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대한민국 오토캠핑의 선구자 박상설을 만나다
[INTERVIEW] 대한민국 오토캠핑의 선구자 박상설을 만나다
  • 전찬일(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 승인 2021.04.2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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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설. 명함에 적힌 바에 따르면, 아시아기자협회(AJA)가 발행하는 온라인 저널 《아시아엔 (THEAsiaN) 칼럼니스트요 ‘자연과 삶’ 전문기자며 기계기술사에 카운슬러다. 그리고 자타가 인정하는 우리나라 오토캠핑 1세대, 아니 선구자다. 놀라지 마시라, 그의 나이 94세다. 1928년 춘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1966년 국가기술고시 건설기계 기술사 자격증을, 1987년에는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서울 집 한 채 값이 50만 원쯤 할 때인 마흔 즈음, 평당 5원짜리 30만 평을 가평에서 매입해 그만의 캠핑문화를 구축했다. 이후 강원도 홍천 오대산 북쪽에 주말레저농원 ‘캠프나비(Camp Nabe)’를 꾸려 운영해오고 있다. 인성 교육과 감성 훈련 등의 장으로서. 물론 돈벌이는 아니다.

  지난 3월 6일(토) 오전, 70줄에 접어든 자칭 ‘산녀’와 함께 양주의 댁을 방문해 인터뷰도 하고 점심과 차도 하면서 반나절을 보냈다. 침실과 운동실, 거실로 이뤄진 아파트에 들어서며 선생은 평소 2시간쯤 방에서 운동을 한다고 했다. 내 눈길을 잡아끈 것은 우선은 컴퓨터 모니터 옆에 놓여 있는 또 다른 모니터였다.

  “나이 탓에 10년 전부터 눈에 장애가 생겨, 5백만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구입한 확대경이 없으면 글을 쓸 수가 없어요. 그래 남들이 1시간 정도면 쓸 걸 이틀은 족히 걸리지요.”

  2014년 발행된 저서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백 년의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토네이도)도 그렇지만, 『데미안』 100주년을 기해 2019년 내가 기획·출간한 『내 삶에 스며든 헤세』(강은교 외 지음, 라운더 바우트)의 58인 필자 중 1인으로 써 보냈던 원고 「헤르만 헤세에 바치는 망백(望百) 자연주의자의 육필 수기」-《아시아엔》에 기고한 수기의 축약 버전이다-가 떠올라 가슴 한켠이 적잖이 저렸다. 대체 선생에게 글의 의미는 뭘까.

  “글을 계속 쓴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죠. 가령 시를 쓴다면 그것은 머리가 아니라 행동으로 쓰는 거죠. 결국 산다는 것은 행동을 한다는 것인데, 그 행동을 글로 옮기는 거죠. 내게는 인문학도 행동 인문학이죠.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아시아엔》에 글을 쓰다가 죽는 게 가장 큰 소망입니다. 내가 죽은 날이 《아시아엔》을 떠나는 날이고요.”

  기자나 평론가로 전문적 글쓰기를 30여 년을 지속해왔건만 단 한 순간도 선생처럼 간절하게 글을 쓴 적이 없다. 게다가 글쓰기에 얼마나 게을렀던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렇다면 선생의 글쓰기는 캠핑과 동일한 함의를 띠는 게 아닐까.

  “내게 캠핑은 건강을 위한 것도, 레저도, 재주도,철학도 아니에요. 문화요 바로 삶 그 자체죠. 캠핑은 박쥐 둥지가 아니라 길 위의 둥지요 길 위의 집이죠. 노마드 정신의 발현이고. 텐트 안은 비록 작은 공간이나, 그 안에서 루소의 『에밀』이나 헤세의 『데미안』처럼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빗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를 듣는 것은 우주를 품는 것이나 다름없죠.”

  문득 주말농장 명칭 ‘캠프 나비’가 궁금해졌다. 나비가 버터플라이의 그 나비는 아닐 테고… .

  “‘나비’는 Natural Being의 약자에요.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유롭게 사는 삶. 오토캠핑을 하기전에는 20년쯤 비닐하우스에서 자기도 했고, 으레 천막생활을 했죠. 내 주말농장에는 별도의 주거시설이 없이, 텐트에서 자고 지내는 거죠.”

  몇 해 전 《아시아엔》 이상기 발행인과 함께 선생을 찾아가 홍천 캠프나비에서 1박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의 체험은 제법 강력했으나, 내게는 자주 반복하고 싶은 그 무엇은 아니었다. 캠핑에 따르기 마련인 크고 작은 불편함 때문이랄까. 그나저나 선생은 어떤 계기로 평생을 캠핑과 더불어 살게 됐을까.

 “내 캠핑은 크게 3단계로 나뉘어요. 일제강점기였던 어릴 적부터 법무사였던 아버지와 함께 캠핑을 종종 하곤 했죠. 캠핑을 하며 아버지와 함께 책을 읽곤 했는데, 그때 캠핑의 재미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된 거죠. 두 번째 단계는 6·25가 발발하고 육군 공병으로 입대하고 나서예요. 남들은 공병 중대에서의 텐트 생활이 힘들다는데, 나는 즐겁기만 하더군요. 중대장이 된 이후로는 꽤 큰 미군용 CP텐트를 쓰게됐는데, 어느 날 그 안에서 듣는 빗소리에 미쳐버릴 정도로 빠져들었어요. 우주를 품는 듯한 느낌을 그때 난생처음 맛본 거죠.”

  그 이후 그 체험을 반복·지속시키고 싶었다. 산과 들, 강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텐트를 쳤다. 밖에 치기 힘들 때는 방 안에 텐트를 쳤다. 그러다 가평에 임야를 사게 됐다. 그것이 세 번째 단계였다. 그 단계에는 1987년(60세)에 뇌졸중으로 죽음에 직면하면서 맞이하게 된 인생의 전환점과, 그 전후도 포함된다.

  “건설교통부를 거쳐 건설업체 중역으로 한창 활동하던 중이었죠. 며칠씩 밤샘을 시도 때도 없이 하던 워커홀릭인데다 완벽주의자였는데 갑자기 쓰러졌으니, 모든 삶이 중단된 거죠. 한국에서는 끝내 병명조차 알지 못했죠. 3년 후 미국으로 건너가서야 캘리포니아 의과대학에서 뇌간동맥경색(뇌졸중)이란 판정을 받았어요. 수술은 불가능하고, 날마다 그저 아스피린 한 알 먹고 끊임없이 운동하는 것만이 유일한 처방이더군요. 그때 그간 영위했던 모든 삶의 방식을 내려놓고 불편한 몸으로 오지를 떠돌 결심을 했죠. 가족에게는 짐이 되긴 싫으니 알리지도 않고, 산에 내 자신을 버리겠다고 마음먹은 거죠. 환자로 죽긴 싫고 여행자로 죽겠다는 일념에, 아픈 몸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어요. 1년 6개월 동안 미국, 캐나다, 멕시코, 유럽 12국, 인도, 네팔, 일본, 중국 등을 떠돌았어요. 오지를 주로 찾아다니며, 휴대용 텐트나 렌터카에서 숙식을 해결했고요.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오지 탐방에 승부를 걸었다고 할까요. 호텔이나 모텔 같은 데는 쳐다보지도 않았고, 머리를 박박 민 것도 그때였어요.”

  죽기 위해 집과 고국을 떠나 외국 오지로 나섰는데, 3개월 만에 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도 걸을 수 있게 됐다. 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찾아들었다. 그러자 살고 싶은 열망이 솟구쳤다.

  “이렇듯 죽으려고 떠돌았는데 외려 나는 살아났어요. 무기력하게 병실이나 집에 누워 있지 않고 산행과 캠핑을 계속한 것이 기적을 가져온 것이었죠. 그 이후의 내 삶은 덤의 인생인 셈이에요. 그 고통스러운 여정에서 나는 자연을 다시 만났고 체험했어요. 그 만남과 체험은 자연을 향한 신앙으로까지 나아갔어요. 그때의 체험을 담은 글이 2001년 동아일보 투병문학상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고요.”

  “마지막 스승은 나를 산에 버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박상설. 그는 현재 구순을 훌쩍 뛰어넘은 노인이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청년의 일상을 살고 있다. 매일 2시간씩은 걷고 기회 있을 때마다 등산하고 캠핑하면서 인간 DNA 안에 각인된 자연 회귀 본능을 따를 때, 우리네 인간은 궁극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 이후로 그는 줄곧, 혼자 지내고 있다. 그의 거실에 걸려 있는 거울에는 “홀로 누리는 기쁨의 시간”이라는 문구가 빨강, 파랑, 노랑 삼색으로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30여 년이 지나도록 그는 손주들을 본적조차 없단다. 메일로 소식을 주고받을 따름이란다. 그런데도 잘 지낸단다. 일찌감치 시신을 기증하고 10개 항목으로 작성해놓은 유언 중 유난히 8번째와 9번째가 남다른 눈길을 끈다.

 “‘죽은 자 박상설’을 기리려면 가을, 들국화 언저리에 억새풀 나부끼는 산길을 걸으며 ‘그렇게도 산을 좋아했던 산사람 깐돌이’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망자 박상설’이 생전에 치열하게 몸을 굴려 쓴 글모음과 행적을 대표할 등산화, 배낭, 텐트, 호미, 영정사진 각 1점만 그가 흙과 뒹굴던 샘골농원에 보존한다.”

  박상설 그는, 진정한 ‘산사람’이요 ‘캠핑인간’인 것이다.

 

* 《쿨투라》 2021년 4월호(통권 8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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