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Theme] 철학이 없는 무한한 탐욕의 괴물은 무엇을 남기는가
[6월 Theme] 철학이 없는 무한한 탐욕의 괴물은 무엇을 남기는가
  • 라이너(영화 유튜버)
  • 승인 2021.05.2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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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중국 산둥성 곡부에는 공부(孔俯)라는 장소가 있다. 공자와 그의 가족들이 살았다고 하는 집과 그 지역을 일컫는데, 이 공부의 외채와 내채를 구분하는 벽에는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상상의 동물이 그려져 있다. 바로 ‘탐(貪)’이라는 이름의 동물이다. 이 동물은 우선 무엇이든 먹어치운다. 그것이 인간이든, 인간이 만든 건물이든, 혹은 예술품이든, 동물이든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먹는다. 그 거대한 몸집으로, 배 속에 밀어 넣는 것만을 반복한다. 게다가 무척이나 탐욕스럽고, 만족을 모른다. 탐은 세상 모든 것을 다 집어삼키고, 마침내 스스로를 먹기 시작한다. 욕망의 끝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욕망이란, 허무한 것이다.

  최근 영화 소비의 패턴이 변화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거리에 걸린 영화 포스터, TV에서 나오는 영화 예고편을 보며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리던 것에 익숙한 영화팬들에게는 무척 낯선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더이상 극장 개봉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대안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OTT 시장이 그것이다. 넷플릭스, 왓챠, 티빙, 웨이브 등, OTT업체들은 경쟁적으로 영화를 사들이고, 동시 공개, 단독 공개를 요구한다. 그리고 관객들은 영화관을 찾아가야 할 동인을 잃어버린다. OTT의 등장으로 영화관이 바로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이제껏 해온 영화라는 산업 전반에 유의미한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이제 관객들은 옛 영화를 소비할 때도 과거와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비디오테이프를 빌리던 시절까지 돌아가지 않더라도, 유료 VOD를 결제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넷플릭스나 왓챠에서 우선 검색을 해보고, 구할 수 없을 때 VOD 구매를 고려한다. 월정액을 내고 다양한 콘텐츠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OTT서비스는, 완벽하게 구매자들을 설득해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OTT 기업은 물론 넷플릭스일 것이다. 2016년부터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넷플릭스는 2020년 한 해 동안 5173억 원의 수입을 올렸는데, 이는 2018년(657억 원), 2019년(2483억 원) 대비 매해 급성장을 이룬 결과다. 넷플릭스는 끊임없이 가입자를 늘리기 위한 전략을 동원했고,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핵심은 바로 그 ‘전략’에 있다. 그리고 그 전략은 넷플릭스의 약점을 보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넷플릭스의 약점은 바로 다양성의 부재, 콘텐츠 숫자의 부족이다. 넷플릭스는 더 많은 가입자를 원한다. 하지만 OTT 업체로서의 넷플릭스는 생각만큼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다. 넷플릭스를 이용하다 보면 콘텐츠의 부족을 쉽게 느낄 수 있는데, 사실상 한국인이 즐길만한 오래된 콘텐츠나 영화들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아주 많은 콘텐츠들이 단기간만 존재하다 사라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오래 두고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엄청나게 많은 콘텐츠들이 마치 바다를 이루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포장지만 그럴듯하고 내용물은 얄팍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렇기에 넷플릭스로 OTT 서비스에 맛을 들인 한국 가입자들은 왓챠나 웨이브와 같은 다른 OTT서비스에 동시 가입하는 경우가 생겨나는 것이다.

ⓒ넷플릭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넷플릭스가 선택하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외부의 콘텐츠를 더욱 많이 확보하는 것, 다른 하나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다. 우선 외부 콘텐츠를 확보하는것은, 영화 〈승리호〉나 〈낙원의 밤〉의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해당 영화들은 극장 개봉보다는 안정적인 수익이 확보되는 넷플릭스를 선택했고, 〈승리호〉와 같은 기대작을 확보하는 건 유료 가입자의 수를 늘리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마치 〈서복〉을 가져온 티빙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수단은 모두 일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언젠가 해당 영화들은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이다. 잠깐 영화에 혹해 넷플릭스에 가입하더라도, 넷플릭스 유료구독을 유지할 동인으로서는 부족하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오리지널 콘텐츠가 대두된다. 〈킹덤〉이나 〈스위트 홈〉과 같은 넷플릭스 드라마들이 대표적인 예다. 외국 드라마의 경우에는 〈퀸스 갬빗〉과 같은 예가 있을 수 있다. 넷플릭스는 공격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고 사들이고 있으며, 넷플릭스에 가입해야만 볼 수 있는 이들 오리지널 콘텐츠는 넷플릭스를 다른 OTT와 구분하는 가장 큰 강점이다. 사실상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떠오를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와 경쟁하기 위해서도 오리지널 콘텐츠의 확보는 절실하다.

  하지만 오리지널 콘텐츠의 질적 수준에 대해서는많은 의문이 생기는 것 또한 현실이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에 혈안이 된 나머지, 있을 필요가 없는 작품들, 혹은 수준 이하의 작품들, 더 나아가서는 작품을 보는 심미안을 의심하게 만드는 작품들을 모조리 사들이고 있다. 빌 버(BillBurr)와 같은 특정 코미디언의 스탠딩 코미디를 두편이나 추천하는가 하면, 제작 방식이나 철학에 의심이 드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투자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잔혹하고 선정적인 장면들의 삽입에도 별다른 기준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또 퀄리티 자체가 떨어지는 작품을 만들거나, 결말이 흐지부지되는 작품들, 오직 제작비에만 관심을 둔 듯 완성도와 작품성이 크게 떨어지는 콘텐츠들이 난무하는 것이 넷플릭스의 어두운 면이다.

  넷플릭스는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더 많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필요로 할 것이고, 아주 많은 시나리오들이 검토되고, 제작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여기에 넷플릭스만의 고유한 철학이나 사상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주먹구구식으로 콘텐츠를 소유하기만 해서는 지금처럼 산만하고 난잡한 상황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넷플릭스가 추구하는 가치, 넷플릭스가 보여주려는 이야기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밝혀야 하는 시점이다. 무분별한 탐식만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더 잘 정비된, 그리고 더 훌륭한 오리지널 콘텐츠로 무장한 후발 주자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라이너
영화 유튜버·영화 칼럼니스트. 《매경ECONOMY》에 영화 칼럼 연재 중. MBC 〈섹션TV연예통신〉, KBS Cool FM 〈사랑하기 좋은날 이금희입니다〉, KBS 1Radio 〈주진우 라이브〉, 인기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등 다양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다. 앞으로 디지털 시대의 글쟁이로서 계속 글에파묻혀 살며 양질의 콘텐츠를 선보이고자 한다.

 

* 《쿨투라》 2021년 6월호(통권 8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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