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Theme] “이불 밖은 너무 위험해” 인도어 삶을 권하는 시대
[5월 Theme] “이불 밖은 너무 위험해” 인도어 삶을 권하는 시대
  • 안진용(문화일보 기자)
  • 승인 2021.04.28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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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휴가 때 어디 가요?”

  “나? 방콕!”

  “우와~ 부럽다.”

  “부럽긴… ‘방’에 ‘콕’ 박혀 있는 건데.”

  20년 전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봤을 법한 철 지난 유머다. 소위 ‘아재 개그’로도 불리지 못할 만큼 손발이 오그라드는 구식 농담이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불과 1년 사이 삶의 지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방콕’ 혹은 ‘집콕’은 선택을 넘어 필수가 됐고, 국가 차원에서도 권장한다. 집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인도어(indoor) 라이프’가 강제 정착된 셈이다.

  프랑스 생물학자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는 생물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고 이에 걸맞게 신체기관이 변모한다는 용불용설을 주장했다. 물론 후천적으로 얻어진 형질이 유전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져 진화를 설명하는 공식 이론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으나, 수십~수백 년간 일군 생활 패턴을 불과 1년 만에 바꾸고 적응해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 용불용설을 다시금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승리호. 사진제공 넷플릭스

  #‘포기’가 아닌 ‘우회’ 택한 대중

  아직 정복되지 않은 코로나19를 향한 두려움은 유효하다. 그 두려움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5월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0년 4월 한국영화산업 결산 발표’에 따르면 그해 4월 영화 관객 수는 직전년 동월 대비 92.7퍼센트 급감했다. 영화관을 찾던 100명 중 93명 중이 증발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대중이 ‘영화 보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극장 가는 것을 꺼린 것뿐이다.

  4월 12일 넷플릭스서비스코리아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넷플릭스의 매출은 784억 2027만 원, 영업이익은 88억 2048만 원으로 집계됐다. 직전 년도와 비교해 각각 123퍼센트, 영업이익은 295퍼센트 급증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극장 개봉을 목표로 제작했던 영화들도 넷플릭스행(行)을 택했다. 제작비 240억 원을 투입한 배우 송중기 주연작 <승리호>와 베를린영화제의 공식 초청을 받은 <사냥의 시간>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것은 충무로 입장에서는 ‘사건’이었다. 극장에 가긴 꺼려지지만 영화는 보길 원하는 대중의 욕구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ver The Top·OTT) 시장의 팽창으로 표출된 셈이다.

  소비의 중심 역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 왔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0년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유통업계 온라인 매출은 전년과 비교해 18.4퍼센트 증가했다. 반면 오프라인 매출은 3.6퍼센트 감소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인 2019년에도 온라인 시장은 성장(14.2퍼센트)하고 오프라인 시장은 감소세(-1.8퍼센트)였던 것을 고려할 때 코로나19는 이런 분위기를 부추기고 강화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코로나19는 경제를 위축시켰다기 보다는 경제의 중심축을 바꿨다. 아웃도어(outdoor)에서 인도어로. 쇼핑몰을 거닐며 윈도우쇼핑으로 풀던 소비욕은 구매와 동시에 ‘당일 배송‘, ‘새벽 배송’ 등을 통해 집 앞까지 배달되는 신속한 배송 서비스가 주는 쾌감을 통해 충족됐다. 배송 경제의 선두주자인 쿠팡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돼 단숨에 시가총액 100조 기업이 된 것은 코로나19의 역설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대중은 코로나19로 인해 그들의 그동안 누리던 삶의 재미를 ‘포기’하지 않았다. 풍선 효과처럼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재미를 찾는 방식으로 ‘우회’했다. 이 모든 것은 집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인터넷 신조어는 코로나19 시대를 설명하는 대표적 명제로 떠오르며 인도어 중심으로 재편된 대중의 삶을 상징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가 아닌 ‘위드 코로나’ 시대로

  코로나19로 인해 늘어난 집콕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방안으로 지난해 ‘달고나 커피’가 크게 유행했다. 커피 가루, 설탕, 뜨거운 물을 붓고 400~4000회를 저으면 만들 수 있다는 달고나 커피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상물은 유튜브에서 수만 개 이상 검색된다. 남는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한, 그야말로 ‘시간 죽이기’였다.

  하지만 인간은 창조적이다. 더 이상 시간을 ‘죽이지’ 않고 시간을 ‘살리기’ 시작했다.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쓰고 의미있는 행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는 의미다. 집에 머무는 시간 자체에 초점을 맞춘 집콕족(族)이 인도어 생활을 보다 윤택하는 만드는 데 시간을 쓰는 홈족(族)으로 바뀌는 변곡점에 도달한 셈이다.

  가구업체 한샘의 지난해 매출은 2조 원이 넘었다. 전년 대비 매출은 21.7퍼센트, 영업이익은 66.7퍼센트 증가했다. 이는 주생활 공간인 집을 보다 예쁘게 꾸미려는 홈퍼니싱(home furnishing)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늘면서 카페에 머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아예 집을 홈카페로 만들려는 이들도 증가하면서 커피머신 등 렌털 업계도 호황이다.

  무엇보다 삼시세끼를 해결해야 하는 이들에게 식사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최근 몇 년 사이 ‘먹방’과 ‘쿡방’이 큰 인기를 끌면서 요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성장한 터라 디테일한 요리 과정을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은 수십~수백만 구독자를 확보하고 성황을 이룬다. 반면 요리에 별다른 관심이 없거나 ‘손맛’이 부족한 홈족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조리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인 밀키트로 향한다. 매장 방문 고객 급감으로 타격을 입은 소위 ‘맛집’들도 간편식 제조업체들과 손잡고 밀키트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다. 홈족들의 관심 속에 지난해 2000억 원 규모였던 밀키트 시장은 올해 3000억 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는 삶의 형태를 바꿔 놓았다.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는 추구하되, 물리적으로는 거리를 두는 삶이 정답이 됐다.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이들은 여전히 ‘코로나19가 극복되면 원래의 삶을 되찾을까?’라고 묻는다. 하지만 백신이 아직 ‘게임 체인저’로서 완전한 역할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고, 코로나19 역시 변종이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 ‘포스트(post) 코로나19’보다 ‘위드(with) 코로나19’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대중이 반영구적인 인도어 삶을 개척하고 적응해야 하는 이유다.

 


안진용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저서로 『방송연예산업경영론』이 있음.

* 《쿨투라》 2021년 5월호(통권 8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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