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Theme] 두 평론가가 바라본 영화의 현재와 미래: 〈2021 오늘의 영화 좌담〉
[2월 Theme] 두 평론가가 바라본 영화의 현재와 미래: 〈2021 오늘의 영화 좌담〉
  • 유지나, 전찬일
  • 승인 2021.03.0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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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찬일(이하 전) 기획위원인 손정순 발행인의 사정으로 인해 이번에는 유지나 교수님과 저, 둘이서 좌담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영화들 가운데 좋은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선정해 엮은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는 2006년부터 꾸준히 독자 분들의 성원을 받아 왔습니다. 전문 선정단과 기획위원의 선택을 받은 영화들에 대해, 그리고 영화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뜻깊은 자리에 교수님과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유지나(이하 유) 저도 매우 반갑고, 즐겁습니다. 정확히 1년 만에 다시 뵙게 되었네요.

   작년에는 전 세계 모든 분야가 코로나19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는데요, 영화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2020년 개봉 영화들을 대상으로 ‘2021년 오늘의 영화’를 선정할 때에도 코로나가 큰 변수가 되지 않을까, 염려를 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선정된 영화들은, 흥미롭게도 여느 해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수준이 높더군요. 제작 환경 등 많은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그 힘든 상황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작품들이 극장과 OTT(Over The Top; 개방된 인터넷을 통하여 방송 프로그램, 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편집자 주) 플랫폼을 통해 선보인 거죠. 외국 영화 중 특히 수작이 많았고요. 좋은 영화들이 많다 보니, 수작 중에서도 최종 선택된, 이른바 베스트 10 안에 포함되지 못한 영화들도 있는데… 유 교수님께서 총평을 해주시죠.

   규모가 큰 영화의 개봉은 대폭 줄었지만, 국내외 많은 감독들이 작년 한 해 동안 정말 좋은 영화들을 적잖이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희가 한 해의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10편 전후를 선정할 때 흥행지수가 아니라 작품의 질적 완성도를 중심으로 평가해 왔는데, 그 기준에 부합하는 작품들이 작년에도 지속된 것이죠. 개봉된 영화작품들과 관객 규모는 예년보다 많이 줄었지만, 영화작품의 질적 수준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으니까요. 한 해 흥행작 리스트를 정리하는 건 영화진흥위원회 등 다른 기관이나 매체에서 담당하고 있지요. 영화 기획과 제작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니 지난해 개봉한 영화들의 경우에도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준비를 다 마치고 개봉시기만 조율하고 있었을 겁니다.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있는 이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영화, 즉 이 팬데믹 사태를 다루는 영화들도 이후 만들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게 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영화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흥행작들은 저예산 독립영화 등 비흥행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관객의 눈에 띄지 않는 좋은 영화들을 발굴해내는 게 평론가들의 소임일 텐데, 흥행작 위주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 상황에 대해 조금은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2021년 오늘의 영화’ 리스트에는 저예산 영화와 흥행작이 적절히 안배돼 있더군요. 지난해에는 100만 관객만 넘어도 흥행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는 국적 불문하고 딱 두 편이었습니다. 우민호 감독의 〈남산의 부장들〉과 홍원찬 감독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였습니다. 이 두 편이 이번 한국영화 10편에 포함되었고, 〈남산의 부장들〉은 475만여 관객을 기록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중박’인데, 코로나 상황이라 ‘대박’이라고 부를 만하죠. 〈남산의 부장들〉이 이번에 ‘오늘의 영화’ 한국영화 최고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외국영화 중에서는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이 선택됐습니다. 이런 작품들이 ‘오늘의 영화’로 선정된 것이 당연한 건지, 아니면 의외의 결과인지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면 좋겠네요. 이 영화들 이외에도 150여 만을 동원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종필 감독), 100만은 못 넘었지만 40만 정도의 관객을 기록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긴 〈소리도 없이〉(홍의정), 저예산 독립영화지만 평단과 매체로부터 꽤 주목받고 생각보다 많은 관객들이 관람하기도 한 〈찬실이는 복도 많지〉(김초희)와 같은 영화들도 작년 개봉작 중 흥행작으로 부를 만한 영화들인데, ‘오늘의 영화’로 뽑혔습니다. 또 〈프랑스 여자〉(김희정), 〈도망친 여자〉(홍상수) 같은 영화들이 리스트에 들어가면서 흥행작과 저예산 영화가 적절하게 안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영화’의 이번 선정 결과를 통해 저희 관점이 흥행 지표보다는 작품 자체의 성취도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 다시 한 번 드러난 것 같습니다. 저희가 매년 ‘오늘의 영화’ 10편 가량을 뽑아왔는데, 다른 매체들처럼 1위부터 10위까지 순위 매기는 게 아니라 최고 작품 한 편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은 공동순위로 정하고 있잖아요. 흥행 성적순으로 작품들을 나열하거나 별점 순으로 작품을 줄 세우는 수많은 매체 속에서 저희는 대안적 기능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을 통해 ‘전문적인 영화 보기’가 가능해지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또 작년에는 예전에 비해 ‘극장 관객 수’라는 지표가 덜 작용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 경우만 보아도 극장보다 OTT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더 많이 감상했거든요. 한국영화의 경우에는 저예산 독립영화들이 극장에서 개봉하는 경우가 꽤 있었지만, 외국영화의 경우에는 〈1917〉이나 〈테넷〉(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스펙터클이 강조되는 영화들을 제외하고는 OTT 플랫폼을 통해 개봉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넷플릭스나 왓챠 등을 통해 영화를 관람한 관객은 흥행지수에 포함되지 않았을 거고요.

  다양한 플랫폼을 이용해 영화와 영상물을 접하는 관객(이용자)이 늘어날 것이고,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 중심의 흥행지표를 벗어나 변화의 흐름이 반영되는 추세가 지속될 것입니다. 여성 감독들의 활약도 그런 변화의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인 것 같습니다. 기존에 배제되었던 다양한 관점들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그 흐름 속에서 여성 감독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죠. 이런 긍정적인 변화가 올해도 지속되었으면 좋겠어요. 사무직에서 발생하는 ‘경단녀(경력단절여성)’ 현상이 예술 창작 영역, 특히 영화는 상업성이 강하기 때문에 유사한 사태가 발생하는데, 이번 기회에 그런 사태가 종식되기를 희망합니다. 여성 감독만이 여성 서사를 연출하는 건 아니지만, 올해 주목받기 시작한 여성 감독들이 지속적으로 영화작업을 해나가면서 그동안 소외받아온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오늘의 영화’로 선정된 한국영화 10편 중 5편이 여성 감독의 연출작입니다. 여성 감독들의 성장과 활약이 대단했기 때문에 당연한 선정 결과일 텐데, 그동안은 영화판이 워낙 남성 중심이다 보니 여성 감독들이 주목받기 힘들기도 했었죠. 또 주목해야 할 점은, 그 5편이 모두 데뷔작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죠. 저도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18년부터 본격화된 ‘미투’ 운동의 파장이 영화계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영화계 내부의 잘못된 관행들이 개선되었고, 여성 감독들에게 온당한 기회가 주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한 해는 여성 감독들이 영화산업계에 진출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상당 부분 제거되고 무력화된 시기였고, 코로나19 상황에서 극장 중심의 대작영화 제작에 난항을 겪고 있을 때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감독들의 작품이 훌륭한 대안적 기능을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사실 제가 2020년을 통틀어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명제였습니다. 그간 여성 감독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은 영화역사와 함께해온 고질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영화’ 한국영화에서 여성 감독 영화가 5편이나 선정되었고, 외국영화에서도 3편이 선정되었습니다. 그중 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2020년은 셀린 시아마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계기로 전작들인 〈톰보이〉(2011), 〈워터 릴리스〉(2007), 〈걸후드〉(2014)까지 개봉되면서, 감독의영화 4편이 지난 한 해 동안 한국 관객들을 만나는,보기 드문 진풍경이 벌어졌죠. 국내외를 통틀어, 코로나19라는 위기를 여성 감독들이 지혜롭게 돌파하며 ‘기회’로 잘 만들어 나간 것 같습니다.

   전 선생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도 셀린 시아마의 영화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수업에서 시아마 감독의 〈톰보이〉를 다룰 기회가 있었는데, 많은 학생이 이 영화를 보며 젠더 정체성에 관한 ‘자각’의 순간들, 즉 관습화된 인식을 넘어서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영화적 체험을 토로하며 이 작품에 대해 굉장히 좋은 평가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도 흥미롭게 감상했습니다. 주인공 마리안느가 그림을 통해 특별했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기 내면의 중심에 다가가는 방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오늘의 영화’로 선정된 작품들 중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주제에 접근하는 깊이 있는 내면 탐구의 영화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선 내면 탐구가 ‘여성’이라는 코드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는데, 자기 자신의 서사를 갖지 못했던, 또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못했던 이들을 통해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가 이뤄진 점에서 좋았습니다.

  앞서 전 선생님께서 언급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과 〈찬실이는 복도 많지〉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점들이 있는데, 여성들이 영화속에서 자연스럽게 재현되는 것 같아요. 그동안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성 주인공들이 영화에 등장해도 주로 남성의 시선에서 성적 대상화되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관습이 강했지요. 그러다보니 영화에 재현된 여성 이미지는 실제 여성의 삶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죠. 그런데 이번에 선정된 영화에 등장한 여성들은 기존의 남성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여성으로서 자기 자신을 재현하는 이미지가 보다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아이, 노인 등 그간 주류 영화에서 소외되었던 캐릭터들도 더 중요한 캐릭터로 자기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성찰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그런 변화는 우리 영화의 내면이 그만큼 깊어지고 있다는 걸 뜻하는 것 같습니다

  전 결국 우리의 삶을 멈춘 희대의 역병이 오히려 우리에게 전환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렸던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슬로우 라이프’로 살게 되면서 주변도 돌아보고,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것을 다시 보게 되었던 것이겠죠. 영화적으로는, 그간 상영관을 확보하기 힘들었던 ‘주변적 관점’을 가졌던 영화들이 영화계의 ‘공백’으로 들어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극장뿐만 아니라 OTT 플랫폼을 통해서도 말이죠. 그 만남은 그들에게 뿐만 아니라 저희에게도 소중했습니다. 그런점에서 볼 때 2020년에 일어난 영화계의 변화는 굉장히 유의미했다고 봅니다. 제 자신도 그런 흐름에 많은 영향을 받았죠. 제가 생각하는 2020년 최고작은 한국영화는 〈소리도 없이〉, 외국영화는 〈안티고네〉(소피 데라스페)입니다. 둘 다 여성 감독의 영화죠. 여성이 만들었기 때문에 좋아한 게 아니라, 영화 최고인 걸, 생각한 뒤에 찾아보니까 여성 감독이었던 것이죠. ‘이게 도대체 뭐지?’라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작년에 영화계에서 일어난 변화가 제 내면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건 전찬일 선생님이 한국의 가부장적 남자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동안에도 영화계의 경직되고 주류 중심적인 시각으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관점을 아우르는 시각을 가진 평론가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런 방식으로 그동안 꾸준히 작업해 오셨다는 뜻이겠지요. (웃음)

   감사합니다. 저희가 이렇게 10년이 넘는 긴세월 동안 함께 ‘오늘의 영화’ 선정 작업을 해왔는데,이번에 유난히 의미가 있다고 느껴진 게 그런 부분이 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평론가로서 공석에서 영화에 대해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여성 서사, 여성 연대라는 표현을 굉장히 많이 썼는데, 제가 여성주의를 특별하게 옹호하거나 그러지는 않더라도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너무 차별받고 배제되어왔기 때문에, 그런 현실에 대해서는 꼭 제 입장을 밝히고 부조리함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죠. 작년에 영화계에서 일어난 변화들은 그런 제 손을 확실하게 잡아끌어 준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은 인상적인 한해였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선생님의 얘기에 조금 덧붙이고 싶은데요, 작년에 일어난 영화계의 변화는 지속될 거라고봐요. 2020년 개봉작들에 관한 얘기가 중심이지만, 그해 기획해서 그해 개봉하게 되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올해도, 또 내년에도 코로나19 상황 속에 기획되고 제작되는 영화들이 이어질 텐데,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더라도 코로나 사태가 빨리 종식되기는 어려울 것이고, 예전과 같은 극장 개봉 중심의 영화산업은 변화될 것입니다. 극장을 대체할 다양한 활로를 모색하는 지금의 변화는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텍스트 측면에서도 자기 성찰적인 방식의 스토리텔링을 전개하는 영화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정말 인류가, 인간이 이래도 괜찮은가,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서사들 말이죠. 그래서 〈1917〉과 같은, 인간의 오만함으로 인해 벌어진 사태들을 다룬 영화들도 이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 여파가, 인류가 생존해서 영화 산업이 존재하는 한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될 거라고 생각해요, 극장 중심 흥행성으로 팽창해온 영화산업의 허위도 드러날 것인데, 〈맹크〉(데이빗 핀처) 같은 영화를 보면 할리우드나 오스카상의 위선과 이중성을 고발하고 있죠. 여러모로 인간 중심의 세상과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만든 2020년의 변화, 이 여파는 수년간 지속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득이 ‘오늘의 영화’ 선정을 10편으로 한정했는데, 이번에 리스트에서는 빠졌지만 꼭 언급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있네요. 다르덴 형제의 〈소년 아메드〉.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로 사회를 바라보는 비판적이면서도 따뜻하고 성찰적인 다르덴 형제만의 시선이 돋보였던 작품이었습니다. 이 감독 듀오는 거장이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 왔고 또 앞으로도 우리에게 보여줄 좋은 영화가 많을 것이기 때문에, ‘오늘의 영화’ 리스트에 꼭 다시 포함되리라고 봅니다.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제이 로치)도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된 2018년 폭스 뉴스 스캔들 실화를 다룬 이 영화는 메시지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과 배우의 연기, 연출모두 훌륭했어요. 앞서 여성 감독 얘기를 했는데, 여러 면에서 그들이 약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영화에서는 아직 미투라는 주제 자체를 직접 다루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할리우드에서는 〈밤쉘〉처럼이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영화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와인스타인〉(우르술라 맥팔레인, 2019)같은 다큐멘터리 작품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파장 속에서 우리 영화계에서도 미투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작품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소년 아메드〉는 사실 종교 근본주의 문제를 짚는 영화죠. 저도 어느 정도는 종교인, 기독교의 시선으로 보기도 했지만, 영화가 이슬람교를 다뤘다고 해서 꼭 이슬람교 문제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종교 근본주의는 사회적 문제니까 성인들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진단해야 할 것 같은데, 다르덴 형제는 10대 소년의 눈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게 했어요. 어떠한 편견도 없이 순수하게 접근하기 위해 소년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게 하는 걸 보면서, 역시 ‘다르덴은 다르다!’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오늘의 영화’ 10편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이 영화는 그동안 다르덴 형제가 추구해 온 탁월한 세계관과 주제의식을 이어가는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부득이하게 리스트에서 빠졌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만난 것에 대해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어쨌든 코로나19의 여파로 영화계의 상황이 좋지 않아 ‘2021년 올해의 영화’ 선정이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했었는데, 오히려 상당한 수작들 속에서 딱 10편만을 선정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되다 보니, 행복한 고민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제겐 외국영화 중에서는 페드로 알모도 바르 감독의 〈페인 앤 글로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스타일은 좀 다르지만,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1963)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했어요. 시네필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이 작품은 감독의 몽상과 욕망을 다루고 있고, 영화가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어떤 지점에 대해 다루고 있죠. 감독에 대한 영화, 더 확장하자면 영화에 대한 영화, 메타 영화에요. <맹크> 역시, 감독은 아니지만 각본가와 영화 제작의 내부 사정을 다뤘다는 점에서 메타 영화로 함께 이야기 해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미국 최고의 거장 오손 웰즈 감독의 전설적인 영화 〈시민 케인〉의 각본을 쓴 허먼 J. 맹키위츠의 실화를 다룬 〈맹크〉는 방대한 서사를 통해 할리우드 영화역사와 할리우드 시스템, 오스카상의 정치성 등에 대해 가감 없이 보여주죠. 영화에 관한 영화라는 주제를 자신들이 경험 속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영화 전공자들에게는 더욱 흥미로운 영화들이었을 것 같습니다.

  ‘올해의 영화’ 외국영화 최고작으로 선정된 〈1917〉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1차 세계대전을 다루고 있지만 전쟁영화라는 장르적 상투성을 넘어 한 개인의 내면 문제를 서사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포탄이 떨어지고, 조명탄이 터지고, 격전이 벌어지는 스펙터클이 그려지지만, 그 중심에는 전쟁터 장면 재현보다 부조리한 상황에 내몰린 한 개인의 내면 문제가 놓여 있죠. 적과의 관계, 동료와의 관계, 피난민과의 관계…….영화의 음향효과가 뛰어났기 때문에,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될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극장에 가지 못한 영화팬들이 OTT 서비스로 이 영화와 만나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점에서도 〈1917〉은 2020년 팬데믹 상황을 대변하는 대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영화를 추천작 5편에 포함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유지나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 인간의 내면 문제를 다루는 터치나 음향효과 등등에 대해서는 흥미롭게 봤지만, 지나치게 롱테이크 스타일에 치중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받았기 때문이죠. 저는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를 꾸준히 지지해왔고, 가장 미국적이기도 하면서 그 사회와 미국인 개개인의 속을 들여다보는 탁월한 시선을 영화적 재미 속에 잘 녹여내 온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번 영화는 너무 스타일에 매몰돼 못마땅했던 거죠. 그렇지만 〈1917〉이 2020년 외국영화 최고작으로 뽑힌 것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고요 . 그 영화 이외에도 오늘의 외국영화로 뽑힌 영화들의 면면이 다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그중에 〈작가 미상〉(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에 대해 조금 얘기해보고 싶네요. 〈타인의 삶〉(2006)을 통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현 국제장편극영화상)을 수상하며 관객과 비평가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아온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인 〈작가 미상〉은, 현존 최고가 독일 미술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삶과 예술세계를 다루는데, 그 인물을 통해 현대 미술사 전체를 조망하려는 감독의 야심이 돋보였던 작품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외부에 자기 입장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은둔형 작가이기 때문에, 이 영화를 자신의 공식적인 전기 영화로 인정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통해서 독일 미술사의, 나아가 세계 미술사의 중요한 아티스트가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죠.

  미술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겠지만, 이 영화가 아니라면 일반인들이 그에 대해 알 수 있겠어요? 제가 미술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미술에 대한 관심이 크기 때문에 이 영화를 통해 게르하르트 리히터에 빠져들었죠. 그가 현존 최고가 미술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예술세계에서 느껴지는 어떤 특별한 체험 때문이었죠 . 이번에 〈작가 미상〉에 등장하는 그의 일련의 작품을 보며 저는 ‘현대미술의 오디세이’를 경험하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현대미술의 특징이 구상성에서 추상성으로 넘어갔다는 건데, 리히터는 추상성으로 향하는 그 흐름을 잠시 멈추고 구상성과 추상성을 결합시키려 했던 예술가입니다. 저는 리히터야 말로 어쩌면 현대미술을 가장 잘,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영화에 완전히 빠져서, 게르하르트 리히터에 관한영어 및 독일어 원서들을 몇 권 주문해 구입하기까지 했죠.

  저는 그에 관해 깊이 연구해볼 마음까지 있어요. 한 편의 영화가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크고 깊은 영향·충격을 안겨줄 수 있다는 걸 〈작가 미상〉을 통해 다시금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오늘의 영화’ 목록에 포함되어 얼마나 감사한지요. 감독의 전작 〈타인의 삶〉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영화도 그 영화 못지않게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중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1917〉같은 영화보다 〈작가 미상〉을 ‘오늘의 영화’로 추천한 거죠 .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 글로리>는 저도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그 감독은 세계영화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이고,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나 〈그녀에게〉(2002)는 열광하는 영화들이기에, 특히 〈그녀에게〉는 제가 좋아하는 세계영화 역대 10편 안에 꼽을 만큼의 걸작이기에 2020년에 그의 영화를 만난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페인 앤 글로리〉가 앞서 언급한 전작들만큼 뛰어나다고 보기는 힘들어도 그의 영화 세계를 충실하게 보여준 이번 작품이 ‘오늘의 영화’에 포함되어 팬으로서도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2021년 오늘의 영화’는 어느 해보다도 흥미진진합니다.

   저도 〈작가 미상〉을 다운로드 받아 집에서 관람했습니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전작인 〈타인의 삶〉을 보면서 느꼈던 존경심이 되살아났습니다. 훔쳐보기로 감시하는 주인공의 시선과 변심을 통해 동독의 비인간적이고 억압적인 인권탄압을 그려냈던 〈타인의 삶〉에 이어 〈작가 미상〉에서도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난 독일의 변화와 그 후유증이라 할 수 있는 사회적 억압과 모순을 다루고 있어요.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은 이 분야를 다루는 데 있어 일가를 이룬 감독으로 보입니다.

  이 영화는 앞서 언급했던 〈1917〉처럼 전쟁을 배경으로, 정치권력의 문제를 고발하고 있지요. 정치권력은 애국주의를 동원해 청년들을 전선에서 희생시켜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두 편의 영화, 모두 전쟁과 부조리한 권력 투쟁에 대해 다시 한 번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해 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테넷〉의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름처럼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시·청각적인 테크노 아트 기법으로 놀란 감독만의 독특한 시간성을 영화에서 보여주는 작업을 꾸준히해 왔죠. 시간 모빌리티 시리즈 <백 투 더 퓨처〉(로버트 저메키스) 같은 영화는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여행이라면, 〈테넷〉의 시간성은 난해해서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라고 하는데, 그 ‘느낌’을 가지려면 과학적 지식과 철학적 사유도 필요해 보이네요…

   이외에도 〈마틴 에덴〉(피에트로 마르첼로)이나 〈작은 아씨들〉(그레타 거윅) 같은 영화들도 인상적이죠. ‘오늘의 영화’ 기획이 올해로 16번째인데, 외국영화의 경우에는 역대 리스트 중 가장 수준 높은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소년 아메드〉가 이 리스트에서 빠지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았는데, 막상 다른 작품들의 면면을 보니 납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 〈작은 아씨들〉의 원작(루이자 메이 올컷지음)은 제가 어릴 때 권장 도서로 추천될 만큼 ‘필독서’로 부를 수 있는 책이었는데, 그레타 거윅의 신선한 연출을 통해 지금 세대가 보아도 공감할 수 있는 흥미로운 서사로 재탄생한 영화였습니다. 관습화된 여성성을 넘어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원작의 서사가 생생한 캐릭터 연출을 통해 ‘현재성’을 갖게 되었죠. 앞서 얘기했던 〈밤쉘〉과 〈와인스타인〉처럼, 이 영화 역시 할리우드 여성들의 자아 찾기라는 큰 흐름 속에서 함께 지켜볼 만한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관습화된 여성성이라는 틀이 깨지고 있다는 걸 최근 우리영화에서도 느꼈는데, 그 흐름이 앞으로 더 본격화될 거라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영화 자체를, 영화의 텍스트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눠봤는데, 이제는 콘텍스트적인 부분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코로나19로 인해 극장이 초토화되었잖아요. 영화관을 가지 않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죠. 저는 그 와중에도 조심스럽게 영화관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움츠러들고 있는 영화관을 성원하고 싶은 제 나름의 마음가짐에서였죠. 극장에 들어가면 보통 저와 함께 영화를 보는 관람객은 10명 이내 정도였고요, 그래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극장에서 〈원더우먼 1984〉(패티 젠킨스)를 봤는데, 굉장히 좋았어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말이죠. 그러면서, ‘아 나는 역시 구세대구나’,라고 느꼈죠. ‘역시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해!’,하고 새삼 절감했으니까요.

  제가 앞서 언급했던 영화들, 〈작가 미상〉 〈페인 앤글로리〉 〈소년 아메드〉 등등, 다 영화관에서 봤기 때문에 가슴에 더 와 닿은 게 아닌가, 싶어요. 영화관이 지구에서 사라질 일은 없겠지만, 영화관이 지구에서 사라지기 전까지는 계속 영화관을 찾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작년 한 해 영화들을 극장에서 봐온 건데… 유지나 교수님이 생각하시기에 앞으로 영화관은 어떻게 변할 것 같습니까.

   저는 이번에 ‘올해의 영화’로 선정된 영화들을 대부분 OTT 서비스로 봤어요. 평소 다니던 대한극장에도 갔는데, 갈 때마다 사람이 너무 없었어요. OTT로 영화 보는 게 편하다는 점도 실감했고요. 예전에는 러닝 타임이 긴 영화는 중간에 쉬는 시간도 있었는데, 요즘 극장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에요. 그런데 OTT 서비스로 영화를 집에서 보면서 예전의 그 ‘쉬는 시간’을 찾게 된 거죠. 편한 시간에 영화 보고, 중간에 쉬고, 영화 보면서 식사도 하고…

   한 영화를 몇날 며칠을 걸려서 보기도 하고요.

  가격도 저렴하고. 구매를 하면 다운로드를 받아서 며칠씩 여러 번 시청 가능하니 영화를 연구나강의 텍스트로 사용할 때는 그 몇 번이나 돌려 볼 수 있기 때문에 가소성도 좋아요. 이러다 보면 극장은 점점 미술관이나 박물관처럼 ‘클래식’을 다루는 장소로 변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저 같은 경우는 ‘오늘의 영화’로 선정된 20편 중 5편 정도만 OTT로 보고, 나머지는 다 극장에서 봤어요. 〈남산의 부장들〉은 극장 시사회 때도 보고 OTT 서비스로도 보고 그랬는데, 이번에 우민호 감독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세 번째 관람을 OTT로 했습니다. 누구나 동의하는 OTT 서비스의 편리함을 저도 절감했죠. 영화적 디테일을 확인하거나 하는 부분에서 아주 편리했으니까요. 앞으로는 영화 관객층이, 팬데믹이 끝나더라도 말이죠, 영화관을 찾는 관객과 OTT로 영화를 접하는 관객으로 나뉘는 현상이 심화될 것 같아요. OTT 서비스 고객이 확연히 늘어날 것이고요. 영화관에 직접 가서 영화적 체험을 해야 하는 코어 관객들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OTT 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관람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OTT플랫폼에 맞는 영화들이 앞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질 것이고요. 앞으로는 영화 제작의 방식이나 관행도 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지금 넷플릭스 구독자들이 굉장히 늘어났고요. 한국의 경우에는 지난해 MBC와 DGK(한국영화감독조합)가 공동 기획하고 한국영화감독조합에 소속된 8명의 영화감독이 8편의 영화를 연출한 SF 옴니버스 영화 프로젝트 〈SF8〉이 상당히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 여덟 편의 앤솔러지 영화는 토종 OTT 플랫폼인 wavve에서 먼저 공개되고, MBC에서 방영되었어요. 민규동, 김의석 감독 등 영화계에서 검증된 감독들이 공중파, OTT 플랫폼과 협업해 성공을 거둔 좋은 사례가 되었죠. 전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제작 방식이 이미 국내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죠. 또 저희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 목록에 포함된 영화들 중에서도 넷플릭스를 통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많기도 하고요. 많은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영화광들 사이에서 OTT 플랫폼에 대한 거부감이 꽤 있기도 했죠.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영화팬들이 극장을 찾을 수 없게 되니까 상황이 완전히 바뀐 거죠. 감독과 제작사들도 넷플릭스 등의 OTT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는 걸 선호하게 되었고요.

   저는 이런 바람도 있습니다. 2021년에는 ‘위기가 기회’라는 명제를 더 밀어붙여서, 주목할 만한 저예산 독립영화들이 더 적극적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바람 말이죠. 그동안 우리 영화계는 너무 돈에 의해서 좌지우지된 게 아닌가, 싶어요. 영화는 돈만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 큰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좋은 결과를 내는 프로젝트들을 만들어 내는 데 저희가 힘을 합치고 보태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3~40대 감독 중에서 그런 작업을 잘 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잠재성이 엿보이는 이들을 예의 주시하고, 필요하면 성원도 하고, 또 뭔가 그들이 잘못하고 있으면 비판도 하고, 그런 일들을 더 많이 해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는 제 선호에 따라서만 영화에 대해 다루고 영화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말을 아꼈지만, 이제는 그때와는 좀 다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평은 죽은 지 오래’라는 말이 회자된 게 제법 됐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비평의 기능이나 정체성이 달라졌을 뿐인 거죠.

   전찬일 선생님께서 영화 정책 문제에서 시작해서 ‘비평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문제로까지 접근해 주셨는데, 저는 영화 상영과 관람 중심이 극장에서 OTT로 이행하고 있는 것처럼, 영화 비평의 장도 이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가 비평을 시작할 즈음만 해도 영화평론가들이 TV에 나와서 외화를 소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상당히 많은 유튜버가 자신의 방송에서 영화 얘기를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자신의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으로 SNS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영상을 접하게 된 지금, 영화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여러 영상물 중 대표적인 ‘영상 콘텐츠’로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겁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영화라는 장르의 외연이 넓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영화는 영화영상 콘텐츠라는 확장된 범주에서, 여러 형태의 영상들로 자신의 위치를 찾아 나가게 될 겁니다. 영화라는 고전적인 개념은 남아있겠지만, 극장영화는 근본으로서 남아있을 것이고, 영화영상 콘텐츠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희가 영화를 공부할 때도, 영화 이론서에서 설명하는 ‘무빙 이미지’라는 개념이 꼭 ‘스토리’를 전제로 하지는 않고 있죠. 물론 일반적으로 픽션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에도 스토리보다는 다른 요소가 더 중심이 되기도 하지만, ‘영화’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스토리’라는 요소 때문에 우리가 서사물로서의 영화라는 형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진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지나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 것과 같은 변화를 목하 겪고있고, 이제 영화는 여러 형태의 동영상 중 일부로 남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자연스러운 변화에 대해 특별하게 반감을 갖고 있거나 하진 않습니다. 모든 걸 ‘영화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죠. 그리고 초기 영화사에서 영화는 ‘산업’이 아니었어요.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유럽이 전쟁으로 황폐화된 상황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허무주의에 빠졌었고, 어떤 새로운 형식의 예술 장르를 추구하며 영화를 만들었어요. 말 그대로 전위적인 아방가르드 예술로 이미지 자체의 포토제니성에 주목하기도 했죠.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는, 그 작업에 최고의 실험적인 화가, 시인, 소설가 등이 참여했어요. ‘장 콕토’, ‘살바도르 달리’ 같은 대가들 말이죠. 그들은 영화를 만들 때 ‘스토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부조리한 현실을 돌파하는 새로운 형식으로서 영화 매체를 실험의장으로 삼아, 구원의 길을 찾듯이 만들어 나간 것이‘영화’라는 점에 대해 저는 영화평론가로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의 ‘종합예술성’이라는 특징이 커다란 자산으로 작동하면서, 특정한 형식 속에 갇히지 않는 영화의 본질에 대한 사유가 큰 도움이 되었어요. 저는 영화평론의 확장으로 ‘시네에세이’를 시도하는 중인데, 지금 내 앞에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이벤트들을 영화 텍스트들과 현실을 접속하면서 가능한 글쓰기는 제게 큰 자유로움을 주었습니다. 요즘 강연도 비대면으로 해야 하다 보니 줌(Zoom)이나 유튜브로 많이 진행하는데, 그런 강연에서도 ‘시네 에세이’의 자유로운 방식으로 영화를 활용하면서 ‘시네 콘서트’라고 부르고 있고요. 영화의 다양한 요소를 활용하면서 영화가 촉발한 사유를 재구성해 강연 자료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영화의 종합예술성은 그런 점에서 제 영감의 근원이자 토대로 작동합니다.

   제가 조금 더 부연을 하고 싶은데요. 역사가 순환하듯이 지금의 영화가 초창기 방식으로 대거 돌아가면서, ‘이야기 이전의 영화’를 다루기 위해서 나왔던 개념이 ‘어트랙션Attraction’이잖아요. S. M. 에이젠슈테인의 ‘어트랙션 몽타주’를 확대·적용해, 1986년 세계적 영화 연구자 톰 거닝이 「The Cinema of Attractions: Early Film, It's Spectator and the Avant-Garde」(《Wide Angle》 8권 3/4호, 1986년 가을 호에 처음 게재됨—편집자 주)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세계영화 역사연구가 전격 수정되고 바뀌게 되는데, 유튜브 형식이 ‘숏폼Short Form’ 이잖아요.

  숏폼이란 게 결국 1분 이내의 초기 영화의 형태,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 같은 형태로, 요즘 영상들의 형태가 그런 어트랙션 형태로 변해가고 있죠. 우리가 흔히 영화라고 하면, 아직까지는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러닝 타임에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그런 형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이제는 짧은 길이의 숏폼으로 진행되는 유튜브 영상과 같은 것이 계속 확산되면, 영상물에서 이야기의 비중이 확연히 줄어들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스토리’라는 요소는 완전히 사라지거나 배제되지는 않겠지만요.

   ‘스토리’란 것, 즉 영화적 서사를 현재 활용가능한 형식에 유연하게 도입하고 창작하는 사람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문학의 종말’이 오래전부터 얘기되었지만 지금 소설도 죽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

   그렇습니다. 이제 마칠 시간이 됐네요. ‘오늘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이번 좌담에서 코로나19 이후의 영화 산업, 영화와 비평의 미래까지 얘기할 수 있어서 뜻깊었습니다. 오늘 대담 감사했습니다.

 

* 《쿨투라》 2021년 2월호(통권 8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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