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Theme] 차박을 꿈꾸는 이유
[4월 Theme] 차박을 꿈꾸는 이유
  • 황종권 (시인)
  • 승인 2021.04.01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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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을 하고 첫 차를 고를 때의 일이다. 아내는 형편에 맞는 작은 차를 원했고, 나는 형편없는 놈처럼 무조건 큰 차를 원했다. 결혼 생활의 첫 갈등이었다. 갈등의 이유는 간단했다. 아내는 차를 그저 이동수단으로 보았고, 나는 차를 이동수단 그 이상으로 본 것이다. 서로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니, 싸우기에 좋았다. 싸우는 것마저도 신혼의 달콤함이 뚝뚝 떨어질 때였으므로 우리는 쉽게 타협점을 찾았다. 술을 줄이겠다는 조건으로 큰 차를 구입하게 되었다. 술 한 잔만 줄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그 말을 그때야 믿게 되었다. 설득력이 있었다. 쓸데없이 큰 186cm에 100kg인 나의 등치도 설득에 한몫을 했다. 그러나 막상 차를 구입하고 보니, 출퇴근 외에는 딱히 하는 것이 없었다. 아이가 생기고, 또 생겼기 때문이다. 아내는 가끔 내 생각과 다른 말을 하지만 끝내 맞는 말을 하는 생활의 예언자였다. 나는 사물이 가진 가능성을 예언하는 시인이었으나, 아내는 시인의 생활을 직관하는 샤먼이었다.

  인생은 어차피 샤먼과의 불가능한 싸움 아니겠는가. 어린 것들이 생기자, 아내와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사랑하는 것보다 살아내야 하는 것들이 많을수록 상처 주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유난히 상처투성이의 말이 오가던 밤이었다. 나는 사랑도 삶도 견딜 수 없어 집을 나왔다. 핸드폰도, 지갑도 없었다. 절벽을 뛰어내리는 심정으로 문을 나섰는데, 막막한 거리만이 펼쳐졌다. 고개 숙인 가로등처럼 어디에도 갈 수가 없었다. 신과 대적하는 인간의 형편없음을 뼈저리게 느끼던 밤이었다. 바로 집에 들어가기에는, 진실로 초라한 존재로 추락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새벽이 오도록 오래 걸었고, 지쳐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춥고 허기로 가득한 발자국이 나의 운명적인 첫 차박을 향해 걸어갔으리라.

  어둠이 지쳐 새벽이 오듯이 나의 첫 차박이 시작되었다. 이동수단에 지나지 않던 차가, 처음으로 차 이상의 것을 보여주었다. 뒷좌석을 접으니 다리를 쭉 펼 잠자리가 펼쳐졌다. 세상의 어떤 침대보다 달달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땅덩어리가 좁고, 골목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왜 유독 큰 차를 선호하는지 그때서야 실감했다. 큰 등치를 눕혀도 안락했다. 꿀단지가 따로 없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큰 차를 선호하는 현상을 허세와 과시욕으로 치부했지만. 새벽을 한참 헤맨 가장에게는 큰 차야말로 생존의 지성소였다. 무엇보다 진짜 잘 잤다. 차가 이동수단이 아니라, 그 이상이란 것을 아침의 햇빛이 증명하고 있었다. 문득, 차 창문으로 들이치는 햇빛이 차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감하는 듯 했다. 바야흐로 차박의 시작이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첫 차박 이후, 차에게 이름 하나를 붙여주고 싶었다. 한낱 이동수단에 지나지 않던 차였지만, 시동을 걸 때마다 엔진에 더운 피가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전에 없던 생명의 충만함이 엔진소리에서 느껴졌다. 따뜻한 품을 가진 대학교수이자, 상담전문가인 박상미 누나는 어려운 시절 함께한 자신의 차를 폐차가 아니라, 사람처럼 묻어 주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비로소 그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막막한 사물도 마음과 삶을 나눠 가지면 하나의 생명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나는 뼈와 살이 붙듯이 차가 가진 가능성에 마음과 삶을 나누고 싶어졌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차가 가진 가능성과 아이 둘을 가진 가장의 가능성은 너무나 달랐다. 감성은 다 돈의 문제였다. 캠핑 장비가 비싼 것은 알았지만, 괴리감이 들 정도로 고가들이었다. 감성화로, 감성텐트, 감성테이블 등 차에 생명력을 더하는 장비들이었으나, 형편없는 가장의 감성부터 죽이고 있었다. 아이들 기저귀 값조차 벅찼으므로 차박은 이미 불 꺼진 캠프파이어 같았다.

  아빠가 된다는 건 자신에게 돈 드는 일은 불씨조차 보지 않는 일. 나의 원대한 차박 계획은 한 때의 불장난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의 곳에서 장작을 패고 화로대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나는 유부남들이 모이는 농구모임의 운영진이었다. 모임은 농구보다는 육아 정보를 공유하고,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농구를 하기 위해 아내가 요구하는 모든 형태의 육아를 감당하는, 참 유부남 모임이었다. 나는 모임의 단톡방에 푸념을 하고 싶어 차박 실패담을 올렸다. 그러자 염장을 지르듯, 단톡방은 순식간에 감성 차박의 현장으로 바뀌고 있었다. 농구는 참 허술하게 하면서 차박만큼은 마이클 조던이 울고 갈 만큼 감성이 터지고 있었다. 심지어 억대의 캠핑카를 보유한 사람까지 나타났다. 농구할 때 그토록 안 뛰는 사람이었는데, 달리는 호텔을 보유하고 있었다 .

  감성 충만한 사진들만 보면 차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만 같았다. 새삼 많은 사람이 차박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아무리 고가의 장비를 준비하고, 호텔같은 캠핑카가 있더라도 집보다 편하겠는가. 아이 둘의 가장이 계산해본 결과, 숙박료보다 비싸면 비쌌지 절대 저렴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고 싶다는 말도 설득력이 애매했다. 그저 본인들의 욕구를 채우는 데, 그럴듯한 의미들을 세우는 것 같았다.

  우리는 왜 불편하고 비싼 값을 치르는 차박에 열광하는 것일까. 캠핑에 비해 비교적 간단한 이유도 있겠지만, 진짜 이유는 집이란 공간에 마음을 둘 곳이 없어서다. 특히 이제 막 결혼을 한 신혼이라면 더욱 그렇다. 집은 거의 은행의 소유물이고, 아이들의,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일 뿐이다. 차는 마음을 둘 곳 없는 현대인의 새로운 안식처가 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아니라 장비들에게 감성팔이를 하는 건 관계의 피곤함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불멍의 유행도 핸드폰이나, 컴퓨터 등 현대인이 가진 시각의 피로함을 태우거나, 씻기 위해서다.

  차박은 우리가 가진 고통과 고독을, 낭만화하려는 의지이다. 생존과 전혀 상관없이 차에 감성 인테리어를 왜 하겠는가. 그건 허세가 아니라, 어떤 아름다움을 지키겠다는 의지이다. 낭만에 대한 의지는 모를수록 좋다. 말이 많아지면, 낭만은 낭패로 전락한다. 낭만은 꿋꿋하게 이유가 없을수록 좋다. 이유 없이 좋아야 낭만이다. 차박을 하는 이유를 자꾸 설명하고 싶다면 그것은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좋아보여서 하는 일일지 모른다. 좋아 보여서 하는 일은 욕망의 노예로 만들지만,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든다. 나는 아름다움이 늘 그립고, 아직도 차박을 꿈꾸고 있다. 아내가 모르도록 꿋꿋하게 차박 장비를 구입하고, 주말마다 떠날 궁리를 한다. 나의 이런 의지를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 부르고 싶다. 오늘도 나는, 그냥 차박을 꿈꿀 뿐이다.

 

* 《쿨투라》 2021년 4월호(통권 8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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