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에세이] 연결의 달인, 커피
[사회문화에세이] 연결의 달인, 커피
  • 설규주(경인교대 교수)
  • 승인 2020.11.27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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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커피보다는 크림

  커피를 처음 마셔본 게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왜 커피를 마셨는지는 또렷이 기억할 수 있다. 시험을 앞두고서였다. 초등학교 때 초저녁잠이 많아 저녁 8시 정도만 되면 졸려서 픽픽 쓰러지는 날이 많았는데, 언젠가 한 번은 매달 하순에 치르던 월말고사 시험공부를 밤늦게까지 해보려고 중학생 형을 따라 커피를 마셨다. ‘어린이’라는 이유로 커피는 아주 조금 탔고 대신 설탕과 크림은 듬뿍 탔다. 거의 하얀색에 가까운 뜨거운 설탕물이었다. 잠을 쫓아내는 효과는 없었지만, 그 달짝지근한 맛이 좋아서 그 이후에도 시험공부를 핑계로 커피 대신 크림만 타서 종종 마시곤 했다.

 

  # 2. 커피보다는 (커피)우유팩

  대학생 시절, 공강 시간에 학교 안에서 딱히 하고 놀게 없었다. 농구나 족구가 재미있긴 하지만 장소, 인원수, 성별 등 조건이 좀 까다롭다. 그런 것 따지지 않고 아무 때나 어디서나 누구하고나 몇 명이든 상관없이 할 수 있는 게 팩차기였다. 팩차기를 하려면 우유팩이 두세 개 필요했다. 우유가 꼭 ‘땡기지’ 않더라도 오직 팩 차기에 쓸 우유팩 확보를 위해 200ml 짜리 우유를 사서 마시곤 했다. 커피 우유가 흰 우유보다 몇십 원 더 비쌌지만, 커피 우유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달짝지근함이 좋아서 친구들이나 나는 기왕이면 커피 우유를 사서 재빨리 마신 후 팩차기용 팩을 제조하곤 했다. 한 번 쓴 팩은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는, 우리 또래 나름의 유래가 불분명한 불문율이 있었기에 다음날이면 새로운 팩 차기용 팩 공급을 위해 또다시 누군가는 (커피)우유를 사서 마셨다.

 

  # 3. 커피보다는 상상력

  대학에서 사회학 관련 강좌를 담당하면서 학생들에게 기든스(Anthony Giddens)가 쓴 『사회학』(번역서 제목은 『현대사회학』)을 교재로 소개하고 있다. 그 책의 1장에는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은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그것만 뚝 떼어 놓고 보지 말고 시간, 공간, 주체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사회적 관계와 맥락 속에서 조명해 보자는 것이다. 그 예로 커피가 제시된다. 우리가 흔히 “커피나 한 잔 할까?”라고 말할 때 커피는 잠깐의 여유나 휴식, 누군가와의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상상의 범위를 조금 더 넓혀 보면 상대적으로 빈국에서 생산되어 상대적으로 부국에서 소비되는 커피가 보인다. 커피 때문에 누군가는 일을 하고, 커피 덕분에 누군가는 돈을 버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한쪽에서는 커피 프랜차이즈 다국적기업을 예찬하고 다른 쪽에서는 공정 무역을 주장한다. 커피 한 잔을 통해 문화로, 경제로, 세계로 상상력을 확장시킬 수 있다. 매년 2학기가 되면 학생들과 함께 커피를 소재로 한 사회학적 상상력 기르기 연습을 한다. 나는 그 시간이, 그 주제가 참 좋다.

 

  # 4. 커피보다는 작업

  내가 이른바 ‘카공족(카페에서 커피나 간식 등을 구매하고 장시간 머무르며 공부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편집자 주)’이 될 줄은 몰랐다. 원래 나는 대부분의 일을 연구실에서 했고 거기서 일이 다 끝나지 않으면 집에 와서도 계속 하곤 했다. 바쁠 때는 토요일이나 공휴일에도 연구실에 나갔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 특별히 아빠를 필요로 하는 때가 생긴다. 어떤 날은 학교 가지 말고 집에 있어 달라고 하기도 하고, 놀이터에 같이 가자고 하기도 하고, 김치계란볶음밥을 해 달라고 하기도 한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그 요청을 거절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생각한 방법이 동네 커피숍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노트북을 가지고 가서 두어 시간 일을 하다가, 집에 와서 아이들과 잠시 함께 있으면서 욕구를 충족시켜 준 후 다시 커피숍으로 간다. 아예 아이들을 커피숍에 데리고 가서 나는 노트북으로 내 일을 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핫초코를 홀짝거리며 책을 보기도 한다. 그렇게 여러 차례 커피숍에서 일을 해보았는데 놀랍게도 생산성이 아주 높았다. 두어 시간 정도면 그리 많은 시간도 아닌데 그동안에 필요한 글이 써지고 해야할 일의 진도가 쭉쭉 나가는 경험을 자주 했다. 그러다 보니 굳이 아이들의 요청이 아니더라도 내 필요에 의해 연구실 대신 동네 커피숍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다른 도시나 해외 출장을 가서도 이동 중에 시간이 남으면 커피숍에 가서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켠다. 어디서든 커피를 주문해서 테이블에 놓아두지만, 다 마시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5. 커피보다는 쿠폰

  카공족이 되다 보니 커피 쿠폰이 쌓이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워낙 많으니 꼭 우리 동네가 아니더라도 커피 쿠폰을 얻을 곳은 많다. 커피 한 잔을 공짜로 마시기 위해서는 12잔을 마셔야 하지만, 그게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쿠폰은 카공족으로서만 모으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면서도 쌓이는 것이니까. 12개를 차곡차곡 쌓은 후 쿠폰으로 마시는 커피맛은 왠지 더 좋다. 사실 쿠폰 적립은 약간 ‘사기(詐欺)’성이기는 하다. 일정한 수의 쿠폰이 쌓이면 공짜로 무언가를 제공한다고 하니 솔깃한데, 그 공짜를 얻기 위해 실제 치러야 하는 비용은 훨씬 크다. 10여 년 전 강남의 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계산대에서 재미있는 광고 문구를 보았다. 그 레스토랑에서 포인트를 1만 점 적립하면 유럽행 비행기표를 준다는 것이었다. 포인트는 결제 금액 천 원 당 1점이 쌓이는 것이니까 천만 원 어치를 그 레스토랑에서 먹으면 비행기표를 받을 수 있다. 유럽행 비행기 표를 대략 백만 원이라 치면 그냥 그 돈을 주고 비행기 표를 사면 되지 굳이 천만 원을 그 레스토랑에서 쓸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는 분명 그게 합리적이지 않지만, 심리적으로는 묘하게 끌린다. 커피 쿠폰도 마찬가지다. 공짜 커피를 마시는 데 필요한 쿠폰을 꼬박꼬박 적립하지만, 그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 상황에서도 쿠폰 적립을 위해 커피를 마시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 경제적으로 당장은 약간 손해지만 그래도 공짜 커피의 유혹은 거부하기 힘들다.

 

  # 6. 커피보다는 ‘꼬삐’

  요즘은 강의도 회의도 학회도 대부분 비대면으로 하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집에서 하루에 두어 잔 씩 커피를 마시는데, 그중 절반 정도는 1학년짜리 둘째 아이가 ‘바리스타’ 노릇을 한다. 아이가 직접 기계 버튼을 눌러서 커다란 머그잔에 커피를 받아 내리고, 거기에 우유를 타서 나에게 가져다 준다. 여기에는 작은 루틴이 있다. 일단 아이가 커피 내리는 모습을 내가 보면 안 된다. 그러니 나는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있어야 한다. 아이 혼자서 커피에 우유나 얼음 또는 시리얼 알갱이를 섞고 난 후 내 방문을 두드린다. 아이가 들어와서 조심스레 커피를 건네면 나는 그 자리에서 홀짝 한 모금을 마시고 그 맛에 반했다는 의미의 탄성과 함께 엄지 척을 해 준다.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아빠, 꼬삐 맛있어?” 확인 질문을 하고 나는 아이를 힘껏 안아준다. 아이와 나는 그것을 커피가 아니라 ‘꼬삐’라고 부른다. 2-3분이면 끝나는 간단한 의식이지만 아이도 나도 환하게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다. 기계가 만들어 내는 똑같은 커피인데, 아이가 도톰한 작은 손가락을 놀려 타주는 커피 맛은 특별하고 소중하다.

  주연 같은 조연, 커피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훅 들어오는 헤이즐넛향에 기분이 좋아지고, 뜨거운 여름날 얼음 가득한 카라멜 마끼아또 한 모금에 눈이 밝아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커피는 그냥 그 자체로 좋다. 그런 때도 물론 있지만 그래도 돌이켜 보면, 대부분의 경우 나는 커피보다는 커피를 매개로 한 그 무언가를 더 사랑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크림이기도 했고 팩차기이기도 했다. 그것은 커피숍에서 얻을 수 있는 집중력이나 카공족으로서 획득하는 적립 쿠폰이기도 하다. 그것은 커피를 소재로 한 내 강의 주제이기도 하고 우리집 아이의 ‘손 맛’과 정성이 담긴 ‘꼬삐’이기도하다. 내가 커피에 관해 이야기할 때, 다른 무언가를 커피보다 더 중심에 둔다고 해도 커피는 커피다. 나는 여전히 커피를 좋아할 것이고 가까이할 것이다. 마치 영화 전체를 살리는 주연 같은 조연처럼 커피는 나의 일상 곳곳에서 커피로서 할 일을 할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나와 나의 일을, 오늘의 나와 과거의 나를 연결해주고 소통하게 해 주는 ‘매개물(medium)’로서의 일을 계속할 것이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연결의 달인’이랄까. 그런 커피가 나는 고맙고 좋다.

 

* 《쿨투라》 2020년 11월호(통권 7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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