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승우] 연기 18년 조승우 “아직도 카메라가 두렵다”
[배우 조승우] 연기 18년 조승우 “아직도 카메라가 두렵다”
  • 김인구(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 승인 2018.10.29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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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맨 스토리

“배우로서 꿈이요? 저는 아직도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불편해요. 그건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그저 관객과 시청자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끼치는 배우가 된다면 그걸로 좋아요.”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의 이몽룡 역으로 데뷔한 조승우는 올해로 연기 경력 18년이 됐다. 20년 가까이 쉬지 않고 활동했던 배우가 아직도 카메라가 두렵다니, 이건 겸손한 것치곤 너무 지나쳐 보인다.

어리둥절했던 스무 살 신인
하지만 <춘향뎐> 때의 일화를 보면 조승우의 마음가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조승우는 약 9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이몽룡에 발탁됐다. 단국대 연극영화과 2년생으로 그야말로 얼떨결에 캐스팅된 경우였다. 춘향 역에는 그보다 더 어린 고교 1학년의 신인 이효정이 뽑혔다.
“학교에서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추천해주셔서 아무 사진이나 붙여서 응모했던 거예요. 그런데 덜컥 뽑힌 거죠. 준비가 안 돼 있었어요. 촬영장에서 매일 혼났던 기억이 나요. 특히 춘향과의 합방 장면에서는 너무 NG가 많이 나서 임 감독님에게 혼쭐이 났죠. 그저 연기가 하고 싶었을 뿐인데 갑자기 카메라 앞에 서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으니 도망가고 싶었어요.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 그러나 그때 임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는 거죠. 인연이나 운명은 참 신기한 것 같아요.”
그렇게 신인 조승우는 단박에 충무로 한복판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원하든 원치 않았든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때 나이 불과 스무 살이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기에 모든 게 두렵고 어리둥절했다. 타인의 시선을 즐기기보다는 피하고 싶었다. 게다가 영화는 자신의 전공이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다. 조승우는 <춘향뎐>으로 들끓었던 관심을 뒤로하고 무대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각오로 김민기 연출의 극단 ‘학전’에 들어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합류했다. 김윤석, 설경구, 황정민이 동료였다.

클래식, 타짜, 퍼펙트 게임까지
그러나 조승우는 스크린과 연결된 인연을 뗄 수 없었다. 2003년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으로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손예진, 조인성과 함께 절절한 멜로 연기로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2004년엔 임권택 감독과 다시 만나 <하류인생>을 찍었고, 이를 통해 베니스영화제에도 진출했다.
인연은 계속됐다. 2005년 500만 관객 동원에 성공한 <말아톤>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장애인 윤초원 역을 맡아 잊을 수 없는 캐릭터를 보여줬다. 그가 한 대사 “초원이 다리는 100만 불짜리 다리”는 지금도 종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될 정도로 많은 관객의 뇌리에 남아 있다.
2006년 <타짜>로는 600만 관객을 불러모았다. 허영만 화백의 인기 만화 ‘타짜’를 원작으로 한 작품에서 매력적인 주인공 고니를 맡아 원작과 또 다른 캐릭터를 창조했다. 그때 인터뷰에서 만난 조승우는 이제 막 스크린에서 튀어나온 고니처럼 불량해 보였다. 자연스럽게 뻗친 헤어스타일, 삐딱하게 숙인 고개는 영락없는 고니였다. 그는 “타짜다운 손기술을 보여주기 위해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화투패를 잡았다”고 했다. 이전까지 그는 화투를 전혀 몰랐단다.
영화를 하고 나서 처음으로 편집실이란 곳을 찾아간 것도 <타짜> 때가 처음이었다. 영화 제작에서 배우의 몫은 크랭크 인에서 크랭크 업까지. 그러나 그땐 좀이 쑤셔서 안 가볼 수 없었다. 2시간 30분 정도로 정리된 편집본을 본 순간, 그는 알싸한 감동에 휩싸였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고마운 사람은 역시 상대역인 ‘정마담’ 김혜수다. 선배이자 최고의 여배우와 1대1로 붙었을 때의 떨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10세 연상이라는 나이 차는 둘째치고서라도 깍듯하게 존댓말을 쓰는 선배와의 노출신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슛이 들어가면 몸이 먼저 움직였다. 끈적한 베드신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했다.
새로운 작품,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한 조승우의 욕심은 2011년 영화 <퍼펙트 게임>에서도 엿볼 수 있다. <퍼펙트 게임>은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스타로 꼽히는 롯데 자이언츠 최동원과 해태 타이거즈 선동렬의 명승부를 소재로 한 영화다. 1980년대 최고의 투수였던 두 사람은 현역 시절 3차례의 맞대결을 펼쳐 1승1무1패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이 중 백미는 마지막으로 치러진 1987년 5월 16일 경기였다. 연장 15회까지 완투한 끝에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경기 시간만 4시간 56분. 최동원과 선동렬이 던진 공은 각 200개가 넘었다.
조승우는 최동원을 연기했다. 평소 열렬한 야구팬인 조승우는 2010년 말 군 제대 후 사실상 첫 번째 출연 영화로 <퍼펙트 게임>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촬영 중에 비보를 접해야 했다. 당시 한화 이글즈 2군 감독으로 있던 최동원이 별세한 것이다. 조승우는 “아침에 뉴스를 접하고 깜짝 놀랐어요. 고인과 직접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그분을 연기하면서 혼 같은 걸 느낄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 영화 <명당> 스틸컷

조승우가 곧 장르
영화에서 승승장구하던 조승우가 드라마에 출연한 것은 2012년 MBC 드라마 <마의馬醫>를 통해서다. <마의>는 말을 고치는 천민에서 시작해 수의사로 명성을 얻은 후 어의御醫의 자리까지 올랐던 실존인물 백광현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다. 카메라가 거북해 드라마 출연이 없었던 조승우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기꺼이 안방극장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해 말 당당히 MBC 연기대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영화 <내부자들>(2015)과 드라마 <비밀의 숲>(2017), <라이프>(2018) 등을 오가며 ‘믿고 보는 배우’로 신뢰를 쌓았고, ‘조승우가 곧 장르’라는 평가를 끌어냈다. 하지만 조승우는 자신을 향하는 찬사에 겸손했다.
“장르 불문, 대체 불가한 배우라는 말씀을 들으면 물론 고맙고 좋지만 민망해요. 그런 칭찬을 들으면 오히려 막 도망치고 싶어져요. 혹시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나 하는 부담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매일 걱정을 안고 사는 게 어찌 보면 배우로서의 숙명이 아닐까 해요.”
추석 연휴에 치열한 전쟁을 벌인 영화 <명당>에서도 조승우의 활약은 빛났다. 지난 9월 19일 개봉해 10월 9일까지 관람객 수는 약 206만 명. 당초 기대보다는 살짝 아쉬운 성적이지만 조승우의 연기만큼은 드러난 숫자 이상이었다.
천재지관 박재상이었다. 박재상은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아서 자칫하면 평면적으로 비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지성이 연기한 흥선대원군이 욕망을 숨기다가 폭발적으로 터뜨리는 것에 비해 밋밋해 보였다. 그러나 조승우는 박재상이야말로 이 영화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모자라도, 지나쳐도 안 되는 적정한 에너지를 찾는 게 중요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 박재상은 존재감이 떨어지지 않나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대립적 상황을 받쳐주는 인물이고 정적인 모습 안에 강인함이 있는 사람이어서 좋았어요.”
극을 이끄는 두 주인공 박재상과 흥선대원군에 대해 조승우는 이런 비유까지 썼다. “지성이 형이 전천후 플레이어 박지성이라면 저는 지난 아시안게임 축구에서 인상 깊게 본 김진야 선수라고 할 수 있어요. 팀에 헌신하면서 제일 많이 뛰는 선수. 박재상은 그런 캐릭터였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조승우를 다시 보게 하는 건 다른 경쟁작 <안시성>의 조인성과 <협상>의 손예진에 대한 평가다. 셋은 15년 전 영화 <클래식>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인연이 있다. 신인으로 만났던 세 사람은 어느새 충무로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 재회했다.
“아주 옛날부터 조인성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멋있을 배우, 한국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같은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특유의 미소년 이미지가 있으면서도 섹시함이 공존하는 배우죠. 아우라가 있어요.”
“손예진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독보적인 배우죠. 예진 씨가 여태껏 걸어왔던 필모그래피를 보면 박수쳐주고 싶어요. 대견하면서도 존경스럽고, 언제나 늘 한 단계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배우의 끝은 어디일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정도면 그냥 덕담 수준을 넘는 것 같다. 남 칭찬에 인색한 배우도 많은데 조승우는 다르다. 질문을 받으면 한 템포 숨을 고르고 신중하게 답한다. 느릴지언정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그저 무대 배우가 되고 싶어서 연기를 시작한 것처럼” 그는 연기 잘하는 선후배, 동료 배우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런 점에서 <명당>에서 박재상 곁을 쫓아다니며 윤활유 같은 역할을 했던 유재명과의 호흡도 찰떡같았다. 비록 실제는 일곱 살 많은 형이지만 촬영장에서는 허물없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처럼 지냈다.

Ⓒ 굿맨 스토리

전원에서 나무 기르며 살고 싶다
그러나 조승우를 영화나 드라마로만 한계짓는 건 불가능하다. 애초의 꿈이었듯이 그에게서 뮤지컬을 빼놓을 수 없다.
조승우는 영화나 드라마를 하면서도 꾸준히 무대 위에 섰다. <지킬 앤 하이드>, <헤드윅>, <맨 오브 라만차> 등 우리 귀에 익은 뮤지컬마다 그의 이름을 올렸다.
이 중 <지킬 앤 하이드>는 11월부터 재공연에 나선다. 2004년 처음 출연해 올해가 다섯 번째다.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그가 뮤지컬을 반복적으로 하는 이유는 뭘까.
“우연히 한 팬의 글을 봤는데 지난 10년간 공연을 못 봤다고 하더군요. 저는 나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10년을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안 할 수가 없었어요. 뮤지컬의 특성상 무대가 한정적이고 공연 횟수도 제한적이죠. 더 많은 팬이 공연을 보셨으면 해요.”
<맨 오브 라만차>의 세르반테스 역도 벌써 세 번이나 했다. 2005년 시작한 <헤드윅>도 5회나 출연했다.
“많이 했지만 그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달라요. 아마 10년 뒤에는 또 다를 거예요. 얼굴에 주름이 늘어가지만 이런 섬세한 감정을 찾아가는 게 연기를 하는 보람 같아요.”
무대 혹은 카메라 앞에 서지 않을 때의 조승우는
‘집돌이’다. 쉬는 날엔 대개 집에서 쉬면서 좋아하는 야구를 보거나 삽살개 ‘단풍이’를 산책시킨다. 열세 살 먹은 노견 단풍이 때문에 2013년엔 삽살개 홍보대사를 하기도 했다.
이제 그만 나 혼자 사는 걸 끝내고 결혼하는 건 어떠냐고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이 소탈하다. “가정 꾸리고 싶죠. 전원주택에서 나무 키우고 염소 키우면서 살고 싶어요. 하하”
연기 베테랑. 그러나 조승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보인다.
“늘 무대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우연한 기회에 영화로 데뷔했지만 아직도 영화를 모르고, TV 드라마는 더 몰라요. 그러나 어떤 감정을 가지고 연기한다는 점에선 같은 것 같기도 하고요.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무난히 걸어왔습니다. 운도 좋았고요. 내가 왜 배우가 됐는지,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해야할지 매일 고민해요. 저도 즐겁고 관객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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