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Theme] 재료들의 삶
[5월 Theme] 재료들의 삶
  • 김소담(헬프엑스 여행가)
  • 승인 2021.04.28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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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쿡’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 같다. 팬데믹 시대에 매번 나가서 먹거나 시켜 먹기도 어렵고 집에 머무는 시간은 부쩍 늘어나면서, 많은 이들이 손작업 중에서도 ‘먹고사니즘’의 핵심인 요리, 그 위대하고 아름다운 작업에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집에서 간편하게 해먹을 수 있는 메뉴를 소개하는 콘텐츠가 TV와 인터넷에 넘쳐난다. 시간이 없어서, 혼자 사니까 만들어놔도 남아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요리와 멀어졌던 이조차도 다시 뭐라도 만들고 싶게 하는 매력적인 콘텐츠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편리함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이 흐름에 빠진 게 있다. 바로 재료와 나와의 ‘연결’이다.

  단연코, 요리의 시작은 재료다. 봄날에 어울리는 향긋한 쑥국을 끓이기 위해선 작은 칼을 오른손에 쥐고 쭈그려 앉아 겨울을 이겨내고 땅 위로 고개 내민 쑥의 연한 부분만 뜯어 바구니에 소복이 담는 게 먼저다. 땅콩 졸임을 하려면 땅 밑 줄기에 주렁주렁달린 땅콩을 쑤욱 뽑아내는 것부터가 시작이고, 얼큰한 동태탕을 끓이려면 바다에서 명태를 잡아야 한다.

  그러나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말하듯, 평범한 고대의 수렵 채집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자연세계에 대해 넓고 깊고 다양한 지식을 지녀야 했던것에 비해 오늘날의 우리는 생존에 필요한 많은 부분을 다른 이들에게 분할하여 이양한다. 그 결과 흙냄새를 맡으며 쑥을 뜯는 경험은 시장통 할머니만의 것이 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땅콩이 땅 밑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땅콩의 이파리가 낮에는 환하게 벌어져 해를 받아들이고 밤에는 잠을 자느라 오므린다는 것, 매일 눈을 감고 잠들었다가 일어나는 우리처럼 땅콩도 너무나 ‘살아 있다는’것을 전혀 경험할 일이 없다. 다시 말해, 땅과 연결되는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게 되었다.

  좋은 재료로 만들어진 좋은 음식을 내 입에 넣는건, 나를 아끼는 가장 다정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좋은 재료를 우리 몸속에 넣는 게 중요한 이유는, 빵을 굽는 이들이 밀가루와 효모의 품질을 따지다 못해 소금과 물 또한 까다롭게 골라 쓰는 이유와 같다. 그게 빵을 이루는 몇 안 되는 기본 요소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인간의 몸을 이루기 위해 투입되는 요소도 이처럼 몇 안 된다. 좋은 먹거리와 좋은 잠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재료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재료들은 내 입에 들어가서 씹히고, 삼켜지는 순간부터 내 몸의 일부가 된다. 나는 나의 일부가 되는 그들의 평안과 행복을 빌고, 그들이 잘 살고 있는지 관심 갖게 되었다. (나는 가급적 빨간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 지향자다. 요즘 다양한 이유에서 채식을 지향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나의 경우는 솔직히 말하면 기후 위기나 동물권이 먼저가 아니었다. 출발은 ‘나’였다.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다가 어떻게 죽임을 당하는지 알았을 때, 그들을 내 몸에 넣어 하나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세상엔 자신만큼이나 동물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도 많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리 옳은 가치라도 ‘나’로부터 출발할 때 가장 강력하고 지속 가능하다고 믿는다.)

  관련해서 관점이 확대되는 경험을 할 일이 있었다. 일을 도와주고 숙식을 제공받는 ‘헬프엑스(HelpX)’ 교환여행으로 콜롬비아 북부의 100명도안 되는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다니엘의 집에 머물때였다. 다니엘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아름다운 산을 야생동물에게 돌려주고, 그 앞의 밭에서 퍼머컬쳐(Permaculture, 지속가능한 농사법) 정신에 입각해 먹거리를 생산하는 등 뭇 생명과 더불어 살고자 노력하는 멋진 사람이었다. 유기농법으로 텃밭 가꾸기 외에도 요리를 할 일이 많았다. 시간을 들여야 하는, 엄연한 ‘노동’인 요리는 헬퍼(헬프엑스를 하는 여행자를 이렇게 부른다)에게 맡기기 좋았다 .

  어느 날 저녁 요리를 하는데 라임즙이 필요해서 다니엘에게 물었더니 어딘가로 날 데려갔다. 집 뒤 아름드리 라임나무 아래였다. 그러면서 다니엘은 덧붙였다.

  “모모, 맑은 날 열매를 따려면 아침 일찍이나 오후 느지막이 따는 게 좋아. 한낮은 나무가 해를 받아들이는 시간이거든. 나무가 자기만의 ‘평정’을 찾는 시간이지. 명상 중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그래서 그 때는 열매를 따지 않는 것이 좋아.”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가 말하는 나무의 명상이란게 아마도 낮 동안 나무가 생장 활동, 즉 광합성을 함에 따라 그때 열매를 따는 게 나무 자체에 좋지 않거나 혹은 수확하는 열매의 맛에 영향을 미치는 등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짐작해 보았다.

 그런데 의외로 그보다 더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한 지점이 있었다. 그건 평소 열매를 따 먹으면서도 나무의 상태를 살필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땅에서 뭘 캐거나 할 때도 마찬가지다. 파닥이는 물고기, 나아가 두 발 달리거나 네 발 달린 동물을 먹을 때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그것들이 살아있을 때 그 안위를 살핀 적이 없으며, 피치 못하게 ‘죽일’ 때 그것들이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는다. 그렇게 죽어간 것들이 내 몸에 들어와서 나의 일부를 이룰 것임에도 말이다.

  각 단계가 분절되고 그 사이를 물류가 메꾸는 지금의 산업 구조에서, 재료와 우리는 너무나 멀다. 마트에서 비닐에 싸여 박제된 당근을 카트에 던져 넣으면서, 잘 손질된 돼지 목살 한 팩을 집어 들면서 ‘연결’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알았더라도 아주 자주, 잊는다.

  내 입에 넣는 것이 본디 스스로 살아있는 생명이었고, 그 생명과 우리 자신이 연결된다는 걸 상상하지 못하는 순간 인간은 거대한 생명권에서 자신의 위치를 상실하고, 폭주한다. 홈쿡은 수많은 플라스틱 포장 봉투에 담긴 재료와 거의 완벽하게 조리된 밀키트의 도움을 받아 그럴듯한 한 끼를 차려내는데 그치고, 그 한 끼는 인간이 잠깐의 생명 활동을 연장하는 데는 도움을 줄지 몰라도 본연의 존재 이유, 즉 생명 그 자체로서 거듭나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를 작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

  라다크에서 나는 이른바 진보라는 것에 의해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대지와 분리되고 이웃들과 분리되고 결국 자신으로부터도 분리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오래된 미래』 중에서

  홈쿡은 연결을 상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래야만 한다. 상상하자. 그리고 관심을 기울이자. 지금 썰려는 대파와 닭고기가 어떤 삶을 살다가 당신과 하나가 되려는지를.

 

 


김소담
교환여행 헬프엑스 여행가. 2020년 두 번째 여행에서 돌아온 후 인문교양월간지 《유레카》에서 일하며,조금 더 멋진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끊임없이 모색 중이다. 『모모야 어디 가?: 헬프엑스로 살아보는 유럽 마을 생활기(2018)』를 썼다.

 

* 《쿨투라》 2021년 5월호(통권 8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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