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바텐더 술 그리고 캠핑
[INTERVIEW] 바텐더 술 그리고 캠핑
  • 박원호 (게임회사 시스템 기획자)
  • 승인 2021.04.26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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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바람의 파이터』를 보면 ‘수련’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한 사무라이와 평범한 농부가 사소한 시비로 인해 대결을 하게 된다. 사무라이는 기세 당당하게 농부의 앞에 검을 들고 나타난다. 하지만 검을 드는 순간 알 수 없는 농부의 위엄에 압도당한다.

  사실 인생에서 목검조차 잡아본 적 없었던 이 농부는 오랫동안 다도를 배워왔다. 사무라이가 100번의 베기를 수련하는 동안 농부는 1000잔의 차를 만들었다. 그 수련의 깊이는 사무라이의 검술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결국 사무라이는 농부에게 무릎을 꿇고 패배를 선언한다. 내가 캠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인터뷰의 주인공이 이 농부와 매우 닮아있기 때문이다.

  이정구 씨는 나의 단골 바의 바텐더였다. 어떤 사무라이가 100번의 베기를 연습하는 동안 정구 씨는 1000잔의 마티니를 만들어 온 베테랑이었다. 아마 정구 씨가 군산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 동네의 술꾼들 모두 큰 허전함을 느꼈을 것이다. 사실 정구 씨와 나는 술을 좋아한다는 것을 빼고 다른 점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낮에 일하고 정구 씨는 밤에 일한다. 나는 샐러리맨으로 일하고 정구 씨는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나는 혼자 술집을 찾는 소위 ‘아싸’지만 정구 씨는 많은 친구를 사귄 우리 동네 ‘인싸’였다. 결정적으로 나는 집 안에서 ‘게임’과 ‘영화’를 즐기지만, 정구 씨는 ‘캠핑’이라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내가 《쿨투라》 편집장님에게 캠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람도 정구 씨였다. 사실 나도 캠핑에 대해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어쩌면 나처럼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에 대한 동경을 가진 분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쿨투라》의 이름을 빌려 군산 최고의 바텐더 이정구 씨에게 인터뷰를 부탁했다.

정구 씨가 추천하는 레트로스 사의 허브쉘터 텐트

  박원호(이하 박) 오랜만입니다. 《쿨투라》의 독자 여러분을 위해서 간단하게 소개 한번 부탁드립니다.

  이정구(이하 이) 안녕하세요. 저는 군산에서 작은 바를 운영하고 있는 15년차 바텐더이며, 취미로 캠핑 즐기고 있는 이정구라고 합니다.

  박 항상 정구 씨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가게에 가고 싶다고 느끼지만, 캠핑 사진에 더 눈길이 갔어요! 캠핑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 제 첫 캠핑은 5년 전 지인의 초대로 시작되었어요. 정말 한적하고 고요한 캠핑장이었는데, 그곳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모닥불을 멍하고 바라보니 마음 한 켠이 뭉클해지더라구요. 정확히 그때 감정이 무엇이었을까? 라고 생각해보면 ‘위로’ 였던 것 같아요. 그때 그 감정의 여운이 지금까지 제가 캠핑을 즐기게 된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박 캠핑도 종류가 여러 가지 있잖아요? 오토캠핑, 간소캠핑, 부시크래프트, 백패킹, 차박…… 정구 씨가 선호하는 캠핑을 소개해주세요. 캠핑을 준비하는 방법, 그리고 캠핑장에서 ‘어떤 캠핑’을 하시죠?

  이 저는 가을과 겨울엔 오토캠핑을 즐기며,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차박을 즐겨요. 오토캠핑장을 갈 땐 숙식을 모두 해결할 수 있게 준비해 가고, 직접 하루 세 끼 식사를 해먹고 나머지 시간엔 여유를 즐겨요.

  물론 불멍(‘장작불을 멍하니 본다’, ‘불을 보며 멍때린다’ 등의 줄임말)은 필수입니다. 제가 캠핑을 시작하게 된 이유니까요. 그리고 차박을 떠날 땐 최소한의 짐으로 떠납니다.

  해당 지역을 관광하며 식사를 해결하고 괜찮은 곳을 찾아 차 안에서 잠을 자고 아침을 맞이합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끓여 먹는 아침 라면은 정말 맛이 좋아요. 기회가 되면 원호 씨도 함께 가시죠. 제가 인생라면 끓여 드릴게요. (하하)

  박 그 말씀 하시니까 바로 퇴사하고 싶어집니다. 정구 씨가 가장 선호하는 캠핑장이 있나요? 혹은 가고 싶은 곳은요? 한국이 아니라 외국이라도 좋습니다.

  이 저는 ‘뷰충’ 입니다. 뷰가 좋은 캠핑장을 선호한다는 말이죠. 강원도 정선에 가면 동강자연휴양림이 있습니다. 백운산을 앞에 두고 동강이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캠핑을 즐길 수 있는 곳이죠. 그곳 1~3번 사이트는 캠퍼들 사이에선 3대가 덕을 쌓아야 갈 수 있는 캠핑장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예약 전쟁이 치열하죠. 저도 기회가 되면 꼭 다시 가고 싶은 캠핑장입니다.

  박 역시 캠핑은 날씨가 가장 중요할 텐데, 계절마다 다른 캠핑의 즐거움이 있나요?

  이 캠핑의 매력 중 하나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 온몸으로 계절을 즐길 수 있다는 거예요. 봄엔 떨어지는 벚꽃 비를 맞고 여름엔 시원한 바다와 함께 즐깁니다. 가을엔 오색 빛깔 내뿜는 단풍 숲을 그리고 겨울엔 설경 안에서 말이죠. 계절마다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떠나는 설레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캠핑은 충분히 빠져들 만한 즐거움이 있어요. 

  박 최근에 인스타 스토리에 캠핑 장비를 정리 하셨다고 올리지 않으셨나요? 가장 아끼는 캠핑 장비가 있으시나요? 가장 추천하는 캠핑 장비 브랜드도 부탁 드립니다.

  이 아무래도 야외에서 자고 와야 하는 일인 만큼 텐트가 가장 중요하죠. 계절과 날씨에 맞는 몇 가지 텐트를 갖고 있어요. 그중 제가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레트로스 사의 ‘허브쉘터’라는 텐트가 있어요. 베이지 색상에 면 재질의 텐트라, 어느 계절 어떤 곳에서 피칭해도 자연스럽게 어울려요. 텐트와 함께 예쁜 자연을 사진 한 장에 담기 정말 좋은 텐트예요. 제 SNS에도 허브쉘터 사진은 인기가 정말 좋아요. 추천합니다!

정구 씨가 직접 만든 바비큐

  미식가 바텐더

  박 정구 씨 인스타그램 사진들을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게 캠핑에서 먹는 요리였어요. 이게 보통 맛집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잖아요! 지금까지 캠핑에서 먹은 음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가 있으신가요?

  이 캠핑의 꽃은 당연히 바비큐죠. 저는 두툼한 통삼겹을 그리들 위에서 굽는 걸 선호해요. 먼저 그 리들을 뜨겁게 달궈준 뒤 오일을 둘러줘요. 그리고 통삼겹을 올려 모든 면에 마이야르(스테이크를 불에 구우면 고기 표면에서 수분이 제거되며 고기의 색이 먹음직스러운 갈색의 멜라노이딘 색소를 생성하는 현상)를 일으켜요. 잘 구워진 통삼겹을 적당한 시간 동안 레스팅 시켜준 뒤 잘라 속까지 익혀 줍니다. 그러면 육즙도 빠져나가지 않고 정말 맛있는 삼겹살을 즐기실 수 있어요. 야외에서 잘 구워진 삼겹살의 맛이란… 한번 맛보시면 캠핑이 매일 가고 싶어질 겁니다.

  박 말씀만 들어도 바로 퇴사하고 싶어집니다. (하하) 사실 정구 씨 하면 가장 먼저 술이 떠오르는 게 사실입니다. 코로나만 아니면 바로 저도 군산으로 가는 건데! 캠핑 중에 삼겹살 구워 먹으면서 술 한잔 하는 건 생각만 해도 끝내주는데, 정구 씨는 캠핑 중에 어떤 술을 추천하시나요?

  이 바텐더인 만큼 캠핑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칵테일을 추천해야겠죠? 모스코 뮬(Moscow mule)이란 칵테일이 있어요. 바에서 이 칵테일을 주문하면 투박한 구리 잔에 담겨 나오는 칵테일이죠. 구리 잔이 없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캠퍼들에겐 티타늄 컵이 있으니까요. 일단 잔에 얼음을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보드카를 잔에 30% 정도 따라주고 진저에일을 가득 담아 줍니다. 마지막으로 라임 웨지를 짜준 뒤 글라스에 넣어 주면 완성이 됩니다. 바비큐를 포함해서 그 어떤 캠핑 음식과도 찰떡궁합이실 거예요.

  박 아! 저도 좋아하는 칵테일입니다. 캠핑 하면 생각나는 그 티타늄 컵이랑 딱이네요! 물론 캠핑에서 과도한 음주는 삼가해야겠죠?

  이 코로나19 여파로 캠핑족이 엄청 늘어났어요. 캠핑장 예약 대란이 일어날 만큼 말이죠. 각 캠핑장마다 매너 타임이 존재하는데, 음주는 매너 타임까지만 적당히 즐기시고 옆 텐트에 소란스럽지 않도록 캠핑을 즐기셨으면 해요.

정구 씨가 추천하는 칵테일 모스코 뮬(Moscow mule)

  나와 캠핑

  박 사실 모든 사람에게는 취미가 필요하잖아요!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저도 게임이 아닌 스케이트보드와 영화, 맛집 찾아다니기 같은 취미가 있거든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고 일탈이기도 하고. 정구 씨에게 캠핑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 ‘이불 밖은 위험해’ ‘집 나가면 고생이야’ 이런 이야기 많이 들어 보셨죠? 캠핑이 그래요. 많은 짐을 차에 싣고 낯선 곳에 집을 지어 살림살이를 들이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적게는 1시간 ,길게는 3시간씩 사이트를 구축해야 하거든요. 근데 저는 이 과정이 참 좋아요. 움직이는 동안 불필요한 생각들도 들지 않고, 캠핑을 다녀오면 성취감도 들거든요. 그 힘으로 또 다음 캠핑까지 일주일와 한 달을 기다리며 일상을 보냅니다.

  박 사실 캠핑이라는 게 ‘장비’에 대한 진입장벽이 크잖아요? 힐링으로 캠핑을 하고 싶은데 정작 캠핑 장비 가격을 보면 할 엄두가 안 나기도 하고… 저처럼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는 분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 캠핑을 시작하려는 주위 분들에게 항상 말씀드리는 건데, 캠핑 장비를 사기 전에 가까운 글램핑장을 몇 번 다녀와보시라고 해요. 그러면 내가 캠핑을 잘 즐길 수 있는 사람인지, 혹은 내가 원하는 캠핑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들을 알게 되거든요. 그 때 그에 맞는 장비를 사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물론 막상 가보니 나랑은 안 맞는구나 하시면 시작하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집 밖에 나가면 고생이니까요.(하하)

  박 나랑 맞는가 안 맞는가? 이거 생각해보니까 진짜 중요한 포인트네요 혹시 캠핑하시면서 잊을 수 없었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이 캠핑장에 예상치 못한 강한 비바람이 분 적이 있어요. 다행히 저는 아무 일이 없었지만 주위 텐트들이 모두 날아가 버렸어요. 이곳저곳에서 비명도 들리고 캠핑장이 아수라장이 되었어요. 혹시 캠핑을 시작하거나 하시는 분들이 계시면 야외에서 활동하는 것인 만큼 어떤 갑작스러운 상황이 올지 모르니 귀찮더라도 텐트는 항상 풀패킹 하시길 추천드려요.

  박 마지막으로 정구 씨 바 세컨드 룸에 대한 소개 한 번 부탁드릴게요. 혹시 이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 중에 캠핑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정구 씨와 술 한잔 하면서 캠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잖아요?

  이 제가 운영하는 매장은 군산에 있어요. 매장은 ‘세컨드 룸’ 입니다. 누구나 편히 오셔서 이야기를 나누고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편한 가게입니다. 물론 캠핑과 술 이야기는 덤이겠죠? 한적한 도시 군산에 여행 오시면 꼭 방문해주세요. 저 그리고 칵테일과 함께 캠핑 이야기로 여행을 떠나보아요.

 

  끝으로

  정구 씨가 일하는 매장의 자세한 위치는 말하지 않겠다. 캠핑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직접 한번 군산에서 찾아 가보는 것을 권유한다. 그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될 테니까. 혹시 모르지 않는가? 이 인터뷰가 실린 《쿨투라》 한 권을 들고 가면 정구 씨가 칵테일 한 잔 서비스 할지도 모르니까.

 


 

 

* 《쿨투라》 2021년 4월호(통권 8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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