 여행을 떠날 때, 아들이 여자 친구 시나와 여행을 떠날 때와 고등학교 졸업 파티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그리고 집의 배관을 수리해 준 어네스토를 몇 년 뒤 식당에서 만났을 때다. 배관공이었던 어네스토는똑똑한데, 공부 더해요라고 한 그녀의 말을 듣고 대학에 갔고, 식당의 매니저로 취직해 지금의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 이가 과연 어떤일까를 묻고 고민하는 듯 그녀는 묘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도, 묘한 표정을 짓는다.

ⓒIFC 필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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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끝자락에 이르러 우리는 그 표정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조금이나마알 수 있게 된다. 이제 정말 자신의 곁을, 둥지를 떠나는 아들을 향해 그녀는 울음을 토해 낸다. 자신을 토해 낸다. ‘오늘은 내 인생 최악의 날이야. (……) 이렇게 신이 나서 갈 줄은 몰랐다. 결국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거야.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 이제 뭐가 남았는지 알아? 내 장례식만 남았어! (……) 난 그냥……. 뭔가 더 있는 줄 알았어.’ 우리는 이제 그 숱한 표정의 이유를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구석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녀의 울음에서 묘한 해방감도, 성취감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들은 어미의 비명을 듣고도 손을 내밀지 않는다. 외려 둥지를 떠나게 할 자동차의 핸들을, 카메라의 셔터를그는 사진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한다붙잡을 뿐이다. 아니, 어미가 아들에게 더는 손을 내밀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녀는 일찍부터 자식이 떠나가리라는 것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마치 어네스토처럼 의젓하게 다시 돌아올 수도 있음을 알았을 듯싶다. 이 때문에 이의 표정은 어미로서의 운명을 인지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슬프면서도 기쁘기도 한. 우리는 지긋하게 바라보고 생각함으로써 이웃한 또 다른 어머니의 표정을 알 수도 또는 모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녀와 함께 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지긋함을 헤아리기 위해 적어도 한 번 더 165분을 바라보고 고민해 보자. 그러면 엉뚱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주니어 메이슨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깊게 고민하는, 무언가를 다르게 보고 말하려 하는 그를 만날 수도 있다. 어릴 적 그는물을 공중에 대고 잘 겨냥해서 쏘면 그게 말벌로 변하리라 믿었고, 종일 창밖만 보거나 연필깎이에 돌멩이를 넣어 화살촉을 만들려  하기도 했다. 죽은 새를 땅에 묻어 주기도 했으며 잡지에 실린 속옷 차림의 여성에 흥미를 보이기도 했다. 아니, “이 세상에 진짜 마법 같은 건 없죠.”라며 기특하고도 귀여운 질문을 하던 소년이기도 했다. 사만다 또한 엉뚱하면서도 사랑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동생을 괴롭히기 위해 장난스러운 노래와 춤을 추던 소녀였으며, 아빠에게 성교육(피임)을 받으며이 장면은 대단히 사실적으로 연출돼 사만다 또는 로렐라이 링크레이터의 부끄러움이 그대로 느껴진다어쩔 줄 몰라 하던 소녀였다. 그들의 성장담을 보고 들으며 감수성 풍부한 대학생이 된 주니어 메이슨과 어딘가 모르게 차분해진 사만다를 이해할 수도 또는 인정할 수도 있게 된다.

결과를 지향하지 않고 그저 놓아주거나 기다려 줬을 뿐인데,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더 많은 이들을 예뻐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자세히 보면 서사 구조 내에서 타자로 의미화될 인물에게도 윤리적 감각이 작동될 수 있게 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앞서 빌 웰브룩과 짐과 같은 의붓아버지들의 강박과 폭력 또한 다른 한편으로 여길 수 있게 한 지점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술과 골프 말고는 존재 그 자체를 견뎌 낼 수 없는 나약한 자로서 빌 웰브룩이 보인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서브 프라임 모기지)에 집이라는 보금자리가 위태로워진 직후 성격이 변한, 술을 더 찾게 되는 짐도 보인다. 이처럼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모든 인물에게 지긋함과 미련함으로 다가서려 했다. 타자 또는 영화에 대한 그의 자세와 태도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그는 영화가 세상과 삶을, 그리고 우리를 더 나은 차원으로 견인할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을 지긋하게 실천해, 우리와 영화를 더 나은 차원으로 성장시켰다. 이즈음, 우리는 어떤 시간을 살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성급함을 버리고 지긋함으로, 지극함으로 우리와 영화를, 세상과 삶을 더 나은 무엇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아마도 우선 영화 〈보이후드〉가 보이boy와 걸girl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보이와 걸에게 그러한 지긋함으로 다가갔는지부터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분명하게도 우리는, 지긋하게 바라보고 고민해야 할 소년과 소녀가 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와 우리 영화의 성장담도 시작되어야 한다.

 


엄준석 1983년 부산 출생. 영화평론가. 2012년 계간《쿨투라》평론 신인상 부문 당선. 대안인 문학 공간 지하생활자들 공동 운영자. 영화비평잡지《빛평》편집위원, 부산국제어린이 청소년영화제 프로그래머. um3034@naver.com

 

 

* 『2015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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