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Theme]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8월 Theme]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 주찬옥(드라마작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0.08.03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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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드라마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연애만 하는 드라마’와 ‘연애도 하는 드라마’. 오컬트 드라마 <방법>(tvN)이나 수사 드라마 <보이스>(OCN)” 시리즈 같이 하드보일드는 예외지만 그 외의 장르물은 대개 “연애도 한다.”

 

  <시그널>(tvN)에서 차수현(김혜수)은 칼 맞고 구급차에 실려가는 이재한(조진웅)에게 좋아한다며 다치지도 말고 죽지도 말라고 어린애처럼 엉엉 운다. 조진웅은 구급대원 눈치 보며 “얘 왜 저래…” 웅얼웅얼 당황하고 민망해한다.

  <비밀의 숲>(tvN)에서 영은수(신혜선) 검사가 느닷없이 죽었을 때 감정을 전혀 못 느끼는 황시목(조승우)의 감정연기는 탁월하다. 은수가 준 니트를 보며 표정없이 그리워하고 감정없이 분노한다. ‘연애도 하는 드라마’에서 사랑은 장르물에 아주 좋은 윤활유가 된다.

 

  그렇다면 ‘연애만 하는 드라마’는 어떨까. 2020년 상반기가 지난 지금, 아직까지 크게 눈길을 사로잡는 연애 드라마가 없어보인다. 2019년에는 <동백꽃 필 무렵>(KBS2), <사랑의 불시착>(tvN)이 인기를 끌었고 <멜로가 체질>(J tbc). <어쩌다 발견한 하루>(MBC)는 대중적이진 않았지만 마니아 팬들이 열광했다.

  그러나 2020년도 2분기가 지난 이즈음 올해의 연애 드라마를 꼽아보면, 기대작이었으나 기대만큼 못 미친 <더 킹: 영원한 군주>(SBS) 외에 <하이에나>(SBS) 정도만 회자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나머지들은, 캐릭터는 상투적이고 러브 라인은 단순하며 쓸데없는 일상 씬들로 채워지는 바람에 호흡이 느려졌다. 연애 드라마들이 대체로 매력 없었다.

 

  그렇다면 구성은 그렇다 치고. 주제는, 연애를 다루는 시각은 과연 풍성한가?

  <낯선 사람과 춤을>(Dance With A Stranger)이라는 영국 영화가 있다. 오래 전, 1980년대 후반, ‘MBC 베스트셀러 극장’으로 막 작가 데뷔한 나는 황인뢰 감독, 이진석 감독 등 연출가들과 영화를 보러 다녔다. 새 작품 기획을 앞두고 관련 장르의 영화 및 외국 드라마를 보면서 상상력에 자극을 받으려고. 우리는 그 영화가 사랑 영화라고 생각했다. 달콤하고 애틋하고 설레는 영화라고 기대했다.

 

  줄거리를 간단 요약하면 이렇다. 두 아이 엄마에 이혼녀인 여자 주인공은 자기에게 다가온 연하의 이십대 남자를 처음엔 거절하지만 차츰 격정적으로 빠져든다. 그 후 사랑이 식은 그 남자가 소홀해지면서 떠나자 그녀는 집착하며 광기에 사로잡힌다. 여주인공은 또래 친구들과 레스토랑에서 웃고 먹고 마시던 그를 불러내 거리에서 권총으로 쏴버린다.

  엔딩 씬 위로 “루스는 영국의 마지막 사형수가 되었다”라는 자막이 올라가면서 시종일관 어둡고 강렬한 영화에 실화라는 방점까지 찍고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은 한참을 앉아있었는데 내 경우 그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작가적인 깨달음이 왔다.
  “그래! 사랑이란 게 아름답고 밝고 건강하기만 한 건 아냐! 사랑이 얼마나 사람을 망가뜨리는지, 얼마나 어리석고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드는지! 맞어! 이런 드라마를 쓸 테다!”
  라고 결심하는 순간 이진석 감독이 드디어 몸을 일으키며 투덜거렸다
  “뭐 이딴 영화가 다 있어!”

  그 후로도 나는 꽤 오랫동안, 사랑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면, 상처. 배신. 혐오. 두려움. 의심. 불안 등 부정적인 감정을 드라마에 담아보고 싶었다. 나쁜 연애가 주는 파괴적인 감정을 다뤄보고 싶었다. 어리석은 사랑, 이기적인 사랑에 관해서 쓰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에 관한 이 무거운 주제는 아직 시도해보지 못했다 .

  이유는 간단하다. 편성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지 않을 거고 시청률이 안 나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모쪼록 사랑이란 따뜻하고 아름답고 상처를 보듬어주고 영혼을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해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 중에 <연애의 참견>(KBS Joy)이 있다. 서장훈 김숙 등의 셀럽들이 모여 앉아 각종 연애의 사연을 드라마 화해서 보여주고 훈수를 두는 형식이다. 등장하는 캐릭터도 스토리 라인도 어찌나 다양하고 현실감이 있는지 감탄을 하면서 몰입한다. 확실히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조용필 선생의 <창밖의 여자>는 사랑의 또 다른 진실에 대해 토로한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예능도 되고 가요도 된다. 그러나 드라마에선 안 된다.

  드라마에서 사랑은 애틋하고 설레고 아름답고 살아가는데 힘이 나야 한다. 상처나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고 까칠한 면모도 결국은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나도 이젠 그런 어둡고 칙칙한 드라마를 기획할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다수가 원하지 않는 상품을 굳이 만들 이유는 없다. 모험을 하기엔 드라마 산업시장이 너무 커졌다.

  오래 전에 이은규 감독님이 이렇게 말했다 .
  “80년대 90년대가 우리나라 드라마의 르네상스였는데 그 르네상스는 지나갔어. 이제 결코 다시 오지 않을 거야.”

  “라떼”를 얘기해서 죄송하지만 이제 드라마는 더 이상 인생을 얘기하지 않는 것 같다. 인간 탐구는 물론. 드라마는 점점 더 오락적인 면으로 변화 발전, 진화하고 있다. 하긴 정보들이, 지식들이 흘러넘쳐 다들 전문가가 되었는데 드라마가 누굴 가르쳐. 현실이 팍팍한데 드라마에서까지, 사랑에서까지 절망을 배우고 싶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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