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빨간 밴을 만난다면 손을 흔들어 주세요
[INTERVIEW] 빨간 밴을 만난다면 손을 흔들어 주세요
  • 김준철(미주문인협회 회장, 본지 미주특파원)
  • 승인 2021.03.30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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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진 시간에도 멈추지 않는 무지카라반MusiKaravan의 김유은/에티엔 가라Etienne Gara

  팬데믹으로 인한 총체적 난국에 당황하는 사람은 이제 없는 것 같다. 어느새 익숙해진 것이다. 예전에는 마스크 쓰는 것을 깜빡하던 사람들이 요즈음은 마스크 벗는 것을 잊은 듯하다. 마음의 봄은 요원하고 코로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익숙함에 지치고 여전함에 걱정스러운 시기에, 반가운 이들의 소식을 접했다. LA 한국문화원에서 인연 되어 <쿨투라> 2020년 3월호에 필자가 인터뷰해 실었던 바이올리니스트 김유은씨였다. 그녀가 수석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델리리움 무지쿰 챔버 오케스트라(Delirium Musicum Chamber Orchestra)의 음악 감독인 에티엔 가라(Etienne Gara)와 특별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화상 통화로 그들을 만났다.

  준: 1년여 만에 다시 뵙네요. 잘 지내고 계시죠?

  유은: 그럼요,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뜨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준: 에티엔 씨도 좋아 보이네요. 오랜만에 뵈니 참 반갑습니다.

  에티엔: 네, 좋아요. 항상 한국에 대한 애정이 컸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잡지에 유은 씨와 함께 인터뷰하게 되어 기분 좋습니다.

  준: 요즘 밴을 타고 다니며 공연하는 프로젝트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에티엔: 맞아요. 무지카라반(MusiKaravan)이라고 해요. 아주 오래된 폭스바겐 미니버스를 타고 사람들에게 음악을 전달해주기 위해 길을 나선 두 바이올리니스트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

  준: 무지카라반이 무슨 뜻이죠?

  유은: Music(음악)과 Caravan(카라반)을 합쳐 만든 저희만의 합성어입니다. 자유롭게 이동하며 사람들에게 특별한 물건들을 전달했던 카라반(낙타나 말 등에 짐을 싣고 무리 지어 다니면서 특산물을 팔고 사는 상인의 집단·편집자 주)들처럼 우리도 사람들에게 음악을 전해준다는 의미를 담아보았습니다. 겹치는 두 개의 C를 하나의 K로 바꾸어 MusiKaravan이 되었어요.

  준: 사실 지금도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 때문에 마켓만 가도 걱정이 되는데, 어떻게 그 일을 하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에티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미국 내 모든 공연이 취소되었던 작년 3월 무렵, 개인 연주를 포함해서 야심 차게 준비했던 프로젝트들이 모두 수포가 되고 말았어요. 저희 챔버 오케스트라 델리리움 무지쿰은 LA에서 가장 큰 공연장인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데뷔 연주를 할 예정이었고, 클래식 음악의 주요 음반사인 워너 클래식(Warner Classic)과 음반 녹음을 앞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순간에 저희 음악가들에겐 호흡과도 같던 일들을 할 수 없게 돼버렸어요. 저희는 단원들과 함께 고민하고, 서로 위로하며 한 달을 보낸 것 같아요.

  준: 모두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에티엔 씨 말처럼 기대하고 준비했던 모든 일이 무산되어버린 후라서 더욱더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어때요, 유은 씨? 그 한 달이 지난 다음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유은: 4월부터는 델리리움 무지쿰의 몇몇 단원들과 함께 “마당콘서트(Courtyard Concert)”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델리리움 무지쿰의 “국경 없는 프로젝트”시리즈의 일환이었어요. 아파트 단지 사이의 빈터에서 깜짝 공연을 여는 프로젝트였죠. 숨죽이고 있던 동네가 살아났던 순간이었어요. 주민들이 가족 단위, 혹은 혼자 사는 노인들이 발코니로 나와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공연은 성공적으로 석 달간 지속하였고 이를 통해 우리는 지금 사람들에게 음악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깨닫게 되었죠. 이러한 경험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는 의무감 또한 갖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이런 힘든 시기에도 우리에게 매일 양질(quality products)의 생산물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예를 들면 농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농부들, 산불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삶을 위협할 때도 언제나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소방대원과 같은 분들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델리리움 무지쿰의 두 번째 “국경 없는 프로젝트”, 무지카라반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만들어졌죠.

  준: 그래서 떠나게 되셨군요. 그럼 바로 떠나신 건가요?

  유은: 아니죠. 일단 5월에 1971년산 폭스바겐 미니버스를 구해서 두 달간 차를 개조하고 수리하며 프로젝트 실현을 위한 여러 가지 준비를 해나갔어요. 준비 과정도 쉽지 않았죠. 캠핑과 촬영에 필요한 장비들을 마련해야 했고 가장 중요한 음악과 바이올린 듀오로 공연할 수 있는 레퍼토리 편곡 및 리허설을 거쳐 여름의 끝자락 즈음에 떠나게 되었습니다.

  준: 벌써 다섯 달째네요. 그동안 어느 곳으로 순회하셨나요?

  에티엔: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하여 캐나다 국경까지 올라갔습니다. 수십 개의 농장과 와인 양조장, 그뿐만 아니라 수도원의 신부님들, 행인, 심지어는 타조들을 위한 공연도 했어요!
준: 모든 장소가 특별하고 기억에 남겠지만, 유독 마음에 남는 장소가 있을까요?

  유은/에티엔: 말씀처럼 다 특별했어요. 그중 몇 가지를 꼽아 보자면, 시애틀 근처의 작은 섬에 있는 동방정교회(Orthodox Christian) 수도원에서 다섯 분의 신부님을 위해 공연하며 3시간짜리 미사에 참여했던 일, 후드산(Mt. Hood, 오리건 주)에 높은 정상에 올라갔다가 눈 폭풍을 만나 구사일생했던 일, 와인으로 유명한 나파벨리의 아름다운 와이너리에서 수백 개의 와인 통에 둘러싸여 연주했던 일, 추수감사절 바로 전에 방문했던 농장에서 칠면조들이 우리의 음악에 맞추어 소리 내어 하나의 뮤직비디오를 함께 완성했던 일. 참, 그리고 추수감사절 이후 농장에 다시 갔을 때 칠면조들이 아직 살아 있어 안심했던 기억도 나네요. 정말이지 아름다운 추억이 너무 많습니다.

  준: 장소만큼이나 그 공연에 함께해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도 빠질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에티엔: 생각지 못했던 상황으로 긴 시간 사회적으로 격리된 생활을 했던 때에 저희의 방문과 공연이 많은 분께 깜짝 선물이 되어주었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어요. 농장에서 토마토를 따고 있는 이민 노동자 한 분만을 위한 연주를 하기도 하고, 와인 농장에서 마지막 수확을 마치고 지쳐있는 분들을 방문하기도 하고, 또 다른 날에는 길에서 만난 어느 친절한 분의 뒷마당에서 작은 콘서트를 열기도 했어요. “우리 집 뒷마당, 나의 작은 유기농 농장에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연주를 듣는 일이 일어나다니!” 하며 소리치시던 모습이 잊히질 않네요.

  준: 유은 씨는 어떠셨어요?

  유은: 저희가 만나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클래식 음악을 쉽게 접하지 못하는 분들이어서 더 의미가 있고 기뻤어요. ‘클래식 음악’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저희가 만난 분들은 오히려 그 이미지를 깨주었습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을 연주할 때는 록 콘서트에 온 것처럼 환호했고, 쇼팽의 야상곡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지요. 저희가 찾아간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음악에 젖어 그들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는 것을 보며 우리 마음도 넘치게 채워지는 듯했습니다.

  준: 차로 장시간 다니며 공연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마냥 즐겁지만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유은: 초기에는 자동으로 되는 것이 거의 없는 50년 된 캠핑카의 불편한 점이 참 많았어요. 항상 고쳐야 할 것들이 생겼지요. 다행히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차들에 비해서 훨씬 간단한 원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저희가 손수 수리하고 있어요. 작게는 문짝을 떼었다가 붙이는 일에서부터 크게는 발전기를 교체하고 브레이크 시스템을 고치는 일이죠. 에티엔이 주로 차 밑에 들어가 고치고 저는 보조를 하죠. (웃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현대식 캠핑카와 많이 다르답니다. 지금은 이런 과정을 즐기고 있고 보리스(빨간 버스의 이름)와도 점점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에요. 또한 매일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유목민 생활에 적응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아서 어려울 때도 있었답니다.

  준: 폭스바겐 캠핑버스는 60~70년대 미국의 히피 문화를 이끌던 상징적인 차이기도 하고 저 역시 정말 마음 깊이 담고 있는 밴인데요, 그 반응 역시 뜨거웠을 것 같은데요?

  유은: 네, 빨갛고 아담한 그 버스의 매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어요.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항상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어요. “와, 너희 차 진짜 멋지다! 몇 년도 버스야? 내 건 68년도 것이었어. 젊었을 때 그 차로 세계 일주를 했었다고!” 매일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집시 생활이 쉽지는 않지만, 오늘은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하고 있지요. 잊지 못할 인생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여정을 기록으로 남기려다 보니 저희 둘이서 연주뿐만 아니라 장비를 옮기고 설치하고 편집까지 해야 한다는 점이 어렵습니다. 촬영 팀이 따라다니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하하

  준: 어려운 점을 물었는데 뒤로 갈수록 좋은 점으로 변하는 걸 보면 이 프로젝트의 매력을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연주만 해도 힘들고 지칠 텐데 그 몸으로 운전과 촬영, 거기에 차 수리까지 해야 한다는 게 정말 힘든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꾸미지 않고 들려주고 싶다고 했었죠? 자의든 타의든 지금 이루어가고 있는 것 같아 놀라울 따름입니다. 저는 지난 1년 뭘 하고 뭘 이루었는지 부끄러워지네요. 에티엔,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에티엔: 현재 저희의 여정을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매일 업데이트하고 있어요. 하지만 더 야심차게 준비하는 것은 무지카라반 에피소드 시리즈입니다. 지금도 길 위에서 시간 날 때마다 편집하고 있어요. 곧 유튜브의 “무지카라반(MusiKaravan)” 계정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미국 서부에서만 그치지 않고 조만간 다른 주, 더 나아가 다른 나라에서도 무지카라반을 할 예정이에요.

  준: 사실 요즘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여러 형태의 차박(車泊)이나 캠핑 관련한 내용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또 한국 가수들이 외국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하는 프로도 있고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에도 충분히 무지카라반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유은: 정말 한국에도 가져가고 싶은 프로젝트입니다. 관심 있는 피디님들이 연락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준: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유은/에티엔: 이 여정은 저희에게 “음악이 인간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증명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배경을 불문하고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잖아요. 음악가로서 좋을 때건 힘들 때건 우리에게 중요한 임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에 무지카라반이 현시점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을 만나 음악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이어주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무지카라반과 마주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준: 저 역시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긴 여정, 무엇보다 운전 조심하고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유은/에티엔: 감사합니다.

  화상을 통해 그들의 환한 웃음을 보았다. 그들의 등 뒤로 보이는 어딘지 알 수 없는 풍경을 대하며 잠깐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낯선 곳에서 연주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들은 지금도 어딘가로 빨간 밴을 몰고 가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길 어딘가에서 멋진 연주를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이들에게 음악을 선물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멈추었던 시간에서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아마도 더 멀리 더 오래 달려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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